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식(識)의 시작점-우이독경-믿음-선택-내려놓는 게 수(해피스님과의 대화 191211)
[동영상] https://youtu.be/jxKii8CaET0
「연기(緣起)된 식(識)의 윤회(輪迴)」를 말하지만, ‘연기(緣起) 즉 삶의 과정이 누적되기 이전에 최초의 식(識)은 존재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의문에 대해 토론하였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부처님의 설명은 ‘무명(無明)에 덮이고 갈애에 묶여서 옮겨가고 윤회하는 중생에게 처음 시작점은 알려지지 않는다. <(SN 15.1-풀과 나무토막 경) 등>’입니다. 무명(無明)과 갈애의 방해 때문에 그 시작점이 알려지지 않기 때문에 그 자리를 보기 위해서는 무명(無明)과 갈애의 문제를 해소하는 것이 가능한 유일한 방법입니다. ㅡ 「사념처(四念處) → 사마타-위빳사나」
그러나 깨달은 분들이 그 결과를 알려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에 대해서는 우이독경(牛耳讀經)의 예를 들어 현실의 문제[소의 인식능력이 미치지 못함]로써 답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다만 믿으라는 말인가?’의 의문에 대해서는 종교의 의미를 되새겨서 공감-동의-신뢰에 의한 선택의 문제라고 설명하였습니다. ☞ http://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6_02&wr_id=2&sca=%EC%A2%85%EA%B5%90%EB%8A%94+%EB%AC%B4%EC%97%87%EC%9D%B8%EA%B0%80%3F‘종교는 무얼까 1[공통점-차이점 & 종교의 정의](공개강의 170629)’ 참조.
그래도 포기되지 않는 의심의 끝자리에 대해서는 ‘내려놓는 것이 수’라고 설명하였는데, 해결될 수 없는 문제를 집착하는 것은 삶에 전혀 도움 되지 않는다는 입장입니다. 독화살의 비유입니다. 특히, 말루꺄의 작은 경(MN 63)은 이렇게 말하는데, 불교신자로서의 신행(信行)의 근본이라고 하겠습니다. ㅡ 「그러므로 나에 의해 설명되지 않은 것은 설명되지 않은 대로 수용하라. 나에 의해 설명된 것은 설명된 대로 수용하라.」 ☞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5_07_03&wr_id=2‘독화살의 비유’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