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전해설(201029) - 배우지 못한 범부 1.아(我)[삿된 견해의 숫자 수정 - 5x4(x) - 5x3(O)](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EvgmcOi583s
배우지 못한 범부는 「색(色)을 아(我)로부터 관찰합니다. ①색(色)을 가진 자로서의 아(我)를 관찰하거나, ②아(我)에서 색(色)을 관찰하거나, ③색(色)에서 아(我)를 관찰합니다. … 수(受)-상(想)-행(行)-식(識)에 반복 …」
이 내용은 색(色)-수(受)-상(想)-행(行)-식(識)을 아(我)로부터 즉 아(我)라는 관점을 전제하고서 세 가지로 관찰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그간의 해석은 ‘아(我)로부터’를 전제된 관점으로 이해하지 않고 뒤의 세 가지에 더해 모두 네 가지로 관찰한다고 설명하는데, 색(色)-수(受)-상(想)-행(行)-식(識) 각각에 대한 네 가지의 관찰이어서 ‘5×4=20’개의 삿된 견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 문장의 빠알리 원전은 rūpaṃ attato samanupassati, rūpavantaṃ vāattānaṃ, attani vārūpaṃ, rūpasmiṃ vāattānaṃ 인데, 빠알리 문법에서 vā가 세 번이면 ‘또는(or)’으로 연결되는 숫자가 셋이기 때문에 이 경우는 5×3=15개의 경우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4를 3으로 수정하면 4의 이해에서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게 되는데, 무아(無我)를 선언하는 다른 경들과의 연결입니다. (SN 22.59-무아상(無我相) 경) 등은 ‘무상(無常)하고 고(苦)이고 변하는 것인 색(色)-수(受)-상(想)-행(行)-식(識)에 대해 ‘이것은 나의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아(我)다.’라고 관찰하는 것이 타당한가?’라고 묻는데, 아(我) 아닌 것에 대해 아(我)를 전제한 이런 관찰이 타당한지의 질문입니다.
경은 다시 모든 색(色)-수(受)-상(想)-행(行)-식(識)에 대해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아(我)가 아니다.’라고 바른 지혜로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한다고 관찰의 기준을 제시합니다.
상(常)하고 락(樂)이고 영원한 것 즉 아(我)라면 ‘이것은 나의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아(我)다.’라고 관찰하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그러나 존재하는 것은 모두 무아(無我)이기 때문에[제법무아(諸法無我)] 어떠한 것이든 아(我)라고 설정된 것[거짓]에게 부여된 성질인 ‘이것은 나의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아(我)다.’라고 관찰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다는 설명입니다.
즉 무상(無常)하고 고(苦)이고 변하는 것인 오온(五蘊)을 아(我)라고 잘못 보면 ‘이것은 나의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아(我)다.’라고 관찰하게 되는데, 아(我)라는 관점의 전제 위에서 관찰되는 세 가지 방법입니다. 이런 점에서 관찰 방법과 관련한 두 가지 용례는 ①색(色)을 가진 자로서의 아(我)는 ‘이것은 나의 것이다.’와, ②아(我)에서 색(色)을 관찰하는 것은 ‘이것은 나다.’와, ③색(色)에서 아(我)를 관찰하는 것은 ‘이것은 나의 아(我)다.’와 동치(同値)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관찰하는 자는 배우지 못한 범부이고, 이렇게 관찰하지 않는 자는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라고 경들은 말하는 것입니다.
아(我)라는 설정[사견(邪見)] 위에서 세상을 보는 배우지 못한 범부는 이런 세 가지 방법으로 관찰합니다. 그러나 아(我)라는 설정을 가지지 않은[정견(正見)]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이런 세 가지 방법으로 세상을 관찰하지 않습니다. 여실지견(如實知見)이고 깨달음에 의해 얻어지는 해탈(解脫)된 삶입니다.
「불교입문(Ⅱ) 사실」에서는 무아(無我)를 몇 가지 관점에서 상세히 설명하고 있는데, 오늘 수업에서 규명한 이런 내용을 더 보충하게 될 것입니다.
1) 결점(괴로움?)으로 이끌리지 않고,
2) 의도대로 되는 것
으로 두가지 특성만 나타납니다. 통상적으로 이해하는 '영원불변' 특성은 언급이 없네요.
붓다께서 말씀하신 아트만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몰라 답답했는데 스님 법문에서 해결합니다.
I. 오온은 무아다! 무아 선언
II. 오온은 무상한가 상한가? 무상합니다. (사실 관찰)
III. 오온은 즐거움인가 괴로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사실 관찰)
IV. 앞의 아트만의 특성 두 가지(1,2)에 위배되므로, 오온은 무아이다! (반증으로써 결론)
스님, 아직까지 붓다께서 말씀하신 "무상"과 "고"라는 용어를 정확히 잘 모르겠어요.
위의 아트만 특성으로 유추하면, 무상은 '의도대로 되는 것'과 관련이 있어야 정확하게 논리적으로 맞을 것 같습니다. 아니면 번역 용어 문제일 수도 있겠구요... 공부를 할수록 궁금증만 늘어 납니다.
무아상경 논리구조상 I. 무아 선언이 없어도, II & III 에 의해 아트만의 특성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오온이 무아임이 증명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