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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의 확장

vibhava의 용례

0 21 06.09 20:14

vibhava의 용례


● vibhava의 용례별 전통적 해석과 새로운 해석


 

용례

전통적 해석

새로운 해석

ucchedaṃ vināsaṃ vibhavaṃ

단멸과 파괴와 존재하지 않음

단멸과 파괴에 의한 존재에서 벗어남

kāyassa bhedā ucchijjati vinassati, na hoti paraṃ maraṇā, ettāvatā kho, bho, ayaṃ attā sammā samucchinno hotī’ti. ittheke sato sattassa ucchedaṃ vināsaṃ vibhavaṃ paññapenti.

 

몸이 무너진 뒤 단멸하고 파괴됩니다. 죽음 이후는 없습니다. 이만큼, 존자여, 이 아()는 바르게 없어집니다.’라고. 이렇게 어떤 사람은 존재하는 중생들의 단멸과 파괴에 의한 존재에서 벗어남을 선언한다.

bhavadiṭṭhi ca vibhavadiṭṭhi ca.

존재의 견해와 비존재의 견해

존재의 견해와 존재에서 벗어남의 견해

bhavañca vibhavesinaṃ

존재와 비존재를 추구하는

존재와 존재에서 벗어남을 추구하는

bhavāya vibhavāya ca

이렇게 존재와 비존재를 위한

존재와 존재에서 벗어남을 위한

so neva taṃ abhisaṅkharoti, na abhisañcetayati bhavāya vā vibhavāya vā

그는 존재거나 존재에서 벗어남을 위하여 그것을 형성하지도 않고 의도하지도 않는다.

etaṃ dvedhāpathaṃ ñatvā, bhavāya vibhavāya ca

이렇게 존재와 존재에서 벗어남을 위한 두 엇갈린 길을 안 뒤에

rūpaṃ vibhavissatīti

()은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라고

()은 존재에서 벗어날 것이라고

rūpaṃ vibhavissatī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vedanā... saññā... saṅkhārā... viññāṇaṃ vibhavissatī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은 존재에서 벗어날 것이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들은 ()은 존재에서 벗어날 것이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vibhavatasinā

비존재의 갈증

존재에서 벗어남의 갈증

bhavañcavibhavañca ñatvā

존재와 비존재를 안 뒤에

존재와 존재에서 벗어남을 안 뒤에

lokassa bhavañcavibhavañca ñatvā taṃsaññāparicitañca no cittaṃ bhavissati

우리에게 심()은 세상의 존재와 존재에서 벗어남을 안 뒤에 그 상()을 실천한 심()이 될 것이고

vibhavañca bhavañca vippahāya

존재와 비존재를 완전히 버리고

존재와 존재에서 벗어남을 완전히 버리고

rūpesu disvā vibhavaṃ bhavañca

()들에서 존재와 비존재를 본 뒤에

()들에서 존재와 존재에서 벗어남을 본 뒤에

vibhavaṃ bhavañcāpi yametamatthaṃ

존재와 비존재의 의미

존재와 존재에서 벗어남의 의미

vibhavataṇhā

무유애(無有愛)

존재에서 벗어남의 애()

kāmataṇhā, bhavataṇhā, vibhavataṇhā 욕애(慾愛)-유애(有愛)-무유애(無有愛)

소유의 갈애, 존재의 갈애, 존재에서 벗어남의 갈애

 

● 용례


1. ucchedaṃ vināsaṃ vibhavaṃ


1) brahmajālasuttaṃ, ucchedavādo (DN 1.15-범망경, 단멸을 말하는 자)  


“santi, bhikkhave, eke samaṇabrāhmaṇā ucchedavādā sato sattassa ucchedaṃ vināsaṃ vibhavaṃ paññapenti sattahi vatthūhi. te ca bhonto samaṇabrāhmaṇā kimāgamma kimārabbha ucchedavādā sato sattassa ucchedaṃ vināsaṃ vibhavaṃ paññapenti sattahi vatthūhi?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바라문들은 단멸(斷滅)을 말하는데, 7가지 기반에 의해 존재하는 중생들의 단멸과 파괴에 의한 존재에서 벗어남을 선언한다. 그러면 그 사문-바라문들은 어떤 이유로, 무엇에 근거하여 단멸을 말하고, 7가지 기반에 의해 존재하는 중생들의 단멸과 파괴에 의한 존재에서 벗어남을 선언하는가?”


