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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의 확장

주제의 확장 ― 「불교의 분기점 ― atakkāvacaro에서 takka의 해석」

▣ 주제의 확장 ― 「불교의 분기점 ― atakkāvacaro에서 takka의 해석」


[1] takka의 해석이 불교에 미치는 영향


「adhigato kho myāyaṃ dhammo gambhīro duddaso duranubodho santo paṇīto atakkāvacaro nipuṇo paṇḍitavedanīyo 내가 성취한 이 법은 심오하고, 보기 어렵고, 깨닫기 어렵고, 평화롭고, 숭고하고, takka[애(愛)의 형성 과정]의 영역을 넘어섰고, 독창적이고, 현자에게만 경험될 수 있다.」


이 문장은 바야흐로 깨달음을 성취한 부처님의 깨달음의 소회로 대표적으로 나타납니다(DN 14-대전기경 – 위빳시 부처님의 경우)/(MN 26-덫 경)/(MN 85-보디 왕자 경)/(SN 6.1).


이외에 「dhammo gambhīro duddaso duranubodho santo paṇīto atakkāvacaro nipuṇo paṇḍitavedanīyo 심오하고, 보기 어렵고, 깨닫기 어렵고, 평화롭고, 숭고하고, takka[애(愛)의 형성 과정]의 영역을 넘어섰고, 독창적이고, 현자에게만 경험될 수 있는 법」의 형태로


부처님을 바르게 칭송하여 말하는 법(DN 1-범망경)


십사무기(十事無記)의 치우친 견해를 가까이하는 다른 스승을 따르는 자는 알기 어려운 법(MN 72-왓차 불 경),


망(望)-진(嗔)-치(癡)가 없어야 설할 수 있는 법(MN 95-짱끼 경),


지혜로운 자가 설하는 법(AN 4.192-경우 경)


으로 나타납니다.


이때, atakkāvacaro의 해석은 이 구문의 중심이어서 이 용어의 해석에 따라 불교는 전혀 다른 방향성을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takka의 해석은 불교의 분기점입니다.


1. 전통적인 해석 ― (takka = 사유) → 사유의 영역을 넘어선 것/사유의 영역을 초월한 것 : 구체적인 것을 지시하지 않음 → 의미가 불명확/불확실 → 부처님 깨달음의 재현 불가 → 다양한 해석으로 분화


• 초기불전연구원 ― 내가 증득한 이 법은 심오하여 알아차리기도 이해하기도 힘들며, 평화롭고 숭고하며, 단순한 사유의 영역을 넘어서 있고 미묘하여 오로지 현자만이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 한국빠알리성전협회 ― 내가 깨달은 이 진리는 심오하고 보기 어렵고, 깨닫기 어렵고, 고요하고, 탁월하고, 사유의 영역을 초월하고, 극히 미묘하기 때문에 슬기로운 자들에게만 알려지는 것이다.


• bhikkhu bodhi ― This Dhamma that I have discovered is deep, hard to see, hard to understand, peaceful and sublime, not within the sphere of reasoning, subtle, to be experienced by the wise.


• thanissaro bhikkhu ― This Dhamma that I have attained is deep, hard to see, hard to realize, peaceful, refined, beyond the scope of conjecture, subtle, to-be-experienced by the observant.


• mrs. rhys davids(P.T.S) ― I have penetrated this Norm, deep, hard to perceive, hard to understand, peaceful and sublime, no mere dialectic, subtle, intelligible only to the wise.


2. 근본경전연구회의 해석 ― (takka = 애(愛)의 형성 과정) → takka[애(愛)의 형성 과정]의 영역을 넘어선 것 : 구체적인 것을 지시 → 명확/확실 → 가르침에 일치하는 법을 배워 알고 실천하는(dhammānudhammappaṭipanno bhikkhū) 불교 → 부처님 깨달음의 재현 가능 


내가 성취한 이 법은 심오하고, 보기 어렵고, 깨닫기 어렵고, 평화롭고, 숭고하고, 딱까[애(愛)의 형성 과정]의 영역을 넘어섰고, 독창적이고, 현자에게만 경험될 수 있다.


; takka가 명확/확실하게 알려지지 않을 때 번뇌와 탐-진-치, 무명과 애 등 심오한 영역에 대해 해석할 수 없음


; takka가 명확/확실하게 알려지지 않아도 nimitta와 cittassa nimitta를 이해할 수 있을까?


