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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송집(초기불교 백일법문)

독송집 출판과 불교방송 인터뷰(2303)

0 110 2023.04.07 16:47

독송집 출판과 불교방송 인터뷰(2303)


• 부산불교방송 ― 3/20 무명을 밝히고 초대석(30분)

• 불교방송     ― 3/24 무명을 밝히고 금요포커스(45분) 


[1] 불교(佛敎) 이야기


1. 초기불교를 연구하고 공부하는 모임들이 많은데, 한국붇다와다불교 해피법당 근본경전연구회는 어떤 곳인가요?


네, 테라와다불교가 있습니다. 초기불교 또는 남방불교를 부르는 이름인데요, 테라 즉 장로의 가르침을 따르는 불교라는 의미입니다.


이때, 테라 즉 장로의 가르침을 좀 더 엄격히 제한하여 최초의 장로인 붇다 즉 부처님의 가르침을 의지하는 불교가 ①한국붇다와다불교이고, 그 가르침을 연구하는 곳이 ②근본경전연구회입니다. 


테라와다불교보다 더 좁은 공부의 기준을 적용하는 것인데, 윤회 또는 수행법 등 어떤 주제든지 기준 안에서의 교리적 충돌 없이 확정적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공부 범위입니다. 그래서 부처님 살아서 직접 설한 가르침이라는 표현을 저희는 거리낌 없이 공개적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③해피법당은 이런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함께하는 절 이름입니다.


2.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에 대해 갈증을 갖는다는 것은 세월의 흐름 속에서 부처님 가르침이 변색 되고 오염된 부분이 있다는 말이 되겠지요?


아마도 지금 내 곁에 있는 불교가 기대만큼의 역할을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가 알기로 부처님은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한 분 정등각(正等覺)인데요, 그런 부처님의 가르침이 내 삶의 문제에 대한 답을 제공하지 못한다면 부처님이 정등각이 아니거나, 가르침이 가르친 그대로 유지되지 못했거나 둘 중의 하나겠지요. 그러니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은 기대만큼의 역할 즉 내 삶의 문제에 대한 바른 답을 제공하는지 확인하려는 시도가 갈증이란 용어로 표현되었다고 이해하면 좋겠습니다.


3. 아함경을 지시하던 초기불교 경전이 이제는 주로 니까야를 지시하고 있는데, 아함경과 니까야는 어떻게 다른지?


이 주제는 좀 더 큰 시각에서 살펴보아야 합니다. 한국에서 불교는 소승불교(小乘佛敎)와 대승불교(大乘佛敎)의 구분으로 알려져 있는데, 소승불교의 뿌리 위에서 대승불교가 발전적으로 확장되어 출현했다는 이해입니다. 하지만 소승불교와 대승불교는 현존하는 불교의 분류가 아닙니다. 


현존하는 불교의 대표적 형태로는 남방(南方) 테라와다불교와 북방(北方) 대승불교가 있습니다. 테라와다불교는 갠지스강 유역에서 발생해 빠알리어(pāḷi)로 결집된 니까야(nikāya)를 중심으로 남방으로 전승(傳乘)되었고, 대승불교는 인더스강 이북의 간다라 지역에서 발생하고 중국으로 전승되어 한역(漢譯)된 후 북방 일대에 전파되었습니다.


대승불교는 산스끄리뜨어(saṁskṛt)[범어(梵語)] 아가마(āgama)[아함경(阿含經)]를 전승한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의 영향권에서 발생하였는데, 아함경(阿含經)과는 다른 대승경전(大乘經典)들이 그 위에 새롭게 편찬됩니다. 그리고 설일체유부를 중심으로 번성하였다가 소멸한 부파(部波)들을 통칭하여 부파불교(部派佛敎)라고 부르는데, 대승불교의 입장에서 부파불교를 소승불교라고 부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현존하는 불교에는 대승(大乘)에서 직접 지칭하는 소승(小乘)은 없습니다. 오직 테라와다불교와 대승불교가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불교를 소승불교와 대승불교로 구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테라와다와 대승의 두 불교는 빠알리어로의 일관된 전승과 산스끄리뜨어 편찬의 전승이라는 차이 때문에 시간의 흐름 위에서 이어지는[발전적 확장] 불교라고 말하기에도 어려움이 있습니다. 특히, 아함의 조각조각 발견되는 원전이 산스끄리뜨라는 점도 주목해야 합니다. 이미 한번 번역된 상태라는 것이지요.


