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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지마 니까야 관통

내적인 심(心)의 사마타와 법(法)의 위빳사나

0 456 2021.01.10 22:27

내적인 심(心)의 사마타와 법(法)의 위빳사나


(AN 5.73-법에 머무는 자 경1)/(AN 5.74-법에 머무는 자 경2)은 경(經), 응송(應頌), 상세한 설명[수기(授記)], 게송(偈頌), 감흥어(感興語), 여시어(如是語), 본생담(本生譚), 미증유법(未曾有法), 문답(問答)[방등(方等)]의 법을 철저히 배운 뒤 내적인 심(心)의 사마타를 실천하고(AN 5.73-법에 머무는 자 경1), 지혜로써 더 높은 의미를 꿰뚫어 아는 사람(AN 5.74-법에 머무는 자 경2)을 법에 머무는 자(dhammavihārī)라고 말합니다.


교학을 통해 길을 배워 알고, 내적인 심(心)의 사마타로 깨달음을 위한 발판을 삼고, 지혜로써 번뇌를 부수어 깨달음을 실현하는 사람이 법에 머무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내적인 심(心)의 사마타는 무엇이고, 지혜로써 깨닫는 과정은 어떻게 됩니까?


경은 내적인 심(心)의 사마타와 법(法)의 위빳사나 그리고 사마타와 위빳사나라는 두 가지 쌍으로 구성된 길을 설명하는데, 여기서는 내적인 심(心)의 사마타와 법(法)의 위빳사나를 중심으로 설명하였습니다.


1. 실다운 지혜(abhiññā)를 얻는 과정


수행(修行-bhāvanā)은 두 단계로 제시됩니다. 실다운 지혜(abhiññā)의 전(前)과 후(後)인데, 후(後)의 과정은 무명(無明-avijjā)과 유애(有愛-bhavataṇhā)를 버리고 명(明-vijjā)과 해탈(解脫-vimutti)을 실현하는 사마타(samatha)와 위빳사나(vipassanā)라고 설명됩니다(AN 4.254-실다운 지혜 경). 


이때, (AN 2.22-32 – 어리석은 자 품)은 사마타와 위빳사나를 명(明)과 연결되는 두 가지 법이라고 소개하는데, 사마타와 위빳사나에 대한 대표적인 설명입니다. 또한, 사마타는 들뜸의 버림을 위한 것인데(AN 6.116-들뜸 경), 사마타로 가라앉히고 위빳사나로 관찰하는 차이도 함께 알 수 있습니다.


깨달음도 수행에 대응하여 두 단계로 제시되는데, 실답게 알다(abhijānāti)-실다운 지혜(abhiññā)로 지시되는 여실지견(如實知見)과 완전히 알다(parijānāti)-완전한 지혜(pariññā)로 지시되는 부동(不動)의 심해탈(心解脫)[인간을 넘어선 법인 성자들에게 적합한 차별적 지(知)와 견(見)의 완성]입니다. 이때, 여실지견의 단계는 예류자(預流者)의 경지인데, 사실[무상(無常)-고(苦)-무아(無我)] 그대로의 앎과 봄이고, 부동(不動)의 심해탈(心解脫)[인간을 넘어선 법인 성자들에게 적합한 차별적 지(知)와 견(見)의 완성]의 단계는 아라한(阿羅漢)의 경지인데, 번뇌가 부서진 완전한 앎과 봄입니다.


이렇게 무명(無明)과 유애(有愛)를 버리는 과정 즉 사마타와 위빳사나는 무명(無明)의 조건인 번뇌(MN 9-정견(正見) 경)를 부수는 과정이고, 깨달음은 번뇌의 부서짐[누진통(漏盡通)-누진명(漏盡明)-āsavakkhayañāṇaṃ]으로 완성됩니다. 그래서 실다운 지혜(abhiññā)는 번뇌의 부서짐을 위한 준비를 갖춘 지혜(paññā)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전(前)의 과정은 번뇌를 부수기 위한 준비 과정이라고 할 수 있는데, (AN 4.93-삼매 경2)/(AN 4.94-삼매 경3)은 「내적인 심(心)의 사마타도 얻었고 높은 지혜의 법의 위빳사나도 얻은 사람은 그 법들에 확고히 선 후 더 나아가 번뇌들의 부서짐을 위한 수행을 해야 한다.」라고 하여, 실다운 지혜(abhiññā)를 얻는 과정 즉 첫 단계 깨달음인 여실지견(如實知見)에 이르는 과정이 내적인 심(心)의 사마타(ajjhattaṃ cetosamatha)와 높은 지혜의 법(法)의 위빳사나(adhipaññādhammavipassanā)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그래서 수행은 「내적인 심(心)의 사마타-(높은 지혜의) 법(法)의 위빳사나 → 여실지견(如實知見) → 사마타-위빳사나 → 부동(不動)의 심해탈(心解脫)」로 요약되는데, 계(戒)의 토대 위에서 내적인 심(心)의 사마타로 삼매에 든 뒤 심(心)이 일어나서 드러나는 법(法)에 대해 법(法)의 위빳사나로 여실지견(如實知見)에 이르면, 실다운 지혜로 닦아야 하는 법들 즉 사마타-위빳사나로 번뇌를 부수어 명(明)과 해탈(解脫)을 실현하는 과정입니다.