; nimitta와 cittassa nimitta를 이해하지 못해도 입출식념의 사띠 16단계를 해석할 수 있을까?


; 입출식념의 사띠 16단계를 해석하지 못해도 번뇌를 부수고 깨달을 수 있을까?


[2] takka가 무엇인지에 대한 서술 ‒ takka라는 개념의 발견


(MN 117-커다란 마흔의 경)은 번뇌 없고 세상을 넘어섰고 길의 요소인 성스러운 바른 사유를 ‘성스러운 심(心), 번뇌 없는 심, 성스러운 길을 갖춘, 성스러운 길을 닦는 자의 딱까, 위딱까, 사유, 마음의 고정, 마음의 전념, 마음의 적용, 말의 형성작용(ariyacittassa anāsavacittassa ariyamaggasamaṅgino ariyamaggaṃ bhāvayato takko vitakko saṅkappo appanā byappanācetaso abhiniropanā vacīsaṅkhāro)’라고 정의하는데, 익숙한 개념인 vitakka(생각 떠오름), saṅkappa(사유)와 함께 takka라는 개념을 독립적으로 제시합니다.


그런데 (SN 6.1-범천의 요청 경)은 부처님이 성취한 법을 atakkāvacaro(딱까의 영역을 넘어섬)이라고 선언합니다. vitakka(생각 떠오름)과는 다른 개념인 takka가 어떤 영역을 가지고 있으며, 그 영역에서 생기는 문제를 해소하고 넘어선 것을 부처님의 성취 즉 깨달음이라고 제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takka는 부처님의 깨달음을 이끄는 불교 즉 삶(사는 이야기)의 중심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이것을 바르게 이해하면 삶의 문제를 해소하고 부처님처럼 깨달음을 향해 나아갈 수 있고, 그렇지 못하면 삶에 대해 바른 시각을 가지지 못해 깨달음으로 접근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takka는 무엇입니까?


● takka의 전통적 해석


• takka: thought; reasoning; logic. (nt.)

• 빠알리-한글 사전(한국빠알리성전협회) : ①사고. 사유. 사택(思擇). 각관(覺觀), 심사(尋伺). ②추론. 추리. 논리. ③조사. ④의심. ⑤철학적 체계


 

 

초기불전연구원

한국빠알리성전협회

bhikkhu bodhi

takka (MN 117)

사색

탐구

thinking

atakkāvacara (SN 6.1)

단순한 사유의 영역을 넘어서 있고

사유의 영역을 초월하고

not within the sphere of reasoning


● 근본경전연구회의 해석 − 「애(愛)의 형성 과정」 


연기(緣起)에 의하면, 애(愛)는 수(受)를 조건으로 생겨나는데, 소망(nandi)과 탐(貪-rāga)이 함께한 것이라고 정의됩니다. 그래서 수와 애 사이에 소망과 탐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소망과 탐은 잘 해석되지 않습니다. 근본경전연구회는 많은 경들을 꿰어서 이 둘을 설명해 내었는데, 탐은 인식에서 생기는 무명(無明)에 이어지는 왜곡된 앎이고, 소망은 망(望-lobha-바람)의 성질을 가지는 심의 내적인 행위에서 생겨나는 좀 더 행위에 다가간 성질 정도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수를 대상으로 탐이 생기는 인식 과정은 외입처를 대상으로 하는 내입처의 인식과정과 다릅니다. 외입처를 알고[식(識)] 경험하는[수(受)] 과정에서 내적으로 경험된 느낌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몸의 참여 없이 마음 혼자 작용하는 영역입니다. 인식 주관인 식(識)이 탐으로 몸집을 부풀린 상태를 심(心)이라고 하는데[심행(心行)=상(想)-수(受)], 탐의 영향으로 망(望-바람)의 성질을 가지고 행위 하는 마음입니다. 이런 심의 행위의 결과로 소망이 생겨나고, 소망과 탐이 함께한 상태를 애(愛)라고 부릅니다.


