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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조 교수님 원고] 불교의 현대적 의의와 초기불교의 역할

0 301 2021.05.10 20:21

불교의 현대적 의의와 초기불교의 역할


중국은 청 말에 새로운 서양문물을 받아들이면서 자신들의 불교적 전통을 반성하고 새로운 문명에 대처하고자 한다. 전통적인 불교를 귀신불교, 산중불교라고 정의한다. 이러한 반성 하에서 자신들의 불교가 나아갈 바를 인간불교로 새롭게 정의하면서 불교의 현대화를 시도한다. 이러한 시도는 한국에서도 이루어진다. 백용성 스님, 한용운 스님이 그러한 운동의 핵심에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정화 시기를 거치는 과정에 조계종의 선불교가 주도권을 쥐면서 이러한 운동은 마이너하게 된다. 한국불교는 선불교 중심의 수행적 전통을 유지하게 되고, 이는 한국불교의 주류가 되어 현재에까지 이르게 된다. 


인간불교는 신 중심, 사후중심의 불교가 아니라 지금-현재의 인간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불교이다. 이는 중국과 대만을 중심으로 현재까지 전개되고 있다. 인간과 이들이 이루어가고 있는 사회에 어떤 기여를 할지에 대해서 불교가 관심을 가져야 하고, 나아가서는 이것이 불교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이는 불교가 현대사회에서 나아갈 바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도 이러한 전통불교에 변화를 주고자 하는 것이 최근 들어 이루어지고 있다. 근대 초기에 붐을 이루지 못한 인간불교의 전통이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전통에 변화를 주는 일이 두 가지 방향성에서 일어나게 된다. 먼저 수행전통에 있어서 다양한 불교 수행전통이 한국에 전해지게 된다. 대표적인 경우가 동남아 불교 전통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위빠사나 수행이 국내에 유행한 것이다. 이는 부처님의 원음에 근거한 수행이라는 측면에서 선불교 수행의 대안을 찾고자 하는 이들에게 널리 퍼지게 된다. 이러한 흐름은 빨리어 경전의 번역과 함께 많은 학문적 수행적 성과를 내고 있다. 특히 미얀마는 위빠사나 수행전통을 보전하고 있고, 다양한 방식으로 수행이 이루어지고 있기에 많은 수행자가 미얀마의 수행처를 찾고 있다. 


이러한 수행법은 선불교의 대안 또는 보안으로 여겨지고 있다. 선불교의 발생원인에 대한 역사적 맥락적 이해가 없이 바로 선불교 수행으로 직입하는 경우에는 선불교의 목적, 선불교의 방법 등에 대한 이해의 어려움으로 인해서 수행이 진전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반면 위빠사나 수행은 장구한 역사적 맥락 없이 붓다의 수행법에 직입한다는 장점이 있기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이러한 분명한 방법론과 목적론으로 인해서 위빠사나 수행이 쉽게 현대의 수행자들에게 수용될 수 있게 된다. 


또 하나의 방향성은 서구의 심리 치료적 접근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서구의 심리치료와 상담은 불교의 치유기법을 적극 도입함으로 인해서 기존의 서구심리치료와 상담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러한 사조가 한국의 심리치료와 상담학계에 유입됨으로 인해서 불교의 현대화를 심리학과 심리치료의 측면에서 모색하고 있다. 특히 마음챙김에 기반한 다양한 심리치료기법은 현재에도 개발되고 있고, 이들을 국내에 적극 도입하고 있는 상황이다.


