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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굿따라 니까야 관통

(앙굿따라 니까야 관통 법회) 4(173-175)[해탈된 삶(희론을 넘어섬) & 여래구덕](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250522…

0 371 2025.05.25 17:54

(앙굿따라 니까야 관통 법회) 4(173-175)[해탈된 삶(희론을 넘어섬) & 여래구덕](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250522)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k4x0lEO5KDU

 

1. (AN 4.173-마하꼿티까 경)(AN 4.174-아난다 경)은 육촉처(六觸處)의 완전히 바랜 소멸의 상태를 사사무기(四事無記)의 관점에서 설명하는데, ‘있다-없다-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입니다.

 

(AN 4.173-마하꼿티까 경) https://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8_08_08&wr_id=1

 

(AN 4.174-아난다 경) https://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8_08_08&wr_id=2

 

육촉처(六觸處)의 완전히 바랜 소멸은 무명과 애에 속하는 욕탐의 완전히 바랜 소멸이고, 번뇌의 부서짐에 의해 실현됩니다. 그래서 촉()을 조건으로 생기는 수()가 무명(無明)이 스민 상태를 벗어납니다. 이런 상태는 여래의 사후에 대해 설명하는 사사무기(四事無記)와 같은 경우입니다.

 

경은 이 질문을 희론의 관점에서 대답합니다. 육촉처(六觸處)의 완전히 바랜 소멸은 희론을 넘어선 것인데, ‘있다-없다-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라고 표현하는 것은 희론의 영역에서 답을 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옳지 않습니다. 도반이여, 육촉처의 떠남이 있는 만큼 희론의 떠남이 있습니다. 희론의 떠남이 있는 만큼 육촉처의 떠남이 있습니다. 도반이여, 육촉처의 완전히 바랜 소멸로부터 희론의 소멸이 있고, 희론의 가라앉음이 있습니다.’

 

이 두 개의 경이 appapañca(희론을 넘어섬)의 유이한 용례입니다.

 

; appapañcaṃ papañceti & papañcassa gati

 

반면에 nippapañca(희론 없음)은 무위(無爲)의 동의어로 여러 경에 나타납니다.

 

2. (AN 4.175-우빠와나 경)은 끝을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가 주제입니다. (-밝음-vijjā)으로도 행(-실천-caraṇa)으로도 명행(明行-vijjācaraṇa)으로도 끝은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다만, 실천을 갖춘 자가 있는 그대로 알고 볼 때(yathābhūtaṃ jānāti passati), 있는 그대로 알고 보는 자 즉 여실지견(如實知見)을 얻은 자가 끝을 만듭니다.

 

명행족(明行足)을 구성하는 명과 행 그리고 명행을 말하여도 그것이 실천을 통해 여실지견을 얻지 못하면 끝 즉 깨달아 윤회에서 벗어나는 결실을 얻을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명행족(明行足)과 연결해서 여래구덕(如來九德)을 설명하였습니다. https://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9_01&wr_id=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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