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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의 확장

vibhava의 용례(2)

0 19 06.09 20:19

3. vibhavesin ― brahmanimantanikasuttaṃ (MN 49-범천(梵天)의 초대 경)


“‘viññāṇaṃ anidassanaṃ anantaṃ sabbato pabhaṃ’, taṃ pathaviyā pathavattena ananubhūtaṃ, āpassa āpattena ananubhūtaṃ, tejassa tejattena ananubhūtaṃ, vāyassa vāyattena ananubhūtaṃ, bhūtānaṃ bhūtattena ananubhūtaṃ, devānaṃ devattena ananubhūtaṃ, pajāpatissa pajāpatittena ananubhūtaṃ, brahmānaṃ brahmattena ananubhūtaṃ, ābhassarānaṃ ābhassarattena ananubhūtaṃ, subhakiṇhānaṃ subhakiṇhattena ananubhūtaṃ, vehapphalānaṃ vehapphalatte ananubhūtaṃ, abhibhussa abhibhuttena ananubhūtaṃ, sabbassa sabbattena ananubhūtaṃ”.


‘속성이 없고, 한계가 없고, 모든 관점에서 빛나는 식(識)’ 그것은 땅이 가진 땅의 속성에 의해 경험할 수 없는 것이고, 물이 가진 물의 속성에 의해 경험할 수 없는 것이고, 불이 가진 불의 속성에 의해 경험할 수 없는 것이고, 바람이 가진 바람의 속성에 의해 경험할 수 없는 것이고, 활성 존재들이 가진 활성 존재의 속성에 의해 경험할 수 없는 것이고, 신이 가진 신의 속성에 의해 경험할 수 없는 것이고, 빠자빠띠가 가진 빠자빠띠의 속성에 의해 경험할 수 없는 것이고, 범천들이 가진 범천의 속성에 의해 경험할 수 없는 것이고, 광음천들이 가진 광음천의 속성에 의해 경험할 수 없는 것이고, 광과천들이 가진 광과천의 속성에 의해 경험할 수 없는 것이고, 승자천이 가진 승자천의 속성에 의해 경험할 수 없는 것이고, 일체가 가진 일체의 속성에 의해 경험할 수 없는 것이다.’


“handa carahi te, mārisa, passa antaradhāyāmī”ti. ‘handa carahi me tvaṃ, brahme, antaradhāyassu, sace visahasī’ti. atha kho, bhikkhave, bako brahmā ‘antaradhāyissāmi samaṇassa gotamassa, antaradhāyissāmi samaṇassa gotamassā’ti nevassu me sakkoti antaradhāyituṃ.


‘그러면 이제 보십시오, 선생님, 내가 그대에게서 사라지겠습니다.’ ‘범천이여, 가능하다면 이제 그대는 나에게서 사라져 보라.’ 그러나 비구들이여, 바까 범천은 ‘나는 사문 고따마에게서 사라지리라, 나는 사문 고따마에게서 사라지리라.’라고 하였지만 나에게서 사라지지 못했다.


“evaṃ vutte, ahaṃ, bhikkhave, bakaṃ brahmānaṃ etadavocaṃ — ‘handa carahi te brahme antaradhāyāmī’ti. ‘handa carahi me tvaṃ, mārisa, antaradhāyassu sace visahasī’ti. atha kho ahaṃ, bhikkhave, tathārūpaṃ iddhābhisaṅkhāraṃ abhisaṅkhāsiṃ — ‘ettāvatā brahmā ca brahmaparisā ca brahmapārisajjā ca saddañca me sossanti, na ca maṃ dakkhantī’ti. antarahito imaṃ gāthaṃ abhāsiṃ —


이렇게 말했을 때, 비구들이여, 나는 바까 범천에게 ‘그러면 이제 내가 그대에게서 사라지리라.’라고 말했다. ‘선생님, 가능하다면 이제 그대가 나에게서 사라져 보십시오.’ 그래서 나는, 비구들이여, ‘범천과 범천의 무리와 범천의 무리에 속한 자들이 나의 소리는 들을 것이지만 나를 보지는 못한다.’라는 신통행을 펼쳤다. 사라진 상태에서 나는 이런 게송을 말했다. ―


“bhavevāhaṃ bhayaṃ disvā, bhavañca vibhavesinaṃ.
bhavaṃ nābhivadiṃ kiñci, nandiñca na upādiyin”ti.


