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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걸음 경(A4:29)[dhammapadasuttaṃ]>에 대한 두 가지 공부 거리 & 넘쳐흐름 경[Abhis…

0 669 2017.10.19 10:27

<법의 걸음 경(A4:29)[dhammapadasuttaṃ]>에 대한 두 가지 공부 거리


● 공부거리 1. dhammapada라는 용어의 쓰임


여기서 dhammapada는 법구경(法句經)으로 번역된 것과 같은 단어입니다. 이때, pada는


pada: foot; foot-step; a word; position; place; reason; cause; a line of stanza; the final rest. (nt.)


를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어떤 의미를 나타내고 있는지 잘 알기 어렵지만, anabhijjhā[간탐 않음]-abyāpādo[진에 않음]-sammāsati[정념(正念)]-sammāsamādhi[정정(正定)]의 네 가지를 지목하는 데에서 이해해야 할 것 같습니다. 


anabhijjhā[간탐(慳貪) 않음]-abyāpādo[진에(瞋恚) 않음]은 십선업(十善業)의 의업(意業)에 속하는 두 가지인데 출리(出離)[보시(布施)]와 자비(慈悲)를 의미하고, sammāsati[정념(正念)]-sammāsamādhi[정정(正定)]는 팔정도(八正道)의 중심이 되는 두 가지입니다. 즉 필수품을 갖춘 삼매인 정정(正定)과 필수품을 총괄하는 정념(正念)인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는 사마타-위빳사나하여 삶을 완성하는 전체과정의 앞부분을 구성하므로 '법의 부분'이라는 해석도 가능할 것 같고, 또는, 사마타-위빳사나로 나아가는 중간 걸음[foot-step] 정도의 해석[=법의 걸음]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이런 이해로 볼 때 법구(法句)라는 해석과 다르게 이해하는 것은 타당해 보입니다.


dhammapada는 합송경(D33), sādhusuttaṃ(SN 1.33)[좋음 경], paribbājakasuttaṃ(AN 4.30)[유행승 경]에서는 이 경과 같은 의미로 쓰입니다. 반면에 mahāsīhanādasuttaṃ(MN 12.1)[사자후의 큰 경], piyaṅkarasuttaṃ (SN 10.6)[삐양까라 경] 그리고 법구경(法句經)의 세 개의 게송[44-45-102번 게송]에서는 법구(法句)의 의미로 쓰입니다.


● 공부거리 2. anabhijjhā[간탐 않음]-abyāpādo[진에 않음]-sammāsati[정념(正念)]-sammāsamādhi[정정(正定)]의 네 가지에 대한 특별한 의미 부여


- 「이것은 최초의 것으로 인정되었고, 오랜 세월 동안 유지되어 왔고, 계보(*)라고 알려졌고, 오래된 것이다. 그것은 거부하면 안 되는 것이고 과거에도 거부되지 않았고(*) 현재에도 거부되지 않으며 미래에도 거부되지 않을 것이며 지혜로운 사문들과 바라문들에 의해 비난받지 않는 것이다.」


(*) 계보 - 부처님 등 성자들의 계보

(*) 과거에도 거부되지 않았고 - 과거의 부처님에 의해서도 거부되지 않았고


aggaññaṃ rattaññaṃ vaṃsaññaṃ porāṇaṃ asaṃkiṇṇaṃ asaṃkiṇṇapubbaṃ, na saṃkīyati na saṃkīyissati, appaṭikuṭṭhaṃ samaṇehi brāhmaṇehi viññūhi.


