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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제설법

<불교입문(1-소유)> Ⅰ. 순서대로의 가르침[차제설법(次第說法-anupubbikathā)]

0 174 2022.05.15 21:51

Ⅰ. 순서대로의 가르침[차제설법(次第說法-anupubbikathā)]


▷ 내용의 전개상 어려운 주제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법은 「보시(布施)-오계(五戒) → 하늘에 태어남 → 더 높은 삶의 지향 → 깨달음의 실현」의 순서를 가지고 설해진다는 내용인데, 하늘 또는 더 높은 삶 등에 대한 설명 때문에 어렵게 느껴질 수 있게 서술되었습니다. 삶과 세상에 대해 그림으로 나타내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중생세상의 구분 ㅡ 욕계(慾界)-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


• 욕계(慾界) ㅡ 마음과 몸과 물질세상에 대한 집착의 영역

• 색계(色界) ㅡ 마음과 몸에 대한 집착의 영역 – 욕상(慾想)의 극복

• 무색계(無色界) ㅡ 마음에 대한 집착의 영역 – 색상(色想)의 극복


삶에는 세 가지 형태가 있습니다. 욕계(慾界) 중생의 삶을 의미하는 소유의 삶[욕(慾)]과 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 중생의 높은 삶을 의미하는 존재의 삶[유(有)] 그리고 중생의 영역을 벗어난 해탈된 삶[멸(滅)]입니다. 이때, 중생의 삶은 탐(貪)-진(嗔)-치(癡)를 원인으로 생(生)-노(老)-사(死)를 반복하는 윤회(輪迴)하는 삶입니다. 이런 이해 위에서 불교 공부의 본연 자리는 탐(貪)-진(嗔)-치(癡)의 원인을 해소함으로써 존재의 삶을 벗어나 해탈된 삶으로 나아가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그 과정에 들지 못한 자는 범부(凡夫-puthujjana)라 하고, 그 과정에 있는 자는 유학(有學-sekha)이라 하며, 그 과정을 마치고 해탈된 삶을 실현하면 무학(無學-asekha)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유학(有學)과 무학(無學) 즉 벗어남의 영역에 있는 자들을 성자(聖者-ariya)라고 합니다.


그러나 존재 또는 존재를 덧씌우고 있는 소유를 삶의 동력으로 하는 중생들에게 해탈된 삶 즉 벗어남의 영역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중생들에게는, 삶에 대한 이해를 통해, 부처님과 가르침에 대한 믿음을 일으키고 해탈된 삶을 지향하며 실천하게 만드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경은 이 과정을 「순서대로의 가르침[차제설법(次第說法-anupubbikathā)]」이라고 합니다. 아직 준비되지 않은 제자들을 위해 시작에서부터 ①부처님에 대한 믿음이 확고해지고, ②무상(無常)이라는 법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는 때까지가 순서대로 설하는 가르침의 기법인데, 이렇게 설명됩니다. ㅡ 「그러자 세존은 ~에게 순서대로의 가르침을 설했다. 보시(布施)의 가르침, 계(戒)의 가르침, 천상(天上)의 가르침, 소유의 삶의 위험과 저열함과 오염, 출리(出離)에 대한 이익을 설명했다. 세존은 ~의 심(心)이 준비되고, 부드러워지고, 장애에서 벗어나고, 높아지고, 고와진 것을 아셨을 때, 부처님들의 찬탄 받는 설법인 고(苦)-집(集)-멸(滅)-도(道)를 설명했다. 예를 들면, 얼룩이 없는 깨끗한 천은 색깔을 잘 받을 것이다. 이처럼 그 자리에서 ~에게 ‘무엇이든지 자라나는 것은 모두 소멸하는 것이다.’라는 티끌이 없고 때가 없는 법의 눈[법안(法眼)]이 생겼다.」


보시(布施)와 계(戒)의 실천으로 천상(天上)에 태어나는 가르침에 이어, 하늘이라고 해도 소유의 삶 즉 욕계(慾界)에 속한 삶은 위험하고 저열하고 오염된 것이므로 출리(出離) 즉 소유의 삶을 벗어나는 것은 큰 이익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가르침을 듣고 그 심(心)이 마치 얼룩이 없는 깨끗한 천처럼 준비되고, 부드러워지고, 장애에서 벗어나고, 높아지고, 고와지면 모든 부처님의 공통된 법인 고(苦)-집(集)-멸(滅)-도(道)를 설하게 되는데, 「준비되지 못하고, 경직되고, 장애에 묶이고, 저열하고 거친 심(心)으로는 접근할 수 없는 어떤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무엇이든지 자라나는 것은 모두 소멸하는 것이다.’라는 티끌이 없고 때가 없는 법의 눈[법안(法眼)]입니다. 


