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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스님의 새출발법회 2-28) 공덕행의 세 요소 ㅡ 승가(僧伽)의 의미

0 986 2017.12.02 16:02

▣ 해피스님의 새출발법회 2-28) 공덕행의 세 요소 ㅡ 승가(僧伽)의 의미

   [동영상] https://youtu.be/fm875bceHEc


신심 있는 좋은 가문의 자식이 공덕을 쌓는 데는 세 가지 요소가 필요합니다. 이 가문은 부처님의 가문이어서 불교신자들이 이 가문의 자식들입니다. 세 가지란 믿음과 보시할 것과 받을 만한 사람입니다. 보시가 공덕이 된다는 믿음이 있어야 보시할 수 있고, 베풀 것이 있어야 보시할 수 있고, 받아줄 사람이 있어야 보시할 수 있다는 의미라고 이해할 수 있는데, 이 세 가지의 구체적 의미를 경전을 통해 알아보았습니다.

ㅇ 부처님의 가문[고귀한 태어남] ☞ 앙굴리말라 경(M86) http://cafe.naver.com/happybupdang/1544


현존 경(A3:41)[sammukhībhāvasuttaṃ]


“tiṇṇaṃ, bhikkhave, sammukhībhāvā saddho kulaputto bahuṃ puññaṃ pasavati. katamesaṃ tiṇṇaṃ? saddhāya, bhikkhave, sammukhībhāvā saddho kulaputto bahuṃ puññaṃ pasavati. deyyadhammassa, bhikkhave, sammukhībhāvā saddho kulaputto bahuṃ puññaṃ pasavati. dakkhiṇeyyānaṃ, bhikkhave, sammukhībhāvā saddho kulaputto bahuṃ puññaṃ pasavati. imesaṃ kho, bhikkhave, tiṇṇaṃ sammukhībhāvā saddho kulaputto bahuṃ puññaṃ pasavatī”ti.


비구들이여, 세 가지가 있기 때문에 신심 있는 좋은 가문의 아들이 많은 공덕을 쌓는다. 무엇이 세 가지인가?


비구들이여, 신심이 있기 때문에 좋은 가문의 아들은 많은 공덕을 쌓는다. 보시할 것이 있기 때문에 신심 있는 좋은 가문의 아들은 많은 공덕을 쌓는다. 받을 만한 사람(*)이 있기 때문에 좋은 가문의 아들은 많은 공덕을 쌓는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세 가지가 있기 때문에 신심 있는 좋은 가문의 아들은 많은 공덕을 쌓는다.


1. 신심이란?


경우 경(A3:42)[tiṭhānasuttaṃ]


비구들이여, 세 가지 경우를 통해 신심 있고 확신 있는 자를 알아야 한다. 어떤 것이 셋인가? 그는 계를 잘 지키는 자 보기를 원하고, 정법 듣기를 원하며, 인색함의 때를 여읜 마음으로 재가에 살고, 아낌없이 보시하고, 손은 깨끗하고, 주는 것을 좋아하고, 다른 사람의 요구에 반드시 부응하고, 보시하고 나누어 가지는 것을 좋아한다.


계를 잘 지키는 자 보기를 원하고 정법 듣기를 원하며 인색의 때를 버린 자, 그를 신심 있는 자라 한다.


2. 보시할 것이란?

 

재시 - 물질적인 나눌 것,

법시 - 부처님 가르침을 배워 알고 실천함으로써 포교의 밑천을 마련,

무외시 - 오계를 지키는 삶의 실천

 

3. ‘받을만한 사람[dakkhiṇeyyānaṃ]’에 대한 검토 - 승가(僧伽)에 대한 정의에서 정의됨

    ☞ http://cafe.naver.com/happybupdang/12655


※ saṅghe aveccappasādena samannāgato hoti — ‘suppaṭipanno bhagavato sāvakasaṅgho, ujuppaṭipanno bhagavato sāvakasaṅgho, ñāyappaṭipanno bhagavato sāvakasaṅgho, sāmīcippaṭipanno bhagavato sāvakasaṅgho, yadidaṃ cattāri purisayugāni, aṭṭha purisapuggalā. esa bhagavato sāvakasaṅgho āhuneyyo pāhuneyyo dakkhiṇeyyo añjalikaraṇīyo, anuttaraṃ puññakkhettaṃ lokassā’ti.


상가에 확실한 믿음[아주 정확함]을 가진다. ㅡ ‘그 분, 진지하게 수행하는 부처님의 제자들인 상가, 정확하게 수행하는 부처님의 제자들인 상가, 올바르게 수행하는 부처님의 제자들인 상가, 여법하게 수행하는 부처님의 제자들인 상가, 이분들은 네 쌍의 대장부요, 여덟 무리의 성자들, 이분들은 부처님의 제자들인 상가이니, 공양 올릴 가치 있는 분들, 환영할 가치 있는 분들, 보시 올릴 가치 있는 분들, 합장 공경할 가치 있는 분들이며, 이 세상에서 위없는 복을 심는 대상입니다.’라고. 


(*) dakkhiṇeyya: worthy of an offering. (adj.) 