“idha, bhikkhave, ekacco samaṇo vā brāhmaṇo vā evaṃvādī hoti evaṃdiṭṭhi — ‘yato kho, bho, ayaṃ attā rūpī cātumahābhūtiko mātāpettikasambhavo kāyassa bhedā ucchijjati vinassati, na hoti paraṃ maraṇā, ettāvatā kho, bho, ayaṃ attā sammā samucchinno hotī’ti. ittheke sato sattassa ucchedaṃ vināsaṃ vibhavaṃ paññapenti.


여기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이런 주장 이런 견해를 가졌다. ― ‘존자여, 색(色)을 가졌고, 사대(四大)로 구성되었고, 부모에 속한 것에서 생겨난 이 아(我)는 몸이 무너진 뒤 단멸하고 파괴됩니다. 죽음 이후는 없습니다. 이만큼, 존자여, 이 아(我)는 바르게 없어집니다.’라고. 이렇게 어떤 사람은 존재하는 중생들의 단멸과 파괴에 의한 존재에서 벗어남을 선언한다.


~


“imehi kho te, bhikkhave, samaṇabrāhmaṇā ucchedavādā sato sattassa ucchedaṃ vināsaṃ vibhavaṃ paññapenti sattahi vatthūhi. ye hi keci, bhikkhave,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ucchedavādā sato sattassa ucchedaṃ vināsaṃ vibhavaṃ paññapenti, sabbe te imeheva sattahi vatthūhi etesaṃ vā aññatarena; natthi ito bahiddhā.


참으로 비구들이여, 단멸을 말하는 그 사문-바라문들은 이런 7가지 기반에 의해 존재하는 중생들의 단멸과 파괴에 의한 존재에서 벗어남을 선언한다. 참으로 비구들이여, 누구든지 단멸을 말하고, 존재하는 중생들의 단멸과 파괴에 의한 존재에서 벗어남을 선언하는 사문-바라문들은 모두 이 7가지 기반에 의한 것이다. 이들 가운데 어떤 것에 의해서도 여기의 밖은 없다.


“tayidaṃ, bhikkhave, tathāgato pajānāti — ‘ime diṭṭhiṭṭhānā evaṃgahitā evaṃparāmaṭṭhā evaṃgatikā bhavanti evaṃabhisamparāyā’ti. tañca tathāgato pajānāti, tato ca uttaritaraṃ pajānāti, tañca pajānanaṃ na parāmasati, aparāmasato cassa paccattaññeva nibbuti viditā. vedanānaṃ samudayañca atthaṅgamañca assādañca ādīnavañca nissaraṇañca yathābhūtaṃ viditvā anupādāvimutto, bhikkhave, tathāgato.


비구들이여, 여래는 이것을 꿰뚫어 안다. ― ‘이렇게 붙잡고 이렇게 집착된 이 경우의 견해 때문에 이런 이끌림이 있고 이런 다시 태어남이 있다.’라고. 여래는 이것을 꿰뚫어 알고, 이보다 더 높은 것도 꿰뚫어 안다. 그러나 그 앎을 집착하지 않는다. 집착하지 않는 자에게 개별적으로 꺼짐이 알려진다. 비구들이여, 여래는 수(受)의 자라남과 줄어듦과 매력과 위험과 해방을 있는 그대로 안 뒤에 집착 없이 해탈했다.


ime kho te, bhikkhave, dhammā gambhīrā duddasā duranubodhā santā paṇītā atakkāvacarā nipuṇā paṇḍitavedanīyā, ye tathāgato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pavedeti, yehi tathāgatassa yathābhuccaṃ vaṇṇaṃ sammā vadamānā vadeyyuṃ.


참으로 비구들이여, 이것이 여래가 스스로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고 선언한 심오하고, 보기 어렵고, 깨닫기 어렵고, 평화롭고, 숭고하고, takka[애(愛)의 형성 과정]의 영역을 넘어섰고, 독창적이고, 현자에게만 경험될 수 있는 그 법들이다. 바르게 말하는 자는 그 법들에 의해 사실에 따라 여래의 칭송을 말해야 한다.


2) brahmajālasuttaṃ, paritassitavipphanditavāro (DN 1.17-범망경, 동요와 몸부림의 일으킴)


“tatra, bhikkhave, ye te samaṇabrāhmaṇā ucchedavādā sato sattassa ucchedaṃ vināsaṃ vibhavaṃ paññapenti sattahi vatthūhi, tadapi tesaṃ bhavataṃ samaṇabrāhmaṇānaṃ ajānataṃ apassataṃ vedayitaṃ taṇhāgatānaṃ paritassitavipphanditameva.


