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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출발 법회

마음이 가지는 가장 중요한 특징 - ‘마음은 마음 자체로서는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0 1,361 2017.09.26 07:33

‘해피스님의 마음이야기’ 두 번째 날은 마음이 가지는 가장 중요한 특징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네 단계의 이어지는 질문을 통해 삶에 대한 한 가지 시각을 정리하게 될 텐데요, 흥미로운 이야기입니다.


첫 번째 질문은 ‘마음은 무얼까?’에 속하는 질문입니다. 마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심오하고 어려운 영역에 속하는 것인 줄은 말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다고 하겠는데요, 어떻게 생겨나서 어떤 활동을 하고 어떻게 달라지는 것인지를 설명하는 ‘마음은 무얼까?’에 대한 포괄적 이해는 심오한 공부과정에 맡기기로 하고요, 여기서는 그 마음이 가지는 가장 중요한 특징에 대한 단답형 질문으로 시작해 보려합니다.


자, 어떻게 생각하세요, 마음이 가지는 가장 중요한 특징은 무엇일까요? 


뜻밖에도 ‘마음은 마음 자체로서는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마음에 대해 아무리 깊은 탐구를 한다 해도 마음은 마음 자체로서 독립된 의미를 가지고 자기를 드러내지 않습니다. 생겨나는 것이기 때문에 마음 역시 스스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어떤 것이 아니기 때문이겠지요.


그렇다면 마음은 어떤 경우에 의미를 가지고, 어떤 형태로 자기를 드러내는 것일까요? 부처님 가르침에 의지해서 마음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내용이 바로 이것이라고 해야 할 것 같은 데요, ‘마음은 몸과 함께할 때 비로소 의미를 가지게 되고, 몸의 영역 안에서 자기를 드러낸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런 사실은 자연스럽게 ‘나는 누구인가?’라는 이어지는 질문을 부르게 됩니다.


자! 그러면 두 번째 질문을 해 볼까요? ‘나’는 누구입니까? 또는 ‘나’는 무엇입니까?


중생으로 태어나 구체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나’라는 존재를 정의하는 이 심오한 질문에 대해 부처님은 간단하고도 분명한 대답을 주는데, ‘몸과 함께한 것’입니다. 


‘나는 누굴까? 나는 무엇일까?’ 삶의 본질을 꿰뚫는 이 심오한 철학적 질문에 대해 부처님은 의외로 그 자체를 정의해 주기보다는 존재하는 상태에 대한 설명으로 대답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쩌면 생겨나지 않은 것에 대한 부정 즉 무아(無我)를 근본으로 하는 가르침의 영역에서 제공되는 답변이기 때문에 이런 방법이 아닌 다른 방법은 현실적으로 있을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도 할 수 있게 됩니다.


몸과 함께한 상태의 것! 한자로는 유신(有身)이라고 번역된 ‘중생으로의 자기존재’를 의미하는 용어인데요, 몸을 수반한 상태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몸을 수반하여, ‘몸과 함께한 상태의 것’으로의 나를 대표하는 것일까요? 


• 경전 읽고 가겠습니다. <유신(有身) 경>에 나타나는 유신(有身) 즉 중생인 ‘나’의 정의입니다. [배경 음악] 


"도반 사리뿟따여, '유신(有身), 유신(有身)[몸과 함께함, 몸과 함께함]'이라고들 합니다. 도반이여, 도대체 어떤 것이 유신(有身)[몸과 함께함]입니까?"


"도반이여, 오취온(五取蘊) 즉 집착된 오온(五蘊)이 유신(有身)이라고 세존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색취온(取蘊)[집착된 물질의 쌓임], 수취온(受取蘊)[집착된 경험의 쌓임], 상취온(想取蘊)[집착된 내적 경향의 쌓임], 행취온(行取蘊)[집착된 형성작용의 쌓임], 식취온(識取蘊)[집착된 식(識)의 쌓임]입니다. 도반이여, 이러한 오취온(五取蘊)이 유신(有身)이라고 세존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도반이여, 그러면 이러한 유신(有身)을 완전하게 알기 위한 길이 있고 실천행이 있습니까?"


"도반이여, 이러한 유신(有身)을 완전하게 알기 위한 길이 있고 실천행이 있습니다."


"도반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이러한 유신(有身)을 완전하게 알기 위한 길이고 실천행입니까?"


"도반이여, 그것은 바로 팔정도(八正道)이니,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활, 바른 정진, 바른 알아차림, 바른 삼매입니다. 도반이여, 이것이 유신(有身)을 완전하게 알기 위한 길이고 실천행입니다."


"도반 사리뿟따여, 유신(有身)을 완전하게 알기 위한 이 길은 참으로 경사스런 것이고 이 실천행은 참으로 경사스런 것입니다. 참으로 그대들은 방일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짐작하시겠지요? 마음입니다. 마음이 몸과 함께할 때 내가 되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나인 것이지요. 그래서 마음은 몸을 수반함으로써 나를 생겨나게 하는 나의 대표적 구성요소라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마음은 마음 자체로서는 의미를 가지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마음이 삶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은 이런 방법으로 ‘나’를 정의해 주는 중심 개념이기 때문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정리해 볼까요? 나는 누구일까요? 마음이 몸과 함께한 상태의 것! 이것이 바로 부처님이 알려주는 ‘나’입니다.