‘나는 존재에서 두려움을 본 뒤에 존재와 존재에서 벗어남을 추구하는

어떤 존재도 드러내지 않았고, 소망을 붙잡지도 않았다.’


“atha kho, bhikkhave, brahmā ca brahmaparisā ca brahmapārisajjā ca acchariyabbhutacittajātā ahesuṃ — ‘acchariyaṃ vata bho, abbhutaṃ vata bho! samaṇassa gotamassa mahiddhikatā mahānubhāvatā, na ca vata no ito pubbe diṭṭho vā, suto vā, añño samaṇo vā brāhmaṇo vā evaṃ mahiddhiko evaṃ mahānubhāvo yathāyaṃ samaṇo gotamo sakyaputto sakyakulā pabbajito. bhavarāmāya vata, bho, pajāya bhavaratāya bhavasammuditāya samūlaṃ bhavaṃ udabbahī’ti.


그러자 비구들이여, 범천과 범천의 무리와 범천의 무리에 속한 자들에게 놀랍고 신기한 심(心)이 생겼다. ― ‘존자들이여, 참으로 놀랍습니다. 존자들이여, 참으로 신기합니다. 사문 고따마는 큰 신통이 있고, 큰 위엄이 있습니다. 사꺄 가문에서 출가한 사꺄의 아들인 이분 사문 고따마처럼 이렇게 큰 신통이 있고 이렇게 큰 위엄이 있는 다른 사문이나 바라문을 이전에는 보지 못하고 듣지 못했습니다. 참으로, 존자들이여, 존재를 즐기고, 존재를 좋아하고, 존재를 기뻐하는 생명에게서 존재를 뿌리째 뽑아버렸습니다.’


4. vibhavāya 


1) dhātuvibhaṅgasuttaṃ (MN 140-요소의 분석 경)


“so evaṃ pajānāti — ‘imañce ahaṃ upekkhaṃ evaṃ parisuddhaṃ evaṃ pariyodātaṃ ākāsānañcāyatanaṃ upasaṃhareyyaṃ, tadanudhammañca cittaṃ bhāveyyaṃ; saṅkhatametaṃ. imañce ahaṃ upekkhaṃ evaṃ parisuddhaṃ evaṃ pariyodātaṃ viññāṇañcāyatanaṃ upasaṃhareyyaṃ, tadanudhammañca cittaṃ bhāveyyaṃ; saṅkhatametaṃ. imañce ahaṃ upekkhaṃ evaṃ parisuddhaṃ evaṃ pariyodātaṃ ākiñcaññāyatanaṃ upasaṃhareyyaṃ, tadanudhammañca cittaṃ bhāveyyaṃ; saṅkhatametaṃ. imañce ahaṃ upekkhaṃ evaṃ parisuddhaṃ evaṃ pariyodātaṃ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ṃ upasaṃhareyyaṃ, tadanudhammañca cittaṃ bhāveyyaṃ; saṅkhatametan’”ti.


그는 이렇게 분명히 안다. — ‘만약 내가 이렇게 깨끗하고 이렇게 청정한 이 평정을 공무변처(空無邊處)에 집중하고 그것으로 이어지는 법(法)을 위해 심(心)을 닦는다면, 이것은 유위(有爲)이다. 만약 내가 이렇게 깨끗하고 이렇게 청정한 이 평정을 식무변처(識無邊處)에 집중하고 그것으로 이어지는 법(法)을 위해 심(心)을 닦는다면, 이것은 유위(有爲)이다. 만약 내가 이렇게 깨끗하고 이렇게 청정한 이 평정을 무소유처(無所有處)에 집중하고 그것으로 이어지는 법(法)을 위해 심(心)을 닦는다면, 이것은 유위(有爲)이다. 만약 내가 이렇게 깨끗하고 이렇게 청정한 이 평정을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에 집중하고 그것으로 이어지는 법(法)을 위해 심(心)을 닦는다면, 이것은 유위(有爲)이다.’라고.


