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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의 확장

주제의 확장 ― (31)「견해 – 십사무기(十事無記) 2)십사무기와 사사무기」

0 437 2021.05.31 18:06

주제의 확장 (31)견해 십사무기(十事無記) 2)십사무기와 사사무기

 

Ⅰ. 견해의 네 가지 주제 ― 「아(我)-세상-생명과 몸-열반(범행의 완성)」


삶을 보는 시각을 견해(見解-어떤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자기의 의견이나 생각)라고 합니다. 견해는 주로 나와 세상 그리고 범행(梵行)의 관점에서 제시되는데, (SN 24-견해 상윳따)와 (DN 1-범망경)을 중심으로 포괄적인 관점을 제시합니다. 


• (SN 24-견해 상윳따)의 주제 ― ①아(我), ②세상, ③범행(梵行), ④생명과 몸, ⑤여래의 사후


• (DN 1-범망경)의 주제 ― ①아(我) ②세상, ③생명과 몸, ④여래의 사후, ⑤열반(涅槃)


이때, (SN 24-견해 상윳따)의 ④생명과 몸은 ‘그 생명이 그 몸이다 또는 다른 생명과 다른 몸이다.’라는 형태로, (DN 1-범망경)의 ③생명과 몸은 ‘저세상-화생(化生)-업(業)의 과(果)와 보(報)’의 형태로 제시되는데, (DN 1-범망경)이 더 상세한 의문을 제시한다고 하겠습니다[→ 원초적 형태의 바른 견해]. 또한, 여래의 사후는 몸으로 가지 않은 때의 존재 상태를 의미하므로 생명과 몸의 관계에 속한다고 할 수 있고, 범행은 열반의 실현을 위한 과정이므로 (SN 24-견해 상윳따)와 (DN 1-범망경)의 주제는 아(我)-세상-생명과 몸-열반(범행의 완성)의 네 가지에 대한 다른 표현이라고 하겠습니다.


세상에는 이 주제들에 대해 다양한 관점들을 제시하고 있지만 모두 사실에 접근하지 못한 치우친 견해입니다. 반면에 정등각(正等覺)인 부처님은 사실에 근거해서 이 주제들을 설명하는데, 


1) 아(我) → 삼법인(三法印)에 의한 무아(無我)


2) 세상 → 헤아려지지 않는 물질 세상의 끝에 대한 관심을 배제하고, ‘내입처(內入處) -외입처(外入處)-식(識)-촉(觸)-수(受)’로 구성되는 중생 세상의 끝에 대한 관심을 통해 중생 세상을 멸(滅)하고 벗어남[해탈(解脫)]


3) 생명과 몸 → 삶의 과정을 누적하며 변화하는 연기(緣起)된 식(識)과 명색(名色)이 서로 조건 된다는 특성으로 생명을 설명함으로써 단(斷)과 상(常)을 극복한 연기(緣起)로써 생명과 몸의 관계를 정의함. 다만, 무명(無明)과 애(愛)가 해소되면 몸이 무너져 죽은 뒤 몸으로 가지 않는데, 이것이 태어나지 않음[불생(不生)]이어서 불사(不死)의 실현이고, 윤회에서의 벗어남이고 깨달음임


4) 열반(범행의 완성) → 범행 아닌 것과 안식을 주지 못하는 범행(MN 76-산다까 경)과는 다르게 고멸(苦滅)로 이끄는 길과 실천인 팔정도(八正道)로써 범행을 완성하고 열반을 실현함


입니다.


