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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출발 법회

새출발법회 9주차 - [오계=무외시 & 보시의 특성=나누어가짐=복(福)]

0 1,574 2017.08.08 19:13

[동영상] ☞ https://youtu.be/VXV8So7mhUc

 

쉽지만 어긋남이 없는 공부를 위해 해피법당이 개설하는 새출발법회 아홉 번째 시간입니다.

    

최근 사무량심(四無量心)-사섭법(四攝法)에 의해 부작용 없이 내 편 만드는 방법을 공부하고 있는데요, 지난주에는 사섭법 각각에서 으뜸 되는 것을 공부하였습니다. <힘 경(A9:5)[balasuttaṃ]>이었지요.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섭수의 힘인가? 비구들이여, 네 가지 섭수하는 행위[四攝事](cattārimāni saṅgahavatthūni)가 있나니, 보시(布施), 애어(愛語), 이행(利行), 동사(同事)이다. 비구들이여, 

 

1) 보시 가운데 으뜸은 법보시[dhammadāna]이다. 

2) 사랑스런 말 가운데 으뜸은 듣고자 하고 귀를 기울이는 자에게 거듭거듭 법을 설하는 것이다. 

3) 이로운 행위 가운데 으뜸은 

 

① 믿음이 없는 자에게 믿음을 가지도록 격려하고, 믿음에 머물게 하고, 확고하게 굳히도록 하며,

② 계행이 나쁜 자에게 계를 지키도록 격려하고, 계에 머물게 하고, 확고하게 굳히도록 하며,

③ 인색한 자에게 베풂을 구족하도록 격려하고, 베풂에 머물게 하고, 확고하게 굳히도록 하며,

④ 지혜가 없는 자에게 지혜를 구족하도록 격려하고, 지혜에 머물게 하고, 확고하게 굳히도록 하는 것이다.

    

4) 함께 함 가운데 으뜸은 예류자는 예류자와 함께하고 일래자는 일래자와 함께하고 불환자는 불환자와 함께하고 아라한은 아라한과 함께함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섭수의 힘이라 한다.」 

 

이 가운데 지난주에는 함께 함 즉 동사(同事)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해 보았습니다. 구원 또는 구제 받을 대상 또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그들과 함께하는 것은 동사(同事)이기보다는 이행(利行)의 측면에서 접근해야 할 것이고, 동사(同事)는 어느 그룹에 나를 소속시킬 것인지의 측면에서 이해한 것입니다. 

 

술친구의 그룹에 나를 소속시킬 것인지, 봉사모임에 나를 소속시킬 것인지, 공부모임에 나를 소속시킬 것인지에 따라 내 삶의 커다란 흐름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경전은 「함께 함 가운데 으뜸은 예류자는 예류자와 함께하고 일래자는 일래자와 함께하고 불환자는 불환자와 함께하고 아라한은 아라한과 함께함이다.」라고 하여 공부하는 사람[유학(有學)]의 모임에 나를 소속시킴으로써 공부를 완성하라고 알려주는 것입니다. 

 

이때 삶을 향상으로 이끄는 모임에 함께하는 사람들을 ‘좋은 친구[선우(善友)]’라고 하는데, 부처님은 당신조차도 좋은 친구로 삼아 삶을 괴로움에서 건져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숫따니빠따 코뿔소의 외뿔의 경>이 설하는 가르침도 소개해 드렸습니다. 

 

「만일 그대가 어질고 단호한 동반자, 성숙한 벗을 얻는다면, 어떠한 난관들도 극복하리니, 기쁘게 sati[념(念)]를 갖추어 그와 함께 가라.

만일 그대가 어질고 단호한 동반자, 성숙한 벗을 얻지 못한다면, 왕이 정복한 나라를 버리듯, 코뿔소의 외뿔처럼 혼자서 가라. 

 

우리는 참으로 친구를 얻은 행복을 기린다. 훌륭하거나 비슷한 친구를 사귀되, 이런 벗을 만나지 못하면 허물없음을 즐기며, 코뿔소의 외뿔처럼 혼자서 가라.」 

 

단지 교제를 위하여, 외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한 교제 자체를 목적으로 ‘어질고 단호한 동반자, 성숙한 벗’ 아닌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다고 알려주는 것입니다. 

 

오늘과 다음 주에는 사섭법 중 첫 번째인 보시(布施)의 으뜸에 대해서 공부하려합니다. 

 

보시에는 재시(財施)-법시(法施)-무외시(無畏施)의 세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 법시(法施)가 으뜸이라는 것입니다. 

 

재시(財施)는 물질적인 베풂이고, 법시(法施)는 가르침의 전달이고, 무외시는 오계(五戒)를 지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는 두 가지 내용을 공부해야 합니다. 

 

첫째, 오계(五戒)를 지키는 삶이 무외시(無畏施)라는 것은 <넘쳐흐름 경(A8:39)>에서 말해 주는데,「오계(五戒)를 지키는 성스러운 제자는 한량없는 중생들에게 두려움 없음을 베풀고 증오 없음을 베풀고 악의 없음을 베푼다. 그는 한량없는 중생들에게 두려움 없음을 베풀고 증오 없음을 베풀고 악의 없음을 베푼 뒤 두려움 없음과 증오 없음과 악의 없음을 나누어 가진다.」라고 합니다. 

