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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의 확장

주제의 확장 ― (78)「혜해탈자(慧解脫者-paññāvimutta)에 대한 비난」

▣ 주제의 확장 ― (78)「혜해탈자(慧解脫者-paññāvimutta)에 대한 비난」


1. 문제 제기


(MN 80-웨카나사 경)에서 ‘소유의 삶(kāmā)으로부터 소유의 즐거움이 있는데, 소유의 즐거움에서 벗어나 소유의 끝에서 만나는 즐거움이 거기에서 으뜸’이라는 주제와 관련하여 ‘다른 견해, 다른 믿음, 다른 성향이 있고, 다른 방법으로 수행하고, 다른 스승을 따르는 유행승으로는 알기 어렵다’라는 지적을 받은 웨카나사 유행승은 


“evameva panidhekacce samaṇabrāhmaṇā ajānantā pubbantaṃ, apassantā aparantaṃ atha ca pana ‘khīṇā jāti, vusitaṃ brahmacariyaṃ, kataṃ karaṇīyaṃ, nāparaṃ itthattāyāti — pajānāmā’ti — paṭijānanti. tesamidaṃ bhāsitaṃ hassakaṃyeva sampajjati, nāmakaṃyeva sampajjati, rittakaṃyeva sampajjati, tucchakaṃyeva sampajjatī”ti.


이처럼 과거의 끝을 모르고 미래의 끝을 보지 못하는 여기 어떤 사문-바라문들이 다른 한편으로 ‘‘태어남은 다했다. 범행은 완성되었다. 해야 할 일을 했다. 다음에는 현재 상태[유(有)]가 되지 않는다.’라고 분명히 안다.’라고 공언합니다. 그들에게 이 말은 참으로 궁핍하고, 단지 이름만 얻는 것이고, 공허하고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라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부처님은 


“ye kho te, kaccāna, samaṇabrāhmaṇā ajānantā pubbantaṃ, apassantā aparantaṃ, ‘khīṇā jāti, vusitaṃ brahmacariyaṃ, kataṃ karaṇīyaṃ, nāparaṃ itthattāyāti — pajānāmā’ti — paṭijānanti; tesaṃ soyeva sahadhammiko niggaho hoti. api ca, kaccāna, tiṭṭhatu pubbanto, tiṭṭhatu aparanto. etu viññū puriso asaṭho amāyāvī ujujātiko, ahamanusāsāmi ahaṃ dhammaṃ desemi. yathānusiṭṭhaṃ tathā paṭipajjamāno nacirasseva sāmaññeva ñassati sāmaṃ dakkhiti — evaṃ kira sammā bandhanā vippamokkho hoti, yadidaṃ avijjā bandhanā.


● [초기불전연구원] 깟짜나여, 과거를 알지 못하고 미래를 보지 못하면서도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주장하는 사문-바라문들이 있는데, 그들에게 이것은 합당한 비난이다. 깟짜나여, 그렇더라도 과거도 그만두고 미래도 그만두자. 교활하지 않고 속이지 않고 정직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온다면 나는 가르치고 법을 설한다. 그가 가르친 대로 따라 행하면 오래지 않아 ‘이와 같이 나는 참으로 속박에서 바르게 해탈했으니, 즉 무명의 속박에서 바르게 해탈했다.’라고 스스로 알고 스스로 보게 될 것이다.


● [한국빠알리성전협회] 깟짜나여, 세상에서 어떤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은 과거를 알지 못하고 미래를 보지 못하면서 ‘태어남은 부수어지고 청정한 삶은 이루어졌다. 해야 할 일을 다 마치고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하는 자들에 대한 것이라면, 그것은 정당한 비난입니다. 그러나 깟짜나여, 과거도 제쳐두고 미래도 제쳐둡시다. 솔직하고 성실하고 정직하고 현명한 사람을 오게 하십시오. 가르친 대로 행하는 자가 오래지 않아 스스로 알고 스스로 보도록 나는 그를 가르치고 그에게 진리를 말합니다. 이와 같이 하면, 그는 속박 즉, 무명의 속박에서 바르게 해탈합니다.


