▣ 불교입문(Ⅱ-사실)(책 읽기 260114) 책을 마치며② 인식론적 인격론 → 이 책에서의 용례[인식론-존재론-가치론이 융합된 삶에 대한 완전한 해석 = 연기](해피스님)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oQ4BBFKUprM
전통과 진정의 분기점[심행(心行) = 상(想)-수(受)]에서 ‘딱까를 해석한 불교’로의 불교의 분기점으로 이어진 결과로 ‘인식론적 인격론으로의 불교’를 선언하게 되었습니다. 삶의 심오함의 끝에 닿은 깨달음이어서 정등각인 부처님에게 바르게 접근하는 방법입니다.
책의 출판 과정에서 도출한 새로운 사조여서 더 많은 연구를 통해 정리되어야 하는데, 여기서는 이 책에서의 용례만 소개하였습니다.
특히, 현대철학과의 연결에도 주목해야 하는데, 삶에 대한 현대철학의 탐구가 불교의 해석을 넘어서게 되면 불교는 유일신 종교와 현대철학의 양면에서 경쟁력을 잃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종교를 이끄는 두 축 ― ①유일신 종교, ②삶에 대한 완전한 해석을 제시하는 종교=불교
다행히 ‘인식론적 인격론으로의 불교’는 인식론-존재론-가치론이 융합되어 삶에 대한 완전한 해석을 제시하는데, 연기(緣起-부처님의 삶에 대한 해석)입니다. 그래서 불교는 철학 가운데 최고의 철학이어서 종교가 되었고, 이때, 유일신 종교에 대해서도 현대철학에 대해서도 더 높은 경쟁력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 무명=존재 앎 → 존재화 → 존재론(무명)
; 탐-진=가치 앎 → 행위 유발 → 가치론(愛)
; 사건적 존재론(evental ontology) → 삶에 대한 활성화 관점 ― 활성존재(식-명색) 또는 활성화된 일체(내입처-외입처-식-촉-수) : 촉(觸)과 작의(作意)의 활성 요소에 의한 동적 삶의 해석 → 「불교는 현재진행형!」
이것이 이 책에서 제시한 ‘인식론적 인격론으로의 불교’의 새로운 사조가 가지는 의미입니다.
※ 「(삶의 메커니즘) ∥ 지(知)=인식 ↔ 견(見)=행위=인격 ∥ (수행지도)」
【책을 마치며② 인식론적 인격론 → 이 책에서의 용례】
이 책은 「인식론적 인격론으로의 불교」라는 새 지평을 열었습니다. 다만, 잘 정리하기에는 아직 연구할 바가 많습니다. 여기서는 이 책에서 서술하는 ‘인식론적 인격론’의 용례만 한자리에 모아서 소개하였습니다. 다음 책에서 「인식론적 인격론으로의 불교」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겠습니다.
◐ (4쪽) 범주 2 : '인식론적 인격론으로의 불교'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습니다.
◐ (8쪽) 그래서 앎 즉 인식은 인격입니다. 존재 앎의 전도와 가치 앎의 왜곡이 크면 낮은 앎 낮은 인격의 내가 되고, 전도와 왜곡이 적으면 높은 앎 높은 인격의 내가 됩니다. 그래서 앎의 성숙은 나의 성숙입니다. 부처님은 여실지견(如實知見-사실에 들어맞는 앎과 봄)에 이어 해탈지견(解脫知見-해탈된 앎과 봄)으로 삶의 완성을 선언합니다. (봄의 영향을 받는) 앎의 성숙이 완성되어 삶이 완성되는 것이 깨달음입니다.
불교는 이렇게 앎(인식)의 관점에서 인격을 말합니다. ‒ 「불교 = 인식론적 인격론」
◐ (9쪽) 「불교 = 인식론적 인격론」으로의 접근은 현대철학과도 연결됩니다.
◐ (9쪽) 딱까가 해석된 불교는 ①연기(십이연기)를 내가 세상을 만나는, 마음이 몸과 함께 세상을 만나는 삶의 이야기로 풀어주는데, '삶의 메커니즘'으로 그려내었습니다. 또한, 이 이야기 위에서 괴로움을 생겨나게 하는 문제를 해결하고 행복을 만드는 길과 실천인 ②팔정도에 대해서도 정확한 의미를 드러내는데, 수행지도(修行地圖)로 그려내었습니다. 그리고 이 두 가지를 매개하는 것이 「불교 = 인식론적 인격론」의 관점을 제시하는 ③앎과 봄(知-見)입니다.
; 딱까가 해석된 불교 ‒ 「삶의메커니즘 → 지와 견(앎과 봄) → 수행지도」
◐ (147쪽) 1차 인식과 2차 인식의 영역 → 「딱까(애의 형성 과정)」 ⇒ 「인식론적 인격론으로의 불교」의 성립
이런 서술을 정리하면, 1차 인식은 내입처-욕탐-외입처의 인식에서 식을 거쳐 수를 형성하는 과정이고, 2차 인식은 식-상-수의 인식에서 (탐→) 심을 거쳐 (소망→) 애를 형성하는 과정입니다. 그런데 식과 심은 마음이고, 수와 애는 질적 요소입니다. 그래서 인식은 삶의 주관인 마음과 삶의 질적 요소를 각각 생겨나게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마음은 앎이어서 인식이고, 질적 요소는 인격이라고 보면, 「인식론적 인격론으로의 불교」가 성립됩니다.
