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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승(佛法僧)

법의 정형구에 대한 두 단계의 해석 ㅡ [1단계 해석]

0 1,180 2017.09.30 20:30
● 법의 정형구에 대한 두 단계의 해석
 
 [1단계 해석]
 
법(法-dhamma)의 정형구는 <계속해서 생각함의 장소 경(A6:25)> 등 여러 경전에서 나타나는데, 「부처님의 가르침[진리] - 괴로움을 소멸하는 방법」에 대한 정의라고 할 것입니다. 
 
‘svākkhāto bhagavatā dhammo sandiṭṭhiko akāliko ehipassiko opaneyyiko paccattaṃ veditabbo viññūhī’ti.
 
부처님에 의해 잘 설해진 담마는, 스스로 보아 알 수 있고, 시간이 걸리지 않고, 와서 보라는 것이고, 향상으로 인도하고, 지자들이 각자 알아야 하는 진리입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법의 정형구를 어떤 상황을 설정하여 설명합니다. 내 안에서 경험되는 탐진치(貪嗔癡)에 대한 상황입니다. <우빠와나 경(S35:70)> 등 여러 경전은 유사한 방법으로 법의 정형구를 설명해 주는데, 법의 의미를 추상적으로 이해하지 않고 삶과 수행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으로 설명하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스스로 보아 알 수 있는 법, 스스로 보아 알 수 있는 법'이라고들 합니다. 도대체 어떻게 해서 법은 스스로 보아 알 수 있고, 시간이 걸리지 않고, 와서 보라는 것이고, 향상으로 인도하고, 지자들이 각자 알아야 하는 것입니까?」라는 우빠와나 존자의 질문에 대해, 부처님은 「우빠와나여, 여기 비구는 눈으로 형색을 보고 나서 형색을 경험하고 형색에 대한 탐(貪)도 경험한다. 그러면 그는 '내 안에는 형색들에 대한 탐(貪)이 있구나.'라고 하면서 자기 안에 형색들에 대한 탐(貪)이 있음을 꿰뚫어 안다. 우빠와나여, 이렇게 꿰뚫어 아는 것을 두고 '스스로 보아 알 수 있고, 시간이 걸리지 않고, 와서 보라는 것이고, 향상으로 인도하고, 지자들이 각자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라고 한다. 우빠와나여, 여기 비구는 눈으로 형색을 보고 나서 형색을 경험하지만 형색에 대한 탐(貪)은 경험하지 않는다. 그러면 그는 '내 안에는 형색들에 대한 탐(貪)이 없구나.'라고 하면서 자기 안에 형색들에 대한 탐(貪)이 없음을 꿰뚫어 안다. 우빠와나여, 이렇게 꿰뚫어 아는 것을 두고 '스스로 보아 알 수 있고, 시간이 걸리지 않고, 와서 보라는 것이고, 향상으로 인도하고, 지자들이 각자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라고 한다.」라고 답합니다. 부처님의 답변은 눈-귀-코-혀-몸-mano로 형색-소리-냄새-맛-감촉-dhamma를 감각하는 전체영역에 걸쳐 주어집니다.
 
이 말씀은 법 자체의 성품을 설명하는 '법은 스스로 보아 알 수 있고, 시간이 걸리지 않고, 와서 보라는 것이고'의 부분과 부가적 설명인 '향상으로 인도하고, 지자들이 각자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의 부분으로 나누어 이해할 수 있는데, 이렇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1) '내 안에 탐(貪)이 있구나.'라는 것은 직접 확인이 가능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탐(貪)이 드러나 보이게 하는 어떤 특별한 진언[탐욕 보기 진언]을 만들어 100번쯤 외워야 드러나는 비밀스러움 없이 그냥 드러나 보이는 것입니다.
 
2) 그리고 드러나는 그 순간 보입니다. 탐(貪)이 일어나고 10분쯤 후에 알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3) 그러나 누구나 '내 안에 탐(貪)이 있구나.'라고 보지는 못합니다. 그러면 누가 볼 수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가서 보려고 하는 사람[sati하는 사람]에게 보입니다.
 
4) 이렇게 가서 보는 사람은 자기 안에 있는 탐(貪)을 제어하게 됩니다. 그러면 탐(貪)이 제어된 삶 즉 향상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닙바나[열반(涅槃)]으로 이끌리는 것입니다.
 
5) 그런데 자기 안에 있는 탐(貪)은 누가 대신 보아주지 못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각자가 스스로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지혜로운 사람입니까? 그렇습니다. 가서 보려는 사람[수행자]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스스로 가서 보려하지 않으면 탐(貪)은 스스로 드러나 보여지지 않는 것입니다.
 
동일한 이야기를 호흡수행에 대해서도 적용해 보았습니다.
 
1) '내가 숨 쉬고 있구나.'라는 것은 직접 확인이 가능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호흡 보기 진언을 만들어 100번쯤 외워야 드러나는 비밀스러움 없이 그냥 드러나 보이는 것입니다.
 
2) 그리고 드러나는 그 순간 보입니다. 숨 쉬고 나서 10분쯤 후에 알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3) 그러나 누구나 '내가 숨 쉬고 있구나.'라고 보지는 못합니다. 그러면 누가 볼 수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가서 보려고 하는 사람[sati하는 사람]에게 보입니다.
 
4) 이렇게 가서 보는 사람의 sati는 힘 있어집니다. 그러면 바른 삼매가 성취되어 여실지견(如實知見)하게 되고, 사마타-위빳사나의 수행이 이어져 삶은 괴로움의 소멸로 향하게 됩니다. 즉 향상하는 삶을 살게 되고, 닙바나[열반(涅槃)]으로 이끌리는 것입니다.
 
5) 그런데 자기의 호흡은 누가 대신 보아주지 못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각자가 스스로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지혜로운 사람입니까? 그렇습니다. 가서 보려는 사람[수행자]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스스로 가서 보려하지 않으면 호흡은 스스로 드러나 보여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법은 이렇게 '스스로 보아 알 수 있고, 시간이 걸리지 않고, 와서 보라는 것‘이어서 법의 성품에 맞게 대응하면 향상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다만, 현명한 사람이 각자 알아야 하는 것이지 누가 대신해주지 못한다는 것은 명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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