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앙굿따라 니까야 관통 법회 3 - (28-30)[재물을 위한 눈과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눈](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220526)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obKoSFPDMhM
(28)(AN 3.28-똥 같은 말을 하는 사람 경)은 똥 같은 말(망어), 꽃 같은 말(불망어), 꿀 같은 말(불악구)을 설명하고, (29)(AN 3.29-맹인 경)은 재물을 위한 눈과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눈에서 맹인, 한쪽 눈이 먼 사람, 두 눈을 가진 사람을 구분합니다. 맹인은 이 세상과 저세상의 양쪽에서 불행을 얻고, 한쪽 눈이 먼 사람은 법답지 못하게 재물을 얻기 때문에 지옥으로 가서 고통받으며, 두 눈을 가진 사람은 공덕을 짓고 행복한 곳에 태어납니다. 맹인과 한쪽 눈이 먼 사람은 멀리하고, 두 눈을 가진 사람과 교제해야 합니다. (30)(AN 3.30-아래로 구부러진 것 경)은 법회에 참석한 사람이 얼마만큼 법을 사고하는지에 대해 세 부류의 사람을 소개합니다.
(28) gūthabhāṇīsuttaṃ (AN 3.28-똥 같은 말을 하는 사람 경)
• 똥 같은 말을 하는 사람 ― 망어(妄語)
• 꽃 같은 말을 하는 사람 ― 불망어(不妄語)
• 꿀 같은 말을 하는 사람 ― 불악구(不惡口)
(29) andhasuttaṃ (AN 3.29-맹인 경) ― 맹인(盲人), 한쪽 눈이 먼 사람, 두 눈을 가진 사람
• 눈① ― 재물을 위한 눈
• 눈② ―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눈
⇒ 두 눈을 모두 갖지 못하면 맹인(盲人), 눈①만 가지면 한쪽 눈이 먼 사람, 두 눈을 모두 가지면 두 눈을 가진 사람
두 눈을 모두 갖지 못한 맹인(盲人)은 이 세상과 저세상의 양쪽에서 불행을 얻고, 눈①만 가진 한쪽 눈이 먼 사람은 법답지 못하게 재물을 얻기 때문에 지옥으로 가서 고통받으며, 두 눈을 모두 가진 두 눈을 가진 사람은 공덕을 짓고 행복한 곳에 태어나 슬퍼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맹인(盲人)과 한쪽 눈이 먼 사람은 멀리하고, 두 눈을 가진 사람과 교제하라고 부처님은 알려줍니다.
※ ‘눈② ―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눈’은 ‘유익하거나 무익한 법들을 알 수 있고, 결점이 있거나 결점이 없는 법들을 알 수 있고, 저열하거나 뛰어난 법들을 알 수 있고, 악(惡)과 선(善)이 대응한 법들을 알 수 있는 눈’인데, 이 법들에 대해 여리작의(如理作意)를 많이 행하는 것은 ⓐ생겨나지 않은 택법각지는 생겨나게 하고, 생겨난 택법각지는 늘어나 충만하게 하는 자량이고, ⓑ생겨나지 않은 의심은 생겨나게 하고, 생겨난 의심은 점점 더 커져서 가득 차게 하는 자량이 아닌 것입니다(SN 46.51-자량 경 ☞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7_02_06&wr_id=3).
이렇게 택법각지(擇法覺支)는 옳고 그름의 판단 기준의 확보인데, 사념처(四念處)의 ātāpī sampajāno satimā(알아차리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옳음의 유지-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자)의 sampajāno(바른 앎을 가진 자)에 해당합니다. 그래서 사념처의 ātāpī sampajāno satimā는 칠각지(七覺支)의 염각지-택법각지(擇法覺支)-정진각지(精進覺支)와 대응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주제의 확장 ― (43)「kaṇhasukkasappaṭibhāga(악과 선의 대응)」 참조 ☞ http://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2_11&wr_id=53
(30) avakujjasuttaṃ (AN 3.30-아래로 구부러진 것 경) ― 아래로 구부러진 지혜를 가진 사람, 무릎에 걸친 지혜를 가진 사람, 분석적인 지혜를 가진 사람
• 아래로 구부러진 지혜를 가진 사람 ― 법을 듣기 위해 종종 사원에 가서 법을 설하고 청정한 범행을 드러내는 자리에 참여하지만, 그 자리에 앉아있을 때도 말씀을 사고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나왔을 때도 말씀을 사고하지 않는 사람
• 무릎에 걸친 지혜를 가진 사람 ― 그 자리에 앉아있을 때는 말씀을 사고하지만, 그 자리에서 나왔을 때도 말씀을 사고하지 않는 사람
• 분석적인 지혜를 가진 사람 ― 그 자리에 앉아있을 때도 말씀을 사고하고, 그 자리에서 나왔을 때도 말씀을 사고하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