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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출발 법회

한 가지만 동의해 준다면 좋겠습니다!

0 661 2017.12.02 17:23

편안한 주말 저녁 즐기시는 지금, 법우님들께서 함께하고 계신 부산불교방송 주말특집 해피스님의 마음이야기, 오늘은 한 가지에 대한 동의 요청으로 시작합니다.


「한 가지만 동의해 준다면 좋겠습니다! 불교가 괴로운 삶에 대한 자각(自覺)[고(苦)]와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는 노력[고멸(苦滅)]로 구성된다고 하면, 어떨 때에 삶이 괴로워지고 어떨 때에 그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기준이 있을 것입니다. 제가 아는 한 부처님께서 제시해 주신 그 한 가지는 그대의 동의를 필요로 합니다. 그 한 가지에 동의하고 그 한 가지로 살아가고자 한다면 그 때 부처님께서는 그대의 삶이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괴로움의 소멸을 실현하고, 행복으로만 살아가게 하는 방법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그 한 가지에 그대께서 동의해 준다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그 한 가지는 무엇입니까? 바로 「악한 업을 지으면 괴로운 결과가 따르고, 착한 업을 지으면 행복한 결과가 따른다.」입니다. 「행위가 가지는 과(果)와 보(報)의 법칙성」이고, 업인과보 삼세윤회(業因果報三世輪廻)입니다.


이 한 가지에 그대께서 동의해 주신다면, 저는 부처님께서 알려주신 행복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잘 풀이해 여러분께 전해드리는 일에 열심이고자 합니다. 행복하기 위해 착하게 살고자 하는 그대 법우님들 모두, 해피[解彼 & happy]하시기 바랍니다!」


어떻습니까, 법우님께서는 동의해 주셨습니까? 


그렇습니다. 「악한 업을 지으면 괴로운 결과가 따르고, 착한 업을 지으면 행복한 결과가 따릅니다.」 많은 경전에서 ‘업에는 과와 보가 따른다.’고 설하는 말씀이 바로 이것이고, 예외가 없어서 법칙성을 가집니다. 이 법칙성에 동의하기에 불교신자이고, 이 법칙성을 실천할 때 삶이 향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무엇이 괴로운 결과를 부르는 악한 업이고, 무엇이 행복한 결과를 부르는 착한 업입니까? 이것이 악한 업이고 저것이 착한 업이라고 권능가진 자에 의해 결정돼 있어서 괴롭거나 행복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부처님께서 무엇이 괴로움이고 무엇이 행복인지, 어떤 행위가 괴롭거나 행복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인지, 깨달음의 눈으로 보아서 악한 업이거나 착한 업이라고 거꾸로 이름 붙여주고 행위의 기준으로 삼은 것입니다.


<마하고윈다 경>은 부처님에 대한 있는 그대로의 칭송 여덟 가지를 말하는데, 그 중 세 번째는 이런 칭송입니다. 


「'그분 세존께서는 이것은 유익한 것이라고 잘 선언하셨고 이것은 해로운 것이라고 잘 선언하셨습니다. 이것은 비난받아 마땅한 것이고 이것은 비난받지 않는 것이며, 이것은 실천해야 하는 것이고 이것은 실천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며, 이것은 저열한 것이고 이것은 수승한 것이며, 이것은 검고 흰 부분을 잘 갖춘 것이다.’라고 잘 선언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유익하거나 해로우며, 비난받아 마땅하거나 비난받지 않으며, 실천해야 하거나 실천하지 말아야 하며, 저열하거나 수승하며, 검고 흰 부분들을 잘 갖춘 법들을 선언하는 이런 원만한 수행을 구족하신 스승을 그분 세존을 제외하고는 과거에도 찾아보지 못했고 지금도 찾아보지 못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옳고 그름의 판단 기준을 주셨기 때문에 칭송받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하는 우리 사회에서 기준이란 말은 신중해야 합니다. 옳고 그름의 판단 기준이라고 하지만 그 기준이 정말 예외 없이 모든 경우에 적용할 수 있는 것인지의 문제 때문입니다. 만일 정당하지 못한 기준이 제시되고 효력을 가진다면 그 기준 때문에 부작용이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행이 부처님은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한 스승입니다. 그래서 그 분의 가르침은 완전한 가르침입니다. 그러기에 부처님은 기준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완전한 깨달음, 완전한 가르침에 의한 기준은 부작용을 초래하지 않고, 모든 경우에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에 대한 이런 있는 그대로의 칭송은 부처님에 의해 제시된 악한 업과 착한 업을 행위의 기준으로 삼게 하는 근거가 됩니다. 그래서 완전한 깨달음, 완전한 가르침에 의해 주어진 이 기준에 의한 악한 업은 예외 없이 괴로움을 만들고, 이 기준에 의한 착한 업은 예외 없이 행복을 만드는 것입니다. 바로 「행위가 가지는 과(果)와 보(報)의 법칙성」입니다.


부산불교방송 주말특집 해피스님의 마음이야기, 6일차 주제는 악한 업과 착한 업입니다. 음악 듣고 와서 계속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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