그런데 법안(法眼)은 두 개의 동사와 연결되어 나타납니다. 하나는 여기의 법안이 생김(dhammacakkhuṃ udapādi)이고, 다른 하나는 법안을 얻음(dhammacakkhupaṭilābho)입니다.


이때, 법안을 얻음(dhammacakkhupaṭilābho)은 상윳따 니까야 제13번 관통 상윳따의 열 개 경에 나타나는데, 모두 ‘법의 관통은 이렇게 큰 이익이 있고, 법안을 얻음은 이렇게 큰 이익이 있다.’입니다. 특히, 경들은 견해를 갖추고 관통을 가진 자에게 최대 일곱 생(生)만이 남아있다고 하여 견해를 갖춘 자, 관통을 가진 자, 법안을 얻은 자가 예류자(預流者)인 것을 알려줍니다.


그렇다면 예류자의 성취와는 다른 경지를 말하는 것인 법안이 생김(dhammacakkhuṃ udapādi)은 무엇입니까?


법안이 생김은 차제설법을 설하는 여덟 개의 경에서 중심 주제로 나타납니다. 이외에 부처님과의 대화 상대방이 직접 법안이 열리는 경우로서 신들의 왕 삭까(DN 21-삭까의 질문 경), 디가나카 유행승(MN 74-디가나카 경), 병든 신진 비구(SN 35.57-병실 경1), 최초로 법을 이해한 꼰단냐 존자(SN 56.11-전법륜경)의 일화가 있고, 라훌라 존자의 깨달음의 일화에서 주변의 신들이 법안을 얻는 경우(MN 147-라훌라를 가르친 짧은 경/SN 35.104-라훌라를 가르친 경)의 용례가 있습니다. 특히, (SN 35.198-낑수까 나무 비유 경)은 '무엇이든지 자라나는 것은 모두 소멸하는 것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 때, 그만큼 비구에게 견(見)의 아주 청정함이 있습니다.’라고 말하는데 예류자입니다. 그래서 법안을 얻음으로의 예류자는 ‘법안이 생긴 뒤에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아는 자’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법안이 생김의 의미는 ‘차제설법을 설하는 여덟 개의 경에서 중심 주제로 나타나는 경우’를 살펴보아야 알 수 있습니다. 우선, 이 경우의 경들은 모두 「그리고 ‘법을 보고, 법을 얻고, 법을 알고, 법을 관통하고, 의심을 건너고, 불확실에서 벗어나고, 자기 확신을 얻고, 스승의 가르침에서 다른 스승을 의지하지 않게 된’ ~는 세존에게 이렇게 말했다.」라고 이어지는데, 두 가지 측면에서 차제설법의 성과를 알려줍니다. ㅡ ①부처님께 귀의하여 제자가 됨, ②이전의 대화로써 남신자가 된 제자에게 바른길을 안내함


1. (DN 3-암밧타 경) : 차제설법 → 귀의하여 남신자가 됨

2. (DN 5-꾸따단따 경) : 대화를 통해 남신자가 된 뒤에 차제설법을 설함 → 비구 상가와 함께하는 공양을 청함

3. (DN 14-대전기경) : 차제설법 → 귀의하여 출가함 

4. (MN 56-우빨리 경) : 대화를 통해 남신자가 된 뒤에 차제설법을 설함 → 니간타를 위한 문을 닫고 세존의 제자들을 위한 문을 엶

5. (MN 91-브라흐마유 경) : 차제설법 → 귀의하여 남신자가 됨 → 비구 상가와 함께하는 공양을 청함

6. (AN 8.12-시하 경) : 대화를 통해 남신자가 된 뒤에 차제설법을 설함 → 비구 상가와 함께하는 공양을 청함

7~8. (AN 8.21-욱가 경1)/(AN 8.22-욱가 경2) : 세존을 멀리서 처음 보는 것과 동시에 세존에게 믿음을 가짐 → 차제설법 → 범행(梵行)을 다섯 번째로 하는 학습계율을 받아들임


한편, 차제설법의 정형문에서 주목할 점은 또 있습니다. 「심(心)이 준비되고, 부드러워지고, 장애에서 벗어나고, 높아지고, 고와진 것을 아셨을 때, 부처님들의 찬탄 받는 설법인 고(苦)-집(集)-멸(滅)-도(道)를 설명」하는데, 도(道)의 원어가 사성제(四聖諦)[고(苦)-고집(苦集)-고멸(苦滅)-고멸도(苦滅道)]의 도와 다르다는 것입니다. 차제설법의 도(道)는 magga(막가)여서 길/방법이고, 사성제의 도(道)는 paṭipadā(빠띠빠다-)여서 실천입니다. 그래서 고멸도(苦滅道)는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실천(dukkhanirodhagāminī paṭipadā)’입니다.


