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제의 확장 ― (70-1)「alamariyañāṇadassanavisesa 성자들에게 적합한 차별적 지(知)와 견(見)」
• alam-ariya-ñāṇa-dassana-visesa
• visesa: 1. distinction; difference; 2. attainment. (m.)
‘alamariyañāṇadassanavisesa 성자들에게 적합한 차별적 지(知)와 견(見)’은 모든 용례가 ‘uttari manussadhamma 인간을 넘어선 법’과 연결되어 나타납니다. 그런데 인간을 넘어선 법에서 지(知)와 견(見)은 숙주명(宿住明)-천안명(天眼明)-누진명(漏盡明)의 삼명(三明)입니다. ― 「ñāṇadassananti tisso vijjā 지견(知見)이란 삼명(三明)[숙주명(宿住明)-천안명(天眼明)-누진명(漏盡明)]이다.」
그래서 이 용어는 인간을 넘어선 법으로의 지와 견 즉 삼명(三明)은 범부들이 접근하지 못하는 성자들에게 적합한 차별적인 것[벗어남의 영역 → 해탈된 삶]이라는 의미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런데 (SN 42.12-라시야 경)은 고행자 가운데도 인간을 넘어선 법인 성자들에게 적합한 차별적 지(知)와 견(見)을 실현하는 경우를 소개합니다. 이때, (DN 25-우둠바리까 경)은 parisuddhapapaṭikappattakathā(청정의 조각을 얻음 이야기) ~ parisuddhāggappattasārappattakathā(청정의 최상과 정수를 얻음 이야기)에서 고행의 최상/정수가 천안통(天眼通)이라고 알려주는데, 그 과정으로 ‘혜(慧)를 무력화하는 심(心)의 오염원인 다섯 가지 장애를 버린 뒤에 사무량심(四無量心)을 닦는 것’을 말합니다. 경은 이 과정 이전의 고행은 오염된 고행이라고 하고, 이 과정부터는 오염원의 거부에 의한 청정이라고 설명하는데, 고행자들 자신도 알지 못하고 있던 영역입니다.
결국, 고행으로는 성취하지 못하는 차별적 지와 견은 누진명(漏盡明)인데, 오직 「사념처 → 사마타-위빳사나」의 수행체계에 의해 불교에서만 가능한 결실이고, 이것이 아라한의 실현입니다.
; ‘alamariyañāṇadassanavisesa 성자들에게 적합한 차별적 지(知)와 견(見)’의 성취/실현의 의미 = 누진명(漏盡明)으로 번뇌 다한 아라한을 성취하는 것.
한편, (MN 31-고싱가 작은 경)은 구차제주(九次第住)의 실천을 ‘성자들에게 적합한 차별적 지(知)와 견(見)’의 성취라고 말하는데, 불교 수행의 단계적 성취 과정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1. (MN 12-사자후(獅子吼) 큰 경)
“natthi samaṇassa gotamassa uttari manussadhammā alamariyañāṇadassanaviseso
사문 고따마에게는 인간을 넘어선 법인 성자들에게 적합한 차별적 지(知)와 견(見)이 없다.
2. 부처님의 깨달음의 과정 ― (MN 36-삿짜까 큰 경)/(MN 85-보디 왕자 경)/(MN 100-상가라와 경)
na kho panāhaṃ imāya kaṭukāya dukkarakārikāya adhigacchāmi uttarimanussadhammā alamariyañāṇadassanavisesaṃ; siyā nu kho añño maggo bodhāyā’ti
그러나 나는 이 심한, 행하기 어려운 것을 행하면서도 인간을 넘어선 법인 성자들에게 적합한 차별적 지(知)와 견(見)을 얻지 못했다. 참으로 깨달음을 위한 다른 길이 있을까?
3. 함께하는 다섯 비구의 일화 ― (MN 26-덫 경)/(MN 85-보디 왕자 경)
evaṃ vutte, rājakumāra, pañcavaggiyā bhikkhū maṃ etadavocuṃ — ‘tāyapi kho tvaṃ, āvuso gotama, iriyāya tāya paṭipadāya tāya dukkarakārikāya nājjhagamā uttarimanussadhammā alamariyañāṇadassanavisesaṃ; kiṃ pana tvaṃ etarahi bāhulliko padhānavibbhanto āvatto bāhullāya adhigamissasi uttarimanussadhammā alamariyañāṇadassanavisesan’ti?