한편, (SN 12.45-냐띠까 경)은 수(受)를 조건으로 애(愛)가 생겨나서 취(取)로 나아가면 고(苦)로 연결되고, 수를 조건으로 생겨난 애가 남김없이 바래어 소멸[애멸(愛滅)]할 때 취로 나아가지 않아 고멸 즉 락(樂)으로 연결된다고 말합니다. takka의 영역에서 애가 생겨난 삶의 전개와 takka의 영역에서 생겨나는 애의 소멸로서의 삶의 전개를 말하는데, 뒤의 경우가 바로 atakkāvacara(딱까의 영역을 넘어섬)입니다. 애가 생겨나는 과정 안에서 애가 생겨나지 못하도록 제어하는 것이 애멸의 과정이고, 그 완성이 바로 부처님이 성취한 법으로의 atakkāvacara(딱까의 영역을 넘어섬)인 것입니다.


이렇게 takka는 vitakka(생각 떠오름), saṅkappa(사유) 등과 대등한 사색-탐구의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그런 현상에 선행하여 애(愛)가 생겨나는 과정입니다. 



● 첨부1. 위대한 발견, 모든 것의 시작 ― 「takka(딱까)」

● 첨부2. 안타깝게도 takka는 불교계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개념입니다.



첨부1. 위대한 발견, 모든 것의 시작 ― 「takka(딱까)」(2천 년 넘게 감춰져 있던 깨달음의 근본 자리)


(SN 6.1-범천의 요청 경) 등에서 부처님은 깨달음의 소회를 드러내는데, ‘내가 성취한 법은 딱까의 영역을 넘어선 것(atakkāvacaro)’이라고 말합니다. 


vitakka(위딱까)는 vi-takka여서 takka에서 분리됨인데, 생각의 떠오름입니다. 그래서 생각 이전의 것이고, 영역을 가지는 것이 takka인 것을 알 수 있는데, 애(愛)의 형성 과정입니다. 특히, 마음이 몸을 떠날 수는 없지만, 몸의 참여 없이 마음 혼자 작용하는 영역(*)이고, 몸과 함께하는 작용의 영역이 이성(理性)의 영역이라면 이성 이전에 작용하는 감성(感性)의 영역입니다.


(*) 물질의 영역 특히 뇌과학이나 인공지능 등 과학적 시도로써 접근할 수 없는 존재[유(有)-bhava] 고유의 특성을 제공하는 영역


분석적으로는 ①「상(想) → 심(心) → 견해」의 과정이면서 동시에 ②「번뇌[루(漏)] → 무명(無明) → 탐(貪)-진(嗔) → 소망 → 애(愛)」의 과정인데, 소망과 탐이 함께한 것이라는 애(愛)의 정의에 따르면, 「번뇌[루(漏)] → 무명(無明) → 애(愛)」입니다.


그래서 ‘딱까의 영역(takkāvacaro)’을 넘어서지 못한 중생(*)의 삶은 


• 전도된 「상(想) → 심(心) → 견해」의 과정 ⇒ 「번뇌[루(漏)] → 무명(無明) → 애(愛)」


이고, 딱까의 영역을 넘어선(atakkāvacaro) 깨달은 자의 삶은 


• 전도되지 않은 「상(想) → 심(心) → 견해」의 과정 ⇒ 「번뇌 없음[누진(漏盡)] → 명(明) → 애멸(愛滅)」


입니다. 이때, 애(愛)는 붙잡는 성질을 가지는데 ālaya(잡기-잡음)입니다. 그래서 애멸(愛滅)은 놓음(paṭinissagga) 또는 쉼(vossagga)으로 묘사됩니다.


(*) 무명(無明)에 덮이고 애(愛)에 묶여서 옮겨가고 윤회하는 중생(avijjānīvaraṇā sattā taṇhāsaṃyojanā sandhāvantā saṃsarantā)


그런데 상(想)은 행위의 재현을 위해 잠재하는 경향입니다. 태어날 때, 전생에서 찾아오는 식(識)을 맞이하는 명색(名色)에 담긴 몸의 경향으로 시작되고, 삶의 과정에서는 매 순간 행위의 결과로 잠재하는 경향이 더해지면서 행위의 재현을 이끕니다. 


그래서 상(想)은 생겨나는 과정의 측면에서는 잠재성향(anusaya)이고, 쌓여있는 몸통으로는 상(想)인데, 재현을 위한 작용성의 측면으로는 루(漏-번뇌-āsava)입니다.