자, 이런 이해 위에서라야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다고 하겠는데요, 니까야가 한국사회에 알려지기 전에는 대승불교의 입장에서 ‘그 전승의 출발점에 있지만, 소승불교라고 폄훼된 초기 경전’으로 아함[장아함-중아함-잡아함-증일아함]이 한국불교에 있었다고 해야 합니다. 그런 환경에서도 고익진 교수 등 일부 깨어있는 학자들은 아함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한국불교에 큰 변화가 생기지요. ‘아함과 대비되는 초기 경전 니까야’라기 보다는 ‘대승불교와 함께 현존하는 테라와다불교’가 한국에 전래 된 것인데요, 대승의 입장에서 초기이고 소승인 아함에 대한 관심이 니까야로 옮겨지는 것이 아니라 대승경전에 대한 관심이 니까야로 옮겨지고 있는 것이 변화의 실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대승 경전의 이면에 있는 아함에 대한 관심도 자연스럽게 니까야로 옮겨가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4. 초기불교에 관심을 가진 분들이 많은데, 어떻게 공부하면 지치지 않고 제대로 잘 할 수 있을지 비법을 알려주시겠습니까?


비법이라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무엇보다도 삶이 질서로워야 합니다. 삶의 질서라면 계(戒)를 말하는 건데요, 재가 신자가 기본적으로 지니고 살아가야 하는 다섯 가지 질서를 오계(五戒)라고 하지요. 


경은 계학(戒學)-심학(心學)-혜학(慧學)의 삼학(三學)을 말하는데요, 삶이 질서로울 때 마음 닦는 공부를 통해 지혜로운 삶을 살 수 있다는 의미가 됩니다. 재가자는 오계로 시작하여 마음의 오염원인 장애들로부터 마음을 보호할 때 지혜롭고 현명한 삶을 살게 되고요, 출가자는 삼매로 이끄는 계를 갖춘 삶을 통해 삼매에 들고 삼매를 닦음으로써 지혜를 완성하여 윤회에서 벗어나게 되는 거지요.


초기불교라는 것이 고(苦)와 락(樂) 즉 괴로울 것인가, 행복할 것인가를 최상위 개념으로 하는 가르침이기 때문에 초기불교에 관심을 가진다는 것은 삶을 향상하여 행복하겠다는 지향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지향을 방해하는 대표적인 것이 소유를 향한 관심(내 거 할 거야!)인데요, 결국 해치고 훔치고 바람피우고 거짓말하는 등 악업을 짓게 하거든요. 괴로움을 만드는 삶인 거지요. 그래서 계 즉 질서 있는 삶을 통해 우선 막아내고, 마음 닦는 과정으로 제거할 때 바르게 행복으로 나아간다는 것이 불교 신행의 큰 틀이라고 하겠습니다.


비밀스러운 방법, 불교에는 그런 거 없지요. 드러나 있는 이런 방법으로 배워 알고 실천하는 것이 지치지 않고 제대로 공부하는 방법입니다.



[2] 독송집


1. 이번에 출판한 「초기불교 경전 백선 독송집」은 어떤 책인지?


사실 이 책은 초기불교 경전 백선보다는 독송집(讀誦集)에 더 의미를 두는 책입니다. 부처님 살아서 직접 설한 가르침이 말에 의해 익숙해져야 하는 필요성에 주목하여 만들어진 책입니다. 


2. 근본경전연구회에서는 지금까지 세 권의 초기 경전 모음집을 펴냈는데, 특히 이번에 펴낸 ‘초기불교 경전 백선 독송집’은 구성이 좀 독특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첫 번째 책은 『불교입문(1) 소유』인데, 재가자를 위한 가르침을 모두 444개의 경을 인용하여 정리한 교과서 같은 책입니다. 초기불교가 출가자만을 위한 가르침이 아니라 재가자의 행복을 이끄는 가르침도 많다는 사실을 확인해 줍니다.


두 번째 책 『나는 불교를 믿는다』는 삼보(三寶) 즉 3가지 의지처인 불(佛)-법(法)-승(僧)에 대한 바른 앎을 주제로 하는 책인데요, 불교 신자가 불교를 믿는다는 말의 의미를 정확하고 상세하게 설명하는 책입니다.