한편, 아(我)에 대한 견해는 무아(無我)에 대응하여 모든 견해의 중심이 됩니다. 아(我)는 아(我)의 관점에서 삶을 이해하는 우파니샤드에서 구체적으로 설명되지만, 불교는 우파니샤드가 설명하는 아(我)가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합니다. 그래서 세상에 알려진 아(我)에 대한 다양한 주장을 소개하며 사실 아니라는 점을 설명하는데, 경이 소개하는 세상에 알려진 아(我)에 대한 다양한 주장을 정리하였습니다. → 첨부1 - 「경이 소개하는 아(我)에 대한 견해들」 → 첨부 2 - 「(DN 1-범망경(梵網經))의 62견(見)과 아(我)」


또한, 아(我)와 세상의 두 가지 주제에 대해 설명하는 경들도 있는데 ‘sassato attā ca loko ca~’의 용례입니다. 이 용례 경들은 미래에 대한 견해와 과거에 대한 견해를 설명하는데, 미래에 대한 견해는 아(我)를 중심으로, 과거에 대한 견해는 아(我)와 세상을 중심으로 설명됩니다. → 첨부 3 - 「경이 소개하는 아(我)와 세상에 대한 견해들[‘sassato attā ca loko ca~’의 용례]」 참조


Ⅱ. 견해의 포함 관계


그런데 이 주제들 가운데 열 가지 주제는 별도의 분류로 많은 경들에 나타나는데 세상의 영원 여부와 끝의 유무, 생명과 몸의 관계, 여래의 사후로 구성되는 십사무기(十事無記)입니다. 또는 여래의 사후만으로 구성되는 사사무기(四事無記)도 많은 경에서 설해지고 있습니다. 


― 「(SN 24-견해 상윳따)/(DN 1-범망경) ⊃ 십사무기(十事無記) ⊃ 사사무기(四事無記)」


Ⅲ. 십사무기(十事無記)와 사사무기(四事無記)


1. 십사무기(十事無記) ― 부처님이 설명하지 않는 열 가지 견해 ― 「①세상은 영원하다, ②세상은 영원하지 않다, ③세상은 끝이 있다, ④세상은 끝이 없다, ⑤그 생명이 그 몸이다, ⑥다른 생명과 다른 몸이다, ⑦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한다, ⑧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지 않는다, ⑨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 ⑩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2. 십사무기와 사사무기의 용례


십사무기(十事無記)

사사무기(四事無記)

견해 상윳따 (SN 24.9-18)/(SN 24.25-34)/(SN 24.53-62)/(SN 24.79-88)

 

왓차곳따 상윳따 (SN 33.1)(SN 33.55)

 

무기 상윳따 (SN 44.7)/(SN 44.8)

 

기타 (DN 9.4)/(DN 9.5)/(MN 25.1)/(MN 63.1)/(MN 72.1)//(SN 41.3)//(SN 56.8)/(SN 56.41)/(AN 4.38)/(AN 10.20)/(AN 10.93)/(AN 10.95)/(AN 10.96)

 

 

 

무기 상윳따 (SN 44.1-6)/(SN 44.11)

 

 

 

기타 (DN 1.9)/(DN 2.9)/(DN 15.4)/(DN 29.14)/(SN 16.12)/(SN 22.86)/(SN 24.33)~(SN 24.36)//(AN 7.54)/


십사무기는 (SN 24-견해 상윳따)와 (SN 33-왓차곳따 상윳따) 그리고 (SN 44-무기(無記) 상윳따)를 중심으로 많은 경에 나타납니다. 이때, 상윳따 별 차이를 볼 수 있는데, 


1) (SN 24-견해 상윳따)의 경들은 포괄적 견해 가운데 십사무기(十事無記)를 포함하고, 


2) (SN 33-왓차곳따 상윳따)의 경들은 모두 십사무기(十事無記)로 구성되며, 


3) (SN 44-무기(無記) 상윳따)의 경들은 7개는 사사무기(四事無記)고, 2개만이 십사무기(十事無記)


입니다. 또한, 각각의 설명 방식의 차이를 보여주는데,


1) (SN 24-견해 상윳따) ― 무엇이 있을 때, 무엇을 집착하고 무엇을 고집하여 생기는가? → 색(色)-수(受)-상(想)-행(行)-식(識)이 있을 때, 색(色)-수(受)-상(想)-행(行)-식(識)을 집착하고 고집하여 생김


