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제의 확장 ― (17-1)takkī-vīmaṃsī의 이해
• takkī― 딱까를 두드려 법을 이해하는 자
• vīmaṃsī ― 관찰을 동반하여 법을 이해하는 자
그러나 경은 「이렇게 알고[evaṃjānantaṃ-지(知)], 이렇게 보는[evaṃ passantaṃ-견(見)] 나에게 ‘사문 고따마에게는 인간을 넘어선 법인 성자들에게 적합한 차별적 지(知)와 견(見)이 없다. 사문 고따마는 딱까를 두드리고 관찰을 동반하여 자신이 이해한 법을 설한다. 그는 어떤 목적을 위해 설해진 법을 실천하는 자를 바르게 괴로움의 부서짐으로 이끈다.’라고 말한다면, 사리뿟따여, 그 말을 버리지 않고, 그 심(心)을 버리지 않고, 그 견해를 포기하지 않으면 운반되듯 지옥에 놓인다. 예를 들면, 사리뿟따여, 계(戒)를 갖추고, 삼매를 갖추고, 지혜를 갖춘 비구는 지금여기에서 무위(無爲)의 앎을 얻을 것이다. 이처럼, 사리뿟따여, 이런 성취를 나는 말한다. 그 말을 버리지 않고, 그 심(心)을 버리지 않고, 그 견해를 포기하지 않으면 운반되듯 지옥에 놓인다.」라고 반복하는데, ‘사문 고따마에게는 인간을 넘어선 법인 성자들에게 적합한 차별적 지(知)와 견(見)이 없다. 사문 고따마는 딱까를 두드리고 관찰을 동반하여 자신이 이해한 법을 설한다.’라는 말은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해줍니다.
경은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는 나’를 다섯 번 반복하며 ①열 가지 힘[여래십력(如來十力)], ②네 가지 확신[사무소외(四無所畏)], ③여덟 가지 집단에 두려움이나 소심 없이 들어감, ④네 가지 태어남 또는 존재의 영역[사생(四生)], ⑤다섯 가지 갈 곳[오도(五道)]을 설명하며 차별적 지(知)와 견(見)을 갖추었음을 알려줍니다.
그래서 takkī는 딱까를 두드려 법을 이해하는 자이고, vīmaṃsī는 관찰을 동반하여 법을 이해하는 자인데, 이 둘은 한 가지 부류의 양면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편, (MN 76-산다까 경)에 의하면, 아시는 분(jānatā), 보시는 분(passatā), 그분 세존-아라한-정등각에 의해 범행의 삶이 아니라고 설해진 네 가지와 안락을 주지 못하는 범행이라고 설해진 네 가지가 있는데, takkī-vīmaṃsī는 안락을 주지 못하는 범행에 속합니다. 그래서 그런 가르침 위에서는 지혜로운 사람이 확실한 범행을 실천하지 못하고, 범행을 실천하는 자도 방법이 되는 유익한 법을 얻지 못합니다.
또한, (MN 95-짱끼 경)은 진리(眞理-saccā)에 대한 입장으로 saddhā(믿음)-ruci(경향)-anussava(전승)-ākāraparivitakka(온전한 떠오름의 출현)-diṭṭhinijjhānakkhanti(견해와 통찰의 지속)에 대해 ‘이것만이 참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는 완전한 결론을 내는 것은 적절하지 않음을 지적하는데, 이 다섯 가지에는 두 가지 보(報)가 있어서 믿음 등에 철저하다 해도 그것이 없는 것이고 공허하고 거짓일 수도 있으며, 믿음 등에 철저하지 않아도 그것이 존재하는 것이고 사실이고 다르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해 위에서 (MN 100-상가라와 경)은 지금여기에서 실다운 지혜로 완전한 궁극의 경지를 성취해서 범행의 근본을 공언한다는 사문-바라문들을 세 가지로 분류하는데, ①전승(anussava)에 의한 성취와 공언을 말하는 삼명 바라문과 ②온전하게 오직 믿음(saddhā)에 의한 성취와 공언을 말하는 takkī-vīmaṃsī 그리고 ③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해 스스로 법을 실답게 안 뒤에 성취와 공언을 말하는 사문-바라문들입니다. 그리고 부처님은 세 번째 부류에 속합니다.
그래서
• 수낙캇타가 ‘사문 고따마는 딱까를 두드리고 관찰을 동반하여 자신이 이해한 법을 설하는데, (이것은 오직 믿음에 의한 성취일 뿐) 인간을 넘어선 법인 성자들에게 적합한 차별적 지(知-ñāṇa)와 견(見-dassana)이 아니다.’라고 말한 것은 부처님을 takkī-vīmaṃsī라고 사실 아닌 것으로 잘못 비난한 것이고,
•부처님이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는 나’를 설명하는 것은 인간을 넘어선 법인 성자들에게 적합한 차별적 지(知-ñāṇa)와 견(見-dassana)을 완성하였으므로 takkī-vīmaṃsī가 아니라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한 정등각(正等覺)이라는 것을 드러내 알려주는 것
이라고 하겠습니다.
특히, 여기서 소개한 경들을 통해 주목해야 하는 한 가지 사실은 takka라는 개념이 부처님 당시의 인도 철학계에 이미 알려져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사유 이전의 과정 즉 사유의 한계 너머를 지시하는 것(*)으로의 takka는 알려져 있었지만, 그 정체를 밝히지 못했는데, 부처님에 의해 「애(愛)의 형성 과정」으로의 정체가 드러나고 문제를 해소하여 깨달음에 닿았다고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지금의 불교계에는 takka라는 개념 자체가 알려지지 않은 아쉬움을 가지게 되는데, 후대의 교재들에 의해 감춰져 버렸기 때문이라고 하겠습니다.
(*) vitakka는 생각의 떠오름입니다. 경은 「vitakka → 의도-기대-지향 → 사유(saṅkappa)」의 전개를 설명하는데, vitakka가 생각 또는 사유의 출발점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때, vitakka는 vi-takka의 조성을 가져서 ‘takka에서 분리되는-떠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vitakka 이전의 과정 즉 사유의 영역 너머에 있는 것을 takka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주제의 서술을 위해서는 takka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주제의 확장 ― (17)「takka의 영역(takkāvacara)을 넘어섬과 진리의 검증 기준」에서 설명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