so neva taṃ abhisaṅkharoti, na abhisañcetayati bhavāya vā vibhavāya vā. so anabhisaṅkharonto anabhisañcetayanto bhavāya vā vibhavāya vā na kiñci loke upādiyati, anupādiyaṃ na paritassati, aparitassaṃ paccattaṃyeva parinibbāyati. ‘khīṇā jāti, vusitaṃ brahmacariyaṃ, kataṃ karaṇīyaṃ, nāparaṃ itthattāyā’ti pajānāti.


그는 존재거나 존재에서 벗어남을 위하여 그것을 형성하지도 않고 의도하지도 않는다. 존재거나 존재에서 벗어남을 위하여 그것을 형성하지도 않고 의도하지도 않는 그는 세상에서 어떤 것도 집착하지 않는다. 집착하지 않으면 동요하지 않는다. 동요하지 않으면 개별적으로 완전히 꺼진다. ‘태어남은 다했다. 범행은 완성되었다. 해야 할 일을 했다. 다음에는 현재 상태[유(有)]가 되지 않는다.'라고 분명히 안다. 


2) maggavaggo (KN 2.20-길 품) 282.


yogā ve jāyatī bhūri, ayogā bhūrisaṅkhayo.
etaṃ dvedhāpathaṃ ñatvā, bhavāya vibhavāya ca.
tathāttānaṃ niveseyya, yathā bhūri pavaḍḍhati.


참으로 수행에서 지혜가 생기고, 수행하지 않을 때 지혜가 소진된다.

이렇게 존재와 존재에서 벗어남을 위한 두 엇갈린 길을 안 뒤에 

지혜가 늘어나도록 자신을 만들어 가야 한다.


3) purābhedasuttaṃ (KN 5.48-숫따니빠따, 여덟 게송 품-죽기 전에 경) 862.


yassa nissayanā natthi, ñatvā dhammaṃ anissito.
bhavāya vibhavāya vā, taṇhā yassa na vijjati.


의지함이 없어 의지하는 않는 자는 법을 알았기 때문에

존재와 존재에서 벗어남의 애(愛)가 그에게 없다.


5. vibhavissati/vibhavā ― udānasuttaṃ (SN 22.55-감흥 경)


“so aniccaṃ rūpaṃ ‘aniccaṃ rūpan’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aniccaṃ vedanaṃ... aniccaṃ saññaṃ... anicce saṅkhāre... aniccaṃ viññāṇaṃ ‘aniccaṃ viññāṇan’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dukkhaṃ rūpaṃ ... pe ... dukkhaṃ viññāṇaṃ... anattaṃ rūpaṃ ... pe ... anattaṃ viññāṇaṃ... saṅkhataṃ rūpaṃ ... pe ... saṅkhataṃ viññāṇaṃ ‘saṅkhataṃ viññāṇan’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rūpaṃ vibhavissatī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vedanā... saññā... saṅkhārā... viññāṇaṃ vibhavissatī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그는 무상(無常)한 색(色)을 ‘색(色)은 무상(無常)하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무상(無常)한 수(受)를 … 무상(無常)한 상(想)을 … 무상(無常)한 행(行)들을 … 무상(無常)한 식(識)을 ‘식(識)은 무상(無常)하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고(苦)인 색(色)을 … 고(苦)인 식(識)을 … 무아(無我)인 색(色)을 … 무아(無我)인 식(識)을 … 유위(有爲)인 색(色)을 … 유위(有爲)인 식(識)을 ‘식(識)은 유위(有爲)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색(色)은 존재에서 벗어날 것이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수(受)는 … 상(想)은 … 행(行)들은 … 식(識)은 존재에서 벗어날 것이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so rūpassa vibhavā, vedanāya vibhavā, saññā vibhavā, saṅkhārānaṃ vibhavā, viññāṇassa vibhavā, evaṃ kho, bhikkhu, ‘no cassaṃ, no ca me siyā, nābhavissa, na me bhavissatī’ti — evaṃ adhimuccamāno bhikkhu chindeyya orambhāgiyāni saṃyojanānī”ti. “evaṃ adhimuccamāno, bhante, bhikkhu chindeyya orambhāgiyāni saṃyojanānī”ti.


