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불교입문 > 새출발 법회

새출발 법회

새출발법회 2주차 ㅡ 빠야시 경(D23)이 제시하는 정견(正見)

0 1,435 2017.08.01 18:28

[녹음화일] ☞ https://youtu.be/uvE-vsJOxpU

  

쉽지만 어긋남이 없는 공부를 위해 해피법당이 개설하는 새출발법회 두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 인사는 이렇게 하겠습니다. <달과 같이 경(S16:3)>에서 부처님은 마하깟사빠 존자[마하가섭]을 칭찬하면서, 출가자가 재가자의 집을 방문할 때의 마음 자세를 이렇게 말해줍니다. 

 

「재가자의 집을 방문하는 비구는 재가자에 대해 마음이 걸리지 않고 붙들리지 않고 매이지 않는다. - 얻기를 원하는 자 얻을 것이며, 공덕을 원하는 자 공덕을 지을 것이다[ ‘labhantu lābhakāmā, puññakāmā karontu puññānī’ti]‘라고. 스스로 얻는 것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듯이 남들이 얻는 것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이런 비구가 재가자의 집을 방문하기에 적합하다.」 

 

제가 법우님들 댁으로 방문하는 대신 법우님들이 법회 자리를 찾아주셨으니 저는 이런 마음으로 법우님들과 만나려 합니다. - 「얻기를 원하는 자 얻을 것이며, 공덕을 원하는 자 공덕을 지을 것이다」. 그리고 법우님들이 얻는 것을 마치 제가 얻은 것처럼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비구가 되어야겠다. 

 

이런 것이 저만의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법우님들께서도 만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얻기를 원하는 자 얻을 것이며, 공덕을 원하는 자 공덕을 지을 것이다」라는 마음을 가져 보세요. 그리고 그들이 얻는 것을 법우님이 직접 얻은 것처럼 기뻐하고 즐거워해 보세요. 이런 비구가 재가자의 집을 방문할 때 환영받는 것과 같이, 법우님 또한 많은 사람들에게 환영 받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자, 인사 마치고 오늘 공부 시작하겠습니다.

    

세상살이 뭐니 뭐니 해도 '세상을 보는 눈이 가장 중요하다.' '이것이 출발이다.'라는 공감 가운데 지난 주 첫 법회를 시작하였습니다. 불교신자답게 세상을 보는 바른 눈을 경전을 통해 알아보자고 접근하였는데, 경전은 ‘세상을 보는 눈’을 견해라고 하고, ‘세상을 보는 바른 눈’을 바른 견해 즉 정견(正見)이라고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경전은 다양하게 바른 견해를 제시하지만, 공부의 시작으로 삼을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바른 견해는 <빠야시 경(D23)>이 제시하는 정견(正見)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요, ‘①저 세상은 있다. ②화생하는 중생은 있다. ③선악(善惡)의 행위에 따르는 과(果)와 보(報)는 있다.’의 세 가지입니다. 

 

저 세상이 있으니 삶은 윤회(輪廻)하는 것이고, 화생하는 중생이 있으니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 즉 지옥-아귀-천상을 포함해 지옥-축생-아귀-인간-천상의 다섯 길을 윤회(輪廻)하니 오도윤회(五道輪廻)입니다. 그리고 무엇을 동력으로 살다가 죽으면 다섯 갈래의 길로 윤회하는 가의 문제에 ‘선악(善惡)의 행위에 따르는 과(果)와 보(報)는 있다.’는 것으로 답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악업(惡業)을 지으면 악업(惡業)에 따르는 과(果)와 보(報)에 의해 살아서는 괴로움을 겪다가 죽은 다음에는 악처(惡處)[나쁜 세상] 즉 지옥-축생-아귀의 세상에 태어날 것이고, 선업(善業)을 지으면 선업(善業)에 따르는 과(果)와 보(報)에 의해 살아서는 행복을 누리다가 죽은 다음에는 선처(善處)[좋은 세상] 즉 인간이나 하늘 세상에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 가르침의 중심은 행위 즉 업(業)에 있다고 해야 합니다. 앞으로 우리가 공부할 커다란 주제인데요, ①어떤 업이 행복한 과(果)와 보(報)를 가져오는 착한 업인지, 어떤 업이 괴로운 과(果)와 보(報)를 초래하는 악한 업인지 기준이 알려져야 하고, ②어떻게 하면 악한 업을 짓지 않고 착한 업을 지어서 괴로움을 만들지 않고 행복을 만들 수 있는 것인지가 부처님 가르침의 증심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아! 여기서 과(果)와 보(報)라고 제가 말하고 있는데, 과(果)와 보(報)가 어떻게 다른 것인지는 먼저 알아보아야 합니다. 