- 보시 받아 마땅한 사람, 보시 올릴 가치 있는 분들

= 사쌍팔배(四雙八輩)의 성자(聖者) → <웰라마 경(A9:20)> 참조.


• dakkhiṇeyyaggi[보시의 불] - “바라문이여, 그러면 무엇이 보시의 불인가? 바라문이여, 여기 사문-바라문들은 교만과 방일함을 금하고 인욕과 온화함에 헌신하여 살면서 각자 자신을 길들이고 각자 자신을 제어하고 각자 자신을 완전한 열반에 들게 하나니, 이를 일러 보시의 불이라 한다. 그러므로 이 보시의 불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숭상하고 예배한 뒤 바르게 행복을 가져와야 한다.” <불 경2(A7:44)[dutiyāggisuttaṃ (AN 7.47)]>


그런데 이 경은 āhuneyyaggi[(공양 올릴 가치 있는) 헌공의 불]로 부모님을 말합니다. ㅡ "바라문이여, 여기 그의 어머니와 아버지를 일러 헌공의 불이라 한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바라문이여, 어머니와 아버지로부터 그가 생겨났다고 말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헌공의 불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숭상하고 예배한 뒤 바르게 행복을 가져와야 한다."


• “satta puggalā dakkhiṇeyyā - ubhatobhāgavimutto, paññāvimutto, kāyasakkhi, diṭṭhippatto, saddhāvimutto, dhammānusārī, saddhānusārī. 


; 일곱의 보시 받아 마땅한 분 – 양면해탈자, 혜해탈자, 몸으로 체험한 자, 견해를 얻은 자, 믿음으로 해탈한 자, 법을 따르는 자, 믿음을 따르는 자 <합송경(D33)>


• “aṭṭha puggalā dakkhiṇeyyā - sotāpanno, sotāpattiphalasacchikiriyāya paṭipanno; sakadāgāmī, sakadāgāmiphalasacchikiriyāya paṭipanno; anāgāmī, anāgāmiphalasacchikiriyāya paṭipanno; arahā, arahattaphalasacchikiriyāya paṭipanno. 


; 여덟의 보시 받아 마땅한 자 – 예류자, 예류과의 실현을 위해 실천하는 자, 일래자, 일래과의 실현을 위해 실천하는 자, 불환자, 불환과의 실현을 위해 실천하는 자, 아라한, 아라한과의 실현을 위해 실천하는 자 <합송경(D33)>


• “kati nu kho, bhante, loke dakkhiṇeyyā, kattha ca dānaṃ dātabban”ti? “dve kho, gahapati, loke dakkhiṇeyyā — sekho ca asekho ca. ime kho, gahapati, dve loke dakkhiṇeyyā, ettha ca dānaṃ dātabban”ti. <공양 받아 마땅함 경(A2:4:4)[samacittavaggo(AN 2.33-42)]>


; “대덕이시여, 보시 받아 마땅한 분들이 세상에 얼마나 있으며 누구에게 보시해야 합니까?” “장자여, 세상에는 보시 받아 마땅한 자가 둘이 있으니 유학(有學)과 무학(無學)이다. 장자여, 이들이 세상에서 보시 받아 마땅한 둘이니 여기에 보시해야 한다.”


• “aggato ve pasannānaṃ, aggaṃ dhammaṃ vijānataṃ.

agge buddhe pasannānaṃ, dakkhiṇeyye anuttare. <aggappasādasuttaṃ(AN 4.34)[위없는 청정 경]>

 

; 으뜸의 법 알아 최상의 확실한 믿음 가진 자들에게,

  위없는 보시를 받아 마땅한 으뜸인 부처님!


• “chayimāni, bhikkhave, abhabbaṭṭhānāni. katamāni cha? abhabbo diṭṭhisampanno puggalo kañci saṅkhāraṃ niccato upagantuṃ, abhabbo diṭṭhisampanno puggalo kañci saṅkhāraṃ sukhato upagantuṃ, abhabbo diṭṭhisampanno puggalo kañci dhammaṃ attato upagantuṃ, abhabbo diṭṭhisampanno puggalo ānantariyaṃ kammaṃ kātuṃ, abhabbo diṭṭhisampanno puggalo kotūhalamaṅgalena suddhiṃ paccāgantuṃ, abhabbo diṭṭhisampanno puggalo ito bahiddhā dakkhiṇeyyaṃ gavesituṃ. imāni kho, bhikkhave, cha abhabbaṭṭhānānī”ti. <dutiyābhabbaṭṭhānasuttaṃ (AN 6.93)>


; “비구들이여, 여섯 가지 경우는 있을 수 없다. 무엇이 여섯인가? 견해를 구족한 사람이 조건적인 것이 그 어떤 것이건 그것을 영원하다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견해를 구족한 사람이 조건적인 것이 그 어떤 것이건 그것을 즐거움이라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견해를 구족한 사람이 조건적인 것이 그 어떤 것이건 그것을 자아라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견해를 구족한 사람이 무간업을 짓는다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견해를 구족한 사람이 예언에 의해 청정함을 구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견해를 구족한 사람이 외도들 가운데서 보시 받을 만한 사람을 찾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여섯 가지 경우는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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