비구여, 그는 색(色)의 존재에서 벗어남, 수(受)의 존재에서 벗어남, 상(想)의 존재에서 벗어남, 행(行)들의 존재에서 벗어남, 식(識)의 존재에서 벗어남으로부터 ‘‘내가 없다면 나의 것도 없을 것이고, 그것이 없다면 나의 것도 없을 것이다.’라고 이렇게 기우는 비구는 오하분결(五下分結)을 끊을 것이다.’라고 이렇게 된다.” “이렇게 기우는 비구는, 대덕이시여, 오하분결을 끊을 것입니다.”


6. vibhavatasinā ― tasināsuttaṃ (SN 45.171-갈증 경)


kāmatasinā, bhavatasinā, vibhavatasinā 소유의 갈증, 존재의 갈증, 존재에서 벗어남의 갈증


※ esanāsuttaṃ (SN 45.161-추구 경) ― kāmesanā, bhavesanā, brahmacariyesanā 소유의 추구, 존재의 추구, 범행의 추구


7. lokassa bhavañca vibhavañca ñatvā ― pabbajjāsuttaṃ (AN 10.59-출가 경)


“tasmātiha, bhikkhave, evaṃ sikkhitabbaṃ — ‘yathāpabbajjāparicitañca no cittaṃ bhavissati, na cuppannā pāpakā akusalā dhammā cittaṃ pariyādāya ṭhassanti; aniccasaññāparicitañca no cittaṃ bhavissati, anattasaññāparicitañca no cittaṃ bhavissati, asubhasaññāparicitañca no cittaṃ bhavissati, ādīnavasaññāparicitañca no cittaṃ bhavissati, lokassa samañca visamañca ñatvā taṃsaññāparicitañca no cittaṃ bhavissati, lokassa bhavañcavibhavañca ñatvā taṃsaññāparicitañca no cittaṃ bhavissati, lokassa samudayañca atthaṅgamañca ñatvā taṃsaññāparicitañca no cittaṃ bhavissati, pahānasaññāparicitañca no cittaṃ bhavissati, virāgasaññāparicitañca no cittaṃ bhavissati, nirodhasaññāparicitañca no cittaṃ bhavissatī’ti — evañhi vo, bhikkhave, sikkhitabbaṃ.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이렇게 공부해야 한다. ― ‘우리에게 심(心)은 출가할 때처럼 실천한 심(心)이 될 것이다. 그러면 일어난 악한 불선법(不善法)들이 심(心)을 소진하여 머물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에게 심(心)은 무상(無常)의 상(想)을 실천한 심(心)이 될 것이고, 우리에게 심(心)은 무아(無我)의 상(想)을 실천한 심(心)이 될 것이고, 우리에게 심(心)은 부정(不淨)의 상(想)을 실천한 심(心)이 될 것이고, 우리에게 심(心)은 위험의 상(想)을 실천한 심(心)이 될 것이고, 우리에게 심(心)은 세상의 바름과 그름을 안 뒤에 그 상(想)을 실천한 심(心)이 될 것이고, 우리에게 심(心)은 세상의 존재와 존재에서 벗어남을 안 뒤에 그 상(想)을 실천한 심(心)이 될 것이고, 우리에게 심(心)은 세상의 자라남과 줄어듦을 안 뒤에 그 상(想)을 실천한 심(心)이 될 것이고, 우리에게 심(心)은 버림의 상(想)을 실천한 심(心)이 될 것이고, 우리에게 심(心)은 이탐(離貪)의 상(想)을 실천한 심(心)이 될 것이고, 우리에게 심(心)은 소멸(消滅)의 상(想)을 실천한 심(心)이 될 것이다.’라고.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이렇게 공부해야 한다. 


