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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스님의 경전해설2 주제별

(진리)깨달음의 확인 & 두 방향의 교리[흐름-붙잡음-쌓임](해피스님의 경전해설 181205)

0 604 2018.12.09 08:26

(진리)깨달음의 확인 & 두 방향의 교리[흐름-붙잡음-쌓임](해피스님의 경전해설 181205)

[동영상] https://youtu.be/k1wq1lTyjLo

 

atthinukhopariyāyasuttaṃ (SN 35.136-방법이 있는 가 경)(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6_04_011&wr_id=19)은 앞의 세 경과 유사한 형태를 취하면서, 나의 안에 탐()-()-() 있고 없음을 지혜에 의해 직접 봄으로써 확인하는 깨달음[무위(無爲)의 앎의 선언]을 말합니다. ㅡ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믿음과 다른 경우, 성향과 다른 경우, 구전과 다른 경우, 떠오름의 출현과 다른 경우, 견해와 통찰의 지속과 다른 경우에 의해 비구가 나는 '태어남은 다했다. 범행은 완성되었다. 해야 할 일을 했다. 다음에는 현재 상태[()]가 되지 않는다.'라고 분명히 안다.’라고 무위(無爲)의 앎을 선언할 수 있는 방법인가?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안()으로 색()을 본 뒤에 안으로 존재하는 탐진치(貪瞋痴)나의 안에 탐진치(貪瞋痴)가 있다.’라고 분명히 안다. 존재하지 않는 탐진치(貪瞋痴)나의 안에 탐진치(貪瞋痴)가 없다.’라고 분명히 안다. 비구들이여, 비구가 안()으로 색()을 본 뒤에 안으로 존재하는 탐진치(貪瞋痴)나의 안에 탐진치(貪瞋痴)가 있다.’라고 분명히 알고, 존재하지 않는 탐진치(貪瞋痴)나의 안에 탐진치(貪瞋痴)가 없다.’라고 분명히 아는 나의 법들이, 비구들이여, 믿음에 의해 알려져야 하는 것이거나, 성향에 의해 알려져야 하는 것이나, 구전에 의해 알려져야 하는 것이나, 떠오름의 출현에 의해 알려져야 하는 것이나, 견해와 통찰의 지속에 의해 알려져야 하는 것인가?” “아닙니다, 대덕이시여.” “비구들이여, 나에게 법들은 지혜로써 본 뒤에 알려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습니다, 대덕이시여.” “비구들이여, 이것이 믿음과 다른 경우, 성향과 다른 경우, 구전과 다른 경우, 떠오름의 출현과 다른 경우, 견해와 통찰의 지속과 다른 경우에 의해 비구가 나는 '태어남은 다했다. 범행은 완성되었다. 해야 할 일을 했다. 다음에는 현재 상태[()]가 되지 않는다.'라고 분명히 안다.’라고 무위(無爲)의 앎을 선언할 수 있는 방법이다.[()-()-()-()-()-() & 무탐(無貪)-무진(無嗔)-무치(無癡)에 반복]

 

부처님에 의하면, 이것이 깨달음을 확인하는 방법입니다. 스스로 자기 내면이 상태를 보아서, 실현된 탐()-()-() 없음의 상태를 직접 확인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직접 보아 확인하는 것을 해탈지견(解脫知見)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해탈지견은 계()-()-()-해탈(解脫)-해탈지견(解脫知見)의 오법온(五法蘊)[다섯 가지 법의 무더기]를 구성합니다. 중생을 구성하는 오온(五蘊)-오취온(五取蘊)과 반대의 방향에 있는 무더기[쌓임]입니다.

 

불교는 삶에 대해 두 방향을 제시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흐름(sota)도 중생들의 삶을 이끄는 흐름과 해탈-열반을 향해 벗어남의 방향으로 이끄는 흐름의 두 가지가 있습니다. 붙잡음에도 중생 즉 오취온(五取蘊)을 만드는 집착[()]와 깨달음으로 이끌리는 사념처(四念處) 사마타-위빳사나의 수행의 근간으로의 호흡 붙잡음[이어 보며 머무는 자]도 있습니다.

 

불교는 사는 이야기입니다. 삶의 과정에서 어떤 방향을 선택하는 가에 따라 삶은 고()일지 고멸(苦滅)일지의 결과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방향을 선택하여 삶을 살아갈 것인지는 제각각의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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