● [bhikkhu bodhi] “If any recluses and brahmins [44], without knowing the past and without seeing the future, yet claim: ‘Birth is destroyed, the holy life has been lived, what had to be done has been done, there is no more coming to any state of being,’ they can be reasonably confuted. Rather, let the past be, Kaccāna, and let the future be. Let a wise man come, one who is honest and sincere, a man of rectitude. I instruct him, I teach him the Dhamma in such a way that by practising as instructed he will soon know and see for himself: ‘Thus, indeed, there rightly comes to be liberation from the bond, that is, from the bond of ignorance.’


라고 답합니다. 


여기서 tesaṃ soyeva sahadhammiko niggaho hoti를 주목해야 합니다. ‘그들에게 soyeva sahadhammiko niggaho가 있다’라는 의미인데, ‘그들에게 이것은 합당한 비난이다.’와 ‘그것은 정당한 비난입니다.’ 그리고 ‘they can be reasonably confuted’라고 번역되었는데, 


• saha-dhammiko → saha: in conjunction with, together, accompanied by; immediately after & dhammika: righteous. (adj.)


• niggaha: censure; blame; reproach. (m.)


로 해석된 번역입니다.


그런데 과거의 끝[숙주명(宿住明)]을 모르고 미래의 끝[천안명(天眼明)]을 보지 못하면서 깨달음을 선언하는 자는 혜해탈자(慧解脫者)입니다. 그래서 웨카나사 유행승은 혜해탈자의 깨달음을 부정하는 비판을 한 것이고, 부처님은 웨카나사 유행승의 이런 비난을 합당하다거나 정당하다거나 이유 있다고 인정한 뒤에 주제를 풀어나갔다는 해석입니다.


그러나 부처님이 웨카나사 유행승의 이런 비난을 합당하다거나 정당하다거나 이유 있다고 인정한다는 것은 경우에 맞지 않습니다. 혜해탈자(慧解脫者) 즉 누진(漏盡)에 의한 깨달음은 불교의 보편적 깨달음인데, 삼명(三明) 아라한을 기준으로 숙주명과 천안명을 갖추지 않고 깨달음을 선언하는 것에 대한 비난을 정당한 비난으로 인정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2. 원전의 재해석


그래서 tesaṃ soyeva sahadhammiko niggaho hoti를 다시 살펴야 합니다. 


sahadhammiko는 ①해체되어 saha-dhammiko의 의미이기도 하지만, ②해체하기 이전  sahadhammiko의 의미를 가지기도 합니다. 이때, ①의 의미로는 (AN 3.62-근본 교리 등 경)에서 삼종외도(三種外道)를 논파하는 부처님의 질책에서 나타납니다.


• ayaṃ kho me, bhikkhave, tesu samaṇabrāhmaṇesu evaṃvādīsu evaṃdiṭṭhīsu paṭhamo/dutiyo/tatiyo sahadhammiko niggaho hoti.


비구들이여, 이것이 그런 주장과 그런 견해를 가진 사문-바라문들에 대한 나의 첫 번째(전생의 행위)/두 번째(창조주의 창조)/세 번째(무인무연) 법에 맞는 질책이다.


그러나 이 경은 ②의 의미를 적용해야 하는데, sahadhammika는 co-religionist. (adj.)여서 같은 종교를 믿는 사람의 의미를 가집니다. 그렇다면 sahadhammiko niggaho는 ‘합당한 비난’이 아니라 ‘비난하는 같은 종교를 가진 사람’으로 해석됩니다. 


• tesaṃ soyeva sahadhammiko niggaho hoti 그들에게 그런 비난을 하는 같은 종교를 가진 사람이 있다.


웨카나사 유행승과 같은 종교를 가진 사람 즉 유행승 가운데 같은 내용으로 혜해탈자를 비난한 사람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누구입니까?


