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원초적인 바른 견해 ― 스승의 영역에 속하는 것 ― (DN 23-빠야시 경)
불교에서 삶을 보는 바른 시각 즉 정견(正見)은 공부의 진행에 따라 다양하게 제시되는데, 향상된 삶을 위한 출발점에서 가져야 하는 원초적 바른 견해는 (DN 23-빠야시 경)이 말하는 ①저세상 있음, ②화생(化生)하는 중생 있음, ③업(業)에는 과(果)와 보(報)가 따름이라는 세 가지로 구성됩니다. ― 「itipi atthi paro loko, atthi sattāopapātikā, atthi sukatadukkaṭānaṃ kammānaṃ phalaṃ vipāko 이렇게도 저세상은 있다. 화생하는 중생은 있다. 선악(善惡)으로 지어진 업(業)들의 과(果)와 보(報)는 있다.」
이 세 가지는 십선업(十善業)의 정견(正見)에 속한 여섯 가지에서 발췌한 것인데, ①저세상 있음은 윤회(輪廻)한다는 선언이고, ②화생(化生)하는 중생 있음은 윤회해서 다시 태어나는 세상이 지옥-축생-아귀-인간-천상의 다섯 갈래로 구성된다는 가르침이며[오도윤회(五道輪廻)], ③업(業)에는 과(果)와 보(報)가 따름은 원하는 세상 즉 하늘에 태어나기 위해서는 하늘로 이끄는 업(業)을 실천해야 한다는 방법의 제시 즉 태어남의 선택입니다.
그런데 저세상이 있다는 것은 보통의 사람에게는 확인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해피스님은 죽어봤는지, 그래서 죽은 뒤에 저세상이 있어서 윤회한다는 것을 직접 확인하였는지?’ 묻기도 합니다. 물론 해피스님은 이 몸으로의 삶에서 죽어보지 못했고, 저세상이 있다고 직접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역으로 ‘그대는 죽어봤는지, 죽은 뒤에 저세상이 없어서 단멸(斷滅) 한다는 것을 직접 확인하였는지?’ 물으면 그 또한 확인하지 못했음을 알게 됩니다. 우리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없지만 반드시 알아야 하는 주제들은, 말하자면, 스승에 대한 믿음의 영역에 있는 것들(스승의 영역에 속하는 것들)이라고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주제들에 대한 스승의 가르침을 공감과 동의 그리고 신뢰로써 뒤따르는 사람을 신자(信者)라고 하고, 이런 방법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뒤따르는 사람들이 불교 신자입니다.
주목해야 합니다. 스승에 대한 믿음의 영역에 속하는 것들을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해 받아들이고 뒤따르는 사람이 불교 신자입니다. 다른 스승의 가르침을 뒤따르면서 불교 신자의 허울을 쓰고 있는 사람은 어리석음이고, 삶은 바르게 향상으로 이끌리지 못합니다.
한편, 원초적인 바른 견해의 세 가지에는 각각 주목할 점이 있습니다.
1) ‘저세상 있음[윤회(輪廻)]’ ― 이 주제에는 세 가지의 주장이 있는데 단견(斷見)-상견(常見)-연기(緣起)이고, 부처님의 깨달음은 연기(緣起)입니다. → 「연기(緣起)된 식(識)의 윤회(輪廻)」
2) ‘화생(化生)하는 중생 있음[오도윤회(五道輪廻)]’ ― 이 주제에 대해 (MN 12-사자후의 큰 경)은 각각의 태어남에서 어떤 느낌을 경험하는지 알려줍니다. → 「지옥 –오로지 고통스럽고 가혹하고 혹독한 느낌, 축생 - 고통스럽고 가혹하고 혹독한 느낌, 아귀 –고통 많은 느낌, 인간 – 행복 많은 느낌, 천상 - (제한된) 오로지 행복한 느낌」 & 「깨달은 자리 - (제한 없는) 오로지 행복한 느낌」
3) ‘업(業)에는 과(果)와 보(報)가 따름[태어남의 선택]’ ― 이 주제는 「행위가 가지는 과(果)와 보(報)의 법칙성」의 측면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 과(果)도 보(報)도 괴로움이어서 지옥으로 이끄는 힘을 가지는 십악업(十惡業)은 피하고, 과도 보도 행복이어서 하늘로 이끄는 힘을 가지는 십선업(十善業)은 적극 실천해야 함.
(DN 23-빠야시 경)에서 빠야시 대신은 「“itipi natthi paro loko, natthi sattāopapātikā, natthi sukatadukkaṭānaṃ kammānaṃ phalaṃ vipāko”ti 이렇게도 저세상은 없다. 화생하는 중생은 없다. 선악(善惡)의 업(業)들에게 과(果)와 보(報)가 없다.」라는 악하고 치우친 견해를 가지고 있는데, 「‘itipi atthi paro loko, atthi sattā opapātikā, atthi sukatadukkaṭānaṃ kammānaṃ phalaṃ vipāko’ti ‘이렇게도 저세상은 있다. 화생하는 중생은 있다. 선악(善惡)의 업(業)들에는 과(果)와 보(報)가 있다.」라고 말하는 꾸마라깟사빠 존자에게 반발하고, 꾸마라깟사빠 존자는 다양한 비유로써 빠야시 대신을 설득합니다.
꾸마라깟사빠 존자의 이런 설득에도 불구하고 악하고 치우친 견해를 버리지 못하는 빠야시 대신에게 삼꾸러미의 비유를 통해 이런 견해를 버려야 하는 당위성을 설득하는 장면은 바른 가르침을 만나고서도 가지고 있던 공부를 버리지 못해 고민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직접적인 교훈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