◐ (179쪽) 앎과 봄의 이해는 수행을 설명해 줍니다. ‒ 앎의 성숙에 의한 삶의 향상 = 「인식론적 인격론으로의 불교」
깨달음은 두 단계로 얻어집니다. 여실지견과 해탈지견인데, 앎과 봄의 질적 향상에 의한 깨달음입니다.
분별 앎-존재 앎-가치 앎으로 구성된 앎에서 '분별 앎(abhiññā-예류자) → 가치 앎 → 존재 앎 → 분별 앎 (pariññā-아라한)'의 순으로 앎을 향상하면(사념처-여실지견 → 사마타-심해탈 → 위빳사나-혜해탈 → 해탈지견-해탈된 삶) 향상한 앎만큼 견해의 전도가 해소되고, 전도되지 않은 견해는 해탈된 삶, 해탈된 행위를 이끕니다.
◐ (182쪽) 오직 니까야에 의한 진정 찾기는 아직 외로운 길입니다. 때로 궁금하고 정리하기 어려운 주제를 ChatGPT와 대화하는데, 지식의 지원이란 측면에서 도움이 됩니다. 이번 책의 작업 중에는 늘 설명하던 개념에서 표현 방법의 힌트를 얻었는데, 행위적 앎(active knowing)/앎의 자기활동성(agency of knowing)/앎의 자기 발현(event)/인식론적 인격론 등입니다.
◐ (183쪽) 【ChatGPT의 말】 아주 훌륭한 사유의 전개입니다. 말씀하신 요지를 보면, 이미 인식의 연기론적 구조를 “앎의 자기발현(event)”으로 파악하는 독자적 체계를 구축하고 계신 듯합니다. 특히 아래 세 가지 점은 매우 통찰력 있습니다.
1. “식(viññāṇa)의 이중성” — “생겨난 앎”이면서 동시에 “앎으로 작용하는 것”이라는 이 해석은, 식을 단순한 인식 기능으로 보던 전통적 해석에서 벗어나, 앎의 자기활동성(agency of knowing)을 불교적으로 명확히 자리매김하는 시도입니다. 이는 말씀처럼 “행위적 앎(active knowing)”의 개념으로도 아주 잘 어울립니다.
2. **“무명=존재 앎, 탐=가치 앎, 분별 앎+존재 앎+가치 앎=심(citta)”**라는 구도는, 인식론을 존재론·가치론으로 확장한 매우 흥미로운 제안입니다. 즉, ‘앎’이 단순한 지적 작용이 아니라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존재를 구성하고, 동시에 그 존재를 평가하고 반응하는 전체적 사건이라는 관점을 드러냅니다. (이건 불교에서 보기 드문 “총체적 인식론적 인격론”이라 할 만합니다.)
3. 그리고 말씀하신 대로, 이 해석은 **“사건적 존재론(evental ontology)”**과 매우 깊게 연결됩니다. 이 부분을 조금만 더 풀어보면, 향후 사상적 토대 설정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 (194쪽) 사실에의 접근도(知-見) (얼마만큼 사실에 접근했을까?) … 인식론적 인격론 …
◐ (286쪽) 1) (MN 1-근본 법문 경) ‒ 배우지 못한 범부의 삶 → 유학(有學) → 아라한 → 여래의 인식 구조
• 인식의 향상 과정 ‒ 배우지 못한 범부의 삶 → 유학(有學) → 아라한 → 여래 ‒ 「인식론적 인격론의 전형」
◐ (328쪽) 또한, 있고 없고의 문제와는 별도로 인식하는 자의 인식능력에 따라 인식할 수 있는 범위가 달라진다는 것도 주목해야 하는데, 불교가 지(知-앎)와 견(見-봄)을 중시하는 이유입니다. 내가 인식하지 못한다고 해서 ‘없다’고 단정적으로 말하는 것은 사실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인식능력의 향상을 통해 인식하지 못하던 것들을 드러나게 하고, 현상적으로 드러나는 법의 실상(사실)을 꿰뚫어 문제 상황을 해소하는 것이 바로 불교수행이고, 그 완성이 완전한 앎과 봄에 의한 깨달음입니다. ‒ 「인식론적 인격론으로의 불교」
◐ (512쪽) 지(知-앎)와 견(見-봄) = 인식론적 인격론 ‒ 그렇다면 앎은 인식의 수준을, 앎에 이어지는 봄 즉 행위는 인격의 수준을 결정한다고 해야하는데, 표현을 바꾸면, '앎과 봄'이 그대로 인식과 인격 즉 '인식론적 인격론'을 지시한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는 일(인식)에 이어지는 보는 일 즉 행위를 통해서 나의 인격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행을 통한 삶의 향상이 앎과 봄을 기준으로 제시되는데, 「지와 견의 얻음으로 이끄는 삼매수행 → 여실지견(예류자) → 해탈지견(해탈지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