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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라까빠나 경(M68)[naḷakapānasuttaṃ] ㅡ 이렇게 출가한 좋은 가문의 아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0 535 2017.08.23 20:53
날라까빠나 경(M68)[naḷakapānasuttaṃ]

evaṃ me sutaṃ — ekaṃ samayaṃ bhagavā kosalesu viharati naḷakapāne palāsavane. tena kho pana samayena sambahulā abhiññātā abhiññātā kulaputtā bhagavantaṃ uddissa saddhā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itā honti — āyasmā ca anuruddho, āyasmā ca bhaddiyo , āyasmā ca kimilo, āyasmā ca bhagu, āyasmā ca koṇḍañño, āyasmā ca revato, āyasmā ca ānando, aññe ca abhiññātā abhiññātā kulaputtā. tena kho pana samayena bhagavā bhikkhusaṅghaparivuto abbhokāse nisinno hoti. atha kho bhagavā te kulaputte ārabbha bhikkhū āmantesi — “ye te, bhikkhave, kulaputtā mamaṃ uddissa saddhā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itā, kacci te, bhikkhave, bhikkhū abhiratā brahmacariye”ti? evaṃ vutte, te bhikkhū tuṇhī ahesuṃ. dutiyampi kho bhagavā te kulaputte ārabbha bhikkhū āmantesi — “ye te, bhikkhave, kulaputtā mamaṃ uddissa saddhā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itā, kacci te, bhikkhave, bhikkhū abhiratā brahmacariye”ti? dutiyampi kho te bhikkhū tuṇhī ahesuṃ. tatiyampi kho bhagavā te kulaputte ārabbha bhikkhū āmantesi — “ye te, bhikkhave, kulaputtā mamaṃ uddissa saddhā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itā, kacci te, bhikkhave, bhikkhū abhiratā brahmacariye”ti? tatiyampi kho te bhikkhū tuṇhī ahesuṃ.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ㅡ 한때 세존께서는 꼬살라에서 날라까빠나에 있는 빨라사 숲에 머무셨다. 그때 많은 잘 알려진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세존을 따라 믿음으로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했는데, 아누룻다 존자, 난디야 존자, 낌빌라 존자, 바구 존자, 꼰단냐 존자, 레와따 존자, 아난다 존자와 다른 잘 알려진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었다.

그때 세존께서는 비구 승가에 둘러싸여서 열린 장소에 앉아 계셨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그 좋은 가문의 아들들에 관해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ㅡ "비구들이여, 그 좋은 가문의 아들들은 나를 따라 믿음으로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했다. 비구들이여, 그 비구들은 범행(梵行)을 기뻐하고 있는가?" 이렇게 말씀하셨을 때 그 비구들은 침묵하였다. 

두 번째로 세존께서는 그 좋은 가문의 아들들에 관해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ㅡ "비구들이여, 그 좋은 가문의 아들들은 나를 따라 믿음으로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했다. 비구들이여, 그 비구들은 범행(梵行)을 기뻐하고 있는가?" 두 번째도 그 비구들은 침묵하였다. 

세 번째로 세존께서는 그 좋은 가문의 아들들에 관해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ㅡ "비구들이여, 그 좋은 가문의 아들들은 나를 따라 믿음으로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했다. 비구들이여, 그 비구들은 범행(梵行)을 기뻐하고 있는가?" 세 번째도 그 비구들은 침묵하였다. 

