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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출발 법회

Ⅶ. dakkhiṇeyyo의 독립적 용례

0 246 02.01 11:23

Ⅶ. dakkhiṇeyyo의 독립적 용례


• (DN 33.10-합송경, 일곱으로 구성된 법들) 


“satta puggalā dakkhiṇeyyā - ubhatobhāgavimutto, paññāvimutto, kāyasakkhi, diṭṭhippatto, saddhāvimutto, dhammānusārī, saddhānusārī. 


보시 받을만한 일곱 사람 ― 양면해탈자, 혜해탈자, 몸으로 실현한 자, 견해를 성취한 자, 믿음으로 해탈한 자, 법을 따르는 자, 믿음을 따르는 자


• (DN 33.11-합송경, 여덟으로 구성된 법들)


“aṭṭha puggalā dakkhiṇeyyā - sotāpanno, sotāpattiphalasacchikiriyāya paṭipanno; sakadāgāmī, sakadāgāmiphalasacchikiriyāya paṭipanno; anāgāmī, anāgāmiphalasacchikiriyāya paṭipanno; arahā, arahattaphalasacchikiriyāya paṭipanno. 


보시 받을만한 여덟 사람 ― 예류자, 예류과의 실현을 위해 실천하는 자, 일래자, 일래자의 실현을 위해 실천하는 자, 불환자, 불환과의 실현을 위해 실천하는 자, 아라한, 아라한과의 실현을 위해 실천하는 자, 


• (SN 1.33-좋음 경)


atha kho aparā devatā bhagavato santike imaṃ udānaṃ udānesi —


“sādhu kho, mārisa, dānaṃ; appakasmimpi sāhu dānaṃ.

saddhāyapi sāhu dānaṃ; dhammaladdhassāpi sāhu dānaṃ.

api ca viceyya dānampi sāhu dānaṃ”.


“viceyya dānaṃ sugatappasatthaṃ,

ye dakkhiṇeyyā idha jīvaloke.

etesu dinnāni mahapphalāni,

bījāni vuttāni yathā sukhette”ti.


그러자 다른 천신이 세존의 곁에서 이런 감흥을 말했다. ㅡ


“선생님, 보시는 좋은 것입니다. 적게 가진 사람의 보시도 좋은 것입니다.

믿음으로 하는 보시도 좋은 것입니다. 법답게 얻어진 것으로 하는 보시도 좋은 것입니다. 또한, 충분히 고려된 보시도 좋은 것입니다.


충분히 고려된 보시를 선서(善逝)께서는 칭찬합니다.

이번 생의 세상에서 보시 받을만한 분들에 대해 보시한 것은 

좋은 밭에 씨를 뿌린 것처럼 큰 결실이 있습니다.


• (SN 7.9-순다리까 경)


atha kho sundarikabhāradvājo brāhmaṇo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bhagavantaṃ etadavoca — ‘kiṃjacco bhavan’ti?


그래서 순다리까 바라드와자 바라문은 세존에게 왔다. 와서는 세존에게 ‘존자의 태생은 무엇입니까?’라고 말했다.


(세존) “mā jātiṃ puccha caraṇañca puccha,

kaṭṭhā have jāyati jātavedo.

nīcākulīnopi muni dhitimā,

ājānīyo hoti hirīnisedho.


“태생을 묻지 말고 행실을 물어야 합니다.

참으로 장작에 의해서 불이 붙습니다.

낮은 가문에도 삶의 문제를 해결한 성자가 있습니다.

히리로써 제어하는 사람이 좋은 혈통입니다.


“saccena danto damasā upeto,

vedantagū vusitabrahmacariyo.

yaññopanīto tamupavhayetha,

kālena so juhati dakkhiṇeyye”ti.


진리에 의해 길들고, 길들임에 의해 갖추어진 자

앎의 끝에 닿았고, 범행을 완성한 자

현명하게 제사를 지내는 자는 그를 초청해야 합니다.

올바른 때에 보시받을 만한 자에 대해 그는 보시합니다.”


• (AN 1.198-208-제14 으뜸 품, 두 번째 품)


“etadaggaṃ, bhikkhave, mama sāvakānaṃ bhikkhūnaṃ manomayaṃ kāyaṃ abhinimminantānaṃ yadidaṃ cūḷapanthako”.


비구들이여, 나의 비구 제자 가운데 의성신(意成身)을 만듦의 측면에서 으뜸은 쭐라빤타까이다.


... cetovivaṭṭakusalānaṃ yadidaṃ cūḷapanthako.

… 쭐라빤타까 - 심(心)의 전환의 능숙의 측면에서 으뜸


... saññāvivaṭṭakusalānaṃ yadidaṃ mahāpanthako.