거기서 비구들이여, 단멸을 말하는 사문-바라문들이 7가지 기반에 의해 존재하는 중생들의 단멸과 파괴에 의한 존재에서 벗어남을 선언하는 것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그 존자들에게 경험된 것이고, 애(愛)에 속한 것들이고, 동요이고, 몸부림일 뿐이다.


3) brahmajālasuttaṃ, phassapaccayāvāro (DN 1.18-범망경, 촉을 조건으로 일으킴)


“tatra, bhikkhave, ye te samaṇabrāhmaṇā ucchedavādā sato sattassa ucchedaṃ vināsaṃ vibhavaṃ paññapenti sattahi vatthūhi, tadapi phassapaccayā.


거기서 비구들이여, 단멸을 말하는 사문-바라문들이 7가지 기반에 의해 존재하는 중생들의 단멸과 파괴에 의한 존재에서 벗어남을 선언하는 것은 촉(觸)의 조건 때문이다.


4) brahmajālasuttaṃ, netaṃ ṭhānaṃ vijjativāro (DN 1.19-그런 경우의 일으킴은 없음)


“tatra, bhikkhave, ye te samaṇabrāhmaṇā ucchedavādā sato sattassa ucchedaṃ vināsaṃ vibhavaṃ paññapenti sattahi vatthūhi, te vata aññatra phassā paṭisaṃvedissantīti netaṃ ṭhānaṃ vijjati.


거기서 비구들이여, 단멸을 말하는 사문-바라문들이 7가지 기반에 의해 존재하는 중생들의 단멸과 파괴에 의한 존재에서 벗어남을 선언하는 것을 촉(觸)과 다른 곳에서 경험할 것이라는 경우는 없다.


5) pañcattayasuttaṃ (MN 102-다섯이면서 셋 경)


“santi, bhikkhave, eke samaṇabrāhmaṇā aparantakappikā aparantānudiṭṭhino aparantaṃ ārabbha anekavihitāni adhivuttipadāni abhivadanti. ‘saññī attā hoti arogo paraṃ maraṇā’ti — ittheke abhivadanti; ‘asaññī attā hoti arogo paraṃ maraṇā’ti — ittheke abhivadanti; ‘nevasaññīnāsaññī attā hoti arogo paraṃ maraṇā’ti — ittheke abhivadanti; sato vā pana sattassa ucchedaṃ vināsaṃ vibhavaṃ paññapenti, diṭṭhadhammanibbānaṃ vā paneke abhivadanti. iti santaṃ vā attānaṃ paññapenti arogaṃ paraṃ maraṇā, sato vā pana sattassa ucchedaṃ vināsaṃ vibhavaṃ paññapenti, diṭṭhadhammanibbānaṃ vā paneke abhivadanti. iti imāni pañca hutvā tīṇi honti, tīṇi hutvā pañca honti — ayamuddeso pañcattayassa.


“비구들이여, 미래에 대한 견해를 가지고 미래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말하는 미래의 겁(劫)에 관한 설(說)을 가진 사문-바라문들이 있다. 


‘ⓐ아(我)는 상(想)이 있고 죽은 뒤에 아픔이 없다.’라고 여기서 어떤 자들은 말한다. ⓑ‘아(我)는 상(想)이 없고 죽은 뒤에 아픔이 없다.’라고 여기서 어떤 자들은 말한다. ⓒ‘아(我)는 상(想)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며 죽은 뒤에 아픔이 없다.’라고 여기서 어떤 자들은 말한다. 또는 어떤 자들은 존재하고 있는 중생의 단멸과 파괴에 의한 존재에서 벗어남을 선언하거나, 지금여기의 열반을 말한다. 


이렇게 ①죽은 뒤에 아픔이 없는 아(我)의 존재를 선언한다, ②존재하고 있는 중생의 단멸과 파괴에 의한 존재에서 벗어남을 선언한다, ③지금여기의 열반을 말한다. 


이렇게 이것들은 다섯이었다가 셋이 되고, 셋이었다가 다섯이 된다. — 이것이 다섯이면서 셋의 대강이다.