atha kho bhagavato etadahosi — “yaṃnūnāhaṃ te kulaputte puccheyyan”ti! atha kho bhagavā āyasmantaṃ anuruddhaṃ āmantesi — “kacci tumhe, anuruddhā, abhiratā brahmacariye”ti? “taggha mayaṃ, bhante, abhiratā brahmacariye”ti. “sādhu sādhu, anuruddhā! etaṃ kho, anuruddhā, tumhākaṃ patirūpaṃ kulaputtānaṃ saddhā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itānaṃ yaṃ tumhe abhirameyyātha brahmacariye. yena tumhe anuruddhā, bhadrena yobbanena samannāgatā paṭhamena vayasā susukāḷakesā kāme paribhuñjeyyātha tena tumhe, anuruddhā, bhadrenapi yobbanena samannāgatā paṭhamena vayasā susukāḷakesā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itā. te ca kho pana tumhe, anuruddhā, neva rājābhinītā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itā, na corābhinītā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itā, na iṇaṭṭā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itā, na bhayaṭṭā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itā, nājīvikāpakatā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itā. api ca khomhi otiṇṇo jātiyā jarāya maraṇena sokehi paridevehi dukkhehi domanassehi upāyāsehi, dukkhotiṇṇo dukkhapareto; appeva nāma imassa kevalassa dukkhakkhandhassa antakiriyā paññāyethāti — nanu tumhe, anuruddhā, evaṃ saddhā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itā”ti? “evaṃ, bhante”. “evaṃ pabbajitena ca pana, anuruddhā, kulaputtena kimassa karaṇīyaṃ? vivekaṃ, anuruddhā, kāmehi vivekaṃ akusalehi dhammehi pītisukhaṃ nādhigacchati aññaṃ vā tato santataraṃ, tassa abhijjhāpi cittaṃ pariyādāya tiṭṭhati, byāpādopi cittaṃ pariyādāya tiṭṭhati, thīnamiddhampi cittaṃ pariyādāya tiṭṭhati uddhaccakukkuccampi cittaṃ pariyādāya tiṭṭhati, vicikicchāpi cittaṃ pariyādāya tiṭṭhati, aratīpi cittaṃ pariyādāya tiṭṭhati, tandīpi cittaṃ pariyādāya tiṭṭhati. vivekaṃ, anuruddhā, kāmehi vivekaṃ akusalehi dhammehi pītisukhaṃ nādhigacchati aññaṃ vā tato santataraṃ”.

그러자 세존께 이런 생각이 들었다. ㅡ "내가 그것을 그 좋은 가문의 아들들에게 물어보아야겠다!"라고. 그러자 세존께서는 아누룻다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ㅡ "아누룻다여, 그대들은 범행을 기뻐하는가?" "대덕이시여, 참으로 저희들은 범행을 기뻐합니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아누룻다들이여. 아누룻다들이여, 범행을 기뻐하는 것은 그대들과 같이 믿음으로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한 좋은 가문의 아들들에게는 참으로 적절한 것이다. 아누룻다들이여, 그대들은 머리칼이 검고 축복받은 젊음을 두루 갖춘 인생의 초년에 소유적 삶을 즐길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누룻다들이여, 그러나 그런 머리칼이 검고 축복받은 젊음을 두루 갖춘 인생의 초년에 머리와 수염을 깎고 가사를 수하고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했다. 그대들이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한 것은 왕의 명령으로 인한 것도 아니고, 도둑의 협박 때문도 아니고, 빚 때문도 아니고, 두려움 때문도 아니고, 생계 때문도 아니다. 아누룻다들이여, 그대들은 '나는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과 슬픔-비탄-고통-고뇌-절망에 짓눌렸다. 괴로움에 압도되었다. 이제 참으로 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의 끝을 꿰뚫어 알아야겠다.'라고 생각하면서 믿음으로 집을 나와 출가한 것이 아닌가?" "그렇습니다, 대덕이시여."

"아누룻다들이여, 그러면 이렇게 출가한 좋은 가문의 아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아누룻다들이여, 소유적 사유들을 떨쳐버림과 불선법(不善法)들을 떨쳐버림에 의해 희열과 행복 또는 거기에서 더 고요함을 얻지 못하면 간탐(慳貪)이 그의 마음을 채워 머문다. 진에(瞋恚)가 그의 마음을 채워 머문다. 해태와 혼침이 그의 마음을 채워 머문다. 들뜸과 후회가 그의 마음을 채워 머문다. 의심이 그의 마음을 채워 머문다. 싫어함이 그의 마음을 채워 머문다. 게으름이 그의 마음을 채워 머문다. 아누룻다들이여, 소유적 사유들을 떨쳐버림과 불선법(不善法)들을 떨쳐버림에 의해 희열과 행복 또는 거기에서 더 고요함을 얻지 못하면.