이번에 출판한 세 번째 책은 ‘초기불교 경전 백선’보다는 독송집(讀誦集)에 더 의미를 두는 책입니다. 


이 책에도 담겨있지만, (AN 7.6-상세한 재산 경)은 죽을 때도 빼앗기지 않고 가져가는 일곱 가지 재산을 말하는데, 배움도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 ― 「(부처님) 가르침을 많이 배우고, 만족하고, 말에 의해 익숙해지고, 의(意)로써 이어보고, 견해로써 잘 꿰뚫는 것」


특히, 부처님 살아서 직접 설한 가르침이 말에 의해 익숙해져야 하는 필요성을 제시하는데, 이 책을 대표하는 관점입니다. 


이런 이유에서 이 책이 시도하는 독송(讀誦)은 중요한 신행(信行) 방법이라는 것을 알 수 있고요, 이런 신행(信行)을 이끌기 위해서 책은 세 가지 형태로 경을 싣고 있습니다. ― 「① 빠알리 원전, ② 우리말 읽기 - 발음, ③ 우리말 읽기 –뜻(해피스님 번역)」


이 점이 이 책의 구성이 가지는 특징이라고 하겠습니다.


3. 독송집은 초기불교 경전 백선 즉 4부 니까야에서 발췌한 100개의 경이라고 알고 있는데, 생활 속에서 언제든 겪을 수 있는 문제들, 그럴 때 길잡이로 삼으면 좋을 경전 몇 개만 소개해주시겠어요?


네, 책의 제5장은 「신행(信行) ― 향상하는 삶」인데요, 재가 신자의 삶의 향상을 이끌기 위한 경들로 구성하였는데, 무명에 덮이고 애(愛)에 묶여서 옮겨가고 윤회하는 중생들에게 처음 시작점은 알려지지 않는다고 말하는 (풀과 나무토막 경)으로 시작됩니다.


어떻게 불교 신자가 되는지 또는 지금 당장 죽어도 두렵지 않은 삶은 어떤 삶인지 등을 설명하는 (마하나마 경)들, 불교는 기도가 아니라 실천이라는 점을 알려주는 (원함 경), 누가 자신을 사랑하고 보호하는 사람인지 알려주는 (사랑하는 자 경)과 (자기 보호 경), 부처님은 죽은 사람을 하늘에 태어나게 하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태어나기 위해 살아서 행해야 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스승이라고 말하는 (아시반다까뿟따 경), 여덟 요소를 갖춘 포살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는 (상세한 포살 경) 등 재가자의 신행을 이끄는 37개의 경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특히, (배운 사람의 행위 경)은 재물과 명성을 얻고 건강하게 오래 산 뒤 죽어서는 하늘에 태어나는 방법으로 믿음과 계와 보시와 지혜의 네 가지 법을 갖출 것을 말하는데, 이 네 가지는 재가자의 신행에서 중심이 되는 개념이라고 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 주제에 딸린 경 3개를 함께 수록하였는데, 잠시 소개하겠습니다.


(디가자누 경)은 재가자에게 금생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근면과 보호를 갖추고, 선우를 사귀고, 균형 잡힌 생계를 유지하라고 하는데, 특히, 균형 잡힌 생계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 「‘이렇게 나에게 수입은 지출을 충당하고도 남을 것이다. 나에게 지출이 수입을 초과하지 않을 것이다.'라면서 지나치게 풍족하지도 않고 지나치게 궁핍하지도 않은 균형 잡힌 생계를 유지한다.」


(평등한 심(心) 품)은 부모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방법을 알려주는데, 돈과 권력을 선물하는 것보다 이 네 가지 법이 없는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이 법들을 갖추도록 부추기고, 서게 하고, 확고하게 하는 것이 어머니와 아버지를 위하여 행한 바이고, 어머니와 아버지를 위한 보상[은혜 갚음]이 된다고 해서 효(孝)에 대한 불교의 입장을 보여줍니다. 즉 하늘로 이끄는 길을 안내하는 것이 진정한 효도라는 것이지요.


결정적으로 (동등한 삶 경)은 부부가 한평생 사랑하면서 살다가 죽은 뒤 다음 생에서도 다시 만나 그런 사랑을 이어가는 방법을 소개하는데, 동등한 믿음, 동등한 계, 동등한 보시, 동등한 지혜를 함께 갖추는 것입니다. 이것이 최선의 부부 관계이고, 세간살이 최고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방법이지요.