~


“tatra, bhikkhave, ye te samaṇabrāhmaṇā sato sattassa ucchedaṃ vināsaṃ vibhavaṃ paññapenti, tatra, bhikkhave, ye te samaṇabrāhmaṇā saññiṃ attānaṃ paññapenti arogaṃ paraṃ maraṇā tesamete paṭikkosanti, yepi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asaññiṃ attānaṃ paññapenti arogaṃ paraṃ maraṇā tesamete paṭikkosanti, yepi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nevasaññīnāsaññiṃ attānaṃ paññapenti arogaṃ paraṃ maraṇā tesamete paṭikkosanti. taṃ kissa hetu? sabbepim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uddhaṃ saraṃ āsattiṃyeva abhivadanti — ‘iti pecca bhavissāma, iti pecca bhavissāmā’ti. seyyathāpi nāma vāṇijassa vāṇijjāya gacchato evaṃ hoti — ‘ito me idaṃ bhavissati, iminā idaṃ lacchāmī’ti, evamevim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vāṇijūpamā maññe paṭibhanti — ‘iti pecca bhavissāma, iti pecca bhavissāmā’ti. tayidaṃ, bhikkhave, tathāgato abhijānāti. ye kho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sato sattassa ucchedaṃ vināsaṃ vibhavaṃ paññapenti te sakkāyabhayā sakkāyaparijegucchā sakkāyaññeva anuparidhāvanti anuparivattanti. seyyathāpi nāma sā gaddulabaddho daḷhe thambhe vā khile vā upanibaddho, tameva thambhaṃ vā khilaṃ vā anuparidhāvati anuparivattati; evamevim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sakkāyabhayā sakkāyaparijegucchā sakkāyaññeva anuparidhāvanti anuparivattanti. ‘tayidaṃ saṅkhataṃ oḷārikaṃ atthi kho pana saṅkhārānaṃ nirodho atthetan’ti — iti viditvā tassa nissaraṇadassāvī tathāgato tadupātivatto.


거기서, 비구들이여, ②존재하고 있는 중생의 단멸과 파괴에 의한 존재에서 벗어남을 선언하는 그 사문-바라문들은 죽은 뒤에 아픔이 없고 상(想)이 있는 아(我)를 선언하는 그들 가운데 어떤 자들을 비난한다. 또한, 죽은 뒤에 아픔이 없고 상(想)이 없는 아(我)를 선언하는 그들 가운데 어떤 자들도 비난한다. 또한, 죽은 뒤에 아픔이 없고 상(想)이 있는 것도 아니고 상(想)이 없는 것도 아닌 아(我)를 선언하는 그들 가운데 어떤 자들도 비난한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이 사문-바라문 존자들은 모두 ‘죽은 뒤에 우리는 이렇게 될 것이다. 죽은 뒤에 우리는 이렇게 될 것이다.’라고 앞으로 나아가는 집착을 선언한다. 예를 들면, 장사를 위해 나아가는 장사꾼은 ‘앞으로 이것은 나의 것이 될 것이다. 이것으로 인해 이것이 얻어질 것이다.’라고 말한다. 생각건대, 이 사문-바라문들은 ‘죽은 뒤에 우리는 이렇게 될 것이다. 죽은 뒤에 우리는 이렇게 될 것이다.’라는 장사꾼의 비유가 분명해진다. 


비구들이여, 여래는 이것을 실답게 안다. ②존재하고 있는 중생의 단멸과 파괴에 의한 존재에서 벗어남을 선언하는 그들은 유신(有身)에 대한 두려움과 유신에 대한 혐오 때문에 유신의 주위를 달리고, 맴돈다. 예를 들면, 줄에 묶인 튼튼한 말뚝이나 기둥에 가죽끈으로 묶인 개는 그 말뚝이나 기둥의 주위를 달리고, 맴돈다. 이처럼 이 사문-바라문 존자들은 유신(有身)에 대한 두려움과 유신에 대한 혐오 때문에 유신의 주위를 달리고, 맴돈다. ‘이것은 유위(有爲)이고 거친 것이다. 그러나 행(行)들의 소멸은 있다. 그것은 있다’라고 이렇게 안 뒤에 그것의 해방(解放)을 보는 자인 여래는 그것을 넘어섰다.


