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제의 확장 ― (23)「saṅkharoti와 abhisaṅkharoti 그리고 saṅkhā」
saṅkharoti와 abhisaṅkharoti는 접두사 abhi의 유무(有無)로 구별되어 ‘만들다’와 ‘행위 하다. 형성하다.’의 유사한 의미를 가지는데, 적용되는 위치에서 차별됩니다.
saṅkharoti는 직접 발견되지 않는 가운데 과거분사인 saṅkhata(만들어진 것)의 형태로 나타나고 유위(有爲)라고 번역됩니다. abhisaṅkharoti는 오온(五蘊)의 행(行-saṅkhāra)을 정의하는 용어인데, ‘saṅkhatamabhisaṅkharonti’ 즉 ‘saṅkhata-(m)-abhisaṅkharonti[유위(有爲)에서 행위/형성하다]’와 ‘saṅkhāraṃ abhisaṅkharoti[행(行)을 행위 하다]’를 중심으로 나타납니다. 과거분사인 abhisaṅkhata(형성된 것)의 용례도 일부 발견되는 가운데 삼법인(三法印)의 행(行-saṅkhāra)이 그 의미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삼법인(三法印)의 행(行-saṅkhāra)은 애(愛)를 조건으로 형성된 것인데(SN 22.81-빠릴레이야 경), ‘saṅkhatamabhisaṅkharonti[유위(有爲)에서 형성하다]’와 의미가 연결됩니다. 즉 takka의 영역에서 유위(有爲-saṅkhata)의 과정으로 애(愛)가 생겨나면, ‘saṅkhatamabhisaṅkharonti[유위(有爲)에서 행위/형성하다]’의 과정 즉 유위(有爲)가 전제된 행위 과정[오온(五蘊)의 행(行-saṅkhāra)]의 결과로 abhisaṅkhata(형성된 것)인 삼법인(三法印)의 행(行-saṅkhāra)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렇게 「saṅkharoti → abhisaṅkharoti」의 순서는 abhisaṅkharoti에 수반되는 잠재(anuseti)에 의해 역의 순서[abhisaṅkharoti → saṅkharoti]로도 진행되는데, 잠재순환 구조입니다.
takka의 영역에서 유위(有爲-saṅkhata)의 과정이 진행되면 잠재하는데, 유위(有爲)의 과정에서 무명(無明)의 잠재성향이, 유위(有爲)의 과정으로 생겨난 심(心)이 즐거운 느낌에 대해 ‘기뻐하고 드러내고 묶여 머물면(abhinandati abhivadati ajjhosāya tiṭṭhati) 탐(貪)의 잠재성향이 생깁니다. 그리고 takka의 영역 밖에서 괴로운 느낌에 대해 슬퍼하고 힘들어하고 비탄에 빠지고 가슴을 치며 울부짖고 당황하면 저항의 잠재성향이 잠재합니다(MN 148-육육(六六) 경)/(SN 36.6-화살 경).
이렇게 잠재한 잠재성향들이 쌓여 있는 것인 상(想)-상온(想蘊)은 1차 인식에서 생겨난 식(識)과 함께 2차 인식의 공동 주관이 되어 수(受)를 인식합니다. 이때, 이 인식의 과정을 지시하는 용어가 있는데, saṅkhā(헤아림)입니다(MN 18-꿀과자 경). 그래서 「saṅkhā(헤아림) → saṅkhata(만들어진 것)=무명(無明)-탐(貪)-진(嗔)]」의 과정을 알 수 있습니다.
saṅkhā는 이름(name; term; appellation; designation)을 지시하는 용어로 자주 나타나지만, 몇 개의 경은 이렇게 헤아림의 용례를 보여줍니다. (SN 22.35-어떤 비구 경)은 ‘잠재한 것에 의해 헤아림으로 간다(yaṃ kho, bhikkhu, anuseti, tena saṅkhaṃ gacchati).’라고 하고, (SN 22.36-어떤 비구 경2)은 ‘잠재한 것이 관찰하고, 관찰한 것에 의해 헤아림으로 간다(yaṃ kho, bhikkhu, anuseti taṃ anumīyati; yaṃ anumīyati tena saṅkhaṃ gacchati).’라고 설명하는데, 잠재한 것 즉 상(想)이 인식의 주관이 되어 관찰함으로써 인식(헤아림-saṅkhā)하는 과정을 잘 설명해줍니다.
잠재는 식(識)의 머묾을 위한 기반이 됩니다. (SN 12.38-의도 경)/(SN 12.39-의도 경2)/(SN 12.40-의도 경3)은 의도하고 사유하더라도 잠재하지 않으면 식(識)이 머물지 않는다(no ce, bhikkhave, ceteti no ce pakappeti, atha ce anuseti, ārammaṇametaṃ hoti viññāṇassa ṭhitiyā. ārammaṇe sati patiṭṭhā viññāṇassa hoti)고 하는데, 잠재가 식(識)의 머묾 즉 유위(有爲)적인 삶의 기반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편, (SN 12.31-활성존재 경)은 활성존재에 대해 염오-이탐-소멸을 실천하면 유학(有學)이고, 염오-이탐-소멸하여 집착 없이 해탈하면 법을 헤아려 아는 자(saṅkhātadhamma) 즉 아라한이라고 알려줍니다.
여기서 saṅkhāta는 saṅkhā-ta인데, '헤아려 아는 자'입니다. 행들과 열반으로 구성된 법 가운데 세상에 속한 존재들은 행에서 헤아리는 과정이 'saṅkhā(헤아림) → saṅkhata(만들어진 것=유위)'이지만, 세상에서 벗어나 열반을 실현한 아라한은 열반에서 헤아리는 삶을 산다는 의미입니다. ‒ 「saṅkhā(헤아림) → saṅkhātadhamma(무위=열반에서 헤아리는 자)」
saṅkhāta 1 pp. reckoned; so called; what is called; so named
saṅkhāta 2 pp. comprehended; recognized
• saṅkhā(헤아림) → ①saṅkhata(만들어진 것=유위) ↔ ②saṅkhātadhamma(무위=열반에서 헤아리는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