시간이 충분하다면, 이런 주제들은 정말 감동적으로 우리의 신행을 이끕니다.


한편, 책은 (상세한 포살 경)에 따른 포살 의식을 담고 있는데, 근본경전연구회는 아침 독송 시간을 이용해 온라인으로 보름에 3일간 포살 의식을 함께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한국불교의 중요한 신행인 백팔배를 초기불교의 가르침에 접목하여 만든 ‘초기불교 백팔배’도 함께 수록하였습니다.


4. 어떻게 이 독송집을 내게 되었는지?


경을 부처님의 언어로 독송하는 능력을 길러야겠다는 생각에서 2년 전 안거 때 전법륜경과 무아상경, 두 개의 경으로 아침 독송을 시작했습니다. 1년 반 동안 독송하면서 차츰 보충하다 보니 대략 100개의 경이 되길래, 아예 100이란 숫자에 맞춰 ‘초기불교 경전 백선’이란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래서 책상머리에서 짜 맞춘 백선이 아니라 구체적 신행 과정에서의 필요로 선별된 경 백 개라는 점에서 더 의미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5. 책은 어떻게 구성돼 있는지?


여섯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제1장 깨달음의 자리에서 설해진 근본 가르침

제2장 사실 ― 깨닫고 실현한 법

제3장 깨달음의 재현 ― 제자들의 깨달음

제4장 분석 ― 용어 정의

제5장 신행(信行) ― 향상하는 삶

제6장 수행(修行) ― 지도(地圖) 


6. 빠알리어 발음을 우리말로 정확하게 표기하기 위해 어려움이 많지 않았는지?


; 정확하게 읽는 법과 읽는 대로 표기하는 법을 위해 동남아 특히 스리랑카의 스님들 또는 스리랑카에 유학하신 전문가분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 정확하게 읽는 법 ― 목구멍 안에서 내는 소리 또는 적은 숨과 많은 숨의 구분 등 우리말에서 구분하지 않는 음절들의 발음 문제 & 반모음 특히 y 또는 v가 i 앞에 올 때의 발음 방법


• 읽는 대로 표기하는 법 ― 로마 문자로 옮길 때도 특수문자를 사용하여 표기하는 발음들이 있고, 또 우리글에서 표기하지 않는 장음-단음의 구분 등의 어려움이 있는데, (우리글에는 아직 이런 발음의 표기를 위한 의논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외래어 표기법을 적용하지 않고 음절을 해체하여 각각의 음소가 지닌 음가에 장단을 구분하여 표기하였습니다. 


7. 번역의 어려움은 없었는지?


말이 뜻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번역은 어렵습니다. 오랜 세월 덧씌워진 의미가 말에 들어있기 때문에 그것을 벗겨내고 부처님 설하신 의도를 그대로 담아내는 번역을 해야 하는 저의 입장은 더 그렇다고 해야 할 것인데, 다행히 그간의 일관된 노력의 과정에서 삶의 메커니즘과 수행지도(修行地圖)라는 삶에 접근하는 공부의 틀이 마련되어서 이제는 많은 경우에 삶의 이야기의 틀 위에서 일관된 번역을 할 수 있게 되었지요. 그래서 어려움은 당연히 많았지만, 훨씬 쉬워지고 있고 더 정확하게 부처님 설하신 의도를 담아내는 번역을 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 ‘제4장 분석 ― 용어 정의’를 강조하는 이유


8. 보통 다라니나 진언은 해석을 하지 않고 그냥 읽거나 외우는데, 이 책에는 빠알리어로 직접 읽고 해석도 나와 있어서 우리말로 편하게 읽을 수도 있고 또 한글로 해석도 함께 표기되어 있어서 훨씬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책을 먼저 접하고 독송하신 분들의 반응은 어떤지요?


책의 뒤표지에 ‘이 독송집의 경전 독송과 진언 또는 다라니 독송의 차이점’을 적었는데요, 「부처님이 설한 가르침을 ①동일한 발음으로 ②설하신 의미를 분명히 알면서 독송하는 방법이어서 ③지혜가 성숙하고 ④삶을 향상으로 이끄는 직접적인 힘이 됨」입니다. 책을 접한 분들이 대부분 이런 관점에 공감하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뭐니 뭐니해도 불교가 비밀스러움, 신비주의를 주창하는 종교가 아니라는 점은 다들 아시지만, 정작 중국화 이전, 원형으로의 불교를 비밀스럽지 않게 읽고 배우는 방법이 잘 제시되지 못했다는 점에서 이 책을 만난 분들의 기쁨이 크다는 반응을 보게 됩니다.


