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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스님과의 대화/기타

Re: 몸 ― 심신치유를 위한 논문 참고 자료(240608)

0 25 06.11 18:06

11. (SN 36.4-깊은 구렁 경)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6_04_02&wr_id=15

 

“assutavā, bhikkhave, puthujjano yaṃ vācaṃ bhāsati — ‘atthi mahāsamudde pātālo’ti. taṃ kho panetaṃ, bhikkhave, assutavā puthujjano asantaṃ avijjamānaṃ evaṃ vācaṃ bhāsati — ‘atthi mahāsamudde pātālo’ti. sārīrikānaṃ kho etaṃ, bhikkhave, dukkhānaṃ vedanānaṃ adhivacanaṃ yadidaṃ ‘pātālo’ti. assutavā, bhikkhave, puthujjano sārīrikāya dukkhāya vedanāya phuṭṭho samāno socati kilamati paridevati urattāḷiṃ kandati sammohaṃ āpajjati. ayaṃ vuccati, bhikkhave, ‘assutavā puthujjano pātāle na paccuṭṭhāsi, gādhañca nājjhagā’. sutavā ca kho, bhikkhave, ariyasāvako sārīrikāya dukkhāya vedanāya phuṭṭho samāno neva socati, na kilamati, na paridevati, na urattāḷiṃ kandati, na sammohaṃ āpajjati. ayaṃ vuccati, bhikkhave, ‘sutavā ariyasāvako pātāle paccuṭṭhāsi, gādhañca ajjhagā’”ti.


비구들이여, ‘큰 바다에는 깊은 구렁이 있다.’라는 말을 하는 배우지 못한 범부가 있다. 비구들이여, 그것은 그 배우지 못한 범부가 있지 않은 것,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큰 바다에는 깊은 구렁이 있다.’라는 말을 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깊은 구렁’이라는 것은 몸에 속한 그 괴로운 느낌들을 지시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몸에 속한 그 괴로운 느낌에 닿아 있는 배우지 못한 범부는 슬퍼하고 힘들어하고 비탄에 빠지고 가슴을 치며 울부짖고 당황한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배우지 못한 범부는 깊은 구렁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깊이를 경험하지 못했다.’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몸에 속한 그 괴로운 느낌에 닿아 있는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슬퍼하지 않고 힘들어하지 않고 비탄에 빠지지 않고 가슴을 치며 울부짖지 않고 당황하지 않는다. 이것이, 비구들이여,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깊은 구렁에서 일어났다. 깊이를 경험했다.’라고 불린다.


12. (SN 48.36-분석 경1)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7_05_04&wr_id=6

 

“pañcimāni, bhikkhave, indriyāni. katamāni pañca? sukhindriyaṃ, dukkhindriyaṃ, somanassindriyaṃ, domanassindriyaṃ, upekkhindriyaṃ.


비구들이여, 이런 다섯 가지 기능이 있다. 어떤 다섯 가지인가? 즐거움의 기능[락근(樂根)], 괴로움의 기능[고근(苦根)], 만족의 기능[희근(喜根)], 고뇌의 기능[우근(憂根)], 평정의 기능[사근(捨根)]이다.


“katamañca, bhikkhave, sukhindriyaṃ? yaṃ kho, bhikkhave, kāyikaṃ sukhaṃ, kāyikaṃ sātaṃ, kāyasamphassajaṃ sukhaṃ sātaṃ vedayitaṃ — idaṃ vuccati, bhikkhave, sukhindriyaṃ.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즐거움의 기능인가? 비구들이여, 신(身)에 속한 즐거움, 신(身)에 속한 편안함, 신(身)의 촉(觸)에서 생긴 즐거움과 편안함의 경험 — 이것이, 비구들이여, 즐거움의 기능이라 불린다.


“katamañca, bhikkhave, dukkhindriyaṃ? yaṃ kho, bhikkhave, kāyikaṃ dukkhaṃ, kāyikaṃ asātaṃ, kāyasamphassajaṃ dukkhaṃ asātaṃ vedayitaṃ — idaṃ vuccati, bhikkhave, dukkhindriyaṃ.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괴로움의 기능인가? 비구들이여, 신(身)에 속한 괴로움, 신(身)에 속한 불편함, 신(身)의 촉(觸)에서 생긴 괴로움과 불편함의 경험 — 이것이, 비구들이여, 괴로움의 기능이라 불린다.


