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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굿따라 니까야 관통

앙굿따라 니까야 관통 법회 4-(21-24)[부처님의 존중-장로-그래서 여래-법들에서의 여여함(보일 때는 보임만이 있을 것)]…

1 226 2023.09.04 10:28

▣ 앙굿따라 니까야 관통 법회 4-(21-24)[부처님의 존중-장로-그래서 여래-법들에서의 여여함(보일 때는 보임만이 있을 것)](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230831)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Wo81Z4CD_iU

 

(AN 4.21-우루웰라 경1)(SN 6.1-존중 경)과 비교되는데, ---해탈-해탈지견의 존중과 계---해탈 & 상가의 존중입니다. 이때, ---해탈은 법의 이야기(dhammiṃ kathaṃ)로 나타납니다. (AN 4.22-우루웰라 경2)은 장로를 만드는 법을 설명합니다. (AN 4.23-세상 경)그래서 여래라고 불린다.’라는 말로 여래를 설명합니다. (AN 4.24-깔라까라마 경)보고, 듣고, 닿아 알고, 인식하고, 얻고, 조사하고, ()로 접근한 것을 주제로 여래의 여여(如如)에 대해 설명하는데, 이런 여여는 (SN 35.95-말루꺄뿟따 경)과 연결됩니다. 보일 때는 단지 보임만이 있을 것

 

3. uruvelavaggo 우루웰라 품


(21) (AN 4.21-우루웰라 경1)


이 경은 (SN 6.1-존중 경)과 비교됩니다. 존중 경은 계(戒)-정(定)-혜(慧)-해탈(解脫)-해탈지견(解脫知見)의 오법온(五法蘊)의 존중과 의지를 말하는데, 이 경은 계(戒)-정(定)-혜(慧)-해탈(解脫)의 존중과 의지에 이어 이후에 상가의 존중을 말합니다. 존중 경은 깨달음의 시기에 깨달음의 소회를 3자적 묘사로써 드러내고, 이 경은 나중에 부처님이 그 시점을 1인칭으로 회상합니다.


이때, 계(戒)-정(定)-혜(慧)-해탈(解脫)은 법의 이야기(dhammiṃ kathaṃ)로 나타나는데, 「dhammiṃ kathaṃ karoti — “iti sīlaṃ iti samādhi iti paññā. sīlaparibhāvito samādhi mahapphalo hoti mahānisaṃso. samādhiparibhāvitā paññā mahapphalā hoti mahānisaṃsā. paññāparibhāvitaṃ cittaṃ sammadeva āsavehi vimuccati, seyyathidaṃ — kāmāsavā, bhavāsavā, avijjāsavā”ti. 법의 말씀을 하셨다. ― ‘이렇게 계(戒)가 있고, 이렇게 삼매[정(定)]가 있고, 이렇게 지혜[혜(慧)]가 있다. 계(戒)를 완전히 닦은 삼매는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다. 삼매를 완전히 닦은 지혜는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다. 지혜를 완전히 닦은 심(心)은 번뇌들로부터 잘 해탈하니, 소유의 번뇌와 존재의 번뇌와 무명의 번뇌이다.’라고.」 ☞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4_02_03&wr_id=7

 

(22) (AN 4.22-우루웰라 경2) ― 장로와 장로를 만드는 법 → 「초기불교 백일법문(독송 및 개론) ― (1-5)dutiyauruvelasuttaṃ (AN 4.22-우루웰라 경2)[장로를 만드는 법 - 속력과 속도]」 참조 ☞ http://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2_13&wr_id=224

 

(23) (AN 4.23-세상 경) ― ‘그래서 여래라고 불린다.’ → 「나는 불교를 믿는다(230314) - 제2장 부처님[여래라고 불리는 이유 & 과거와 미래의 끝 & 무위의 앎(aññā)]」 참조 http://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9_06&wr_id=62

 

• 번뇌 다한 부처에 대해 업(業)의 부서짐의 성취를 말하는데, 업(業)의 과(果)와 보(報)의 법칙성이 적용되는 영역으로의 세상에서 벗어나는 것이 업(業)의 부서짐이라고 이해하였음


• 「diṭṭhaṃ sutaṃ mutaṃ viññātaṃ pattaṃ pariyesitaṃ anuvicaritaṃ manasā 보고, 듣고, 닿아 알고, 인식하고, 얻고, 조사하고, 의(意)로 접근한 것」에 대해 삶의 메커니즘 위에서 설명하였는데, 다음 주 수업에서 용례와 함께 다시 설명할 예정입니다.


(24) (AN 4.24-깔라까라마 경)


여래는 「diṭṭhaṃ sutaṃ mutaṃ viññātaṃ pattaṃ pariyesitaṃ anuvicaritaṃ manasā 보고, 듣고, 닿아 알고, 인식하고, 얻고, 조사하고, 의(意)로 접근한 것」을 압니다. 실답게 알았고, 알려졌지만 여래는 그것을 구하지 않습니다.


이것에 대해 여래가 알지 못한다거나, 알기도 하고 알지 못하기도 한다고 말하면 사실이 아닙니다. 알지도 않고 알지 못하지도 않는다고 말하면 패배입니다.


이렇게 여래는 보아야 하는 것을 봅니다. 본 것을 생각하지 않고(na maññati)(*), 보지 않은 것을 생각하지 않고, 보아야 하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보는 사람을 생각하지 않는데, 듣고, 닿아 알고, 인식하는 것에 공통됩니다. 여래는 오직 이러하고 이러합니다[여여(如如)]. 이런 이러함보다 더 높고 더 뛰어난 다른 이러함은 없습니다.

 

(*) 여기서 maññati는 유위적 사고(思考)를 의미하는데, (MN 1-근본 법문의 경)에서 설명됩니다.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5_01_01&wr_id=2


한편, 이런 여여(如如)는 (SN 35.95-말루꺄뿟따 경)과 연결됩니다. 경은 「여기서, 말루꺄뿟따여, 그대에게 보이고 들리고 닿아 알고 인식되어야 하는 법들에서 보일 때는 단지 보임만이 있을 것이고, 들릴 때는 단지 들림만이 있을 것이고, 닿아 알 때는 단지 닿아 앎만이 있을 것이고, 인식될 때는 단지 인식됨만이 있을 것이다. 말루꺄뿟따여, 그대에게 보이고 들리고 닿아 알고 인식되어야 하는 법들에서 보일 때는 단지 보임만이 있고, 들릴 때는 단지 들림만이 있고, 닿아 알 때는 단지 닿아 앎만이 있고, 인식될 때는 단지 인식됨만이 있을 때, 말루꺄뿟따여, 그대에게 ‘그것에 의해’가 없을 것이다. 말루꺄뿟따여, 그대에게 ‘그것에 의해’가 없을 때, 말루꺄뿟따여, 그대에게 ‘거기에’가 없다. 말루까뿟따여, 그대에게 ‘거기에’가 없을 때, 말루꺄뿟따여, 그대는 이 세상에 의해서도 없고, 저 세상에 의해서도 없고, 둘의 중간에 의해서도 없다(*). 이것이 바로 괴로움의 끝이다.」라고 말하는데, 이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AN 4.24-깔라까라마 경)의 여여(如如)가 적용되어야 합니다.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6_04_01&wr_id=42

 

(*) ‘이 세상과 저세상의 중간’이란 표현이 중유(中有)의 근거라고 설명되기도 하지만, 몸으로 가지 않게 된 깨달음의 관점에서 이해하면 중유의 근거로 연결되지 않습니다.

Comments

대원행 2023.10.26 21:12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8_07_03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