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앙굿따라 니까야 관통 법회 3 - (59-60)[바라문교의 삼명 & 바라문교는 왜 삼명이라고 할까](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220901)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WfWx7uJLrFY
불교가 사선-삼명으로의 깨달음을 말하듯이 바라문교도 바라문의 모범으로 삼명 바라문을 제시합니다. 바라문의 삼명은 불교의 삼명과 어떤 차이가 있고, 왜 명이라는 같은 용어를 모범으로 삼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불교의 무명과 명은 사성제의 무지와 앎인데, 바라만교의 삼명(三明) 바라문은 리그 베다/야주르 베다/사마 베다의 세 베다에 통달한 바라문입니다. 그러면 세 베다의 통달을 왜 명(明)이라고 할까요? 명을 종교마다 제시하는 완성의 경지로 이해할 때, 바라문교의 사제인 바라문의 완성을 세 베다의 통달을 지시하여 삼명 바라문이라고 부른다고 이해하였습니다. 우리 법회에서 ‘부처 이전의 것’이라는 개념으로 접근하는 공부입니다.
불교(佛敎)가 사선(四禪)-삼명(三明)으로의 깨달음을 말하듯이 바라문교도 바라문의 모범으로 삼명(三明) 바라문을 제시합니다. 바라문의 삼명(三明)은 불교의 삼명과 어떤 차이가 있고, 왜 명(明)이라는 같은 용어를 모범으로 삼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1. 불교(佛敎)의 무명(無明)과 명(明) ― 「무명(無明)에 덮히고 애(愛)에 묶여서 옮겨가고 윤회하는 중생」 ― 「takkāvacara」
• 무명(無明) ― 사성제(四聖諦)의 무지(無知) = 사실[삼법인(三法印)]에 괴리된 삶
• 명(明) ― 사성제(四聖諦)의 앎 = 사실[삼법인(三法印)]에 부합한 삶 ← 누진(漏盡) = 「atakkāvacara」 → 삼명(三明) = 숙주명(宿住明)-천안명(天眼明)-누진명(漏盡明)
2. 바라만교의 삼명(三明)
일반적으로 삼명(三明) 바라문은 리그 베다/야주르 베다/사마 베다의 세 베다에 통달한 바라문이라고 말하는데, 경은
“그것과 관련해서, 바라문이여, 바라문들은 어떻게 바라문들의 삼명(三明)을 선언입니까?” “여기, 고따마 존자여, 바라문은 ①어머니와 아버지 양쪽으로부터 잘 태어난 순수한 혈통이고, 태생에 관한 토론에서 칠대의 선조까지 멸시당하지 않고, 비난받지 않습니다. ②베다를 공부하고(*), 만뜨라를 전승합니다. ③세 가지 베다와 제사어휘와 문자와 어원과 다섯 번째로 역사를 통달했고, 베다의 문장에 숙달됐고, 문법을 알고, 대중철학과 대인상(大人相)에 대해 부족함이 없습니다. 이렇게, 고따마 존자여, 바라문들은 삼명을 선언합니다.”
라고 설명합니다. ①혈통, ②전문성, ③통달의 세 가지 측면의 설명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 세 베다의 통달을 위한 조건을 세 가지로 제시하였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 ‘베다를 공부하고’는 ajjhāyako를 번역한 것인데, 원래의 의미는 ‘선(禪)을 하지 않는 자’입니다. 선(禪)을 하지 않는 자가 베다를 공부하는 자를 의미하게 된 과정을 (DN 27.12-처음에 대한 앎 경, 바라문 계급)을 인용해서 설명하였습니다. ☞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4_03_04&wr_id=15
3. 세 베다의 통달을 왜 명(明)이라고 할까?
명(明)을 종교마다 제시하는 완성의 경지로 이해할 때, 바라문교의 사제인 바라문의 완성을 세 베다의 통달을 지시하여 삼명 바라문이라고 부른다고 이해하였습니다. 우리 법회에서 ‘부처 이전의 것’이라는 개념으로 접근하는 공부입니다. ☞ http://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9_03&wr_id=43& http://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9_03&wr_id=1
한편, 이 주제는 노자(老子)의 명(明)과도 연결되는데, http://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3_01&wr_id=68 「관점 5] 무위(無爲) - 노자의 완성과 부처의 완성」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