 

과(果)는 말 그대로 행위의 결과입니다. 이런 행위를 하면 이런 결과가 생긴다고 말하는 그것입니다. 반면에 보(報)는 그 결과를 살아가는 동안에 직접 경험하는 것을 말하는데요, 악업을 통해 괴로운 결과가 생겨났다면 삶의 과정에서 현실적으로 그 괴로움을 겪는 것을 말하고, 선업을 통해 즐거운 결과가 생겨났다면 삶이 과정에서 현실적으로 그 즐거움을 누리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보(報)는 특히 현실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시기에 주목해야 하는데, 행위 즉시 경험하거나 미래에 경험한다고 합니다. 또는 미래를 둘로 나눠서 현재-금생의 미래-내생의 미래의 세 가지 시기에 경험하게 됩니다. 보(報)를 경험하는 시기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행위에 의해 생겨난 과(果)를 과(果) 그대로 즉 생겨난 그대로 경험하지 않고 미래 시점에 작용하는 다양한 조건들과 결합해서 달라진 상태로 경험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미래 시점에 작용하는 다양한 조건들을 잘 제어할 수 있으면, 생겨난 괴로운 결과는 줄여서 겪을 수 있고, 생겨난 즐거운 결과는 늘려서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부처님이 과(果)보다는 보(報)를 훨씬 더 강조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일 것 같은데요, 과거에 좀 잘못한 것이 있다고 해도 지금 잘해서 과거에 만든 괴로움을 줄여서 겪을 수 있다는 현실적 필요성을 말하는 것이지요. 이런 주제는 조금 더 나아가면 업장소멸(業障消滅)로 연결되는데, 불교신자의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어쨌든 ‘선악(善惡)의 행위에 따르는 과(果)와 보(報)는 있다.’라는 견해는 불교의 중심이 되는 주제입니다. 새출발법회가 공부할 모든 내용이 이 안에 있다고 해야 할 것인데, 다음 주부터 차근차근 짚어가도록 하고, 오늘은 견해와 관련한 경전 하나를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디가니까야(D33) 합송경 - 다섯 가지로 구성된 법들] 중에서. ⇔ <구족함 경(A5:130)>과 같은 경전임. 

 

● 다섯 가지 상실(vyasana) ㅡ 관계의 상실, 재물의 상실, 건강의 상실, 계의 상실, 견해의 상실 

 

도반들이여, 중생들은 관계의 상실을 원인으로 하거나 재물의 상실을 원인으로 하거나 건강의 상실을 원인으로 하여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처참한 곳, 불행한 곳, 파멸처, 지옥에 떨어지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중생들은 계의 상실을 원인으로 하거나 견해의 상실을 원인으로 하여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처참한 곳, 불행한 곳, 파멸처, 지옥에 떨어집니다. 

 

● 다섯 가지 융성(sampadā) ㅡ 관계의 융성, 재물의 융성, 건강의 융성, 계의 융성, 견해의 융성 

 

도반들이여, 중생들은 관계의 융성을 원인으로 하거나 재물의 융성을 원인으로 하거나 건강의 융성을 원인으로 하여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선처(善處)], 천상세계에 태어나지는 않습니다. 도반들이여, 그러나 중생들은 계의 융성을 원인으로 하거나 견해의 융성을 원인으로 하여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천상세계에 태어납니다. 

 

[주목할 점]

    

Ⅰ]삶의 조건으로 다섯 가지를 제시하였는데, 그 중 세 가지 - 관계[인적 관계], 재물[돈], 건강 - 는 금생에 영향을 미치는 조건들이고, 두 가지 - 계, 견해 - 는 다음 생까지 영향을 미치는 조건들이라는 점. 

 

Ⅱ]견해는 계행에 영향을 미치고, 견해와 계의 상실과 융성 여부는 관계, 재물, 건강의 상실과 융성으로 드러나게 된다는 점. 즉, 견해가 바르고 계행을 실천하면 관계와 재물과 건강은 자연히 따라오게 된다는 점.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