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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스님과의 대화/기타

해피스님과의 대화(210709) - 역할분담-배우고 행하지 않으면 벌을 받는가-실천방법의 우월(근본경전연구회 해피법당)

해피스님과의 대화(210709) - 역할분담-배우고 행하지 않으면 벌을 받는가-실천방법의 우월(근본경전연구회 해피법당)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JE1FGfbbagA

 

우리가 잘되기 하기 위해 스님은 법을 설합니까? 당연히 그렇기도 하지만, 그것이 출가자의 역할이어서 정법(正法)을 사라지지 않게 합니다. 배우고 행하지 않으면 벌을 받습니까? 배우는 것은 공덕이 되고, 행하지 않는 것은 더 큰 공덕을 만들지 못하는 것이지 죄나 벌의 측면은 아닙니다. 배우고 행하면 배운 만큼의 공덕에 이어 실천에 따르는 더 큰 공덕이 생겨나서 자신을 큰 행복으로 이끕니다. 도덕과 윤리로 닿을 수 없는 더 높은 질적 향상을 추구하는 것이 종교이고, 그 가운데 금생의 행복-하늘에 태어남-윤회에서 벗어남 등 으뜸 된 향상을 이끄는 종교가 불교입니다. 그래서 부처님 가르침을 배운 대로 행하는 것이 으뜸 되는 실천방법입니다

 

1. 들어가는 말

 

함께 공부하고 동영상을 제작해 대중에게 전달하는 것과 같은 법보시(法布施)가 재시(財施)-법시(法施)-무외시(無畏施) 가운데 으뜸입니다. 이때, 무외시(無畏施)는 오계(五戒)를 지님으로써 남에게 두려움을 주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물질적으로 베풀고, 오계를 지니고, 가르침을 전달하는 것은 보시(布施)의 공덕행(功德行)이어서 삶을 향상으로 이끕니다.

 

2. 첫 번째 질문 우리가 잘되기 하기 위해 스님은 이렇게 법을 설합니까?

 

당연히 그렇기도 하지만, 그것이 출가자의 역할이어서 정법(正法)을 흔들리지 않게 하고 혼란하지 않게 하고 사라지지 않게 합니다. 부처님과 제자들의 역할분담 http://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2_11&wr_id=19

 

2. 두 번째 질문 배우고 행하지 않으면 벌을 받습니까?

 

배우는 것은 공덕이 되고, 행하지 않는 것은 더 큰 공덕을 만들지 못하는 것이지 죄나 벌의 측면으로 보지는 않아야 합니다. 오히려, 배우고 행하면 배운 만큼의 공덕에 이어 실천에 따르는 더 큰 공덕이 생겨나서 자신을 큰 행복으로 이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악업(惡業)/불선업(不善業)은 괴로움을 만들고, 선업(善業)은 행복을 만드는데, 어떤 행위가 악업이고 어떤 행위가 선업인지 배워서 바르게 실천하는 것이 공부입니다.

 

이때, 돈을 꿔주고 받지 못한 사례와 관련해서 신용확인 없이 돈을 꿔준 것은 어리석음이어서 치()에 의한 불선업(不善業)이고, 거기에 금전적 손실과 자신의 분노 때문에 괴로움을 겪는 과()와 보()가 뒤따르는 것입니다.

 

한편, 우리 사회에는 도덕이나 윤리 등 금생(今生)의 삶의 측면에서 관계를 향상하기 위한 기준이 있지만, 도덕과 윤리로 닿을 수 없는 더 높은 질적 향상을 추구하는 것이 종교(宗敎)이고, 그 가운데 금생의 행복-하늘에 태어남-윤회에서 벗어남 등 으뜸 된 향상을 이끄는 종교가 불교(佛敎)입니다. 그래서 부처님 가르침을 배운 대로 행하는 것이 으뜸 되는 실천방법입니다.

 

도덕이나 윤리 또는 다른 종교에 대해 부정적으로만 보지는 않아야 합니다. 다만, 그 사실성과 역할이 불교에 미치지 못할 뿐입니다. 현명한 사람은 더 높은 가르침에 자리를 잡는 것이고 그것이 불교입니다. 가능한 만큼 더 높은 자리로 이끌어 주면 됩니다.

 

3. 패배주의의 극복 불교의 가르침이 으뜸 된 실천방법입니다.

 

하지만, 여호와의 증인의 율법은 뛰어나서 그들의 삶을 향상으로 이끄는데, 불교는 그러지 못한 현상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율법의 뛰어남보다는 그들이 믿음 위에서 실천에 확고한 반면, 우리는 믿음에 약하고 실천에 확고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일 뿐입니다. 보시(布施)와 오계(五戒)의 공덕행과 십선업(十善業)의 힘 그리고 사념처(四念處) 사마타-위빳사나의 불교적 실천방법이 훨씬 더 뛰어나다는 점을 분명히 알고, 믿음과 실천에 확고하지 못한 것을 반성해야 합니다.

 

그래서 불교는 안된다!’는 것은 패배주의적 관점일 뿐입니다. 불교 신자들이 믿음에 약하고 실천에 확고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 실천방법이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일 뿐, 실천에 확고하면 불교가 훨씬 더 뛰어난 가르침이니 패배주의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4. 시간이 더해져야 합니다.

 

공부할 때는 알겠고 마음이 일어나지만, 법당 밖에서는 잊어버리게 된다는 하소연을 자주 접합니다. 그러나 걱정할 일은 아닙니다. 행위는 어떤 것이든 그것을 재현하려는 경향을 남기기 때문에 시간을 두고 천천히 쌓아가면 이전의 경향을 물리치고 새로운 공부를 통해 변화된 삶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오직 한 가지, 배워 알고 실천하는 가운데 시간을 더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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