(SN 12.70-수시마 경)에서 의식주와 약품의 얻음에서 차별받는 유행승들은 의식주와 약품을 얻기 위해 수시마 유행승을 부처님에게 거짓 출가하여 법을 도둑질해오도록 임무를 맡깁니다. 부처님에게로 거짓 출가한 수시마 유행승은 깨달음을 선언하는 혜해탈자(慧解脫者)에게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따지는데, 유행승들의 교리를 배운 그로서는 당연한 의문이라고 할 것입니다.


“ettha dāni āyasmanto idañca veyyākaraṇaṃ imesañca dhammānaṃ asamāpatti; idaṃ no, āvuso, kathan”ti? “paññāvimuttā kho mayaṃ, āvuso susimā”ti.


“여기서 이제, 도반들이여, 이런 설명이 있지만, 이런 법들은 증득하지 못했습니다. 도반들이여,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도반 수시마여, 우리는 혜해탈자(慧解脫者)입니다.”


※ 부처님은 수시마 존자에게 오온(五蘊)과 연기(緣起)의 관찰에 의한 깨달음을 설명한 뒤 이렇게 깨달은 자에게 다섯 가지 신통이 없을 수 있다고 말하는데, 혜해탈자(慧解脫者)에 대한 설명입니다.


이런 일화를 통해 웨카나사 유행승과 같은 종교를 가진 사람 즉 유행승 가운데 같은 내용으로 혜해탈자를 비난한 사람은 수시마 유행승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웨카나사 유행승의 불편한 심기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고 이해할 수 있는데, 웨카나사 유행승이 귀의하여 불교 신자가 되었듯이, 수시마 유행승은 법을 도둑질하러 왔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참회하여 바르게 부처님의 출가 제자가 됩니다.


3. 결론


그렇다면 부처님은 웨카사나 유행승의 혜해탈자에 대한 이런 비난을 정당하다고 인정했다고 보지 않아야 합니다. 오히려 같은 비난을 하는 같은 종교를 가진 사람 즉 유행승도 있었다고 유행승들의 교리의 문제를 지적한 뒤 혜해탈자의 타당성을 드러내 보였다고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이해를 담아 이 문단을 근본경전연구회는 이렇게 번역하였습니다.


“깟짜나여, 과거의 끝을 모르고 미래의 끝을 보지 못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태어남은 다했다. 범행은 완성되었다. 해야 할 일을 했다. 다음에는 현재 상태[유(有)]가 되지 않는다.’라고 분명히 안다.’라고 공언하는 사문-바라문들에게 그런 비판을 하는 같은 종교를 가진 사람(유행승)이 있습니다. 그러나 깟짜나여, 과거의 끝은 그만두고, 미래의 끝도 그만둡시다. ‘정직하고 속이지 않고 올곧음을 갖춘 지혜로운 사람은 오라!’ 나는 가르치고, 나는 법을 설합니다. 가르친 대로 실천하는 자는 오래지 않아 스스로 사문 됨에 대해 알고 볼 것입니다. ― 참으로 이렇게 무명(無明)의 속박에서 바르게 풀려날 것입니다.


; 사문 됨 = 무명(無明)의 속박에서 바르게 풀려남 = 누진(漏盡) = 혜해탈자(慧解脫者)


● 별첨 1. (SN 8.7-자자(自恣) 경)         ● 별첨 2. (AN 9.44-혜해탈자 경)

● 별첨 3. (SN 12.70-수시마 경)

● 별첨 4. 깨달음을 위한 보편적 과정 = 혜해탈자(慧解脫者)의 과정

● 별첨 5. 깨달음을 위한 보편적 과정 = 혜해탈자(慧解脫者)의 과정(2)


Comments

대원행 2023.08.30 10:43
http://www.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2_13&wr_id=385 참조 (초기불교 백일법문(독송 및 개론) - (6-18)paññāvimuttasuttaṃ (AN 9.44-혜해탈자 경)[보편적 깨달음 & 단계지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