 

• 내적인 심(心)의 사마타 → 심(心)의 집중에 의한 진정과 가라앉음

• 법(法)의 위빳사나 → 무상(無常)의 관찰 → 여실지견(如實知見)


• 사마타 → 집중된 상태에서 심(心)의 내적인 흔들림의 제어

• 위빳사나 → 오온(五蘊)의 생겨남-무너짐의 관찰 → 부동(不動)의 심해탈(心解脫)


2. 내적인 심(心)의 사마타와 법(法)의 위빳사나


(AN 4.94-삼매 경3)은 내적인 심(心)의 사마타와 법(法)의 위빳사나가 무엇인지 설명해 줍니다.


1) 내적인 심(心)의 사마타 ― 「ajjhattameva cittaṃ saṇṭhapeti sannisādeti ekodiṃ karoti samādahati 안으로 심(心)을 진정시키고 가라앉게 하고 집중되게 하고 삼매에 든다.」


작의(作意-manasikāra)의 대상에 심(心)을 집중하여 진정시키고 가라앉게 하여 삼매에 드는 수행을 내적인 심(心)의 사마타라고 정의하는 것인데, 심일경성(心一境性-cittassa ekaggatā)이라는 삼매의 정의와 연결됩니다.


2) 법(法)의 위빳사나 ― 「‘kathaṃ nu kho, āvuso, saṅkhārā daṭṭhabbā? kathaṃ saṅkhārā sammasitabbā? kathaṃ saṅkhārā vipassitabbā’ ti? 도반이여, 참으로 행(行)들을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행(行)들을 어떻게 철저히 알아야 합니까? 행(行)들을 어떻게 꿰뚫어 보아야 합니까?」 


법(法) 가운데 열반(涅槃)을 제외한 것을 말하는 행(行)들 즉 번뇌의 영향 위에 있는 모든 것을 ‘보고, 철저히 보고, 꿰뚫어 보는[제행무상(諸行無常)]’ 방법이 법(法)의 위빳사나라는 정의인데, 무상(無常)의 관찰을 통해 여실지견(如實知見)에 이르는 과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편, (SN 47.35-사띠 경)은 ‘어떻게 사띠 하는가?’의 질문에 사념처(四念處)를, ‘어떻게 삼빠자나 하는가?’의 질문에 


「viditā vedanā uppajjanti, viditā upaṭṭhahanti, viditā abbhatthaṃ gacchanti; viditā saññā uppajjanti, viditā upaṭṭhahanti, viditā abbhatthaṃ gacchanti; viditā vitakkā uppajjanti, viditā upaṭṭhahanti, viditā abbhatthaṃ gacchanti 수(受)는 보이는 것이 생기고, 보이는 것이 현재하고, 보이는 것이 없어진다. 상(想)은 보이는 것이 생기고, 보이는 것이 현재하고, 보이는 것이 없어진다. 위딱까는 보이는 것이 생기고, 보이는 것이 현재하고, 보이는 것이 없어진다.」


라고 대답하는데, (MN 111-순서대로 경)에 의하면, 이것이 법(法)의 위빳사나입니다. 행(行)들을 어떻게 ‘보고, 철저히 보고, 꿰뚫어 보아야 하는지’의 질문에 대한 답인 것입니다.


이렇게 내적인 심(心)의 사마타는 ①작의(作意)의 대상에 대한 이어보기(anupassī)를 통한 심(心)의 집중과 진정과 가라앉음이어서 삼매로 이끄는 것이고, 법(法)의 위빳사나는 ②삼매 위에서 드러나는 법(法)에 대한 이어보기(anupassī)를 통한 생겨나고 머물고 없어지는 과정 즉 무상(無常)의 관찰이어서 여실지견(如實知見)으로 이끕니다. 


