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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의 확장

주제의 확장 ― (88) 「dhammanvayo 법의 과정 또는 법을 따름 또는 사실과 일치」

▣ 주제의 확장 ― (88) 「dhammanvayo 법의 과정 또는 법을 따름 또는 사실과 일치」


dhammanvayo는 dhamm-anvayo인데, anvayo는 conformity(따름. 순응), accordance(일치. 조화), following(따름), course(과정)의 의미입니다.


dhammanvayo는 ①법의 과정, ②법을 따름, ③사실과 일치의 용례를 보여줍니다.


1. 법의 과정 → 「예외가 없는 법의 과정 — 수행의 중심 개념」http://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5_08&wr_id=28 


2. 법을 따름 ― (MN 89-법의 탑 경)


“kiṃ pana tvaṃ, mahārāja, atthavasaṃ sampassamāno imasmiṃ sarīre evarūpaṃ paramanipaccakāraṃ karosi, mittūpahāraṃ upadaṃsesī”ti? “atthi kho me, bhante, bhagavati dhammanvayo — ‘hoti sammāsambuddho bhagavā, svākkhāto bhagavatā dhammo, suppaṭipanno bhagavato sāvakasaṅgho’ti. 


“대왕이여, 그대는 무슨 이유를 보길래 이 몸에 이런 최상의 존경을 표하고, 우정을 표합니까?” “대덕이시여, 저는 ‘세존은 정등각이시다. 세존으로부터 법은 잘 설해졌다. 세존의 제자 상가는 잘 실천한다.’라고 세존에게서 법을 따릅니다. 


• 법을 따르게 된 근거 = 법(法)의 탑(塔)(dhammacetiya) ― 이것에 의해서도 ~


1) [승(僧)] 제한된 범행을 실천하는 어떤 사문-바라문들과 비구들의 차이 ― 저는 살아 있는 한 죽을 때까지 완전하고 청정하게 범행을 실천하는 비구들을 봅니다. 대덕이시여, 저는 여기 밖의 다른 곳에서 이렇게(*) 완전하고 청정한 범행의 실천을 보지 못합니다.


(*) ito bahiddhā aññaṃ evaṃ ~ 이 경에만 나타나는 서술 ⇒ 부처님의 제자 상가의 특징 ― ①완전하고 청정한 범행의 실천/②화합하는 무리/③잘 제어된 무리


2) [승(僧)] 서로 싸우는 무리와의 차이 ― 저는 화합하고 즐거워하고 다투지 않고 우유와 물로 된 것 같고 서로를 사랑스런 눈으로 보면서 지내는 비구들을 봅니다. 대덕이시여, 저는 여기 밖의 다른 곳에서 이렇게 화합하는 무리를 보지 못합니다.


3) [법(法)] 나쁜 몰골을 한 사문-바라문과의 차이 ― 저는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마냥 행복해하고, 기뻐하는 모습이고, 기능들이 충만하고, 편안히 지내고, 부드럽고, 남들이 준 것으로 살고, 사슴의 심(心)으로 머무는 비구들을 봅니다. 그런 저에게, 대덕이시여,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 ‘참으로 이 존자들은 그분 세존의 가르침에서 고귀한 전후의 차이를 안다; 그래서 참으로 이 존자들은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마냥 행복해하고, 기뻐하는 모습이고, 기능들이 충만하고, 편안히 지내고, 부드럽고, 남들이 준 것으로 살고, 사슴의 심(心)으로 머문다.’라고. ⇒ 「즐거움으로 더 큰 즐거움을 일구는 불교 수행」


4) [승(僧)] 제어됨의 차이 ― 저는 비구들을 봅니다. 세존께서 수백 명이 모인 자리에서 법을 설하실 때 세존의 제자들은 재채기 소리나 기침하는 소리를 내지 않습니다. ~ 대덕이시여, 저는 여기 밖의 다른 곳에서 이렇게 잘 제어된 무리를 보지 못합니다. 


5) [불(佛)] 지혜를 익혀서 치우친 견해를 부수며 돌아다니는 현명하고 유능한 끄샤뜨리야-바라문-장자들을 만족시켜 제자가 되게 함


6) [불(佛)] 지혜를 익혀서 치우친 견해를 부수며 돌아다니는 현명하고 유능한 사문들을 만족시켜 출가케 하고 깨달음을 성취케 함


※ 5)-6) ― (MN 27-코끼리 발자국의 작은 경)에서 삘로띠까 유행승이 결론을 얻기 위해 제시하는 네 가지 발자국 → 부처님은 사문과경의 체계로써 결론의 얻음을 설명함.