왕자여, 이렇게 말하자 함께하는 다섯 비구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 ‘도반 고따마여, 그대는 그런 행동과 그런 실천과 그런 행하기 어려운 것을 행함[고행(苦行)]으로도 인간을 넘어선 법인 성자들에게 적합한 차별적 지(知)와 견(見)을 성취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풍족하게 살고, 노력을 포기했고, 풍족한 삶으로 되돌아간 그대가 어떻게 인간을 넘어선 법인 성자들에게 적합한 차별적 지(知)와 견(見)을 성취하겠습니까?’라고.
4. 인간을 넘어선 법인 성자들에게 적합한 차별적 지와 견을 성취하였는가? ― (AN 10.48-출가자에 의한 반복 경)
‘atthi nu kho me uttari manussadhammo alamariyañāṇadassanaviseso adhigato, yenāhaṃ pacchime kāle sabrahmacārīhi puṭṭho na maṅku bhavissāmī’ti pabbajitena abhiṇhaṃ paccavekkhitabbaṃ
출가자는 ‘나는 인간의 법을 넘어선 성자들에게 적합한 차별적 지(知)와 견(見)을 성취하였는가? 나중에 죽을 때 동료수행자들에 의해 질문받은 나는 혼란스럽지 않아야 할 것이다.’라고 반복해서 숙고해야 한다.
5. 인간을 넘어선 법인 성자들에게 적합한 차별적 지와 견을 성취하여 편히 머무는가?
uttarimanussadhammā alamariyañāṇadassanaviseso adhigato phāsuvihāro”ti?
1) (MN 31-고싱가 작은 경) ― 구차제주(九次第住)의 실천으로 성취하여 편히 머묾
2) (MN 128-오염원 경) ― 빛과 색(色)들을 봄을 상(想)하지만 빛과 색(色)들을 봄이 오래지 않아 사라지는 현상에 대한 설명
→ “아누룻다들이여, 그대들은 그 현상을 이해해야 한다. 아누룻다들이여, 깨달음 이전, 깨닫지 못한 보살이었을 때 나도 빛과 색(色)들을 봄을 상(想)했다. 그러나 그런 나에게 빛과 색(色)들을 봄은 오래지 않아 사라졌다. 아누룻다들이여, 그런 나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 ‘어떤 원인, 어떤 조건 때문에 나에게 빛과 색(色)들을 봄이 사라지는가?’라고.
→ 원인-조건의 설명 → 원인-조건 = 심(心)의 오염원 → 심(心)의 오염원이 버려졌을 때 삼매를 닦아 깨달음을 성취함
3) (SN 41.9-나체수행자 깟사빠 경) ― 나체 수행자 깟사빠는 30년의 출가 생활 동안 아무도 인간의 법을 넘어선 성자에게 적합한 지(知)와 견(見)을 성취하여 편히 머물지 못했음
→ (찟따 장자) 재가자들도 인간의 법을 넘어선 성자에게 적합한 지(知)와 견(見)을 성취하여 편히 머묾 ― 초선-제2선-제3선-제4선 → 불환자
6. 인간의 법을 넘어선 성자에게 적합한 차별적 지(知)와 견(見)의 실현
1) (MN 65-받달리 경)
appeva nāmāhaṃ uttari manussadhammā alamariyañāṇadassanavisesaṃ sacchikareyyan
나는 인간의 법을 넘어선 성자에게 적합한 차별적 지(知)와 견(見)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 na uttari manussadhammā alamariyañāṇadassanavisesaṃ sacchikaroti. taṃ kissa hetu? evañhi taṃ, bhaddāli, hoti yathā taṃ satthusāsane sikkhāya aparipūrakārissa.
인간의 법을 넘어선 성자에게 적합한 차별적 지(知)와 견(見)을 실현하지 못한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참으로 받달리여, 스승의 가르침을 따르는 공부에 충실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 uttari manussadhammā alamariyañāṇadassanavisesaṃ sacchikaroti. taṃ kissa hetu? evañhi taṃ, bhaddāli, hoti yathā taṃ satthusāsane sikkhāya paripūrakārissa.