아누룻다들이여, 소유적 사유들을 떨쳐버림과 불선법(不善法)들을 떨쳐버림에 의해 희열과 행복 또는 거기에서 더 고요함을 얻으면 간탐(慳貪)이 그의 마음을 채워 머물지 않는다. 진에(瞋恚)가 그의 마음을 채워 머물지 않는다. 해태와 혼침이 그의 마음을 채워 머물지 않는다. 들뜸과 후회가 그의 마음을 채워 머물지 않는다. 의심이 그의 마음을 채워 머물지 않는다. 싫어함이 그의 마음을 채워 머물지 않는다. 게으름이 그의 마음을 채워 머물지 않는다. 아누룻다들이여, 소유적 사유들을 떨쳐버림과 불선법(不善法)들을 떨쳐버림에 의해 희열과 행복 또는 거기에서 더 고요함을 얻으면.

“kinti vo, anuruddhā, mayi hoti — ‘ye āsavā saṃkilesikā ponobbhavikā sadarā dukkhavipākā āyatiṃ jātijarāmaraṇiyā, appahīnā te tathāgatassa; tasmā tathāgato saṅkhāyekaṃ paṭisevati, saṅkhāyekaṃ adhivāseti, saṅkhāyekaṃ parivajjeti, saṅkhāyekaṃ vinodetī’”ti? “na kho no, bhante, bhagavati evaṃ hoti — ‘ye āsavā saṃkilesikā ponobbhavikā sadarā dukkhavipākā āyatiṃ jātijarāmaraṇiyā, appahīnā te tathāgatassa; tasmā tathāgato saṅkhāyekaṃ paṭisevati, saṅkhāyekaṃ adhivāseti, saṅkhāyekaṃ parivajjeti, saṅkhāyekaṃ vinodetī’ti. evaṃ kho no, bhante, bhagavati hoti — ‘ye āsavā saṃkilesikā ponobbhavikā sadarā dukkhavipākā āyatiṃ jātijarāmaraṇiyā, pahīnā te tathāgatassa; tasmā tathāgato saṅkhāyekaṃ paṭisevati, saṅkhāyekaṃ adhivāseti, saṅkhāyekaṃ parivajjeti, saṅkhāyekaṃ vinodetī’”ti. “sādhu sādhu, anuruddhā! tathāgatassa, anuruddhā, ye āsavā saṃkilesikā ponobbhavikā sadarā dukkhavipākā āyatiṃ jātijarāmaraṇiyā, pahīnā te ucchinnamūlā tālāvatthukatā anabhāvaṃkatā āyatiṃ anuppādadhammā. seyyathāpi, anuruddhā, tālo matthakacchinno abhabbo punavirūḷhiyā; evameva kho, anuruddhā, tathāgatassa ye āsavā saṃkilesikā ponobbhavikā sadarā dukkhavipākā āyatiṃ jātijarāmaraṇiyā, pahīnā te ucchinnamūlā tālāvatthukatā anabhāvaṃkatā āyatiṃ anuppādadhammā; tasmā tathāgato saṅkhāyekaṃ paṭisevati, saṅkhāyekaṃ adhivāseti, saṅkhāyekaṃ parivajjeti, saṅkhāyekaṃ vinodeti”.