9. 이제껏 스님께서 낸 책들은 이 책과 비교하면 훨씬 가벼운 것 같습니다. 양장 제본을 하게 된 이유가 있는지요?


독송집이기 때문에 책을 펼쳐놓고 읽기에 불편치 않아야 하는 필요가 큰 책입니다. 이 필요성을 지적하고 양장 제본을 권해주신 분이 계신데요, 사천 불이암 선원의 무량 스님입니다. 심지어 스님께서는 양장 제본 비용까지 전액 보시해 주셔서 책을 만드는 데 큰 힘이 되었습니다.


10. 이전에 스님께서 니까야 전체를 꿰는 방식으로 불교입문서 등을 펴내서 초심자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을 텐데요, 같이 공부하는 분들이나 초심자들의 반응은 어땠는지요?


앞서 두 권의 책을 펴냈는데, 「불교입문(1) 소유하고자 하는 자를 위한 가르침」과 「나는 불교를 믿는다」입니다. 


첫 번째 책은 재가 신자의 신행(信行)에 초점을 맞춰 444개의 경을 정리한 교과서와 같은 책입니다. 사실, 불교 신자들이 공부 자체에 익숙지 않다는 풍토 때문에 교과서 같은 책에 대해 큰 호응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이 책에 대해 놀라움을 표하면서 주변 분들에게 추천했다는 분들을 자주 보게 됩니다.


두 번째 책은 바른 신행(信行)을 위해 불법승(佛法僧) 바로 알기를 목적으로 만든 책입니다. 역시 공부의 측면으로 불교에 접근하는 분들에게서 놀랍다는 평가를 자주 듣고 있습니다.


11. 이 책을 접하는 분들에게 당부할 말씀은요?


모른다, 어렵다 하지 마시고 부처님 가르침에 공부[교학+수행]로써 접근하시기를 당부드립니다. 으뜸 된 교리를 최고의 경쟁력으로 하는 불교가 공부하지 않는 불교 신자들의 신행 방법 때문에 경쟁력을 잃고 있는 현실을 타파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입니다.


 

[3] 불교 신자의 정체성


1. ‘불교입문’, ‘나는 불교를 믿는다’ 그리고 이번에 펴낸 ‘초기불교 경전 백선 독송집’까지 보면 불교 신자로서 정체성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하는데, 어떤 의미인가요?


불교는 무엇인가? 불교 신자인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내가 불교 신자로 산다는 것은 어떤 가르침을 누구에게 배워서 삶의 동력으로 삼는 것인가?


인류 역사에 으뜸 된 스승이 부처님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부처님은 완전한 깨달음에 의해 법을 설했기 때문에, 불교야말로 으뜸 된 가르침이라는 것을 이 자리에서 설명하기에는 시간이 허락되지 않습니다마는, 이 으뜸 된 가르침이 불교의 정체성을 담고 있다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부처님 돌아가신 뒤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가르침을 전승한 분들의 관점이 차츰 덧씌워지게 되는데, 가르침을 설하신 그대로 만나지 못하고 설하신 그대로의 의도에 맞게 삶을 뒤따르지 못하는 현상을 초래합니다. 그래서 불교 신자들이 껍데기는 부처님의 제자 됨을 선언하지만, 알맹이는 부처님의 의도와 다른 삶을 살게 되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다행히 자연과학의 발전에 따른 교육 여건의 개선은 지금 내 곁에 있는 불교가 스승이신 부처님의 것이 맞는지 따져볼 수 있게 해줍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비밀스러움, 신비주의를 주창하는 가르침이 아닌 덕분에 나의 학습 능력만 확보하면 부처님이 설하신 의도를 직접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시간의 흐름만큼 부처님에게서 멀어졌다 하겠지만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접근하느냐에 따라 법(法)은, 시간을 초월하여, 설하신 그대로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그래서 세월 동안 덧씌워진 관점을 배제하고 부처님에게로 직접 접근할 수 있다면, 부처님의 제자 됨을 선언하는 불교 신자들이 껍데기뿐만 아니라 알맹이도 부처님의 의도와 같은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이런 방법으로 우리가 부처님에게로 돌아가자, 불교 신자의 바른 삶으로 돌아가자는 것이 불교 신자의 정체성을 회복하자는 저의 주장이라고 하겠습니다.