인간의 법을 넘어선 성자에게 적합한 차별적 지(知)와 견(見)을 실현한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참으로 받달리여, 스승의 가르침을 따르는 공부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 초선-제2선-제3선-제4선을 성취하여 머묾 → 숙주명-천안명-누진명 : 사선(四禪)-삼명(三明)
2) (SN 42.12-라시야 경)
“tayome, gāmaṇi, tapassino lūkhajīvino santo saṃvijjamānā lokasmiṃ. katame tayo? idha, gāmaṇi, ekacco tapassī lūkhajīvī saddhā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ito hoti — ‘appeva nāma kusalaṃ dhammaṃ adhigaccheyyaṃ, appeva nāma uttarimanussadhammā alamariyañāṇadassanavisesaṃ sacchikareyyan’ti.
촌장이여, 세상에 존재하는 이런 세 가지 힘든 삶을 사는 고행자들이 있습니다. 어떤 세 가지입니까? 여기, 촌장이여, 여기 어떤 힘든 삶을 사는 고행자는 믿음으로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합니다. — ‘나는 유익한 법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인간을 넘어선 법인 성자들에게 적합한 차별적 지(知)와 견(見)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라며.
so attānaṃ ātāpeti paritāpeti, kusalañca dhammaṃ nādhigacchati, uttari ca manussadhammā alamariyañāṇadassanavisesaṃ na sacchikaroti.
그는 자신에게 고통을 주고 괴롭힙니다. 유익한 법도 얻지 못하고, 인간을 넘어선 법인 성자들에게 적합한 차별적 지(知)와 견(見)도 실현하지 못합니다.
so attānaṃ ātāpeti paritāpeti, kusalañhi kho dhammaṃ adhigacchati, uttarimanussadhammā alamariyañāṇadassanavisesaṃ na sacchikaroti.
그는 자신에게 고통을 주고 괴롭힙니다. 유익한 법을 얻지만, 인간을 넘어선 법인 성자들에게 적합한 차별적 지(知)와 견(見)을 실현하지 못합니다.
so attānaṃ ātāpeti paritāpeti, kusalañca dhammaṃ adhigacchati, uttari ca manussadhammā alamariyañāṇadassanavisesaṃ sacchikaroti.
그는 자신에게 고통을 주고 괴롭힙니다. 유익한 법도 얻고, 인간을 넘어선 법인 성자들에게 적합한 차별적 지(知)와 견(見)도 실현합니다.
3) (AN 1.41-50-잘못된 지향 품) 45-46.
“seyyathāpi, bhikkhave, udakarahado āvilo luḷito kalalībhūto tattha cakkhumā puriso tīre ṭhito na passeyya sippisambukampisakkharakaṭhalampi macchagumbampi carantampi tiṭṭhantampi. taṃ kissa hetu? āvilattā, bhikkhave, udakassa. evamevaṃ kho, bhikkhave, so vata bhikkhu āvilena cittena attatthaṃ vā ñassati paratthaṃ vā ñassati ubhayatthaṃ vā ñassati uttariṃ vā manussadhammā alamariyañāṇadassanavisesaṃ sacchikarissatīti netaṃ ṭhānaṃ vijjati. taṃ kissa hetu? āvilattā, bhikkhave, cittassā”ti.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혼탁하고 휘저어지고 진흙탕인 호수가 있다. 거기에 호숫가에 서 있는 눈 있는 사람은 진주조개도 자갈도 움직이거나 서 있는 고기 떼도 보지 못할 것이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비구들이여, 물의 혼탁함이다. 이처럼, 비구들이여, 비구가 혼탁한 심(心)으로 자기의 이익을 알거나 남의 이익을 알거나 둘 모두의 이익을 알거나 인간을 넘어선 법인 성자들에게 적합한 차별적 지(知)와 견(見)을 실현할 것이라는 경우는 없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비구들이여, 심(心)의 혼탁함이다.