"아누룻다들이여 그대들은 나에 대해서 이런 생각이 드는가? '여래는 오염원이고 다시 존재로 이끌고 두렵고 괴로운 보(報)를 가져오고 미래의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을 초래하는 번뇌들을 버리지 못했다. 그래서 여래는 헤아린 뒤에 어떤 것을 수용하고, 헤아린 뒤에 어떤 것을 참고, 헤아린 뒤에 어떤 것을 피하고, 헤아린 뒤에 어떤 것을 버린다.'라고."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세존에 대해 그런 생각은 들지 않고, 오히려 이런 생각이 듭니다. '여래께서는 오염원이고 다시 존재로 이끌고 두렵고 괴로운 보(報)를 가져오고 미래의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을 초래하는 번뇌들을 버리셨다. 그래서 여래는 헤아린 뒤에 어떤 것을 수용하시고, 헤아린 뒤에 어떤 것을 참으시고, 헤아린 뒤에 어떤 것을 피하시고, 헤아린 뒤에 어떤 것을 버리신다.'라고"

"훌륭하고 훌륭하다, 아누룻다들이여. 여래는 오염원이고 다시 존재로 이끌고 두렵고 괴로운 보(報)를 가져오고 미래의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을 초래하는 번뇌들을 모두 제거하고 그 뿌리를 자르고 줄기만 남은 야자수처럼 만들고 멸절시켜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했다. 아누룻다들이여, 예를 들면 야자수가 그 윗부분이 잘리면 다시 자랄 수 없는 것처럼, 여래는 오염원이고 다시 존재로 이끌고 두렵고 괴로운 보(報)를 가져오고 미래의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을 초래하는 번뇌들을 모두 제거하고 그 뿌리를 자르고 줄기만 남은 야자수처럼 만들고 멸절시켜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했다. 그래서 여래는 헤아린 뒤에 어떤 것을 수용하고, 헤아린 뒤에 어떤 것을 참고, 헤아린 뒤에 어떤 것을 피하고, 헤아린 뒤에 어떤 것을 버린다."

“taṃ kiṃ maññasi, anuruddhā, kaṃ atthavasaṃ sampassamāno tathāgato sāvake abbhatīte kālaṅkate upapattīsu byākaroti — ‘asu amutra upapanno; asu amutra upapanno’”ti? “bhagavaṃmūlakā no, bhante, dhammā bhagavaṃnettikā bhagavaṃpaṭisaraṇā. sādhu vata, bhante, bhagavantaṃyeva paṭibhātu etassa bhāsitassa attho. bhagavato sutvā bhikkhū dhāressantī”ti. “na kho, anuruddhā, tathāgato janakuhanatthaṃ na janalapanatthaṃ na lābhasakkārasilokānisaṃsatthaṃ na ‘iti maṃ jano jānātū’ti sāvake abbhatīte kālaṅkate upapattīsu byākaroti — ‘asu amutra upapanno, asu amutra upapanno’ti. santi ca kho, anuruddhā, kulaputtā saddhā uḷāravedā uḷārapāmojjā. te taṃ sutvā tadatthāya cittaṃ upasaṃharanti. tesaṃ taṃ, anuruddhā, hoti dīgharattaṃ hitāya sukhāya”.

"아누룻다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래는 어떤 목적을 보기에 제자가 죽어서 임종하면 '아무개는 이런 곳에 태어났다. 아무개는 저런 곳에 태어났다.'라고 재생을 설명하는가?"

"세존이시여, 저희들의 법은, 세존을 근원으로 하며, 세존을 길잡이로 하며, 세존을 귀의처로 합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신 뜻을 친히 밝혀주신다면 참으로 감사하겠습니다. 비구들은 세존으로부터 잘 듣고 마음에 새겨 지닐 것입니다."

"아누룻다여, 여래가 '아무개는 이런 곳에 태어났다. 아무개는 저런 곳에 태어났다.'라고 죽어서 임종한 제자의 재생을 설명하는 것은 결코 사람을 속이기 위한 것이거나, 사람들에게 발림 말을 하기 위한 것이거나, 이득과 환대와 명성을 얻기 위한 것이거나, '이와 같이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겠지.'라는 이유 때문도 아니다. 아누룻다들이여, 그것은 믿음과 큰 기쁨과 큰 환희를 가진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이런 말을 들으면 그러한 상태로 마음을 향하게 할 것이고, 그것은 그들에게 오랫동안 이익과 행복이 되기 때문이다."

