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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출발 법회

소금덩이 비유 ㅡ> 복된 삶, 공덕행의 삶을 살기

0 1,078 2017.12.02 17:37

[ … ] 들으셨습니다. 토요일 밤, 삶에 대한 깊은 사색이 함께하는 부산불교방송 주말특집 해피스님의 마음이야기 함께하고 계십니다.


업장소멸의 의미를 알아보았는데요, <소금덩이 경>은 세 가지 비유를 통해 좀 더 확실한 의미를 설명해줍니다.


첫 번째 비유가 바로 이 경의 제목인 소금덩이의 비유입니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물이 조금 밖에 없는 잔에다 소금 덩이를 넣는다 하자.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잔에 있는 적은 물은 이 소금 덩이 때문에 마실 수 없이 짜게 되겠는가?" "그러합니다, 세존이시여."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세존이시여, 그 물잔 속의 물이 조금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이 소금 덩이 때문에 마실 수 없이 짜게 되기 때문입니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강가 강에다 소금 덩이를 넣는다 하자.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강가 강은 이 소금 덩이 때문에 마실 수 없이 짜게 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세존이시여, 그 강가 강은 많은 물의 적집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이 소금 덩이로는 마실 수 없이 짜게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 움큼의 소금덩이를 물에 녹이면 짜서 마시기 괴로울 수도 있고 짜지 않아 마시기에 괴롭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때, 이 물이 짠 물인지 짜지 않은 물인지 결정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소금덩이일까요? 아닙니다. 한 움큼이라고 정해진 분량의 소금덩이는 녹이는 물의 분량에 따라서 짠 물이 될 수도 있고 짜지 않은 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작은 물잔에 한 움큼의 소금덩이를 녹이면 짜서 마시려면 커다란 괴로움을 겪어야 합니다. 그러나 강가 강 즉 갠지스 강에 녹이면 그 물은 전혀 짜지 않습니다. 한 움큼의 소금이 녹아있기는 하지만 그 소금의 분량으로는 갠지스 강을 짜게 만들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듯이 앞선 행위에 의해 생겨난 고(苦)의 과(果)는 정해진 분량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몸을 닦지 않고 계를 닦지 않고 심(心)을 닦지 않고 지혜를 닦지 않아서 하찮고 작은 존재가 되면 그 사람은 지금의 삶에서 십악업(十惡業)을 짓게 됩니다. 그것은 마치 작은 물잔에 한 움큼의 소금덩이를 녹이는 것과 같아서 정해진 분량의 고(苦)의 과(果)를 증폭해서 커다란 괴로움을 현실적으로 경험해야 합니다. 업장(業障)을 뻥튀기해서 아주 많이 힘들어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몸을 닦고 계를 닦고 심(心)을 닦고 지혜를 닦아서 하찮지 않고 커다랗고 무량한 삶을 살게 되면 그 사람은 지금의 삶에서 십선업(十善業)을 짓게 됩니다. 그것은 마치 갠지스 강에 한 움큼의 소금덩이를 녹이는 것과 같아서 정해진 분량의 고(苦)의 과(果)를 희석하고, 작게 겪거나 아주 작게 겪거나 전혀 겪지 않게 됩니다. 업장(業障)이 내 삶에 아무런 장애로 작용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업장소멸(業障消滅)입니다. 


업장소멸! 무엇입니까? 


업장(業障)은 삶의 과정에서 경험하는 것 말고 다른 방법에 의해서는 없어지지 않습니다. 경험하는 것 말고는 다른 소멸 방법이 없는 업장(業障)은 경험의 과정에서 업장 때문에 괴롭지 않을 수 있는 소멸의 방법이 찾아져야 하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그 방법입니다. 이것이 바로 겪어내는 과정을 잘 제어하는 방법이어서 현실적으로 실현가능한 업장소멸의 방법인 것입니다. 아것이 바로 부처님에 의해 가르쳐진 업장소멸(業障消滅)의 유일한 방법입니다.


한편, 과(果)와 보(報)에 의한 업장소멸(業障消滅)의 이해는 반대의 경우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앞선 행위 즉 전생들에 지었거나 금생의 과거에 지은 선업(善業)에 의해 생겨난 락(樂)의 과(果)를 지금 경험해야 할 때, 몸-계-마음-지혜를 닦지 않아서 하찮고 작은 존재가 되면 그 사람은 그 락(樂)을 줄여서 누리게 됩니다. 그러나 몸-계-마음-지혜를 닦아서 하찮지 않고 커다랗고 무량한 삶을 살게 되면 락(樂)의 크기가 뻥튀기 되어서 훨씬 더 큰 행복으로 누리게 됩니다. 이것이 복(福)이라고도 공덕(功德)이라고도 하는 것이고, 이러한 삶이 복된 삶, 공덕행의 삶입니다.


업장소멸(業障消滅)은 중요합니다. 그래서 업장(業障)을 소멸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는 십선업(十善業)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과거에 지은 십악업(十惡業)의 의해 만들어진 업장은 소멸해야 하는 것이지만, 지금부터는 복(福)-공덕(功德)을 만드는 십선업(十善業)을 지음으로써 앞으로의 삶은 행복을 뻥튀기 하는 복된 삶, 공덕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불교신자의 삶의 모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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