⇒ 니까야에 자주 나타나지 않는 찬사를 동원하여 네 가지 '법의 걸음[dhammapada]'을 설명하고 있는데, 의업(意業)에 속하는 두 가지의 제어[anabhijjhā-abyāpāda ⇒ 출리(出離) 또는 보시(布施)와 자비(慈悲)]에 이어 사념처에 의한 바른 삼매의 비중을 드러내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네 가지는 전후 관계를 주목해야 합니다. 의업의 제어에 선행(先行)하는 것으로는 신업(身業)과 구업(口業)의 제어 즉 계행(戒行)이 있고, 사념처에 의한 바른 삼매는 사마타-위빳사나로 이어집니다. 사마타-위빳사나는 불교 수행의 완성입니다. 심해탈(心解脫)-혜해탈(慧解脫)하여 부동(不動)의 심해탈(心解脫)로 삶을 완성하는 최후의 수행입니다. 그러니 더 이상의 찬탄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런 가운데 사마타-위빳사나로 연결해주는 법의 걸음인 이 네 가지가 이런 찬탄을 받는다면, 이 네 가지에 선행하는 계행은 어떻습니까? 이 네 가지처럼 찬탄 받아야 하는 것입니까?


<넘쳐흐름 경(A8:39)>는 이 질문에 답을 줍니다. 


“비구들이여, 여덟 가지 공덕이 넘쳐흐르고 유익함이 넘쳐흐르고 행복을 가져오고 신성한 결말을 가져오고 행복을 익게 하고 천상에 태어나게 하는 것이 있다. 이것은 원하는 것, 좋아하는 것, 마음에 드는 것, 이익, 행복으로 인도한다. 무엇이 여덟인가?”라는 주제로 설해진 이 경은 불-법-승 삼보에 대한 귀의에 이어 오계를 지키는 삶이 이러한 삶이라고 알려줍니다.


특히, 오계를 지키는 행위를 보시(布施)라고 하는데 오계를 지키는 행위의 적극적 의미가 무외시(無畏施)인 것을 알려줍니다. 그러면서 오계를 지키는 각각에 대해 다시 「이것은 최초의 것으로 인정되었고, 오랜 세월 동안 유지되어 왔고, 계보라고 알려졌고, 오래된 것이다. 그것은 거부하면 안 되는 것이고 과거에도 거부되지 않았고 현재에도 거부되지 않으며 미래에도 거부되지 않을 것이며 지혜로운 사문들과 바라문들에 의해 비난받지 않는 것이다.」라고 하여 네 가지 '법의 걸음[dhammapada]'과 동일한 문구를 통해 찬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마타-위빳사나로 연결하는 네 가지 법의 걸음과, 이 네 가지 법의 걸음으로 연결하는 계행은 동등한 자격을 가지고 삶의 향상에 기여하고, 그로 인해 부처님으로부터 동등하게 찬탄 받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공부거리 2의 결론 : 불교 수행의 큰 줄기는 「계행 → 네 가지 법의 걸음[보시→자비→사념처→바른 삼매] → 사마타-위빳사나」입니다. 이 줄기에 속하는 것은 어느 하나라도 중요하지 않고 소홀히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에 의해서 이렇게 커다란 찬탄을 받는 것입니다.


넘쳐흐름 경[Abhisanda-sutta](A8:39)

 

1. “비구들이여, 여덟 가지 공덕이 넘쳐흐르고 유익함이 넘쳐흐르고 행복을 가져오고 신성한 결말을 가져오고 행복을 익게 하고 천상에 태어나게 하는 것이 있다. 이것은 원하는 것, 좋아하는 것, 마음에 드는 것, 이익, 행복으로 인도한다. 무엇이 여덟인가?” 


2. “비구들이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부처님께 귀의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첫 번째 공덕이 넘쳐흐르고 유익함이 넘쳐흐르고 행복을 가져오고 신성한 결말을 가져오고 행복을 익게 하고 천상에 태어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원하는 것, 좋아하는 것, 마음에 드는 것, 이익, 행복으로 인도한다.” 


3. “다시 비구들이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법에 귀의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두 번째 공덕이 넘쳐흐르고 유익함이 넘쳐흐르고 행복을 가져오고 신성한 결말을 가져오고 행복을 익게 하고 천상에 태어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원하는 것, 좋아하는 것, 마음에 드는 것, 이익, 행복으로 인도한다.” 