“yato kho, bhikkhave, bhikkhuno yathāpabbajjāparicitañca cittaṃ hoti na cuppannā pāpakā akusalā dhammā cittaṃ pariyādāya tiṭṭhanti, aniccasaññāparicitañca cittaṃ hoti, anattasaññāparicitañca cittaṃ hoti, asubhasaññāparicitañca cittaṃ hoti, ādīnavasaññāparicitañca cittaṃ hoti, lokassa samañca visamañca ñatvā taṃsaññāparicitañca cittaṃ hoti, lokassa bhavañca vibhavañca ñatvā taṃsaññāparicitañca cittaṃ hoti, lokassa samudayañca atthaṅgamañca ñatvā taṃsaññāparicitañca cittaṃ hoti, pahānasaññāparicitañca cittaṃ hoti, virāgasaññāparicitañca cittaṃ hoti, nirodhasaññāparicitañca cittaṃ hoti, tassa dvinnaṃ phalānaṃ aññataraṃ phalaṃ pāṭikaṅkhaṃ — diṭṭheva dhamme aññā, sati vā upādisese anāgāmitā”ti. 


비구들이여, 비구에게 심(心)이 출가할 때처럼 실천한 심(心)이 될 때, 일어난 악한 불선법(不善法)들이 심(心)을 소진하여 머물지 않는다. 그러면 무상(無常)의 상(想)을 실천한 심(心)이 되고, 무아(無我)의 상(想)을 실천한 심(心)이 되고, 부정(不淨)의 상(想)을 실천한 심(心)이 되고, 위험의 상(想)을 실천한 심(心)이 되고, 세상의 바름과 그름을 안 뒤에 그 상(想)을 실천한 심(心)이 되고, 세상의 존재와 존재에서 벗어남을 안 뒤에 그 상(想)을 실천한 심(心)이 되고, 세상의 일어남과 사라짐을 안 뒤에 그 상(想)을 실천한 심(心)이 되고, 버림의 상(想)을 실천한 심(心)이 되고, 이탐(離貪)의 상(想)을 실천한 심(心)이 되고, 소멸(消滅)의 상(想)을 실천한 심(心)이 된다. 그에게 지금여기에서 무위의 앎을 성취하거나, 집착이 있을 때 불환자(不還者)의 상태를 성취하는 두 가지 결과 중의 하나가 예상된다. 


8. sabhiyasuttaṃ (KN 5.32-숫따니빠따, 대품-사비야 경) 518-522.


“kiṃ pattinamāhu bhikkhunaṃ, (iti sabhiyo)
sorataṃ kena kathañca dantamāhu.
buddhoti kathaṃ pavuccati,
puṭṭho me bhagavā byākarohi”.


(사비요) 무엇을 얻으면 비구라고 부릅니까?

무엇 때문에, 어떻게 침착한 자, 길든 자라고 불립니까?

어떻게 부처라고 불립니까?

질문받은 세존께서 저에게 설명해 주십시오.


“pajjena katena attanā, (sabhiyāti bhagavā)
parinibbānagato vitiṇṇakaṅkho.
vibhavañca bhavañca vippahāya,
vusitavā khīṇapunabbhavo sa bhikkhu.


(‘사비야여’라고 세존이 말함) 스스로 길을 걸어서

완전히 꺼짐을 얻고, 의심을 건넌 사람

존재와 존재에서 벗어남을 완전히 버리고

다시 존재가 됨이 다한 완성된 사람. 그가 비구이다.


“sabbattha upekkhako satimā, na so hiṃsati kañci sabbaloke.
tiṇṇo samaṇo anāvilo, ussadā yassa na santi sorato so.


어디에서나 평정을 유지하고 사띠를 가진 사람, 그는 온 세상에서 누구도 해치지 않는다. 건너서 평온한 사문, 무성함이 없는 그가 침착한 자이다.


“yassindriyāni bhāvitāni, ajjhattaṃ bahiddhā ca sabbaloke.
nibbijjha imaṃ parañca lokaṃ, kālaṃ kaṅkhati bhāvito sa danto.


온 세상에서 안과 밖으로 기능들을 닦은 사람

닦아서 이 세상과 저세상을 관통한 뒤에 (죽음의) 때를 기다리는 사람. 그가 길든 자이다.