2) (SN 33-왓차곳따 상윳따) ― 왜 생기는가? → 색(色)-수(受)-상(想)-행(行)-식(識)과 그의 집(集)-멸(滅)-도(道)에 대한 무지(無知)-통찰 없음-관통 없음-깨닫지 못함-꿰뚫지 못함-식견 없음-안목 없음-식별하지 못함-안정된 관찰 없음-창의성 없음-실현 없음


3) (SN 44-무기(無記) 상윳따) ― 설명하지 않는 이유 ― 헤아려지지 않는 영역[한계 없음]-이익되지 않는 시도 → 고(苦)와 고멸(苦滅)의 명제에 접근하지 않는 주제


입니다.


3. 사사무기(四事無記)를 말하는 기타의 용례


1) (DN 1-범망경)에서 애매모호한 이론들로 나타나는데, (DN 2-사문과경)에 의하면 산짜야 벨랏타뿟따의 말입니다.


2) (DN 15-대인연경)은 해탈된 심(心)을 가진 비구가 이런 견해를 가졌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하는데, 실다운 지혜에 의해서 해탈한 비구에게 ‘그는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한다.’는 견해를 가진다는 것은 옳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3) (DN 29-청정 경)은 외도 유행승들이 네 가지에 대해 ‘이것만이 참이고 다른 것은 거짓입니까?’라고 물으면, 세존께서는 ’여래는 죽은 뒤에도 존재한다는 이것만이 참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고 설명하지 않았습니다.’라고. 답해야 한다고 합니다. 무엇 때문에 설명하지 않았는지 다시 물으면, ‘이것은 이익으로 이끌지 않고, 법으로 이끌지 않고, 범행(梵行)의 시작으로 이끌지 않고, 염오(厭惡)로 이탐(離貪)으로 소멸(消滅)로 가라앉음으로 실다운 지혜로 깨달음으로 열반(涅槃)으로 이끌지 않습니다. 그것 때문에 세존께서는 이것을 설명하지 않았습니다.’라고 답하라고 합니다.


4) (SN 16.12-죽은 뒤 경)은 부처님은 이 네 가지를 설명하지 않는데, 이익으로 이끌지 않고, 범행(梵行)의 시작에 속하지 않고, 염오(厭惡)로 이탐(離貪)으로 소멸(消滅)로 가라앉음으로 실다운 지혜로 깨달음으로 열반(涅槃)으로 이끌지 않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설명하는 것은 사성제(四聖諦)인데, 이익으로 이끌고, 범행(梵行)의 시작에 속하고, 염오(厭惡)로 이탐(離貪)으로 소멸(消滅)로 가라앉음으로 실다운 지혜로 깨달음으로 열반(涅槃)으로 이끌기 때문입니다.


5) (SN 22.86-아누라다 경)/(SN 44.2-아누라다 경)은 이런 네 가지 경우와는 다른 경우에 대해 선언한다고 설명한 아누라다 존자를 지적하면서 ‘이전에도 지금도 나는 오직 고(苦)와 고멸(苦滅)을 꿰뚫어 알게 한다.’라고 말합니다. 존재의 관점이 아닌 고(苦)와 락(樂)의 관점에서 법을 설한다는 의미입니다.


6) (AN 7.54-무기(無記) 경)은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에게 무기(無記)의 영역에 대한 의심이 일어나지 않는 원인-조건을 말하는데, 무기(無記)인 것들은 치우친 견해이기 때문에 견해의 소멸로부터 무기의 영역에 대한 의심이 생기지 않는다고 알려줍니다.