“katamañca, bhikkhave, somanassindriyaṃ? yaṃ kho, bhikkhave, cetasikaṃ sukhaṃ, cetasikaṃ sātaṃ, manosamphassajaṃ sukhaṃ sātaṃ vedayitaṃ — idaṃ vuccati, bhikkhave, somanassindriyaṃ.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만족의 기능인가? 비구들이여, 심(心)에 속한 즐거움, 심(心)에 속한 편안함, 의촉(意觸)에서 생긴 즐거움과 편안함의 경험 — 이것이, 비구들이여, 만족의 기능이라 불린다.


“katamañca, bhikkhave, domanassindriyaṃ? yaṃ kho, bhikkhave, cetasikaṃ dukkhaṃ, cetasikaṃ asātaṃ, manosamphassajaṃ dukkhaṃ asātaṃ vedayitaṃ — idaṃ vuccati, bhikkhave, domanassindriyaṃ.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고뇌의 기능인가? 비구들이여, 심(心)에 속한 괴로움, 심(心)에 속한 불편함, 의촉(意觸)에서 생긴 괴로움과 불편함의 경험 — 이것이, 비구들이여, 고뇌의 기능이라 불린다.


“katamañca, bhikkhave, upekkhindriyaṃ? yaṃ kho, bhikkhave, kāyikaṃ vā cetasikaṃ vā nevasātaṃ nāsātaṃ vedayitaṃ — idaṃ vuccati, bhikkhave, upekkhindriyaṃ. imāni kho, bhikkhave, pañcindriyānī”ti.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평정의 기능인가? 비구들이여, 신(身)에 속하거나 심(心)에 속한 편안함도 아니고 불편함도 아닌 경험 — 이것이, 비구들이여, 평정의 기능이라 불린다. 비구들이여, 이런 다섯 가지 기능이 있다.


13. (MN 36-삿짜까 큰 경)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5_04_06&wr_id=1

 

“kathañca, aggivessana, abhāvitakāyo ca hoti abhāvitacitto ca? idha, aggivessana, assutavato puthujjanassa uppajjati sukhā vedanā. so sukhāya vedanāya phuṭṭho samāno sukhasārāgī ca hoti sukhasārāgitañca āpajjati. tassa sā sukhā vedanā nirujjhati. sukhāya vedanāya nirodhā uppajjati dukkhā vedanā. so dukkhāya vedanāya phuṭṭho samāno socati kilamati paridevati urattāḷiṃ kandati sammohaṃ āpajjati. tassa kho esā, aggivessana, uppannāpi sukhā vedanā cittaṃ pariyādāya tiṭṭhati abhāvitattā kāyassa, uppannāpi dukkhā vedanā cittaṃ pariyādāya tiṭṭhati abhāvitattā cittassa. yassa kassaci, aggivessana, evaṃ ubhatopakkhaṃ uppannāpi sukhā vedanā cittaṃ pariyādāya tiṭṭhati abhāvitattā kāyassa, uppannāpi dukkhā vedanā cittaṃ pariyādāya tiṭṭhati abhāvitattā cittassa, evaṃ kho, aggivessana, abhāvitakāyo ca hoti abhāvitacitto ca.


"악기웻사나여, 어떻게 닦지 않은 몸과 닦지 않은 심(心)을 가진 자가 있습니까? 악기웻사나여, 여기 배우지 못한 범부에게 즐거운 느낌이 생깁니다. 즐거운 느낌에 닿아 있는 그는 즐거움에 친밀한 자이고, 즐거움에 친밀하면서 삽니다. 그에게 그 즐거운 느낌이 소멸합니다. 즐거운 느낌의 소멸로부터 괴로운 느낌이 생깁니다. 괴로운 느낌에 닿아 있는 그는 슬퍼하고 힘들어하고 비탄에 빠지고 가슴을 치며 울부짖고 당황합니다. 악기웻사나여, 몸을 닦지 않았기 때문에 그에게 생겨난 즐거운 느낌은 심(心)을 소진하여 머물고, 심(心)을 닦지 않았기 때문에 그에게 생겨난 괴로운 느낌은 심(心)을 소진(消盡)하여 머뭅니다. 악기웻사나여, 누구든지 몸을 닦지 않았기 때문에 생겨난 즐거운 느낌이 심(心)을 소진(消盡)하여 머물고, 심(心)을 닦지 않았기 때문에 생겨난 괴로운 느낌이 심(心)을 소진(消盡)하여 머무는 양쪽 측면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악기웻사나여, 이렇게 닦지 않은 몸과 닦지 않은 심(心)을 가진 자가 있습니다.