2. 또한, 주석서 등에 의지하지 말고 경으로 경을 풀어야 한다고 하셨어요.


같은 이야기일 거에요. 주석서 등이라고 하면 초기불교권에서는 아비담마 칠론과 청정도론 그리고 여러 주석서를 말할 수 있을 텐데요, 이런 후대의 교재들을 기준한 경의 해석이 삶의 문제에 대한 완전한 답을 제공하느냐의 관점이지요. 시작하면서 말씀 나눈 ‘내 삶의 문제에 대한 바른 답을 제공하는지’의 문제의식을 초기불교 안에서도 일으키는 것입니다.


초기불교 안에서도 후대의 교재들은 누구에 의해서 만들어졌는지 알려진 책도 있고 알려지지 않은 책들도 있는데, 그들이 부처님의 깨달음을 온전히 재현한 제자들이어서 경에 대한 온전한 해석을 싣고 있다면 이 교재들이 공부의 편리함을 주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편리의 이면에서 가르침의 진정을 놓칠 수도 있기 때문이지요. 


더구나 자연과학의 발전으로 우리의 공부 능력이 크게 향상하였기 때문에 이제는 후대의 교재를 기준 하지 않고 경을 경으로 직접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이 확보되었다고 해야 할 겁니다.


할 수만 있다면 경을 경으로 직접 해석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습니다. 후대의 제자분들의 시각이 아니라 부처님의 시각으로 부처님을 만나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가 이런 방법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에 접근하는 것이 가능하고 또 최선이라는 입장을 저희는 가지고 있습니다.


3. 가장 오래된, 그러나 전혀 새로운 불교를 이끄는 <되돌림 불서>라는 표현의 의미는요?


‘부처님 살아서 직접 설한 가르침’이라는 점에서 가장 오래되었고, 2천 년 넘는 세월이 덧씌워진 지금의 불교를 기준 할 때 전혀 새롭게 부처님에게로 접근한다는 의미에서 새로운 불교입니다. 그 세월 동안 덧씌워진 변화를 걷어내고 부처님 살아서 직접 설한 가르침으로 돌아가자는 목적을 담아서 <되돌림 불서> 시리즈를 제작하고 있습니다.


4. 불자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나날이 향상하는 삶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이 저는 특히 공감이 갔습니다. 생로병사를 위시하여 삶의 많은 문제에 대해 부처님께서는 충분히 답을 주셨지요?


그러시군요. 사실 저와 만나는 많은 분이 가장 좋아하는 인사말이 ‘가르침에 의지해서 삶이 향상하시기 바랍니다!’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삶이 향상한다는 것이 뭐 별건가요. 갈수록 괴로움은 줄어들고 행복은 늘어나는 삶을 살다가 죽어서는 더 좋은 곳, 하늘에 태어나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끝에 깨달아 윤회에서 벗어나는 것이 그 향상의 완성이고요.


또 경은 여러 곳에서 삶에 수반되는 모든 괴로움의 완전한 소멸을 실현한 유일한 스승이 부처님이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슬픔-비탄-고통-고뇌-절망이라는 삶에 수반되는 구체적 아픔부터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이라는 근본 괴로움까지 완전히 소멸하고 윤회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오직 부처님에 의해서만 답이 주어졌거든요. 심지어는 그래서 여래가 출현한다고 말하는 경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 질문은 부처님께서는 충분히 답을 주셨다기보다는 오직 부처님만이 충분히 답을 주셨다고 해야 맞습니다.


5. 초기 경전 연구와 강의, 출판과 함께 학술세미나도 개최해오셨는데요. 주제가 불교의 핵심이자 모두가 관심을 가질만한 것들이더군요. 그 내용도 잠깐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깨달음과 윤회에 대한 말씀 간단히...)


네, 저희가 그간 두 번의 학술세미나를 개최했는데, 윤회와 깨달음입니다. 간략히 설명해보겠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부처님은 무엇을 깨달았을까요?