6) alagaddūpamasuttaṃ (MN 22-뱀의 비유 경)


“evaṃ vimuttacittaṃ kho, bhikkhave, bhikkhuṃ saindā devā sabrahmakā sapajāpatikā anvesaṃ nādhigacchanti — ‘idaṃ nissitaṃ tathāgatassa viññāṇan’ti. taṃ kissa hetu? diṭṭhevāhaṃ, bhikkhave, dhamme tathāgataṃ ananuvijjoti vadāmi. evaṃvādiṃ kho maṃ, bhikkhave, evamakkhāyiṃ eke samaṇabrāhmaṇā asatā tucchā musā abhūtena abbhācikkhanti — ‘venayiko samaṇo gotamo, sato sattassa ucchedaṃ vināsaṃ vibhavaṃ paññāpetī’ti. yathā cāhaṃ na, bhikkhave, yathā cāhaṃ na vadāmi, tathā maṃ t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asatā tucchā musā abhūtena abbhācikkhanti — ‘venayiko samaṇo gotamo, sato sattassa ucchedaṃ vināsaṃ vibhavaṃ paññāpetī’ti. pubbe cāhaṃ bhikkhave, etarahi ca dukkhañceva paññāpemi, dukkhassa ca nirodhaṃ. tatra ce, bhikkhave, pare tathāgataṃ akkosanti paribhāsanti rosenti vihesenti, tatra, bhikkhave, tathāgatassa na hoti āghāto na appaccayo na cetaso anabhiraddhi.


비구들이여, 인드라와 함께하고, 범천과 함께하고, 빠자빠띠와 함께하는 신들은 이렇게 해탈한 심(心)을 가진 비구에게서 ‘여래의 식(識)이 의지한 이것’이라고 발견하지 못한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비구들이여, 나는 여래를 ‘지금여기에서 발견되지 않는 자’라고 말한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주장하고 이렇게 설하는 나를 어떤 사문-바라문들은 사실 아니고, 헛되고, 거짓말로, 사실과 다르게 비방한다. ― ‘사문 고따마는 허무주의자다. 존재하고 있는 중생들의 단멸과 파괴에 의한 존재에서 벗어남을 선언한다.’라고. 나는 그렇지 않고,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데, 그 사문-바라문 존자들은 사실 아니고, 헛되고, 거짓말로, 사실과 다르게 비방한다. ― ‘사문 고따마는 허무주의자다. 존재하고 있는 중생들의 단멸과 파괴에 의한 존재에서 벗어남을 선언한다.’라고. 비구들이여, 예전에도 지금도 나는 오직 고(苦)와 고멸(苦滅)을 꿰뚫어 알게 한다. 비구들이여, 거기서 다른 사람들이 여래를 욕하고 중상하고 자극하고 불편하게 한다 해도, 비구들이여, 거기서 여래는 싫어하지 않고, 못마땅해하지 않고, 심(心)에 불만이 없다.


2. vibhavadiṭṭhi 


1) saṅgītisuttaṃ, dukaṃ (DN 33.5-합송경, 두 가지로 구성된 법들) ― bhavadiṭṭhi ca vibhavadiṭṭhi ca. 존재의 견해와 존재에서 벗어남의 견해


2) cūḷasīhanādasuttaṃ (MN 11-사자후의 작은 경) 


“dvemā, bhikkhave, diṭṭhiyo — bhavadiṭṭhi ca vibhavadiṭṭhi ca. ye hi keci, bhikkhave,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bhavadiṭṭhiṃ allīnā bhavadiṭṭhiṃ upagatā bhavadiṭṭhiṃ ajjhositā, vibhavadiṭṭhiyā te paṭiviruddhā. ye hi keci, bhikkhave,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vibhavadiṭṭhiṃ allīnā vibhavadiṭṭhiṃ upagatā vibhavadiṭṭhiṃ ajjhositā, bhavadiṭṭhiyā te paṭiviruddhā. ye hi keci, bhikkhave,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imāsaṃ dvinnaṃ diṭṭhīnaṃ samudayañca atthaṅgamañca assādañca ādīnavañca nissaraṇañca yathābhūtaṃ nappajānanti, ‘te sarāgā te sadosā te samohā te sataṇhā te saupādānā te aviddasuno te anuruddhappaṭiviruddhā te papañcārāmā papañcaratino; te na parimuccanti jātiyā jarāya maraṇena sokehi paridevehi dukkhehi domanassehi upāyāsehi; na parimuccanti dukkhasmā’ti vadāmi. ye ca kho keci, bhikkhave,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imāsaṃ dvinnaṃ diṭṭhīnaṃ samudayañca atthaṅgamañca assādañca ādīnavañca nissaraṇañca yathābhūtaṃ pajānanti, ‘te vītarāgā te vītadosā te vītamohā te vītataṇhā te anupādānā te viddasuno te ananuruddhāppaṭiviruddhā te nippapañcārāmā nippapañcaratino; te parimuccanti jātiyā jarāya maraṇena sokehi paridevehi dukkhehi domanassehi upāyāsehi; parimuccanti dukkhasmā’ti vadāmi.