“idhānuruddhā, bhikkhu suṇāti — ‘itthannāmo bhikkhu kālaṅkato; so bhagavatā byākato — aññāya saṇṭhahī’ti. so kho panassa āyasmā sāmaṃ diṭṭho vā hoti anussavassuto vā — ‘evaṃsīlo so āyasmā ahosi itipi, evaṃdhammo so āyasmā ahosi itipi, evaṃpañño so āyasmā ahosi itipi, evaṃvihārī so āyasmā ahosi itipi, evaṃvimutto so āyasmā ahosi itipī’ti. so tassa saddhañca sīlañca sutañca cāgañca paññañca anussaranto tadatthāya cittaṃ upasaṃharati. evampi kho, anuruddhā, bhikkhuno phāsuvihāro hoti.

10. "아누룻다들이여, 여기 비구는 이와 같이 듣는다. ㅡ '아무개라는 이름의 비구가 임종을 했는데, 세존께서 그에 대해 '그는 무위(無爲)의 앎에 확고하다.'라고 설명하셨다.'라고. 그리고 그는 '그 존자의 계행은 이러했고, 그 존자의 법은 이러했고, 그 존자의 지혜는 이러했고, 그 존자의 머묾은 이러했고, 그 존자의 해탈은 이러했다.'라고 그 스스로 보거나 다른 사람에게서 들은 적이 있다. 그는 그 비구의 믿음과 계행과 배움과 베풂과 지혜를 기억하면서 그러한 상태로 마음을 향하게 한다. 이와 같이 비구는 편안히 머문다."

“idhānuruddhā, bhikkhu suṇāti — ‘itthannāmo bhikkhu kālaṅkato; so bhagavatā byākato — pañcannaṃ orambhāgiyānaṃ saṃyojanānaṃ parikkhayā opapātiko tattha parinibbāyī anāvattidhammo tasmā lokā’ti. so kho panassa āyasmā sāmaṃ diṭṭho vā hoti anussavassuto vā — ‘evaṃsīlo so āyasmā ahosi itipi, evaṃdhammo ... pe ... evaṃpañño... evaṃvihārī... evaṃvimutto so āyasmā ahosi itipī’ti. so tassa saddhañca sīlañca sutañca cāgañca paññañca anussaranto tadatthāya cittaṃ upasaṃharati. evampi kho, anuruddhā, bhikkhuno phāsuvihāro hoti.

"아누룻다들이여, 여기 비구는 이와 같이 듣는다. '아무개라는 이름의 비구가 임종을 했는데, 세존께서 그에 대해 '그는 오하분결(五下分結)을 완전히 없앤 뒤 화생하여 그곳에서 완전한 열반에 들어 그 세계로부터 다시 돌아오지 않는 법을 얻은 자이다'라고. 그리고 그는 '그 존자의 계행은 이러했고, 그 존자의 법은 이러했고, 그 존자의 지혜는 이러했고, 그 존자의 머묾은 이러했고, 그 존자의 해탈은 이러했다.'라고 그 스스로 보거나 다른 사람에게서 들은 적이 있다. 그는 그 비구의 믿음과 계행과 배움과 베풂과 지혜를 기억하면서 그러한 상태로 마음을 향하게 한다. 이와 같이 비구는 편안히 머문다."

“idhānuruddhā, bhikkhu suṇāti — ‘itthannāmo bhikkhu kālaṅkato; so bhagavatā byākato — tiṇṇaṃ saṃyojanānaṃ parikkhayā rāgadosamohānaṃ tanuttā sakadāgāmī sakideva imaṃ lokaṃ āgantvā dukkhassantaṃ karissatī’ti. so kho panassa āyasmā sāmaṃ diṭṭho vā hoti anussavassuto vā — ‘evaṃsīlo so āyasmā ahosi itipi, evaṃdhammo ... pe ... evaṃpañño... evaṃvihārī... evaṃvimutto so āyasmā ahosi itipī’ti. so tassa saddhañca sīlañca sutañca cāgañca paññañca anussaranto tadatthāya cittaṃ upasaṃharati. evampi kho, anuruddhā, bhikkhuno phāsuvihāro hoti.