… 마하빤타까 - 상(想)의 전환의 능숙의 측면에서 으뜸


... araṇavihārīnaṃ yadidaṃ subhūti.

… 수부띠 - 평화로운 머묾의 측면에서 으뜸


... dakkhiṇeyyānaṃ yadidaṃ subhūti.

… 수부띠 – 보시 받을만함의 측면에서 으뜸


... āraññakānaṃ yadidaṃ revato khadiravaniyo.

… 레와따 카디라와니야 - 숲에 머묾의 측면에서 으뜸


... jhāyīnaṃ yadidaṃ kaṅkhārevato.

… 깡카레와따 - 선(禪)을 닦음의 측면에서 으뜸


... āraddhavīriyānaṃ yadidaṃ soṇo koḷiviso.

… 소나 꼴리위사 - 열심히 노력함의 측면에서 으뜸


... kalyāṇavākkaraṇānaṃ yadidaṃ soṇo kuṭikaṇṇo.

… 소나 꾸띠깐나 - 뛰어난 연설의 측면에서 으뜸


... lābhīnaṃ yadidaṃ sīvali.

… 시왈리 - 얻음의 측면에서 으뜸


... saddhādhimuttānaṃ yadidaṃ vakkalīti. 

… 왁깔리 - 분명한 믿음의 측면에서 으뜸


• (AN 2.33-42-평등한 심(心) 품) 36.


atha kho anāthapiṇḍiko gahapati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bhagavantaṃ abhivādetvā ekamantaṃ nisīdi. ekamantaṃ nisinno kho anāthapiṇḍiko gahapati bhagavantaṃ etadavoca — “kati nu kho, bhante, loke dakkhiṇeyyā, kattha ca dānaṃ dātabban”ti? “dve kho, gahapati, loke dakkhiṇeyyā — sekho ca asekho ca. ime kho, gahapati, dve loke dakkhiṇeyyā, ettha ca dānaṃ dātabban”ti.


그때 아나타삔디까 장자가 세존에게 왔다. 와서는 세존에게 절한 뒤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아나타삔디까 장자는 세존에게 이렇게 말했다. ― “대덕이시여, 세상에는 보시 받을만한 분들이 얼마나 있습니까? 그리고 어디에 보시해야 합니까?” “장자여, 세상에는 유학(有學)과 무학(無學)의 두 가지 보시 받을만한 분들이 있다. 장자여, 이런 두 가지 보시 받을만한 분들이 있다. 여기에 보시해야 한다.”


idamavoca bhagavā. idaṃ vatvāna sugato athāparaṃ etadavoca satthā —


세존은 이렇게 말했다. 스승이신 선서(善逝)는 이렇게 말한 뒤에 다시 이렇게 말했다. ―


“sekho asekho ca imasmiṃ loke,

āhuneyyā yajamānānaṃ honti.

te ujjubhūtā kāyena, vācāya uda cetasā.

khettaṃ taṃ yajamānānaṃ, ettha dinnaṃ mahapphalan”ti.


“이 세상에 있는 유학(有學)과 무학(無學)이

제사를 지내는 사람을 위한 공양받을만한 분들이다.

몸과 말과 심(心)으로 올곧은 그 존재들이

제사를 지내는 사람을 위한 그 밭이다. 여기에 보시한 것은 큰 결실이 있다.”


• (AN 3.41-있음 경)


“tiṇṇaṃ, bhikkhave, sammukhībhāvā saddho kulaputto bahuṃ puññaṃ pasavati. katamesaṃ tiṇṇaṃ? saddhāya, bhikkhave, sammukhībhāvā saddho kulaputto bahuṃ puññaṃ pasavati. deyyadhammassa, bhikkhave, sammukhībhāvā saddho kulaputto bahuṃ puññaṃ pasavati. dakkhiṇeyyānaṃ, bhikkhave, sammukhībhāvā saddho kulaputto bahuṃ puññaṃ pasavati. imesaṃ kho, bhikkhave, tiṇṇaṃ sammukhībhāvā saddho kulaputto bahuṃ puññaṃ pasavatī”ti.  


세 가지가 있을 때, 비구들이여, 믿음이 있는 좋은 가문의 아들은 큰 공덕을 쌓는다. 어떤 세 가지인가? 믿음이 있을 때, 비구들이여, 믿음이 있는 좋은 가문의 아들은 큰 공덕을 쌓는다. 보시할 것이 있을 때, 비구들이여, 믿음이 있는 좋은 가문의 아들은 큰 공덕을 쌓는다. 보시 받을만한 분들이 있을 때, 비구들이여, 믿음이 있는 좋은 가문의 아들은 큰 공덕을 쌓는다. 이런 세 가지가 있을 때, 비구들이여, 믿음이 있는 좋은 가문의 아들은 큰 공덕을 쌓는다.