“kappāni viceyya kevalāni, saṃsāraṃ dubhayaṃ cutūpapātaṃ.
vigatarajamanaṅgaṇaṃ visuddhaṃ, pattaṃ jātikhayaṃ tamāhu buddhan”ti.


완전하게 나누어진 것들(*)을 판별했기 때문에 티끌이 없고 오염이 없는 청정으로 

죽음과 다시 태어남의 양면으로 구성된 윤회에서 태어남의 부서짐을 성취한 사람. 

사람들은 그를 부처라고 말한다. 


(*)중생들의 삶의 영역인 ①세상과 벗어나서 실현되는 ②열반은 완전하게 나눠진 것들이라고 해석하였음


9. kalahavivādasuttaṃ (KN 5.49-숫따니빠따, 여덟 게송 품-다툼과 분쟁의 경) 


“kutopahūtā kalahā vivādā, paridevasokā sahamaccharā ca.
mānātimānā sahapesuṇā ca, kutopahūtā te tadiṅgha brūhi”.


다툼과 분쟁은 어디에서 늘어나는 것인지, 인색과 함께하는 슬픔과 비탄

험담과 함께하는 자기화와 오만, 그것들은 어디서 늘어나는지 말해주십시오.


“piyappahūtā kalahā vivādā, paridevasokā sahamaccharā ca.
mānātimānā sahapesuṇā ca, maccherayuttā kalahā vivādā.
vivādajātesu ca pesuṇāni”.


다툼과 분쟁, 인색과 함께하는 슬픔과 비탄, 험담과 함께하는 자기화와 오만은 사랑하는 것 때문에 늘어난다. 다툼과 분쟁은 인색에 묶여있고, 분쟁이 생길 때 험담이 있다.


“piyā su lokasmiṃ kutonidānā, ye cāpi lobhā vicaranti loke.
āsā ca niṭṭhā ca kutonidānā, ye samparāyāya narassa honti”.


세상에서 망(望)들이 접근하는 사랑하는 것들은 무엇이 인연입니까?

다음 생의 사람을 있게 하는 갈망과 완성은 무엇이 인연입니까?


“chandānidānāni piyāni loke, ye cāpi lobhā vicaranti loke.
āsā ca niṭṭhā ca itonidānā, ye samparāyāya narassa honti”.


세상에서 망(望)들이 접근하는 사랑하는 것들은 관심이 인연이다.

다음 생의 사람을 있게 하는 갈망과 완성은 이것이 인연이다.


“chando nu lokasmiṃ kutonidāno, vinicchayā cāpi kutopahūtā.
kodho mosavajjañca kathaṃkathā ca, ye vāpi dhammā samaṇena vuttā”.


세상에서 관심은 무엇이 인연이고, 차별은 무엇에서 늘어납니까?

화와 거짓과 의혹에 대해 어떤 법들이 사문에 의해 말해졌습니까?


“sātaṃ asātanti yamāhu loke, tamūpanissāya pahoti chando.
rūpesu disvā vibhavaṃ bhavañca, vinicchayaṃ kubbati jantu loke.


세상에서 편안함과 불편함이라고 말하는 것, 관심은 그것 가까이에서 생겨난다.

색(色)들에서 존재와 존재에서 벗어남을 본 뒤에 세상에서 사람은 차별을 만든다.


“kodho mosavajjañca kathaṃkathā ca, etepi dhammā dvayameva sante.
kathaṃkathī ñāṇapathāya sikkhe, ñatvā pavuttā samaṇena dhammā”.


화와 거짓과 의혹은 이런 두 가지 법이 있을 때 생겨난다.

의혹이 있는 자는 앎의 길을 공부해야 한다. 사문의 법들은 알고 나서 말한 것이다.


“sātaṃ asātañca kutonidānā, kismiṃ asante na bhavanti hete.
vibhavaṃ bhavañcāpi yametamatthaṃ, etaṃ me pabrūhi yatonidānaṃ”.


편안함과 불편함은 무엇이 인연이고, 무엇이 없을 때 이들이 없습니까?