"아누룻다들이여, 여기 비구는 이와 같이 듣는다. '아무개라는 이름의 비구가 임종을 했는데, 세존께서 그에 대해 '그는 세 가지 족쇄를 완전히 없애고 탐진치(貪嗔癡)가 엷어져서 일래자(一來者)가 되어 한 번만 이 세상에 와서 괴로움을 끝낼 것이다.'라고. 그리고 그는 '그 존자의 계행은 이러했고, 그 존자의 법은 이러했고, 그 존자의 지혜는 이러했고, 그 존자의 머묾은 이러했고, 그 존자의 해탈은 이러했다.'라고 그 스스로 보거나 다른 사람에게서 들은 적이 있다. 그는 그 비구의 믿음과 계행과 배움과 베풂과 지혜를 기억하면서 그러한 상태로 마음을 향하게 한다. 이와 같이 비구는 편안히 머문다."
 
“idhānuruddhā, bhikkhu suṇāti — ‘itthannāmo bhikkhu kālaṅkato; so bhagavatā byākato — tiṇṇaṃ saṃyojanānaṃ parikkhayā sotāpanno avinipātadhammo niyato sambodhiparāyaṇo’ti. so kho panassa āyasmā sāmaṃ diṭṭho vā hoti anussavassuto vā — ‘evaṃsīlo so āyasmā ahosi itipi, evaṃdhammo ... pe ... evaṃpañño... evaṃvihārī... evaṃvimutto so āyasmā ahosi itipī’ti. so tassa saddhañca sīlañca sutañca cāgañca paññañca anussaranto tadatthāya cittaṃ upasaṃharati. evampi kho, anuruddhā, bhikkhuno phāsuvihāro hoti.

13. "아누룻다들이여, 여기 비구는 이와 같이 듣는다. '아무개라는 이름의 비구가 임종을 했는데, 세존께서 그에 대해 '그는 세 가지 족쇄를 완전히 없애고 예류자(預流者)가 되어 벌 받는 존재를 넘어섰고, 한 방향이고, 깨달음이 결정되었다.'라고. 그리고 그는 '그 존자의 계행은 이러했고, 그 존자의 법은 이러했고, 그 존자의 통찰지는 이러했고, 그 존자의 머묾은 이러했고, 그 존자의 해탈은 이러했다.'라고 그 스스로 보거나 다른 사람에게서 들은 적이 있다. 그는 그 비구의 믿음과 계행과 배움과 베풂과 통찰지를 기억하면서 그러한 상태로 마음을 향하게 한다. 이와 같이 비구는 편안히 머문다."

→ 비구니에 대해 아라한-불환자-일래자-예류자를 적용하여 반복됨. 
   ; '이와 같이 비구니는 편안히 머문다.'

→ 남신자에 대해 불환자-일래자-예류자를 적용하여 반복됨. 
   ; '이와 같이 청신사는 편안히 머문다.'

→ 여신자에 대해 불환자-일래자-예류자를 적용하여 반복됨. 
   ; '이와 같이 청신녀는 편안히 머문다.'

24. "아누룻다들여, 이처럼 여래가 '아무개는 이런 곳에 태어났다. 아무개는 저런 곳에 태어났다.'라고 죽어서 임종한 제자의 재생을 설명하는 것은 결코 사람을 속이기 위한 것이거나, 사람들에게 발림 말을 하기 위한 것이거나, 이득과 환대와 명성을 얻기 위한 것이거나, '이와 같이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겠지.'라는 이유 때문도 아니다. 아누룻다들이여, 그것은 믿음과 큰 기쁨과 큰 환희를 가진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이런 말을 들으면 그러한 상태로 마음을 향하게 할 것이고, 그것은 그들에게 오랫동안 이익과 행복이 되기 때문이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누룻다 존자는 아주 기뻐서 세존의 말씀을 즐거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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