만약에 부처님 스스로 ‘나는 이것을 깨달았다.’라고 선언해 주신다면 이 질문에 대한 최선의 답이라고 하겠지요. 새 책 독송집은 부처님께서 ‘여래는 이것을 깨닫고 실현했다.’라고 직접 선언하는 세 개의 경을 담고 있는데, 삼법인과 연기 그리고 세상에 있는 세상의 법이 오온이라는 것입니다. 이외에 많은 경을 통해서 부처님의 깨달음은 부연 되는데 모두 이 세 가지 깨달음에 대한 보충 설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깨달음은 삶의 이야기로 요약되는데, 번뇌 때문에 생겨나는 불완전한 조건 과정[연기(緣起)의 무명(無明)~취(取)]에서 생기는 불완전한 존재[유(有)]인 나에게 생(生)-노(老)-사(死)와 수비고우뇌(愁悲苦憂惱)가 생겨나고 일체의 괴로움 무더기가 자라나는 것이 중생으로의 삶이고, 그 조건 관계의 해소를 통해 존재의 불완전성이 해소됨으로써 생(生) 내지 일체 괴로움 무더기가 소멸하는 것이 불사(不死)의 실현 즉 생사 문제의 해결이어서 윤회에서 벗어나는 것이고, 이것이 열반의 실현 즉 깨달음입니다.


윤회에 대해서도 간략히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한국불교의 문제를 두 가지 관점에서 지적하는데, 단멸론자(斷滅論者)들이 한국불교를 지나치게 잠식하고 있다는 것과 과도한 힌두화입니다. 각각 단견(斷見-윤회 없음)과 상견(常見-아뜨만의 윤회)이지요. 부처님의 깨달음 즉 삶에 대한 관점은 단견(斷見)도 상견(常見)도 극복한 연기(緣起)된 식(識)의 윤회인데, 식(識)이 삶을 관통하여 윤회하기 때문에 단견(斷見)을 극복하는 것이고, 식(識)이 아뜨만[아(我)]이 아니라 삶의 과정을 누적하며 변화하는 것 즉 연기(緣起)된 것이기 때문에 상견(常見)도 극복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깨달아 알려주는 삶의 진실은 「연기(緣起)된 식(識)의 윤회(輪廻)」라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불교가 무아(無我)를 선언하는 한 불교에 윤회가 설 자리는 없다고 주장하는데, 연기된 식의 윤회는 「무아(無我)의 존재성 위에서 펼쳐지는 현상으로의 윤회」여서 무아(無我)와 윤회는 조금의 어긋남도 없이 잘 연결됩니다.


6. 불자로서 정체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믿음이 필요할 텐데요. 믿음이 견고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도움의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믿음이 무언지, 부처님은 어떤 믿음을 가져야 한다고 일러 주셨는지 알아야 합니다. 믿음은 퇴보로 이끄는 법들의 방어를 위한 힘[력(力)]에서도, 향상을 이끄는 동력으로 작용하는 기능[근(根)]에서도 출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데, 그만큼 불교는 믿음으로부터 시작된다고 하겠습니다.


이때, 믿음은 이렇게 정의됩니다. ― 「성스러운 제자는 믿음을 가졌다. ‘이렇게 그분 세존(世尊)께서는 모든 번뇌 떠나신 분, 스스로 완전한 깨달음을 이루신 분, 밝음과 실천을 갖추신 분, 진리의 길 보이신 분, 세상일을 모두 훤히 아시는 분, 어리석은 이도 잘 이끄시는 위없는 분, 신과 인간의 스승, 깨달으신 분, 존귀하신 분이시다.’라고 여래(如來)의 깨달음을 믿는다.」


부처님을 기도의 대상, 삶의 이치를 넘어서서 ‘부탁하면 들어주는 권능 가진 자’로 이해하면 안 됩니다. 부처님은 그런 존재가 아닙니다. 그래서 그런 믿음은 노력한 만큼의 성과를 돌려주지 못합니다. 오직 이런 아홉 가지 덕성을 갖춘 분이라고 바르게 알고, 그런 부처님을 믿는 것이 바른 믿음입니다. 이런 믿음 위에서 배워 알고 실천해야 하고, 이런 실천이 확고할 때 부처님이 이끄는 그런 삶이 나에게서 실현됩니다. 그리고 이런 실현 위에서 믿음은 다시 더 견고해집니다.


불교는 이런 믿음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런 믿음이 바르게 삶을 향상으로 이끕니다.


