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앙굿따라 니까야 관통 법회 3 - (16-20)[번뇌-기능의 단속-범행의 목적](근본경전연구회 해피스님 220414)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Eyjlh7c9wTg
①기능들에서 문을 보호하고, ②음식에 대한 적당량을 알고, ③깨어있음을 실천하는 비구는 흠 없이 실천하는 것이고, 번뇌들의 부서짐을 위한 근본의 시작이라고 말하는 (AN 3.16-흠 없음 경)에서 1)누진(漏盡)을 ‘새어 나옴이 다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은 중국적 해석이고, 원어인 āsavakkhaya는 ‘번뇌들의 부서짐’이라는 점을 설명하고, 2)내입처와 외입처에 의한 인식의 향상을 근(根)의 단속이라고 나타내는 이유에 대한 문제의식을 제기하였습니다. 몸-말-의(意)의 나쁜 행위의 제어를 말하는 두 개의 경들 그리고 얻지 못한 선법을 얻거나 얻은 선법을 늘릴 수 있음과 유익한 법들에서 큰 충만을 얻음을 말하는 두 개의 경들을 이어서 설명하였습니다.
(16) apaṇṇakasuttaṃ (AN 3.16-흠 없음 경)
• ①기능들에서 문을 보호하고, ②음식에 대한 적당량을 알고, ③깨어있음을 실천하는 세 가지 법을 갖춘 비구 = 흠 없이 실천 = 번뇌들의 부서짐을 위한 근본의 시작
• 기능(indriya)들에서 문을 보호(gutta) = 내입처로 외입처를 인식하면서 상(相-nimitta)과 심상(心相-cittassa nimitta)을 붙잡지 말 것 = 욕탐(欲貪)의 제어 ― 근(根)의 보호(rakkhati) = 근(根)에서 단속 → 간탐과 고뇌와 악한 불선법들이 흘러들어오지 못함
※ 내입처와 외입처에 의한 인식의 향상을 근(根)의 단속이라고 나타내는 이유에 대한 문제의식의 제기
▣ 주제의 확장(AN-11) - 근(根)의 단속
※ 누진(漏盡)을 새어 나옴이 다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은 중국적 해석이고, 원어인 āsavakkhaya는 ‘번뇌들의 부서짐’이라는 점을 설명하였습니다.
• 음식에 대한 적당량을 앎 ― 오직 이 몸을 유지할 영양을 위한 만큼, 해침을 자제할 만큼, 범행에 도움이 되기 위한 만큼
• 깨어있음의 실천 ― 밤의 중삼분(中三分)에 잠자고 나머지 시간에는 경행(輕行)을 수반한 앉음을 통해 장애가 되는 법들로부터 심(心)을 청정케 함
(17) attabyābādhasuttaṃ (AN 3.17-자신의 잘못 경)
• 몸과 말과 의(意)의 나쁜 행위는 자신-남-둘 모두를 잘못으로 이끎
• 몸과 말과 의(意)의 좋은 행위는 자신-남-둘 모두를 잘못으로 이끌지 않음
(18) devalokasuttaṃ (AN 3.18-신의 세상 경) ― 부처님에게서 범행(梵行)의 삶을 사는 목적 = 집착 없는 완전한 열반
▣ 주제의 확장 ― (30)「설법 그리고 세존에게서 범행을 실천하는 목적」 참조
신의 세상에 태어나기 위해서 사문 고따마에게서 범행의 삶을 사느냐고 물으면 곤란하고 부끄럽고 혐오함 → 몸과 말과 의(意)의 나쁜 행위에 대해 곤란하고 부끄럽고 혐오해야 함
(19) paṭhamapāpaṇikasuttaṃ (AN 3.19-가게주인 경1)
• 오전-한낮-저녁에 주의를 기우려 업무에 집중하지 못하는 가게 주인은 재물을 얻거나 얻은 재물을 늘리지 못함 → 오전-한낮-저녁에 주의를 기우려 삼매의 상(相)[사념처(四念處)]에 집중하지 않는 비구는 얻지 못한 선법을 얻거나 얻은 선법을 늘리지 못함
• 오전-한낮-저녁에 주의를 기우려 업무에 집중하는 가게 주인은 재물을 얻거나 얻은 재물을 늘릴 수 있음 → 오전-한낮-저녁에 주의를 기우려 삼매의 상(相)[사념처(四念處)]에 집중하는 비구는 얻지 못한 선법을 얻거나 얻은 선법을 늘릴 수 있음
(20) dutiyapāpaṇikasuttaṃ (AN 3.20-가게주인 경2)
• 눈이 있고, 책임감이 강하고, 의지를 갖춘 가게주인은 오래지 않아 재물이 많아지고 가득하게 됨 → 눈이 있고, 책임감이 강하고, 의지를 갖춘 비구는 오래지 않아 유익한 법들에서 큰 충만을 얻음
• 비구의 눈 ― 사성제(四聖諦)를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앎
• 비구의 책임감 ― 정진(精進)
• 비구의 의지 ― 「여기, 비구들이여, 비구는 많이 배웠고, 가르침을 계승하고, 법(法)을 명심하고, 율(律)을 명심하고, 논모(論母)를 명심하는 비구들을 적당한 때에 찾아가서 ‘대덕이시여, 어떻게 이것이 있습니까? 이것의 의미는 무엇입니까?’라고 질문하고, 묻는다. 그에게 그 존자들은 드러나지 않은 것을 드러내고, 분명하지 않은 것을 분명하게 하고, 여러 가지 불확실한 법들에 대해 불확실을 제거해 준다. 이렇게, 비구들이여, 비구는 의지를 갖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