• (AN 5.175-낮은 자 경)


“pañcahi, bhikkhave, dhammehi samannāgato upāsako upāsakacaṇḍālo ca hoti upāsakamalañca upāsakapatikuṭṭho ca. katamehi pañcahi? assaddho hoti; dussīlo hoti; kotūhalamaṅgaliko hoti, maṅgalaṃ pacceti no kammaṃ; ito ca bahiddhā dakkhiṇeyyaṃ gavesati; tattha ca pubbakāraṃ karoti. imehi kho, bhikkhave, pañcahi dhammehi samannāgato upāsako upāsakacaṇḍālo ca hoti upāsakamalañca upāsakapatikuṭṭho ca.


비구들이여, 다섯 가지 법을 갖춘 남신자는 낮은 남신자이고, 얼룩진 남신자이고, 잘못된 남신자이다. 어떤 다섯 가지인가? 믿음이 없고, 계를 경시하고, 길상(吉祥)에 신나고, 업(業)이 아니라 길상(吉祥)을 당연히 여긴다. 여기의 밖에서 보시 받을만한 자를 찾고, 거기에 먼저 보시한다. 비구들이여, 이런 다섯 가지 법을 갖춘 남신자는 낮은 남신자이고, 얼룩진 남신자이고, 잘못된 남신자이다.


“pañcahi, bhikkhave, dhammehi samannāgato upāsako upāsakaratanañca hoti upāsakapadumañca upāsakapuṇḍarīkañca. katamehi pañcahi? saddho hoti; sīlavā hoti; akotūhalamaṅgaliko hoti, kammaṃ pacceti no maṅgalaṃ; na ito bahiddhā dakkhiṇeyyaṃ gavesati; idha ca pubbakāraṃ karoti. imehi kho, bhikkhave, pañcahi dhammehi samannāgato upāsako upāsakaratanañca hoti upāsakapadumañca upāsakapuṇḍarīkañcā”ti. 

 

비구들이여, 다섯 가지 법을 갖춘 남신자는 보석 같은 남신자이고, 홍련(紅蓮) 같은 남신자이고, 백련(白蓮) 같은 남신자이다. 어떤 다섯 가지인가? 믿음이 있고, 계를 중시하고, 길상(吉祥)에 신나지 않고, 길상(吉祥)이 아니라 업(業)을 당연히 여긴다. 여기의 밖에서 보시 받을만한 자를 찾지 않고, 여기에 먼저 보시한다. 비구들이여, 이런 다섯 가지 법을 갖춘 남신자는 보석 같은 남신자이고, 홍련(紅蓮) 같은 남신자이고, 백련(白蓮) 같은 남신자이다.


• (AN 6.93-불가능한 경우 경2)


“chayimāni, bhikkhave, abhabbaṭṭhānāni. katamāni cha? abhabbo diṭṭhisampanno puggalo kañci saṅkhāraṃ niccato upagantuṃ, abhabbo diṭṭhisampanno puggalo kañci saṅkhāraṃ sukhato upagantuṃ, abhabbo diṭṭhisampanno puggalo kañci dhammaṃ attato upagantuṃ, abhabbo diṭṭhisampanno puggalo ānantariyaṃ kammaṃ kātuṃ, abhabbo diṭṭhisampanno puggalo kotūhalamaṅgalena suddhiṃ paccāgantuṃ, abhabbo diṭṭhisampanno puggalo ito bahiddhā dakkhiṇeyyaṃ gavesituṃ. imāni kho, bhikkhave, cha abhabbaṭṭhānānī”ti.


비구들이여, 이런 여섯 가지 경우는 불가능하다. 어떤 여섯 가지인가? 견해를 갖춘 사람이 어떤 것이든 행(行)에 대해 상(常)으로부터 접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견해를 갖춘 사람이 어떤 것이든 행(行)에 대해 락(樂)으로부터 접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견해를 갖춘 사람이 어떤 것이든 법(法)에 대해 아(我)로부터 접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견해를 갖춘 사람이 무간업(無間業)을 짓는 것은 불가능하다. 견해를 갖춘 사람이 길상(吉祥)에 신나서 청정에서 물러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견해를 갖춘 사람이 여기의 밖에서 보시 받을만한 자를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 (AN 7.29-퇴보 경2)


“sattime, bhikkhave, dhammā upāsakassa parihānāya saṃvattanti . katame satta? bhikkhudassanaṃ hāpeti, saddhammassavanaṃ pamajjati, adhisīle na sikkhati, appasādabahulo hoti, bhikkhūsu theresu ceva navesu ca majjhimesu ca upārambhacitto dhammaṃ suṇāti randhagavesī, ito bahiddhā dakkhiṇeyyaṃ gavesati, tattha ca pubbakāraṃ karoti. ime kho, bhikkhave, satta dhammā upāsakassa parihānāya saṃvattanti. 