4. 십사무기(十事無記)를 말하는 기타의 용례


1) (DN 9.4-뽓타빠다 경)은 뽓타빠다 유행승이 열 가지에 대해 ‘이것만이 참이고 다른 것은 거짓입니까?’라고 물으면, 부처님은 ‘여래는 죽은 뒤에도 존재한다는 이것만이 참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는 등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무엇 때문에 설명하지 않았는지 다시 물으면, ‘이것은 이익으로 이끌지 않고, 법으로 이끌지 않고, 범행(梵行)의 시작으로 이끌지 않고, 염오(厭惡)로 이탐(離貪)으로 소멸(消滅)로 가라앉음으로 실다운 지혜로 깨달음으로 열반(涅槃)으로 이끌지 않기 때문이라고 답합니다. 그리고 무엇을 설명하느냐는 이어지는 질문에 사성제(四聖諦)를 설명한다고 답하는데, 이익으로 이끌고, 이것은 법으로 이끌고, 이것은 범행(梵行)의 시작으로 이끌고, 이것은 염오(厭惡)로 이탐(離貪)으로 소멸(消滅)로 가라앉음으로 실다운 지혜로 깨달음으로 열반(涅槃)으로 이끌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뽓타빠다 유행승은 “존자들이여, 나도 사문 고따마가 설한 확실한 법을 어떤 것도 알지 못합니다. ㅡ ‘세상은 영원하다.’라거나, … ‘여래는 죽은 뒤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하지만 사문 고따마는 누적된 것[존재]에게 사실이고, 진실이고, 법에 바탕을 둔 그리고 법에 확립된 실천을 선언합니다. 누적된 것[존재]에게 사실이고, 진실이고, 법에 바탕을 둔 그리고 법에 확립된 실천을 선언하는 사문 고따마의 잘 설해진 법에 대해, 잘 설해진 것 때문에 나와 같은 현명한 사람이 어떻게 감사하며 기뻐하지 않겠습니까?”라고 하여 부처님의 법이 ‘누적된 것[존재]에게 사실이고, 진실이고, 법에 바탕을 둔 그리고 법에 확립된 실천을 선언하는 잘 설해진 법’이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2) (MN 25-미끼 경)은 마라의 미끼(소유의 사유에 묶인 것)에 낚이지 않아도 열 가지 견해를 가지면 마라의 위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3) (MN 72-왓차 불 경)은 열 가지에 대해 ‘이것만이 참이고 다른 것은 거짓입니까?’라는 견해가 있느냐는 질문에 없다고 답하고, 어떤 위험을 보고 있기에 이렇게 이 모든 치우친 견해를 가까이하지 않느냐는 이어지는 질문에 이 열 가지는 치우친 견해이고, 얽힌 견해이고, 황폐한 견해이고, 몸부림치는 견해이고, 투쟁하는 견해이고, 묶인 견해여서 괴로움과 함께하고, 파괴와 함께하고, 절망과 함께하고, 열기와 함께하고, 염오(厭惡)로, 이탐(離貪)으로, 소멸(消滅)로, 가라앉음으로, 실다운 지혜로, 깨달음으로, 열반으로 이끌지 않는 위험을 보기 때문에 가까이하지 않는다고 답합니다. 또한, 오온(五蘊)의 자라남-줄어듦을 보아서 여래는 모든 생각된 것, 모든 동요된 것, 모든 나를 만들고, 나의 것을 만드는 자기화의 잠재성향을 부숨과 이탐(離貪)과 소멸(消滅)과 포기와 놓음 때문에 집착 없이 해탈했기 때문에 어떤 것도 치우친 견해가 없다고 말합니다. 


4) (SN 41.3-이시닷따 경2)은 이 열 가지 견해는 유신견(有身見)이 있을 때 있고, 유신견이 없을 때 없다고 말합니다. 이어서 유신견은 아(我)를 전제한 관찰에서 생기고, 아(我)를 전제하지 않은 관찰에서 생기지 않는다고 알려줍니다.