번뇌가 상(想)이라는 것은 (MN 121-공(空)의 작은 경)이 말해주는데, 


「so ‘suññamidaṃ saññāgataṃ kāmāsavenā’ti pajānāti, ‘suññamidaṃ saññāgataṃ bhavāsavenā’ti pajānāti, ‘suññamidaṃ saññāgataṃ avijjāsavenā’ti pajānāti 그는 ‘욕루(慾漏)에 속한 상(想)은 비어있다.’라고 분명히 알고, ‘유루(有漏)에 속한 상(想)은 비어있다.’라고 분명히 알고, ‘무명루(無明漏)에 속한 상(想)은 비어있다.’라고 분명히 안다.」


입니다.


이제, 불교 안에서 중생의 삶의 모든 것은 takka 그리고 takka의 출발점에 있는 루(漏-번뇌-āsava)로부터 시작하고, 중생의 삶을 극복한 깨달은 자의 삶은 그 출발의 문제를 해소함 즉 누진(漏盡-번뇌의 부서짐-āsavakkhaya)에 의한 번뇌 없음(anāsava)으로 완성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완성이 번뇌 다한 아라한입니다.


;  āsavānaṃ khayā anāsavaṃ cetovimuttiṃ paññāvimuttiṃ diṭṭheva dhamme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ati.


번뇌들이 부서졌기 때문에 번뇌가 없는 심해탈(心解脫)과 혜해탈(慧解脫)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실답게 안 뒤에 실현하고 성취하여 머뭅니다.


; arahaṃkhīṇāsavo ― arahaṃ khīṇāsavo vusitavā katakaraṇīyo ohitabhāro anuppattasadattho parikkhīṇabhavasaṃyojano sammadaññāvimutto

 

번뇌 다한 아라한 ― 번뇌가 다했고 삶을 완성했으며 해야 할 바를 했고 짐을 내려놓았으며 최고의 선(善)을 성취했고 존재의 족쇄를 완전히 부수었으며 바른 무위의 앎으로 해탈한 아라한


 

첨부2. 안타깝게도 takka는 불교계에 잘 알려지지 않은 개념입니다. ― 『불교입문(2-사실)』 중에서


안타깝게도 takka는 불교계에 잘 알려지지 않은 개념입니다. 이 개념은 「삶의 메커니즘」에 의해 설명되는데, 다음 순서에 출판될 책의 주제입니다. 간략히 설명할 수 있는 주제가 아니어서 해설은 생략하고 직접 여기의 서술에 사용할 것입니다. 자세한 설명은 다음 책의 출판을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참고] 비록 낯선 용어이지만 takka는 제법 여러 경에서 발견됩니다. 오히려 의미를 해석하지 못한 탓에 그 용례들이 간과되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삶의 과정에서 takka의 위치는 쉽게 지정될 수 있습니다. 낯익은 vitakka라는 용어가 있기 때문입니다. 


vitakka는 행위 과정의 출발 자리를 지시하는 용어입니다. 경은 행위에서 「vitakka(생각 떠오름) → 의도-기대-지향 → saṅkappa(사유)」의 전개를 설명하는데, 이렇게 행위는 vitakka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런데 행위의 시작점이 왜 vitakka인지의 설명은 찾아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takka의 개념이 알려지면 vitakka는 분명한 의미를 드러냅니다. vi-takka의 조어가 ‘takka로부터의 분리 즉 떠남’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행위의 시작점인 vitakka가 takka로부터의 떠남이라면, 역으로, takka는 행위 이전의 과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takka와 vitakka는 이렇게 서로의 의미를 드러내 주는 보완적 관계에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이해에 의하면, takka의 부정 형태인 atakka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습니다. 보통은 atakka를 ‘사유를 넘어선’으로 해석하지만, 이런 이해에 의하면 atakka는 사유를 넘어선 것 혹시 형이상학의 영역에 속하는 어떤 것을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전개 과정에서 ‘사유 이전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인 takka의 상태를 극복함’입니다.


takka에 대한 구체적 설명은 다음 책 「연기(緣起) ― 삶의 메커니즘」에서 자세히 설명할 것입니다. 여기에서는 이렇게 행위 이전의 과정이라는 자리매김 위에서 「애(愛)의 형성 과정」이라는 결과를 직접 사용하여 깨달음의 서술을 위해 사용하였습니다.

 

Comments

대원행 2024.07.24 19:55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5_15_10&wr_id=3 참조 (맛지마 니까야 관통 법회(마무리 수업) ― 1. 불교의 분기점(takka)[딱까를 해석한 불교 & 해석하지 못한 불교]
아빈뇨 2024.08.01 07:43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