존재와 존재에서 벗어남의 의미, 이것에 대해 무엇이 인연인지 저에게 말해주십시오. 


“phassanidānaṃ sātaṃ asātaṃ, phasse asante na bhavanti hete.
vibhavaṃ bhavañcāpi yametamatthaṃ, etaṃ te pabrūmi itonidānaṃ”.


편안함과 불편함은 촉(觸)이 인연이다. 촉이 없을 때 이들이 없다.

존재와 존재에서 벗어남의 의미, 이것에 대해 이것이 인연이라고 그대에게 나는 말한다. 


“phasso nu lokasmi kutonidāno, pariggahā cāpi kutopahūtā.
kismiṃ asante na mamattamatthi, kismiṃ vibhūte na phusanti phassā”.


세상에서 촉은 무엇이 인연입니까? 그리고 잡음들은 어디서 늘어납니까?

무엇이 없을 때 아집(我執)이 없습니까? 무엇을 소멸시킬 때 촉들이 닿지 않습니까?


“nāmañca rūpañca paṭicca phasso, icchānidānāni pariggahāni.
icchāyasantyā na mamattamatthi, rūpe vibhūte na phusanti phassā”.


명(名)과 색(色)을 연(緣)하여 촉(觸)이 있다. 원함이 잡음의 인연이다.

원함이 없을 때 아집이 없다. 색(色)을 소멸시킬 때 촉들이 닿지 않는다.


“kathaṃsametassa vibhoti rūpaṃ, sukhaṃ dukhañcāpi kathaṃ vibhoti.
etaṃ me pabrūhi yathā vibhoti, taṃ jāniyāmāti me mano ahu”.


무엇을 실현하는 자에게 색(色)이 없게 됩니까? 고(苦)와 락(樂)도 어떻게 없게 됩니까?

없게 되는 방법을 저에게 말해주십시오. 우리가 그것을 알아야 한다는 마음이 저에게 있습니다. 


“na saññasaññī na visaññasaññī, nopi asaññī na vibhūtasaññī.
evaṃsametassa vibhoti rūpaṃ, saññānidānā hi papañcasaṅkhā”.


상(想)에 대한 상(想)도 가지지 않고, 상(想)에서 벗어남에 대한 상(想)도 가지지 않고, 비상(非想)을 가진 자도 아니고, 파괴된 상(想)을 가진 자도 아니다. 이런 것을 실현한 자에게 색(色)이 없게 된다. 참으로 상(想)을 인연으로 희론의 헤아림이 있다.


“yaṃ taṃ apucchimha akittayī no,
aññaṃ taṃ pucchāma tadiṅgha brūhi.
ettāvataggaṃ nu vadanti heke,
yakkhassa suddhiṃ idha paṇḍitāse.
udāhu aññampi vadanti etto.


우리가 질문한 것을 우리에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다른 것을 묻겠습니다. 대답해 주십시오.

이 세상에서 어떤 현자들은 이만큼이 약카의 청정 가운데 으뜸이라고 말합니까? 아니면 이 세상 밖의 다른 것도 말합니까?


“ettāvataggampi vadanti heke, yakkhassa suddhiṃ idha paṇḍitāse.
tesaṃ paneke samayaṃ vadanti, anupādisese kusalā vadānā.


이 세상에서 어떤 현자들은 이만큼이 약카의 청정 가운데 으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들 가운데 어떤 현자들은 삶을 유지케 하는 자량이 없을[무여(無餘)] 때 유익이 있다고 말하는 것으로 (약카의 청정 가운데 으뜸인) 경우를 말한다. 


“ete ca ñatvā upanissitāti, ñatvā munī nissaye so vimaṃsī.
ñatvā vimutto na vivādameti, bhavābhavāya na sameti dhīro”ti.


그것이 의지라고 안 뒤에, 의지들을 알아서 관찰하여 해탈한 그 성자는 알기 때문에 분쟁하지 않는다. 지혜로운 사람은 존재와 존재하지 않음을 비교하지 않는다.


8. 나머지 용례는 모두 kāmataṇhā, bhavataṇhā, vibhavataṇhā로 나타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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