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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스님과의 대화/기타

해피스님과의 대화190227 - 양면해탈과 의성신(근본경전연구회 해피법당)

0 970 2019.03.02 09:50

해피스님과의 대화190227 - 양면해탈과 의성신(근본경전연구회 해피법당)

[동영상] https://youtu.be/n52vonRRKJI

 

양면해탈(兩面解脫)과 혜해탈(慧解脫)에 대한 설명입니다. 혜해탈자(慧解脫者)가 초선(初禪)부터 상수멸(想受滅)의 삼매를 닦은 뒤 지혜로써 보아 번뇌가 다한 자라고 정의(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9_07_05&wr_id=2)(AN 9.44-혜해탈자 경)되기 때문에 양면해탈자(兩面解脫者)(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9_07_05&wr_id=3)(AN 9.45-양면해탈자 경)은 삼매를 닦는 것 외에 그와 같은 경지를 몸으로 닿아 머문다.’라는 다른 한 면을 함께 닦은 자라는 의미를 가지는 것인데, 삼매 외의 다른 한 면의 의미가 설명 되어야합니다.

 

한편, (MN 70-끼따기리 경)(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5_07_10&wr_id=1)()들을 넘어선 무색(無色)의 평화로운 해탈들을 몸으로 닿아 머묾의 여부로 두 해탈을 구분하는데, 연결하여 그 의미를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이때, ‘몸으로 닿아 머문다.’‘kāyena phusitvā viharati’의 번역입니다. phusitvātouch/attain/reach 등의 의미를 가지는 phusati의 절대체이어서 닿은 뒤의 의미로 번역한 것입니다. 그런데 닿아 머문다는 해석은 적절해 보이지 않습니다. 혜해탈자가 성취해 머물고 있는 삼매가 이미 온 몸 어디라도 떨침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이 미치지 않는 데가 없습니다. - 초선(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4_01_02&wr_id=49)’ 등으로 몸으로 닿아 머묾을 설명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미치지pervade/suffuse/spread/make expand 등의 의미를 가지는 pharati인데 우리말로는 phusati와 비슷하게 번역될 수 있는 말입니다.

 

어쨌든, 혜해탈(慧解脫)을 위한 구차제정(九次第定)의 삼매가 이렇게 온 몸으로 삼매의 상태를 닿아 머무는 것이기 때문에 양면해탈이 말하는 ‘kāyena phusitvā viharati’는 다른 의미로 해석되어야 할 것입니다.

 

의성신(意成身)[manomayaṃ kāyaṃ]이란 용어가 있습니다. () 즉 마음으로 만든 또는 마음으로 구성된 몸이라는 의미입니다. 이 용어는 제사선(第四禪)을 성취해 머무는 수행자가 삼매를 닦는 과정에 마음을 기울여서 만드는 것으로 나타납니다(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4_01_02&wr_id=54). 또한, 몇 개의 경에서는 제이선천(第二禪天)에 속하는 하늘사람들을 설명할 때 의성(意成)[manomaya]이라고 합니다. ㅡ 「te tattha honti manomayā pītibhakkhā sayaṃpabhā antalikkhecarā subhaṭṭhāyino ciraṃ dīghamaddhānaṃ tiṭṭhanti. 의성(意成)인 그들은 거기서 희열이 음식이고, 스스로 빛나고, 허공을 다니고, 깨끗한 존재로 오랫동안 긴 시간을 머문다.그리고 다른 경에서는 kālaṅkatoca uggo gahapati vesāliko aññataraṃ manomayaṃ kāyaṃ upapajji. 죽은 웨살리에 사는 욱가 장자는 어떤 의성(意成)의 몸으로 태어났다.(AN 5.44-마음에 드는 보시자 경)이라고 합니다.

 

이 경들을 종합하면, 의성신(意成身)은 색계(色界) 세상[초선(初禪)의 포함 여부는 미정]에 태어나 살아가는 신()들의 존재 상태인데, 인간의 몸을 가진 수행자가 그들과 만나기 위해서는 그 몸의 상태를 갖춰야 하고, 그 몸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색계(色界)의 꼭대기인 제사선(第四禪)의 성취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몸을 가진 수행자가 색계(色界)를 넘어 무색계(無色界)의 신()들과 만나고자 한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같은 의미로 무색계(無色界)의 꼭대기를 성취해 머물면서 무색계(無色界)에 태어나 살고 있는 신()들의 존재 상태[saññāmaya-상성(想成)]을 갖춰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의성(意成)의 몸을 성취해서 색계(色界)의 신()들과 만나는 것에 이어, 무색계(無色界)의 신()들과 만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kāyena phusitvā viharati’를 다시 해석해 보겠습니다. touch/attain/reach 등의 의미를 가지는 phusati에서 attain의 의미를 적용하면 몸으로 성취하여 머문다.’가 됩니다. 그러면 ()들을 넘어선 무색(無色)의 평화로운 해탈들을 몸으로 성취하여 머묾이 되고, 혜해탈(慧解脫)이 설명하는 몸으로 닿아 머무는 것과는 다른 측면에서 무색계(無色界)에 태어나 살고 있는 신()들의 존재 상태[saññāmaya-상성(想成)]을 몸으로 성취해서 머문다는 의미가 됩니다. 즉 무색계(無色界) ()들과 같은 몸을 만들어 무색계(無色界) 세상을 직접 경험한다, 그들과 직접 만난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양면해탈(兩面解脫)이 가지는 삼매 이외의 다른 측면입니다.

 

그래서 양면해탈자(兩面解脫者)구차제정(九次第定)의 삼매 위에서 깨달음을 얻는 한 면의 과정과 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의 높은 세상을 직접 몸으로 찾아가 만나는 다른 한 면의 과정을 양면으로 닦는 수행자라고 설명됩니다.

 

같은 이해에서 (MN 70-끼따기리 경) 등이 말하는 kāyasakkhī(몸으로 체험한 자)는 색계(色界)-무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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