“seyyathāpi, bhikkhave, udakarahado accho vippasanno anāvilo tattha cakkhumā puriso tīre ṭhito passeyya sippisambukampi sakkharakaṭhalampi macchagumbampi carantampi tiṭṭhantampi. taṃ kissa hetu? anāvilattā, bhikkhave, udakassa. evamevaṃ kho, bhikkhave, so vata bhikkhu anāvilena cittena attatthaṃ vā ñassati paratthaṃ vā ñassati ubhayatthaṃ vā ñassati uttariṃ vā manussadhammā alamariyañāṇadassanavisesaṃ sacchikarissatīti ṭhānametaṃ vijjati. taṃ kissa hetu? anāvilattā, bhikkhave, cittassā”ti.
예를 들면, 비구들이여, 맑고 순수하고 고요한 호수가 있다. 거기에 호숫가에 서 있는 눈 있는 사람은 진주조개도 자갈도 움직이거나 서 있는 고기 떼도 볼 것이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비구들이여, 물의 혼탁하지 않음이다. 이처럼, 비구들이여, 비구가 혼탁하지 않은 심(心)으로 자기의 이익을 알거나 남의 이익을 알거나 둘 모두의 이익을 알거나 인간을 넘어선 법인 성자들에게 적합한 차별적 지(知)와 견(見)을 실현할 것이라는 경우는 있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비구들이여, 심(心)의 혼탁하지 않음이다.
4) (AN 5.51-덮개 경)
“so vata, bhikkhave, bhikkhu ime pañca āvaraṇe nīvaraṇe cetaso ajjhāruhe paññāya dubbalīkaraṇe appahāya, abalāya paññāya dubbalāya attatthaṃ vā ñassati paratthaṃ vā ñassati ubhayatthaṃ vā ñassati uttari vā manussadhammā alamariyañāṇadassanavisesaṃ sacchikarissatīti netaṃ ṭhānaṃ vijjati.
비구들이여, 비구가 심(心)을 압도하고 지혜를 무력하게 만드는 덮개이고 장애인 이 다섯 가지를 버리지 않고서, 그가 힘없고 약한 지혜로 자기의 이익을 알거나 남의 이익을 알거나 둘 모두의 이익을 알거나 인간의 법을 넘어선 성자에게 적합한 차별적 지(知)와 견(見)을 실현할 것이라는 경우는 없다.
“so vata, bhikkhave, bhikkhu ime pañca āvaraṇe nīvaraṇe cetaso ajjhāruhe paññāya dubbalīkaraṇe pahāya, balavatiyā paññāya attatthaṃ vā ñassati paratthaṃ vā ñassati ubhayatthaṃ vā ñassati uttari vā manussadhammā alamariyañāṇadassanavisesaṃ sacchikarissatīti ṭhānametaṃ vijjati.
비구들이여, 비구가 심(心)을 압도하고 지혜를 무력하게 만드는 덮개이고 장애인 이 다섯 가지를 버리고서, 그가 힘센 지혜로 자기의 이익을 알거나 남의 이익을 알거나 둘 모두의 이익을 알거나 인간의 법을 넘어선 성자에게 적합한 차별적 지(知)와 견(見)을 실현할 것이라는 경우는 있다.
5) (AN 6.77-인간을 넘어선 법 경)
“cha, bhikkhave, dhamme appahāya abhabbo uttarimanussadhammaṃ alamariyañāṇadassanavisesaṃ sacchikātuṃ. katame cha? muṭṭhassaccaṃ, asampajaññaṃ, indriyesu aguttadvārataṃ, bhojane amattaññutaṃ, kuhanaṃ, lapanaṃ. ime kho, bhikkhave, cha dhamme appahāya abhabbo uttarimanussadhammaṃ alamariyañāṇadassanavisesaṃ sacchikātuṃ.
비구들이여, 여섯 가지 법을 버리지 않으면 인간을 넘어선 법인 성자들에게 적합한 차별적 지(知)와 견(見)을 실현할 수 없다. 어떤 여섯 가지인가? 사실을 놓침,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함, 기능에서 문을 보호하지 못함, 음식의 적당량을 모름, 위선, 불평 ― 비구들이여, 이런 여섯 가지 법을 버리지 않으면 아라한의 경지를 실현할 수 없다.