그렇다면 차제설법에서의 고(苦)-집(集)-멸(滅)-도(道)는 깨달음으로 이끌리는 실천의 지도(指導)가 아니라 삶에 대한 이해를 위한 가르침이라고 해야 합니다. 삶에는 이런 문제가 있고[고(苦)], 그 문제에는 이런 원인이 있으며[집(集)], 문제의 해소[멸(滅)]를 위해서는 이런 방법[도(道)]이 있다는 설명입니다. 이런 설명을 통해 삶에 대해 이해하게 되면, 원인[집(集)] 즉 자라나는 것은 무엇이든지 모두 소멸시킬 수 있다고 알게 되는데, 법안(法眼)이 생겨난 것입니다. 그렇게 부처님에 대한 믿음을 일으키는 것 그래서 가르침의 중심에 있는 존재하는 것들의 이치인 무상(無常)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법안의 생김’의 의미입니다. 그때, 귀의하고 부처님의 제자가 되는데, 재가자이거나 출가자입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출가자를 중심으로 사성제(四聖諦)에 의한 고멸(苦滅)의 실천으로써 깨달음을 실현하는 것이 불교의 전체 과정이라고 하겠습니다.


이렇게 불교신자에게는 법안(法眼)의 생김이 필요합니다. 「①부처님에 대한 믿음이 확고해지고, ②무상(無常)이라는 법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苦)-집(集)-멸(滅)-도(道)의 가르침이 필요한데, 이것은 「준비되지 못하고, 경직되고, 장애에 묶이고, 저열하고 거친 심(心)으로는 접근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심(心)이 마치 얼룩이 없는 깨끗한 천처럼 준비되고, 부드러워지고, 장애에서 벗어나고, 높아지고, 고와지기 위해서 「보시(布施)-계(戒) → 천상(天上) & 소유의 삶의 위험 → 출리(出離)의 이익」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불교(佛敎)는 보시(布施)와 계(戒)의 실천으로 하늘에 태어나는 가르침입니다. 낮은 욕계(慾界)의 제한을 넘어 더 높은 삶으로 나아가는 가르침입니다. 그리고 그 위에서 심(心)을 준비하여 중생으로의 불만족한 삶[윤회(輪迴)]에서 벗어나 완전한 행복을 실현하는 가르침입니다. 이때, 이 책은 주로 「보시(布施)와 계(戒)의 실천으로 하늘에 태어나는 가르침에 중심을 두고, 더 높은 삶으로의 나아감을 소개」하고 있는데, 보시(布施)와 계(戒)는 살아서의 행복도 함께 제공합니다.


그런데 이 가르침은 부처님의 깨달음의 과정입니다. 다만, 부처님의 깨달음의 과정에는 스승이 없었기 때문에 소유의 삶에서 벗어난 뒤[출리(出離)]에 고행(苦行)이라는 시행착오를 거치고서야 깨달음의 바른길을 발견하게 되는데, 제자들에게는 시행착오의 과정이 배제된 완성된 길을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MN 85-보디 왕자 경)[소유의 사유의 비유]과 (SN 56.11-전법륜(轉法輪) 경)으로 이해하는 중도(中道)」의 그림으로 나타내었습니다.


※ (AN 7.52-큰 결실이 있는 보시 경) 등에 의하면, 보시는 심(心)의 돛을 다는 일입니다. 더 높은 삶, 해탈(解脫)-열반(涅槃)을 향한 항로를 위해 돛을 달고 출발하는 것, 그것이 바로 보시입니다. 그래서 더 높은 삶, 해탈(解脫)-열반(涅槃)을 지향하는 불교신자의 삶은 보시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한편, 차제설법(次第說法)[anupubbikathā - ‘anupubbiṃ kathaṃ kathesi’]이란 표현이 나타나는 경이 하나 더 있는데, 남에게 법을 설하는 자는 먼저 안으로 다섯 가지 사항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하는 (AN 5.159-우다이 경)입니다. 이때 다섯 가지 사항은

 

1) ‘나는 순서대로의 가르침을 설하리라[차제설법(次第說法)].'라고 생각할 것,

2) '나는 되어감을 보면서 가르침을 설하리라.'라고 생각할 것,

3) '연민을 연(緣)하여 가르침을 설하리라.'라고 생각할 것,

4) '안으로 욕심을 가지고 가르침을 설하지 않으리라.'라고 생각할 것,

5) '자신도 남도 상처받지 않게 가르침을 설하리라.'라고 생각할 것

 

입니다. 경은 이렇게 마무리됩니다. - “아난다여, 남들에게 법을 설하기는 쉽지 않다. 아난다여, 남들에게 법을 설하는 자는 안으로 이런 다섯 가지 법을 준비한 뒤에 남들에게 법을 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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