“kathañca, aggivessana, bhāvitakāyo ca hoti bhāvitacitto ca? idha, aggivessana, sutavato ariyasāvakassa uppajjati sukhā vedanā. so sukhāya vedanāya phuṭṭho samāno na sukhasārāgī ca hoti, na sukhasārāgitañca āpajjati. tassa sā sukhā vedanā nirujjhati. sukhāya vedanāya nirodhā uppajjati dukkhā vedanā. so dukkhāya vedanāya phuṭṭho samāno na socati na kilamati na paridevati na urattāḷiṃ kandati na sammohaṃ āpajjati. tassa kho esā, aggivessana, uppannāpi sukhā vedanā cittaṃ na pariyādāya tiṭṭhati bhāvitattā kāyassa, uppannāpi dukkhā vedanā cittaṃ na pariyādāya tiṭṭhati bhāvitattā cittassa. yassa kassaci, aggivessana, evaṃ ubhatopakkhaṃ uppannāpi sukhā vedanā cittaṃ na pariyādāya tiṭṭhati bhāvitattā kāyassa, uppannāpi dukkhā vedanā cittaṃ na pariyādāya tiṭṭhati bhāvitattā cittassa. evaṃ kho, aggivessana, bhāvitakāyo ca hoti bhāvitacitto cā”ti.


"악기웻사나여, 어떻게 닦은 몸과 닦은 심(心)을 가진 자가 있습니까? 악기웻사나여, 여기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에게 즐거운 느낌이 생깁니다. 즐거운 느낌에 닿아 있는 그는 즐거움에 친밀한 자가 아니고, 즐거움에 친밀하면서 살지 않습니다. 그에게 그 즐거운 느낌이 소멸합니다. 즐거운 느낌의 소멸로부터 괴로운 느낌이 생깁니다. 괴로운 느낌에 닿아 있는 그는 슬퍼하지 않고 힘들어하지 않고 비탄에 빠지지 않고 가슴을 치며 울부짖지 않고 당황하지 않습니다. 악기웻사나여, 몸을 닦았기 때문에 그에게 생겨난 즐거운 느낌은 심(心)을 소진하여 머물지 않고, 심(心)을 닦았기 때문에 그에게 생겨난 괴로운 느낌은 심(心)을 소진(消盡)하여 머물지 않습니다. 악기웻사나여, 누구든지 몸을 닦았기 때문에 생겨난 즐거운 느낌이 심(心)을 소진(消盡)하여 머물지 않고, 심(心)을 닦았기 때문에 생겨난 괴로운 느낌이 심(心)을 소진(消盡)하여 머물지 않는 양쪽 측면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악기웻사나여, 이렇게 닦은 몸과 닦은 심(心)을 가진 자가 있습니다.


• 몸을 닦음 ― 즐거운 느낌에 대한 대응력 → 개발된 느낌을 감당

• 심(心)을 닦음 ― 괴로운 느낌에 대한 대응력 → 고행(苦行)을 감당


14. (MN 121-(-텅 빔)의 작은 경)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5_13_01&wr_id=1

 