비구들이여, 존재의 견해와 존재에서 벗어남의 견해 — 이런 두 가지 견해가 있다. 


비구들이여, 존재의 견해를 고수하고, 존재의 견해로 가까이 가고, 존재의 견해에 묶인 사문이나 바라문은 누구든지 존재에서 벗어남의 견해에 대해 저항하는 자이다. 비구들이여, 존재에서 벗어남의 견해를 고수하고, 존재에서 벗어남의 견해로 가까이 가고, 존재에서 벗어남의 견해에 묶인 사문이나 바라문은 누구든지 존재의 견해에 대해 저항하는 자이다. 


비구들이여, 이 두 가지 견해의 자라남-줄어듦-매력-위험-해방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는 사문이나 바라문은 누구든지 ‘탐(貪)이 있는 자이고, 진(嗔)이 있는 자이고, 치(癡)가 있는 자이고, 애(愛)가 있는 자이고, 취(取)가 있는 자이고, 현명하지 못한 자이고, 순응하고 저항하는 자이고, 희론을 기뻐하고 희론을 좋아하는 자이다. 그들은 생(生)과 노(老)와 사(死) 그리고 수비고우뇌(愁悲苦憂惱)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다. 고(苦)의 영역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다.’라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이 두 가지 견해의 자라남-줄어듦-매력-위험-해방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아는 사문이나 바라문은 누구든지 ‘탐이 없는 자이고, 진이 없는 자이고, 치가 없는 자이고, 애가 없는 자이고, 취가 없는 자이고, 현명한 자이고, 순응하지 않고 저항하지 않는 자이고, 희론 않음을 기뻐하고 희론 않음을 좋아하는 자이다. 그들은 생과 노와 사 그리고 수비고우뇌로부터 완전히 벗어난다. 고의 영역에서 완전히 벗어난다.’라고 나는 말한다.


3) piṇḍolyasuttaṃ (SN 22.80-탁발 경)


“dvemā, bhikkhave, diṭṭhiyo — bhavadiṭṭhi ca vibhavadiṭṭhi ca. tatra kho, bhikkhave, sutavā ariyasāvako iti paṭisañcikkhati — ‘atthi nu kho taṃ kiñci lokasmiṃ yamahaṃ upādiyamāno na vajjavā assan’ti? so evaṃ pajānāti — ‘natthi nu kho taṃ kiñci lokasmiṃ yamahaṃ upādiyamāno na vajjavā assaṃ. ahañhi rūpaññeva upādiyamāno upādiyeyyaṃ vedanaññeva... saññaññeva... saṅkhāreyeva viññāṇaññeva upādiyamāno upādiyeyyaṃ. tassa me assa upādānapaccayā bhavo; bhavapaccayā jāti; jātipaccayā jarāmaraṇaṃ sokaparidevadukkhadomanassupāyāsā sambhaveyyuṃ. evametassa kevalassa dukkhakkhandhassa samudayo assā’”ti.


비구들이여, 두 가지 견해가 있으니 유(有)의 견해와 무유(無有)의 견해이다. 거기에서, 비구들이여,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내가 집착하여도 결점을 가지지 않는 것이 세상에 어떤 것이라도 있을까?’라고 숙고한다. 그는 이렇게 분명히 안다. ― ‘내가 집착하여도 결점을 가지지 않는 것은 세상에 어떤 것도 없다. 나는 집착하는 자로서 색(色)을 집착할 것이고, 수(受)를 … 상(想)을 … 행(行)들을 … 집착하는 자로서 식(識)을 집착할 것이다. 그런 나에게 취(取)의 조건으로부터 유(有)가, 유(有)의 조건으로 생(生)이, 생(生)의 조건으로부터 노사(老死) 수비고우뇌(愁悲苦憂惱)가 함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이 모든 괴로움 무더기의 자라남이 있을 것이다.’라고.


4) dhammavaggo (AN 2.88-98 – 법(法) 품)


dveme, bhikkhave, dhammā. katame dve? bhavadiṭṭhi ca vibhavadiṭṭhi ca. ime kho, bhikkhave, dve dhammā”ti.

 

비구들이여, 이런 두 가지 법이 있다. 어떤 두 가지인가? 존재의 견해와 존재에서 벗어남의 견해이다. 비구들이여, 이런 두 가지 법이 있다.


3. vibhavesin ― brahmanimantanikasuttaṃ (MN 49-범천(梵天)의 초대 경) 뒷부분은 답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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