“비구들이여, 일곱 가지 법은 재가 신자를 퇴보로 이끈다. 어떤 일곱 가지인가? 비구를 친견하러 가지 않는다. 정법 배우기를 기뻐하지 않는다. 높은 계에 대해 공부하지 않는다. 장로 비구들과 신진 비구들과 중진 비구들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없다. 결점을 찾고 비난하는 마음으로 법을 듣는다. 밖에서 보시 받을만한 사람을 찾는다. 거기에 먼저 할 바를 한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일곱 가지 법은 재가 신자를 퇴보로 이끈다.


“sattime, bhikkhave, dhammā upāsakassa aparihānāya saṃvattanti. katame satta? bhikkhudassanaṃ na hāpeti, saddhammassavanaṃ nappamajjati, adhisīle sikkhati, pasādabahulo hoti, bhikkhūsu theresu ceva navesu ca majjhimesu ca anupārambhacitto dhammaṃ suṇāti na randhagavesī, na ito bahiddhā dakkhiṇeyyaṃ gavesati, idha ca pubbakāraṃ karoti. ime kho, bhikkhave, satta dhammā upāsakassa aparihānāya saṃvattantī”ti.


“비구들이여, 일곱 가지 법은 재가 신자를 퇴보하지 않음으로 이끈다. 어떤 일곱 가지인가? 비구를 친견하러 간다. 정법 배우기를 기뻐한다. 높은 계에 대해 공부한다. 장로 비구들과 신진 비구들과 중진 비구들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있다. 결점을 찾지 않고 비난하지 않는 마음으로 법을 듣는다. 밖에서 보시 받을만한 사람을 찾지 않는다. 여기에 먼저 할 바를 한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일곱 가지 법은 재가 신자를 쇠퇴하지 않음으로 이끈다.


• (AN 7.31-파멸 경)


“sattime, bhikkhave, upāsakassa parābhavā . pe . sattime, bhikkhave, upāsakassa sambhavā. katame satta? bhikkhudassanaṃ na hāpeti, saddhammassavanaṃ nappamajjati, adhisīle sikkhati, pasādabahulo hoti, bhikkhūsu theresu ceva navesu ca majjhimesu ca anupārambhacitto dhammaṃ suṇāti na randhagavesī, na ito bahiddhā dakkhiṇeyyaṃ gavesati, idha ca pubbakāraṃ karoti. ime kho, bhikkhave, satta upāsakassa sambhavāti. 


“비구들이여, 일곱 가지 재가 신자의 파멸이 있다. 어떤 일곱 가지인가? 비구를 친견하러 가지 않는다. 정법 배우기를 기뻐하지 않는다. 높은 계에 대해 공부하지 않는다. 장로 비구들과 신진 비구들과 중진 비구들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없다. 결점을 찾고 비난하는 마음으로 법을 듣는다. 밖에서 보시 받을만한 사람을 찾는다. 거기에 먼저 할 바를 한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일곱 가지 재가 신자의 파멸이 있다.


“비구들이여, 일곱 가지 재가 신자의 번영이 있다. 어떤 일곱 가지인가? 비구를 친견하러 간다. 정법 배우기를 기뻐한다. 높은 계에 대해 공부한다. 장로 비구들과 신진 비구들과 중진 비구들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있다. 결점을 찾지 않고 비난하지 않는 마음으로 법을 듣는다. 밖에서 보시 받을만한 사람을 찾지 않는다. 여기에 먼저 할 바를 한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일곱 가지 재가 신자의 번영이 있다.


•  (AN 9.20-웰라마 경)


“siyā kho pana te, gahapati, evamassa — ‘añño nūna tena samayena velāmo brāhmaṇo ahosi, so taṃ dānaṃ adāsi mahādānan’ti. na kho panetaṃ, gahapati, evaṃ daṭṭhabbaṃ. ahaṃ tena samayena velāmo brāhmaṇo ahosiṃ. ahaṃ taṃ dānaṃ adāsiṃ mahādānaṃ. tasmiṃ kho pana, gahapati, dāne na koci dakkhiṇeyyo ahosi, na taṃ koci dakkhiṇaṃ visodheti. 


그런데 장자여, 그대는 ‘참으로 그때 웰라마 바라문은 다른 사람이었다. 그가 그 큰 보시를 했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장자여, 그것은 그렇게 보지 않아야 한다. 내가 그때 웰라마 바라문이었다. 내가 그 큰 보시를 했다. 그러나 장자여, 그 보시를 할 때 보시 받을만한 분이 아무도 없었다. 아무도 그 보시를 청정하게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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