7) [재가 신자] 존경의 차이 ― 저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 ‘참으로 놀랍습니다, 존자여. 참으로 신기합니다, 존자여! 목수인 이들 이시닷따와 뿌라나는 나의 밥을 먹고 나의 마차를 탄다. 나는 그들에게 생계를 주고, 명성을 주었다. 하지만 그들은 세존에게 하듯이 나에게 존경을 표하지 않는다. 참으로 이 존자들은 그분 세존의 가르침에서 전후의 고귀한 차이를 인식한다.’라고.


3. 사실과 일치 ― (MN 12-사자후 큰 경)


“kodhano heso, sāriputta, sunakkhatto moghapuriso. kodhā ca panassa esā vācā bhāsitā. ‘avaṇṇaṃ bhāsissāmī’ti kho, sāriputta, sunakkhatto moghapuriso vaṇṇaṃyeva tathāgatassa bhāsati. vaṇṇo heso, sāriputta, tathāgatassa yo evaṃ vadeyya — ‘yassa ca khvāssa atthāya dhammo desito so niyyāti takkarassa sammā dukkhakkhayāyā’ti.


”사리뿟따여, 어리석은 그 수낙캇따는 화가 났다. 화가 났기 때문에 그런 말을 했다. ‘나는 비난하리라.’라면서, 사리뿟따여, 어리석은 수낙캇따는 오히려 여래를 칭찬했다. ‘그는 어떤 목적을 위해 설해진 법을 실천하는 자를 바르게 괴로움의 부서짐으로 이끈다.’라고 말한다면, 사리뿟따여, 그것은 여래에 대한 칭찬이다.


“ayampi hi nāma, sāriputta, sunakkhattassa moghapurisassa mayi dhammanvayo na bhavissati — ‘itipi so bhagavā arahaṃ sammāsambuddho vijjācaraṇasampanno sugato lokavidū anuttaro purisadammasārathi, satthā devamanussānaṃ, buddho bhagavā’ti.


사리뿟따여, 어리석은 수낙캇따에게는 나에 대한 사실과 일치하는 이런 것도 없을 것이다. — ‘이렇게 그분 세존(世尊)께서는 모든 번뇌 떠나신 분, 스스로 완전한 깨달음을 이루신 분, 밝음과 실천을 갖추신 분, 진리의 길 보이신 분, 세상일을 모두 훤히 아시는 분, 어리석은 이도 잘 이끄시는 위없는 분, 모든 천상과 인간의 스승, 깨달으신 분, 존귀하신 분이시다.’라고.


“ayampi hi nāma, sāriputta, sunakkhattassa moghapurisassa mayi dhammanvayo na bhavissati — ‘itipi so bhagavā anekavihitaṃ iddhividhaṃ paccanubhoti — ekopi hutvā bahudhā hoti, bahudhāpi hutvā eko hoti; āvibhāvaṃ, tirobhāvaṃ; tirokuṭṭaṃ tiropākāraṃ tiropabbataṃ asajjamāno gacchati, seyyathāpi ākāse; pathaviyāpi ummujjanimujjaṃ karoti, seyyathāpi udake; udakepi abhijjamāno gacchati, seyyathāpi pathaviyaṃ; ākāsepi pallaṅkena kamati, seyyathāpi pakkhī sakuṇo; imepi candimasūriye evaṃmahiddhike evaṃmahānubhāve pāṇinā parimasati parimajjati; yāva brahmalokāpi kāyena vasaṃ vattetī’ti.


사리뿟따여, 어리석은 수낙캇따에게 나에 대한 사실과 일치하는 이런 것도 없을 것이다. — ‘이렇게 그분 세존(世尊)께서는 여러 가지 종류의 신통을 실행한다. — 하나였다가 여럿이 되기도 하고, 여럿이었다가 하나가 되기도 합니다. 드러내기도 하고 숨기도 하고, 분말과 성벽과 산을 가로지르기를 허공에서처럼 닿지 않고 간다. 땅에서도 물에서처럼 떠오르고 들어간다. 물에서도 땅에서처럼 빠지지 않고 간다. 허공에서도 가부좌하고 날개달린 새처럼 간다. 이렇게 강력하고 웅장한 저 달과 해를 손으로 닿아 쓰다듬는다. 범천의 세상까지도 몸으로 나아간다.’라고.