4. “다시 비구들이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승가에 귀의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세 번째 공덕이 넘쳐흐르고 유익함이 넘쳐흐르고 행복을 가져오고 신성한 결말을 가져오고 행복을 익게 하고 천상에 태어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원하는 것, 좋아하는 것, 마음에 드는 것, 이익, 행복으로 인도한다.” 


5. “비구들이여, 다섯 가지 보시가 있나니 이것은 위대한 보시이며, 최초의 것으로 인정되었고, 오랜 세월 동안 유지되어 왔고, 계보라고 알려졌고, 오래된 것이며, 그것은 거부하면 안 되는 것이고, 과거에도 거부되지 않았고, 현재에도 거부되지 않으며, 미래에도 거부되지 않을 것이며, 지혜로운 사문들과 바라문들에 의해서 비난받지 않는 것이다. 무엇이 다섯인가?” 


6. “비구들이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생명을 해치는 것을 버리고, 생명을 해치는 것을 멀리 여의었다. 생명을 해치는 것을 멀리 여읜 성스러운 제자는 한량없는 중생들에게 두려움 없음을 베풀고 증오 없음을 베풀고 악의 없음을 베푼다. 그는 한량없는 중생들에게 두려움 없음을 베풀고 증오 없음을 베풀고 악의 없음을 베푼 뒤 두려움 없음과 증오 없음과 악의 없음을 나누어 가진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첫 번째 보시이니, 이것은 위대한 보시이며, 최초의 것으로 인정되었고, 오랜 세월 동안 유지되어 왔고, 계보라고 알려졌고, 오래된 것이며, 그것은 거부하면 안 되는 것이고, 과거에도 거부되지 않았고, 현재에도 거부되지 않으며, 미래에도 거부되지 않을 것이며, 지혜로운 사문들과 바라문들에 의해서 비난받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네 번째 공덕이 넘쳐흐르고 유익함이 넘쳐흐르고 행복을 가져오고 신성한 결말을 가져오고 행복을 익게 하고 천상에 태어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원하는 것, 좋아하는 것, 마음에 드는 것, 이익, 행복으로 인도한다.” 


7. “다시 비구들이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것을 버리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것을 멀리 여의었다.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것을 멀리 여읜 성스러운 제자는 한량없는 중생들에게 두려움 없음을 베풀고 증오 없음을 베풀고 악의 없음을 베푼다. 그는 한량없는 중생들에게 두려움 없음을 베풀고 증오 없음을 베풀고 악의 없음을 베푼 뒤 두려움 없음과 증오 없음과 악의 없음을 나누어 가진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두 번째 보시이니, 이것은 위대한 보시이며, 최초의 것으로 인정되었고, 오랜 세월 동안 유지되어 왔고, 계보라고 알려졌고, 오래된 것이며, 그것은 거부하면 안 되는 것이고, 과거에도 거부되지 않았고, 현재에도 거부되지 않으며, 미래에도 거부되지 않을 것이며, 지혜로운 사문들과 바라문들에 의해서 비난받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다섯 번째 공덕이 넘쳐흐르고 유익함이 넘쳐흐르고 행복을 가져오고 신성한 결말을 가져오고 행복을 익게 하고 천상에 태어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원하는 것, 좋아하는 것, 마음에 드는 것, 이익, 행복으로 인도한다.” 


8. “다시 비구들이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삿된 음행을 버리고, 삿된 음행을 멀리 여의었다. 삿된 음행을 멀리 여읜 성스러운 제자는 한량없는 중생들에게 두려움 없음을 베풀고 증오 없음을 베풀고 악의 없음을 베푼다. 그는 한량없는 중생들에게 두려움 없음을 베풀고 증오 없음을 베풀고 악의 없음을 베푼 뒤 두려움 없음과 증오 없음과 악의 없음을 나누어 가진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세 번째 보시이니, 이것은 위대한 보시이며, 최초의 것으로 인정되었고, 오랜 세월 동안 유지되어 왔고, 계보라고 알려졌고, 오래된 것이며, 그것은 거부하면 안 되는 것이고, 과거에도 거부되지 않았고, 현재에도 거부되지 않으며, 미래에도 거부되지 않을 것이며, 지혜로운 사문들과 바라문들에 의해서 비난받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여섯 번째 공덕이 넘쳐흐르고 유익함이 넘쳐흐르고 행복을 가져오고 신성한 결말을 가져오고 행복을 익게 하고 천상에 태어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원하는 것, 좋아하는 것, 마음에 드는 것, 이익, 행복으로 인도한다.” 


