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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굿따라 니까야 관통 법회 2 - (37)[안팎의 족쇄와 아라한](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211223)

2 492 2021.12.26 17:51

앙굿따라 니까야 관통 법회 2 - (37)[안팎의 족쇄와 아라한](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211223)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RZSSB-2evfw

 

사리뿟따 존자는 비구들에게 안의 족쇄와 밖의 족쇄에 묶인 사람을 설명하는데, 수행의 힘으로 신들의 무리에 태어났다가 거기서 죽은 뒤에 돌아오는 자여서 지금 상태로 오는 자는 안의 족쇄에 묶인 자이고, 돌아오지 않는 자여서 지금 상태로 오지 않는 자는 밖의 족쇄에 묶인 자입니다. 한편, 평정한 심()을 가진 신들에게서 사리뿟따 존자의 이야기를 들은 부처님은 사리뿟따 존자에게 가서 기능과 의()의 평화를 얻은 자 즉 욕탐이 제어되어 행위가 평화로운 아라한을 목표로 공부하라고 말합니다. 결국, 경은 안팎의 족쇄에 묶인 자로서 불환자까지를 설명하는 사리뿟따 존자의 설법에 더해 부처님이 아라한을 설명하면서 아라한을 목표로 공부해야 한다고 말하는 구조를 갖습니다.

 

37. 사리뿟따 존자는 비구들에게 안의 족쇄와 밖의 족쇄에 묶인 사람을 설명하는데, 수행의 힘으로 신()들의 무리에 태어났다가 거기서 죽은 뒤에 돌아오는 자(āgāmī)여서 지금 상태로 오는 자(āgantā itthattaṃ)는 안의 족쇄에 묶인 자이고, 돌아오지 않는 자(anāgāmī)여서 지금 상태로 오지 않는 자(anāgantā itthattaṃ)는 밖의 족쇄에 묶인 자입니다.

 

이때, 안팎의 족쇄에 대한 이해를 위해 (DN 11-께왓따 경)/(MN 49-범천의 초대 경)viññāṇaṃ anidassanaṃ anantaṃ sabbato pabhaṃ ()속성이 없고, 한계가 없고, 모든 관점에서 빛난다.라는 구절을 인용하였는데, 무명(無明)과 애()를 해소하여 몸의 제약에서 벗어난 식()에 대한 설명입니다. http://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4_05&wr_id=77참조

 

그런데 이런 식()은 무명(無明)에 덮이고 애()에 묶이면 몸에 제약되어 중생이라고 불립니다. 중생은 열 가지 족쇄에 묶인 상태인데, (AN 10.13-족쇄 경)은 유신견(有身見)-의심-계금취(戒禁取)-소유의 관심-진에(瞋恚)의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오하분결(五下分結)]와 색탐(色貪)-무색탐(無色貪)-자기화-들뜸-무명(無明)의 다섯 가지 높은 단계의 족쇄[오상분결(五上分結)]로 구분합니다.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9_08_02&wr_id=1

 

이때, 돌아오지 않는 자(anāgāmī) 즉 불환자(不還者)는 오하분결이 완전히 부서진 사람인데, 소유의 관심의 해소 즉 소유의 삶[()]에서 완전히 벗어난 사람입니다. 이런 경지를 증득한 수행자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정거천(淨居天)에 태어나고, 거기서 깨달음을 성취하여 중생으로의 삶을 끝냅니다. 존재의 삶[()]에서 완전히 벗어난 아라한과의 차별은 이렇게 소유에 대한 집착에서는 벗어났지만, 존재에 대한 집착은 남아있는 상태 그래서 정거천(淨居天)에 태어나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무명(無明)에 덮이고 애()에 묶인 중생은 소유의 족쇄에 묶인 상태[오하분결(五下分結)]와 존재의 족쇄에 묶인 상태[오상분결(五上分結)]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욕계(慾界)-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로 구성된 중생 세상에서 소유의 족쇄에서 벗어난 수행자가 태어나는 영역은 제사선(第四禪)에 속한 정거천(淨居天)입니다. 그래서 중생 세상은 소유의 족쇄에 묶인 영역과 소유의 족쇄에서 풀린 정거천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들의 지금 상태는 소유의 족쇄에 묶인 상태입니다.

 

그렇다면 아라한 즉 족쇄에 묶이지 않아 한계가 없는 식()에 대한 접근성의 측면에서 말하면, 중생들의 삶은 한계의 바깥쪽을 차지하는 정거천이라는 불환자의 영역과 정거천을 제외한 욕계-색계-무색계로 구성되는 안쪽 영역으로 나누어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리뿟따 존자는 안의 족쇄에 묶인 사람은 돌아오는 자여서 지금 상태로 오고, 밖의 족쇄에 묶인 사람은 돌아오지 않는 자여서 지금 상태로 오지 않는다고 설명합니다.

 

한편, 평정한 심()을 가진 신()들에게서 사리뿟따 존자의 이야기를 들은 부처님은 사리뿟따 존자에게 갑니다. 가서는 기능들의 평화와 의()의 평화를 위해 공부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기능과 의()의 평화를 얻으면 신업(身業)-구업(口業)-의업(意業)이 평화로워진다고 이어서 말합니다. 그런데 (MN 43-교리문답의 큰 경)에 의하면, 기능과 의()는 육내입처(六內入處)이고, 평화는 욕탐(欲貪)의 제어에 의해 얻어집니다. 그래서 기능과 의()의 평화를 얻은 자는 욕탐이 제어된 자여서 아라한이고, 아라한의 행위는 평화롭다는 설명입니다.

 

결국, 경은 안팎의 족쇄에 묶인 자로서 불환자까지를 설명하는 사리뿟따 존자의 설법에 더해 부처님이 아라한을 설명하면서 아라한을 목표로 공부해야 한다고 말하는 구조를 갖습니다.

 

부처님의 설명 가운데 바늘 하나의 점이 꿰뚫는 만큼이란 표현이 있는데, āraggakoṭinitudanamatte입니다. ()들이 작은 공간에서 서로 거슬리지 않고 서 있다는 묘사인데, 인간과 다른 몸의 성질을 가지는 신()에 대한 정보를 줍니다. 유사한 표현으로는 (DN 16-대반열반경)의 우빠와나 장로의 일화에서 vālaggakoṭinitudanamatto(머리카락 한 올 들어갈 만큼)으로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안과 밖의 족쇄.jpg

Comments

2022.02.17 23:17
[질문] 앙굿따라2(37)강의에서 바깥쪽을 차지하는 정거천이라는 불환자의 영역과 정거천을 제외한 욕계.색계.무색계의 안쪽영역으로 나뉜다고 하셨는데 무색계는 아라한도의 영역으로 불환과 위의 영역인데 오하분결이 있는 욕계.색계와 같은 안쪽영역으로 구분하셨는지요

[답변] '무색계는 아라한도의 영역'이라는 말씀이 잘 이해되지 않습니다, 법우님. 불환자가 죽으면 태어나는 곳으로의 정거천은 벗어남의 측면에서 바깥입니다. 높은 삼매의 경지와 벗어남의 경지를 구분해서 보셔야 합니다. 무색계는 어려운 주제입니다마는 자체로서 벗어남의 영역에 있는 것은 아니라는 관점이 필요하겠습니다. 그래서 무색계의 신들도 거기의 수명이 다하면 낮은 삶으로 떨어지기도 하는 거지요. (AN 3.117-동요 없음 경) ㅡ>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8_06_02&wr_id=6
대원행 2022.04.25 21:56
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8_03_04 참조 (AN 둘의 모음(33~42) 평정한 심 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