“ayampi hi nāma, sāriputta, sunakkhattassa moghapurisassa mayi dhammanvayo na bhavissati — ‘itipi so bhagavā dibbāya sotadhātuyā visuddhāya atikkantamānusikāya ubho sadde suṇāti — dibbe ca mānuse ca, ye dūre santike cā’ti.


사리뿟따여, 어리석은 수낙캇따에게 나에 대한 사실과 일치하는 이런 것도 없을 것이다. — ‘이렇게 그분 세존(世尊)께서는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귀의 요소로 멀든 가깝든 하늘과 인간의 양쪽의 소리를 듣는다.’라고. 


“ayampi hi nāma, sāriputta, sunakkhattassa moghapurisassa mayi dhammanvayo na bhavissati — ‘itipi so bhagavā parasattānaṃ parapuggalānaṃ cetasā ceto paricca pajānāti — sarāgaṃ vā cittaṃ sarāgaṃ cittanti pajānāti, vītarāgaṃ vā cittaṃ vītarāgaṃ cittanti pajānāti; sadosaṃ vā cittaṃ sadosaṃ cittanti pajānāti, vītadosaṃ vā cittaṃ vītadosaṃ cittanti pajānāti; samohaṃ vā cittaṃ samohaṃ cittanti pajānāti, vītamohaṃ vā cittaṃ vītamohaṃ cittanti pajānāti; saṃkhittaṃ vā cittaṃ saṃkhittaṃ cittanti pajānāti, vikkhittaṃ vā cittaṃ vikkhittaṃ cittanti pajānāti; mahaggataṃ vā cittaṃ mahaggataṃ cittanti pajānāti, amahaggataṃ vā cittaṃ amahaggataṃ cittanti pajānāti; sauttaraṃ vā cittaṃ sauttaraṃ cittanti pajānāti, anuttaraṃ vā cittaṃ anuttaraṃ cittanti pajānāti; samāhitaṃ vā cittaṃ samāhitaṃ cittanti pajānāti, asamāhitaṃ vā cittaṃ asamāhitaṃ cittanti pajānāti; vimuttaṃ vā cittaṃ vimuttaṃ cittanti pajānāti, avimuttaṃ vā cittaṃ avimuttaṃ cittanti pajānātī’ti.


사리뿟따여, 어리석은 수낙캇따에게 나에 대한 사실과 일치하는 이런 것도 없을 것이다. — ‘이렇게 그분 세존(世尊)께서는 다른 중생들과 다른 사람들의 심(心)을 심(心)으로 분별하여 분명히 안다. — ①탐(貪)이 있는 심(心)을 ‘탐(貪)이 있는 심(心)’이라고 분명히 안다. ②탐(貪)이 없는 심(心)을 ‘탐(貪)이 없는 심(心)’이라고 분명히 안다. ③진(嗔)이 있는 심(心)을 ‘진(嗔)이 있는 심(心)’이라고 분명히 안다. ④진(嗔)이 없는 심(心)을 ‘진(嗔)이 없는 심(心)’이라고 분명히 안다. ⑤치(癡)가 있는 심(心)을 ‘치(癡)가 있는 심(心)’이라고 분명히 안다. ⑥치(癡)가 없는 심(心)을 ‘치(癡)가 없는 심(心)’이라고 분명히 안다. ⑦수축된 심(心)을 ‘수축된 심(心)’이라고 분명히 안다. ⑧흩어진 심(心)을 ‘흩어진 심(心)’이라고 분명히 안다. ⑨개발된 심(心)을 ‘개발된 심(心)’이라고 분명히 안다. ⑩개발되지 않은 심(心)을 ‘개발되지 않은 심(心)’이라고 분명히 안다. ⑪위가 있는 심(心)을 ‘위가 있는 심(心)’이라고 분명히 안다. ⑫위가 없는 심(心)을 ‘위가 없는 심(心)’이라고 분명히 안다. ⑬삼매를 닦는 심(心)을 ‘삼매를 닦는 심(心)’이라고 분명히 안다. ⑭삼매를 닦지 않는 심(心)을 ‘삼매를 닦지 않는 심(心)’이라고 분명히 안다. ⑮해탈된 심(心)을 ‘해탈된 심(心)’이라고 분명히 안다. ⑯해탈되지 않은 심(心)을 ‘해탈되지 않은 심(心)’이라고 분명히 안다.’라고.

Comments

대원행 2023.04.14 21:27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5_09_09&wr_id=2 참조 (맛지마 니까야 관통 법회 - 89.법의 탑 경[부처님을 존경하는 이유 - 법을 따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