9. “다시 비구들이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거짓말을 버리고, 거짓말을 멀리 여의었다. 거짓말을 멀리 여읜 성스러운 제자는 한량없는 중생들에게 두려움 없음을 베풀고 증오 없음을 베풀고 악의 없음을 베푼다. 그는 한량없는 중생들에게 두려움 없음을 베풀고 증오 없음을 베풀고 악의 없음을 베푼 뒤 두려움 없음과 증오 없음과 악의 없음을 나누어 가진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네 번째 보시이니, 이것은 위대한 보시이며, 최초의 것으로 인정되었고, 오랜 세월 동안 유지되어 왔고, 계보라고 알려졌고, 오래된 것이며, 그것은 거부하면 안 되는 것이고, 과거에도 거부되지 않았고, 현재에도 거부되지 않으며, 미래에도 거부되지 않을 것이며, 지혜로운 사문들과 바라문들에 의해서 비난받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일곱 번째 공덕이 넘쳐흐르고 유익함이 넘쳐흐르고 행복을 가져오고 신성한 결말을 가져오고 행복을 익게 하고 천상에 태어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원하는 것, 좋아하는 것, 마음에 드는 것, 이익, 행복으로 인도한다.” 


10. “다시 비구들이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방일하는 근본이 되는 술과 중독성 물질을 섭취하는 것을 버리고, 방일하는 근본이 되는 술과 중독성 물질을 섭취하는 것을 멀리 여의었다. 방일하는 근본이 되는 술과 중독성 물질을 섭취하는 것을 멀리 여읜 성스러운 제자는 한량없는 중생들에게 두려움 없음을 베풀고 증오 없음을 베풀고 악의 없음을 베푼다. 그는 한량없는 중생들에게 두려움 없음을 베풀고 증오 없음을 베풀고 악의 없음을 베푼 뒤 두려움 없음과 증오 없음과 악의 없음을 나누어 가진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다섯 번째 보시이니, 이것은 위대한 보시이며, 최초의 것으로 인정되었고, 오랜 세월 동안 유지되어 왔고, 계보라고 알려졌고, 오래된 것이며, 그것은 거부하면 안 되는 것이고, 과거에도 거부되지 않았고, 현재에도 거부되지 않으며, 미래에도 거부되지 않을 것이며, 지혜로운 사문들과 바라문들에 의해서 비난받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여덟 번째 공덕이 넘쳐흐르고 유익함이 넘쳐흐르고 행복을 가져오고 신성한 결말을 가져오고 행복을 익게 하고 천상에 태어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원하는 것, 좋아하는 것, 마음에 드는 것, 이익, 행복으로 인도한다. 


11. 비구들이여, 이러한 여덟 가지 공덕이 넘쳐흐르고 유익함이 넘쳐흐르고 행복을 가져오고 신성한 결말을 가져오고 행복을 익게 하고 천상에 태어나게 하는 것이 있다. 이것은 원하는 것, 좋아하는 것, 마음에 드는 것, 이익, 행복으로 인도한다.” 


 

행복으로 이끄는 여덟 가지

다섯 가지 보시

부처님에 귀의

1

-

가르침에 귀의

2

-

승가에 귀의

3

-

불살생(不殺生)

4

1

불투도(不偸盜)

5

2

불사음(不邪淫)

6

3

불망어(不妄語)

7

4

불음주(不飮酒)

8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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