“cha, bhikkhave, dhamme pahāya bhabbo uttarimanussadhammaṃ alamariyañāṇadassanavisesaṃ sacchikātuṃ. katame cha? muṭṭhassaccaṃ, asampajaññaṃ, indriyesu aguttadvārataṃ, bhojane amattaññutaṃ, kuhanaṃ, lapanaṃ. ime kho, bhikkhave, cha dhamme pahāya bhabbo uttarimanussadhammaṃ alamariyañāṇadassanavisesaṃ sacchikātun”ti.
비구들이여, 여섯 가지 법을 버리면 인간을 넘어선 법인 성자들에게 적합한 차별적 지(知)와 견(見)을 실현할 수 있다. 어떤 여섯 가지인가? 사실을 놓침,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함, 기능에서 문을 보호하지 못함, 음식의 적당량을 모름, 위선, 불평 ― 비구들이여, 이런 여섯 가지 법을 버리면 아라한의 경지를 실현할 수 있다.
7. 인간의 법을 넘어선 성자에게 어울리는 차별적 지(知)와 견(見)을 알거나 보거나 실현할 것이라는 경우 ― (MN 99-수바 경)
(뽁칼라사띠 오빠만냐 바라문) kathañhi nāma manussabhūto uttarimanussadhammā alamariyañāṇadassanavisesaṃ ñassati vā dakkhati vā sacchi vā karissatīti — netaṃ ṭhānaṃ vijjatī’”ti?
참으로 어떻게 인간 존재가 인간의 법을 넘어선 성자에게 어울리는 차별적 지(知)와 견(見)을 알거나 보거나 실현할 것인가? ― 그런 경우는 없다.
(부처님) “evameva kho, māṇava, brāhmaṇo pokkharasāti opamañño subhagavaniko andho acakkhuko. so vata uttarimanussadhammā alamariyañāṇadassanavisesaṃ ñassati vā dakkhati vā sacchi vā karissatīti — netaṃ ṭhānaṃ vijjati”.
“이처럼, 젊은 바라문이여, 수바가 숲의 주인인 뽁칼라사띠 오빠만냐 바라문은 장님이고 눈이 없습니다. 참으로 그가 인간의 법을 넘어선 성자에게 어울리는 차별적 지(知)와 견(見)을 알거나 보거나 실현할 것이라는 경우는 없습니다.”
imehi kho māṇava, pañcahi nīvaraṇehi brāhmaṇo pokkharasāti opamañño subhagavaniko āvuto nivuto ophuṭo pariyonaddho. so vata uttarimanussadhammā alamariyañāṇadassanavisesaṃ ñassati vā dakkhati vā sacchi vā karissatīti — netaṃ ṭhānaṃ vijjati.
젊은 바라문이여, 수바가 숲의 주인인 뽁칼라사띠 오빠만냐 바라문은 이런 다섯 가지 장애에 의해 가려지고 덮이고 장애 되고 묶여 있습니다. 참으로 그가 인간의 법을 넘어선 성자에게 어울리는 차별적 지(知)와 견(見)을 알거나 보거나 실현할 것이라는 그런 경우는 없습니다.
imehi kho, māṇava, pañcahi kāmaguṇehi brāhmaṇo pokkharasāti opamañño subhagavaniko gathito mucchito ajjhopanno anādīnavadassāvī anissaraṇapañño paribhuñjati. so vata uttarimanussadhammā alamariyañāṇadassanavisesaṃ ñassati vā dakkhati vā sacchi vā karissatīti — netaṃ ṭhānaṃ vijjati.
젊은 바라문이여, 수바가 숲의 주인인 뽁칼라사띠 오빠만냐 바라문은 이런 다섯 가지 소유의 사유에 묶인 것에 의해 욕심내고, 열중하고, 집착하고, 위험을 보지 못하고, 해방을 위한 지혜를 가지지 못한 자로서 즐깁니다. 참으로 그가 인간의 법을 넘어선 성자에게 어울리는 차별적 지(知)와 견(見)을 알거나 보거나 실현할 것이라는 그런 경우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