7. 청취자들에게 한 말씀 남겨주신다면요?


불교는 기도가 아니라 실천입니다. 부처님 가르침을 바르게 배워 알고 실천하여 삶이 향상하시기 바랍니다. 불교 신자의 삶이 향상해야 한국불교의 중흥을 이룰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고 법우님 자신이 행복하셔야 그것이 바른 신행입니다.



[4] 해피법당


1. 법당 이름도 그렇고, 스님 법명도 상당히 이채로운데요. 한자로 보니까 ‘해탈’의 ‘해’자와 ‘피안’의 ‘피’자입니다. 은사 스님께 받은 법명은 아니시죠?


해피는 출가 전에 제가 ‘풀 해’와 ‘저 피‘를 조합해서 만든 말인데요, 김수환 추기경의 ‘내 탓이오!’가 천주교 융성의 열쇠가 되던 시절, 불교 부흥의 열쇠가 될 표현을 고민하던 중 신해행증(信解行證)의 해(解)와 차유고피유(此有故彼有)의 피(彼)를 더하면 happy로 발음된다는 생각에서 만든 말입니다.


해(解-풀 해)는 이해하다 또는 잘 안다는 의미이고요, 피(彼-저 피)는 이것과 저것의 저것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解彼의 기본 의미는 저것 즉 삶에서 만나지는 대상을 잘 이해하고 잘 아는 것 즉 정견(正見-바른 견해)이라고 해야 합니다.


그런데 불교에는 정견(正見)으로 시작하는 교리가 있습니다. 팔정도(八正道)인데요,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길이고, 이 길의 실천을 통해 고멸(苦滅)을 실현하는 것이 사성제(四聖諦)의 고멸도(苦滅道)입니다.


고멸(苦滅-괴로움의 소멸)은 락(樂-행복-happiness)입니다. 그래서 팔정도(八正道)는 정견(正見) 즉 解彼로 시작해서 행복(happiness)을 실현하는 방법이지요. 그래서 해피는 팔정도 즉 ‘정견(正見)으로 시작하여 행복해지는 방법’이라는 의미입니다.


출가해서 받은 법명은 puññadīpa(뿐냐디-빠)입니다. 공덕-복을 의미하는 puñña와 빛 또는 섬을 의미하는 dīpa인데, 저의 경우는 ‘공덕의 섬’이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공덕을 짓는 삶을 통해서 스스로 안전한 섬이 되라는 의미인데, 자주(自洲)-법주(法洲)의 교리입니다.


2. 여전히 온라인 오프라인에서 강의하시느라 바쁘신데, 언제 강의 있는지부터 소개해주시죠.


• 화-수-목 ― ‘나는 불교를 믿는다’, 맛지마 니까야 관통 법회 & 앙굿따라 니까야 관통 법회


• 일 ― 법회 및 수행 모임


• 월~토 아침 ― 아침 독송 유튜브와 페이스북 방송 → 포살 & 법구경 강의


3. ‘해피스님’으로 검색하면 무척 많은 내용이 나오는데, 어떻게 스님과 함께 공부할 수 있는지요?


기본적으로 저희 홈페이지를 참고하실 수 있습니다.


근본경전연구회는 두 개의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는데, 동영상 등 공부를 정리하는 nikaya.kr과 니까야 번역 불사를 진행하는 sutta.kr입니다. sutta.kr은 니까야의 정해진 틀 위에서 번역해 가고 있기 때문에 니까야의 구성만 이해하면 경을 만나는 데 어려움이 없습니다. 그러나 nikaya.kr은 모든 공부를 하나의 홈페이지에 담아내려다 보니 구성이 산만해서 원하는 공부 내용을 직접 찾기에 어려움이 있기도 합니다.


그래도 저희가 매일 유튜브와 페이스북을 통한 방송을 진행하고 있으니 방송에 참여하여 공부를 만난 뒤에 궁금하신 점을 질문하시면 안내해 드리고 있습니다. 인터넷에서 ‘해피스님’을 검색하면 어렵지 않게 저희 공부에 연결되니 그렇게 참여하시면 되겠습니다.


물론, 부산에 계신 분들께서는 지하철 1호선 양정역에 닿아 있는 건물에 해피법당이 있으니 오셔서 공부에 직접 참여하시면 더욱 좋겠습니다. 전화번호는 051-864-4284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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