 

여기서 보시가 가지는 특별함을 한 가지 보게 되는데, 베푼 뒤 베푼 것을 나누어 가진다는 표현입니다. 내가 오계를 지키면 상대방에게는 두려움 없음-증오 없음-악의 없음이 생겨나는데, 그것이 오계를 지킴으로써 내가 베푸는 것이고 또한 그 베푼 것을 나누어 가진다는 것입니다. 그에게서 두려움-증오-악의 없음이 생겨나면 그것이 그대로 나에게도 와서 쌓인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표현은 재시(財施)의 경우에도 나타나는데, <숩빠와사 경(A4:57)>입니다. 

 

「숩빠와사여, 음식을 보시하는 성스러운 여제자는 받는 자들에게 네 가지를 보시한다. 무엇이 넷인가? 수명을 보시하고 아름다움을 보시하고 행복을 보시하고 힘을 보시한다. 수명을 보시한 뒤 그는 천상이나 인간의 수명을 나누어 가지게 된다. 아름다움을 보시한 뒤 그는 천상이나 인간의 아름다움을 나누어 가지게 된다. 행복을 보시한 뒤 그는 천상이나 인간의 행복을 나누어 가지게 된다. 힘을 보시한 뒤 그는 천상이나 인간의 힘을 나누어 가지게 된다. 숩빠와사여, 음식을 보시하는 성스러운 여제자는 받는 자들에게 이러한 네 가지를 보시한다.」 

 

이 경에서도 내가 음식을 보시하면 보시 받는 자에게는 수명-아름다움-행복-힘이 생겨나는데, 그것이 음식을 보시함으로써 내가 베푸는 것이고 또한 그 베푼 것을 나누어 가진다는 것입니다. 그에게서 수명-아름다움-행복-힘이 생겨나면 그것이 그대로 나에게도 와서 쌓인다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우리가 공덕(功德)이라고도 하고 복(福)이라고도 하는 그것입니다. 

 

특히 보시는 하늘의 삶에 견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수명-아름다움-행복-힘을 보시한 뒤 천상이나 인간의 수명-아름다움-행복-힘을 나누어 가지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어쨌든 같은 맥락에서 오계를 지키면, 그것이 그대로 무외시(無畏施)여서 두려움-증오-악의 없음을 베푸는 것이고 그것을 나누어 가지게 된다고 이 경은 알려줍니다. 경전은 이어지는 말씀을 통해 이것을 강조해 주는데, 

 

「이것은 위대한 보시이며, 최초의 것으로 인정되었고, 오랜 세월 동안 유지되어 왔고, [부처님 등 성자들의] 계보라고 알려졌고, 오래된 것이며, 그것은 거부하면 안 되는 것이고, 과거에도 거부되지 않았고, 현재에도 거부되지 않으며, 미래에도 거부되지 않을 것이며, 지혜로운 사문들과 바라문들에 의해서 비난받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공덕이 넘쳐흐르고 유익함이 넘쳐흐르고 행복을 가져오고 신성한 결말을 가져오고 행복을 익게 하고 천상에 태어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원하는 것, 좋아하는 것, 마음에 드는 것, 이익, 행복으로 인도한다.」라고 합니다. 

 

그런데 오계(五戒)는 무엇인가요? 예전에 함께 공부한 법우님 한 분과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그 법우님은 그때 형편이 많이 어려웠답니다. 보시하여 공덕을 쌓고 싶은데 그럴 돈이 없다고 합니다. 보시하지 못하는 형편 때문에 마음이 너무나 괴롭다고 합니다. 제가 오계(五戒)는 지키며 사시느냐고 여쭈니 아니라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물어보았습니다. 

 

①툭하면 남을 해칩니까? 심하게는 다른 생명을 죽이기도 하십니까? ②주지 않은 것도 가집니까? 심하게는 도둑질도 합니까? ③사랑을 나눔에 어긋남이 있습니까? 적당히 바람도 좀 피며 사세요? ④거짓말을 하십니까? ⑤술도 열심히 드십니까?

 

법우님은 모두 “아니오.”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제가 알려드렸습니다. "법우님, 이것이 바로 오계를 지키는 것입니다.” 

 

다시 여쭤보았습니다. “그런데 법우님, 오계는 잘 지키며 사십니까?” 

 

법우님은 "오계를 잘 지키며 살고 있다."고 합니다. 아는 것이 힘인 거지요. ⇒ 「불교 - 배워 알고, 아는 대로 실천하여 실현하는 공부」 

 

그래서 저는 다시 말했습니다. - 「그렇다면 보시하지 못하는 형편을 탓하지 마십시오. 법우님은 이미 무외시라는 훌륭한 보시행(布施行)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에 따라서는 가진 것도 없고 아는 것도 없어서 보시할 수 없다고 하는데, 적극적으로 오계를 지키는 삶을 실천하는 것만으로도 보시는 가능한 것입니다.」 

 

둘째, 법보시는 포교의 공덕과 연결됩니다. 이때, 포교는 무엇입니까? 

 

다음 주에 공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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