3. 염처수행(念處修行-satipaṭṭhānabhāvanā)과 삼매수행(三昧修行-samādhibhāvanā)


한편, (DN 22/MN 10-대념처경)은 이어보며 머묾(anupassī viharati)의 단계적 향상기법을 제시하는데, ①안과 밖에서 신(身)-수(受)-심(心)-법(法)을 이어봄으로써 신(身)-수(受)-심(心)-법(法)에 확고히 머무는 과정[→삼매]과 ②삼매 위에서 드러나는 법들의 자라나고 무너지는 과정 즉 무상(無常)의 관찰 과정이어서 ①은 내적인 심(心)의 사마타이고, ②는 법(法)의 위빳사나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때, (SN 47.40-분석 경)에 의하면, ① 내적인 심(心)의 사마타는 염처(念處-satipaṭṭhāna)여서 신(身)-수(受)-심(心)-법(法)의 사념처(四念處)이고, ②법(法)의 위빳사나는 염처수행(念處修行-satipaṭṭhānabhāvanā)입니다. 


또한, (AN 4.41-삼매수행(三昧修行) 경)은 닦고 많이 행하면 1)지금여기의 행복한 머묾, 2)지(知)와 견(見)의 얻음, 3)염(念)-정지(正知), 4)번뇌들의 부서짐으로 이끄는 네 가지 삼매수행(三昧修行-samādhibhāvanā)을 말합니다.


1) 사선(四禪)을 성취하여 머묾 : 작의(作意)의 대상 = 신(身)-수(受)-심(心)-법(法) = 내적인 심(心)의 사마타 → 지금여기의 행복한 머묾


2) 광명상(光明想)을 작의(作意)[ālokasaññaṃ manasi karoti] = 내적인 심(心)의 사마타 ― 낮의 상(想)을 확립 ― 빛을 가진 심(心)을 닦음 → 지(知)와 견(見)의 얻음으로 이끎[→ 법(法)의 드러남]


3) 법(法)의 위빳사나 → 염(念)-정지(正知)(satisampajañña)로 이끎


4) 오온(五蘊)의 생겨남과 무너짐을 이어보면서 머묾 → 번뇌들의 부서짐으로 이끎 = 위빳사나


4. 내적인 심(心)의 사마타(ajjhattaṃ cetosamatha)의 영역


심(心)을 집중하여 진정시키고 가라앉게 하여 삼매에 들게 하는 것으로의 내적인 심(心)의 사마타는 삼매의 단계의 측면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삼매는 초선(初禪)~상수멸(想受滅)의 아홉 단계로 구성되는데, 구차제정(九次第定)[구차제주(九次第住)-구차제멸(九次第滅)]입니다. 그래서 초선(初禪)을 성취하는 과정도 심(心)을 집중하여 진정시키고 가라앉게 하여 삼매에 들게 하는 것이고, 그 이상의 삼매를 성취하는 과정도 심(心)을 집중하여 진정시키고 가라앉게 하여 삼매에 들게 하는 것입니다. 다만, 상수멸(想受滅)은 사마타와 위빳사나의 도움으로 증득되는 것이어서(SN 41.6-까마부 경2), 심(心)을 집중하여 진정시키고 가라앉게 하여 삼매에 들게 하는 것 즉 내적인 심(心)의 사마타의 영역은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의 성취까지라고 이해해야 합니다. 


경들은 주제에 따라 무심무사(無尋無伺)의 삼매를 성취하는 과정으로의 내적인 심(心)의 사마타를 언급하는 경우를 여럿 볼 수 있는데, 이런 단계 지어짐의 측면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초선(初禪)을 성취하는 과정도 심(心)을 집중하여 진정시키고 가라앉게 하여 삼매에 들게 하는 내적인 심(心)의 사마타로 설명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 (MN 19-두 부분의 떠오름 경) ― 심(心)이 산란해지지 않게 함 → 제이선(第二禪)


• (MN 36-삿짜까 큰 경) ― 이전의 삼매의 상(相)에서


• (MN 122-공(空)의 큰 경) ― 안으로 공(空)을 성취해서 머물고자 하면


• (MN 20-떠오름의 구성 경) ― 악하고 불선(不善)한 떠오름들의 버려짐으로부터 → 초선(初禪)


• (MN 119-신념처경) ― 세간(世間)의 삶과 연결된 기억과 사유들의 버려짐으로부터 → 초선(初禪)


• (SN 35.199-류트 비유 경) ― 육촉처(六觸處)에서 심(心)을 올곧게 정복하고 잘 정복할 때


• (AN 3.102-흙을 씻는 사람 경) ― 법의 삼매 이후 → 제이선(第二禪)


• (AN 4.170-쌍 경) ― 의(意)가 법의 들뜸에 붙잡힘에서 벗어남 → 초선(初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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