5) (SN 56.8-심(心)의 작용 경)은 열 가지 견해를 악하고 불선한 심(心)의 작용이라고 하면서 작용하게 하지 말라고 하는데, 이익으로 이끌지 않고, 범행(梵行)의 시작에 속하지 않고, 염오(厭惡)로 이탐(離貪)으로 소멸(消滅)로 가라앉음으로 실다운 지혜로 깨달음으로 열반(涅槃)으로 이끌지 않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사성제로 심(心)을 작용하게 해야 하는데, 이익으로 이끌고, 범행(梵行)의 시작이고, 염오(厭惡)로 이탐(離貪)으로 소멸(消滅)로 가라앉음으로 실다운 지혜로 깨달음으로 열반으로 이끌기 때문입니다.


6) (SN 56.41-세상을 생각함 경)은 십사무기는 세상에 대한 생각이어서 이익으로 이끌지 않고, 범행(梵行)의 시작에 속하지 않고, 염오(厭惡)로 이탐(離貪)으로 소멸(消滅)로 가라앉음으로 실다운 지혜로 깨달음으로 열반(涅槃)으로 이끌지 않으니 생각하지 말고, 이익으로 이끌고, 범행(梵行)의 시작이고, 염오(厭惡)로 이탐(離貪)으로 소멸(消滅)로 가라앉음으로 실다운 지혜로 깨달음으로 열반으로 이끄니 생각하라고 말합니다.


7) (AN 4.38-홀로 머무는 자 경)/(AN 10.20-성스러운 삶 경2)는 열 가지 견해를 범부인 사문-바라문들에게 있는 범부의 혼자만의 진리(puthupaccekasaccāni)라고 하면서, 그것들을 모두 제거하고, 버리고, 포기하고, 토해내고, 해방되고, 없애고, 놓아버린 비구는 혼자만의 진리를 버린 자(panuṇṇapaccekasacco)라고 합니다. → 보편적 진리


8) (AN 10.93-어떤 견해를 가짐 경)은 외도 유행승들의 견해인 이 열 가지 견해는 스스로의 비여리작의(非如理作意)를 원인으로 하거나 남의 목소리를 조건으로 일어난 것인데, 누적된 것, 유위(有爲)인 것, 의도된 것, 연기(緣起)된 것입니다. 그리고 누적된 것, 유위(有爲)인 것, 의도된 것, 연기(緣起)된 것은 무엇이든지 무상(無常)하고, 무상(無常)한 것은 고(苦)입니다. 고(苦)인 것에 외도 유행승들은 집착되었고, 굴복당했다고 합니다. 반면에 성스러운 제자는 누적된 것, 유위(有爲)인 것, 의도된 것, 연기(緣起)된 것은 무엇이든지 무상(無常)하고, 무상(無常)한 것은 고(苦)인데, ‘고(苦)인 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 내가 아니다,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이렇게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로써 잘 봅니다. 그리고 그것의 더 높은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고 말합니다.


9) (AN 10.95-웃띠야 경)은 열 가지 각각에 대해 ‘이것만이 참이고 다른 것은 거짓입니까?’라는 질문에 설명하지 않았다는 문답에 이어 부처님은 무엇을 설명하였느냐는 질문에 “웃띠야여, 나는 중생들의 청정을 위한, 슬픔[수(愁)]과 비탄[비(悲)]을 건너기 위한, 고통[고(苦)]과 고뇌[우(憂)]를 줄어들게 하기 위한, 방법을 얻기 위한, 열반을 실현하기 위한 법을 제자들에게 실다운 지혜로써 설합니다.”라고 답합니다.


10) (AN 10.96-꼬까누다 경)은 이런 열 가지 견해가 없다는 아난다 존자에게게 꼬까다누 유행승이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것이냐고 묻고, 아난다 존자는 그것이 치우친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답하면서 “도반이여, 견해에 관한 한, 견해의 토대에 관한 한, 견해의 결정에 관한 한, 견해의 스며듦에 관한 한, 견해의 근원에 관한 한, 견해의 뿌리 뽑음에 관한 한 나는 그것을 알고, 나는 그것을 봅니다. 그것을 알고 그것을 보는 내가 어떻게 ‘나는 알지 못하고, 나는 보지 못합니다.’라고 말하겠습니까? 도반이여, 나는 알고 봅니다.”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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