“puna caparaṃ, ānanda, bhikkhu amanasikaritvā ākiñcaññāyatanasaññaṃ, amanasikaritvā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saññaṃ, animittaṃ cetosamādhiṃ paṭicca manasi karoti ekattaṃ. tassa animitte cetosamādhimhi cittaṃ pakkhandati pasīdati santiṭṭhati adhimuccati. so evaṃ pajānāti — ‘ayampi kho animitto cetosamādhi abhisaṅkhato abhisañcetayito’. ‘yaṃ kho pana kiñci abhisaṅkhataṃ abhisañcetayitaṃ tadaniccaṃ nirodhadhamman’ti pajānāti. tassa evaṃ jānato evaṃ passato kāmāsavāpi cittaṃ vimuccati, bhavāsavāpi cittaṃ vimuccati, avijjāsavāpi cittaṃ vimuccati. vimuttasmiṃ vimuttamiti ñāṇaṃ hoti. ‘khīṇā jāti, vusitaṃ brahmacariyaṃ, kataṃ karaṇīyaṃ, nāparaṃ itthattāyā’ti pajānāti. so evaṃ pajānāti — ‘ye assu darathā kāmāsavaṃ paṭicca tedha na santi, ye assu darathā bhavāsavaṃ paṭicca tedha na santi, ye assu darathā avijjāsavaṃ paṭicca tedha na santi, atthi cevāyaṃ darathamattā yadidaṃ — imameva kāyaṃ paṭicca saḷāyatanikaṃ jīvitapaccayā’ti. so ‘suññamidaṃ saññāgataṃ kāmāsavenā’ti pajānāti, ‘suññamidaṃ saññāgataṃ bhavāsavenā’ti pajānāti, ‘suññamidaṃ saññāgataṃ avijjāsavenā’ti pajānāti, ‘atthi cevidaṃ asuññataṃ yadidaṃ — imameva kāyaṃ paṭicca saḷāyatanikaṃ jīvitapaccayā’ti. iti yañhi kho tattha na hoti tena taṃ suññaṃ samanupassati, yaṃ pana tattha avasiṭṭhaṃ hoti taṃ ‘santamidaṃ atthī’ti pajānāti. evampissa esā, ānanda, yathābhuccā avipallatthā parisuddhā paramānuttarā suññatāvakkanti bhavati.


다시, 아난다여, 비구는 무소유처의 상을 작의하지 않고, 비상비비상처의 상을 작의하지 않고 오직 무상심삼매(無相心三昧)만을 연하여 사고한다. 그의 심은 무상심삼매로 접근하고 순일해지고 확립되고 기운다. 그는 이렇게 분명히 안다. — ‘이 무상심삼매도 형성된 것이고 의도된 것이다.’라고. ‘어떤 것이든 형성된 것이고 의도된 것은 무상(無常)하고 소멸의 법(法)이다.’라고 분명히 안다.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는 그에게 욕루(慾漏)로부터도 심(心)이 해탈하고, 유루(有漏)로부터도 심이 해탈하고, 무명루(無明漏)로부터도 심이 해탈한다. 해탈했을 때 해탈했다는 앎이 있다. ‘태어남은 다했다. 범행은 완성되었다. 해야 할 일을 했다. 다음에는 현재 상태[유(有)]가 되지 않는다.’라고 분명히 안다. 그는 이렇게 분명히 안다. — ‘욕루를 연한 불안은 여기에 없다. 유루를 연한 불안은 여기에 없다. 무명루를 연한 불안은 여기에 없다. 그러나 생명의 조건 때문에 단지 육처(六處)에 속한 이 몸을 연한 불안은 있다.’라고. 그는 ‘욕루(慾漏)에 속한 상(想)은 비어있다.’라고 분명히 알고, ‘유루(有漏)에 속한 상(想)은 비어있다.’라고 분명히 알고, ‘무명루(無明漏)에 속한 상(想)은 비어있다.’라고 분명히 알고, ‘그러나 생명의 조건 때문에 단지 육처(六處)에 속한 이 몸을 연한 것은 비어있지 않다.’라고 분명히 안다. 이렇게 그는 거기에 없는 것에 의해 그것의 공(空-비어있음)을 관찰하고, 거기에 남아있는 것을 ‘존재하는 이것은 있다.’라고 분명히 안다. 아난다여, 이렇게도 사실에 따르고 전도되지 않았고 청정함을 넘어선 위없는 공(空-텅 빔)에 들어감이 있다.


15. (DN 2-사문과경)의 수행체계도(修行體系圖) http://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2_11&wr_id=36

 

16. (DN 22/MN 10-대념처경)/(MN 119-몸에 속한 사띠 경)/(MN 118-입출식념 경) http://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5_01

 

수행은 마음이 주관이 되어 몸을 객관 즉 대상으로 선택하여 집중-관찰-느낌의 과정으로 진행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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