심리학, 심리치료, 상담의 관계를 살펴보면, 우선 불교의 관점에서 보기 때문에 각각에 대해서 불교 심리학, 불교 심리치료, 불교 상담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수 있다. 먼저 불교 심리학은 붓다로부터 시작하는 다양한 불교의 가르침 가운데 마음에 대한 가르침을 주제로 인간의 마음에 대한 불교적 통찰을 드러내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불교 심리학을 기반으로 불교 심리치료와 불교 상담이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불교 심리치료와 불교 상담은 불교 심리학의 응용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불교 심리치료와 불교 상담의 관계를 보면, 불교 심리치료 가운데 불교 상담이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불교 심리치료는 불교 심리학에 기반하여 인간의 마음을 치료하는 학문 분야이다. 서구심리치료는 다양한 증상을 중심으로 치료한다. 가벼운 스트레스에서부터 이상병리까지를 다룬다. 이를 불교 심리치료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번뇌를 다루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번뇌는 인간의 모든 괴로움의 원인을 총칭하는 말이다. 또한, 서구 심리치료는 정상적인 사회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수준까지를 치료의 영역으로 보는 반면, 불교 심리치료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을 극대화하는데 초점이 있다. 번뇌를 벗어나는 것 자체가 인간의 가능성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하는 것이 된다. 불교 심리치료의 영역에 번뇌를 제거함으로 정상적인 사회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것과 더 나아가 이른바 수행의 방법을 통해서 인간이 추구할 수 있는 최고의 가치라고 할 수 있는 열반, 불성을 성취하게끔 한다. 이렇게 되면 불교 심리치료의 영역은 서구심리치료의 영역보다 광범위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불교 심리치료의 한 방법론으로 불교 상담을 논의할 수 있다. 명상으로 대표되는 수행의 방법론을 통해서 번뇌를 제거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스승 또는 멘토가 없이는 어려운 방법이다. 이러한 스승 또는 멘토를 찾을 수 있고 지속적으로 수행을 할 수 있다면 명상 또는 수행으로도 심리치료를 훌륭하게 성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인에게 이러한 여건이 힘들다면 내담자와 상담자의 만남을 통해서 번뇌를 제거하고 나아가서는 인간의 높은 경지를 성취할 수 있다. 심리치료의 한 방법으로서 상담자와의 대화를 통해서 심리치료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다. 


불교 심리치료와 불교 상담은 불교의 심리화(Psycholization of Buddhism)의 대표적인 측면이라고 할 수 있다. 불교가 인간의 심리에 중점을 맞추는 것은 인간불교의 전제와도 궤를 같이하고, 현대의 조류와도 일치한다고 할 수 있다. 현대에는 신과 사후의 일보다는 나의 일에, 현재의 문제에 더 관심이 있다. 나의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불교가 기여하지 못한다면 불교는 여전히 산중불교, 귀신불교로 남을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불교 심리치료와 불교 상담은 불교의 현대화의 선봉에 서있다고 할 수 있다. 이때, 사실 즉 삶의 현실에 대한 있는 그대로의 해석 위에서 사는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는 초기불교는 마음을 ‘심(心)이라고도 의(意)라고도 식(識)이라고도 불리는’ 세 가지 이름으로 설명하는데, 마음으로의 동질성 위에서 삶의 과정에 따르는 차별성을 자세히 설명하는 등 마음에 대한 최선의 해석을 제공함으로써 불교 심리치료와 불교 상담이 불교 현대화를 위한 선봉에 설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주목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불교 심리치료와 불교 상담은 불교가 단순히 종교, 근본 되는 가르침이라는 의미를 넘어서 그 근본 가르침이 나에게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 나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 나에게 어떤 유익이 있는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붓다의 가르침이 당시의 대중들에게는 자신의 괴로움을 해결하는 키워드가 되었을 것이고, 선불교도 당시의 대중들에게는 자신의 문제를 다루었을 것이다. 현대사회에서는 현대인들에게 적합한 새로운 방법론이 출현해야 할 것이다. 그 당시에 유효한 방법이 지금에는 유효하지 않을 수 있고, 유효하다고 할지라도 더 효과적인 방법론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방법론으로 현대의 불교학계 전반이 제시하고 있는 것이 불교 심리치료와 불교 상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초기불교가 수행전통에서의 대안 외에 교리의 측면에서도 불교 심리치료와 불교 상담에 필요한 삶의 해석을 위한 근거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은 한국불교의 미래를 위해 고무적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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