여기서 마음이야기는 한 번 더 이어지는 질문을 필요로 합니다. 자, 세 번째 질문으로 넘어가볼까요?삶은 무엇입니까? 즉, 산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제 우리는 이 질문에 답할 수 있습니다. 삶 즉 산다는 것은 마음이 몸과 함께 세상을 만나는 이야기입니다. 몸과 마음이 함께한 상태로의 내가 몸 밖에 존재하는 나 아닌 다른 것들로 구성된 세상을 만나는 이야기가 바로 지금 우리의 살아가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마음은 마음 자체로서는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는 것은 이렇게 ‘나는 나 자체로는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라는 말로 확장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음이 그러하듯이 나 역시 나 아닌 것들을 만나는 이야기 즉 관계 속에서 의미를 가지고 관계의 영역 안에서 자기를 드러내게 된다고 말해야 하는 것이겠지요. 삶은 이렇게 관계 가운데서 나를 생겨나게 합니다. 


자, 이렇게 마음에서 나로, 나에서 삶으로 연결되는 과정을 알아보았는데요, 마음이야기는 이제 또 하나의 질문을 통해 가치적인 삶이라는 주제로 연결됩니다.


법우님, 우리가 이렇게 마음이야기를 알아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저~ 살아가기만도 바쁜 세상에서 그저~ 살아가는 일에 머물지 않고 살아가는 일의 의미를 따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하는 말씀입니다. 


부처님은 삶의 모든 과정은 경험으로 모인다고 말하는데, 오온(五蘊)의 수(受)를 말합니다. 이때, 경험에는 만족과 불만족 그리고 만족도 불만족도 아닌 세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불만족이라는 것은 내 마음 대로 되지 않는 것인데, 고(苦) 즉 괴로움입니다. 반면에 만족이라는 것은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인데, 락(樂)입니다. 즐거움이라고도 행복이라고도 부르는 그것입니다. 그리고 만족의 좀 더 적극적인 의미는 불만족의 해소 즉 고멸(苦滅)입니다. 


이제 우리가 이렇게 마음이야기를 알아보는 이유에 대해 부처님은 선언적으로 답변합니다. ㅡ ‘나는 오직 고(苦)와 고멸(苦滅)을 말한다.’


마음이 몸과 함께 세상을 만나는 이야기로의 삶에는 불만족이 있다는 자각입니다. 몸도 마음도 나도 그리고 삶도 모두 생겨난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는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음 즉 이러저러한 불만족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것이고, 그 위에서 불만족이 해소된 만족한 삶, 행복한 삶의 실현이 부처님이 제시하는 삶의 방향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저~ 살아가기만도 바쁜 세상에서 우리가 이렇게 마음이야기를 알아보아야 하는 이유를 부처님은 불만족이 해소된 만족하고 행복한 삶의 실현을 위해서라고 말해 주는 데, 말하자면 이것이 불교의 목적이고 존재 이유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음이 몸과 함께함으로써 나를 생겨나게 하고, 이렇게 생겨난 내가 세상을 만나는 이야기가 바로 삶입니다. 그 위에서 삶은 불만족을 생겨나게도 하고 만족 즉 행복을 생겨나게도 합니다. 앞으로 우리가 이야기 할 주제들입니다마는 어떤 경우에 삶은 불만족을 생겨나게 하고, 또 어떤 경우에 삶은 만족을 생겨나게 하는 것인지에 대해 주목해야 합니다. 그래야 불만족은 생겨나지 않게 하고, 만족은 더 크게 생겨나도록 삶을 이끌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부처님 가르침은 이렇게 말해줍니다. 생겨나는 과정이 잘 제어되지 않으면 불만족 즉 괴로움의 상태를 만들 것이고, 잘 제어되면 만족 즉 행복의 상태를 만들게 된다. 그래서 생겨나는 과정이 잘 제어되어야 하는데, 이러한 제어를 공부라고도 하고 수행이라고도 하는 것입니다.


• 경전 읽고 가겠습니다. <데와다하 경>에 나타나는 해로운 법들의 제거와 유익한 법들의 구족을 칭찬하는 이유입니다. [배경 음악] 


도반들이여, 해로운 법들을 갖추어 머무는 자가 지금여기에서 속상함이 없고 절망이 없고 열기가 없는 행복한 삶을 살고, 몸이 무너져 죽은 다음에는 좋은 곳이 예상된다면 세존께서는 해로운 법들을 제거하는 것을 칭송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도반들이여, 그러나 해로운 법들을 갖추어 머무는 자는 지금여기에서 속상하고 절망하고 열기가 있는 괴로운 삶을 살고, 몸이 무너져 죽은 다음에는 불행한 곳이 예상됩니다. 그래서 세존께서는 해로운 법들을 제거하는 것을 칭송하시는 것입니다.

 

도반들이여, 유익한 법들을 구족하여 머무는 자가 만일 지금여기에서 속상하고 절망하고 열기가 있는 괴로운 삶을 살고, 몸이 무너져 죽은 다음에는 불행한 곳이 예상된다면 세존께서는 유익한 법들을 구족하는 것을 칭송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도반들이여, 그러나 유익한 법들을 구족하여 머무는 자는 지금여기에서 속상함이 없고 절망이 없고 열기가 없는 행복한 삶을 살고, 몸이 무너져 죽은 다음에는 좋은 곳이 예상됩니다. 그래서 세존께서는 유익한 법들을 구족하는 것을 칭송하시는 것입니다.


너무 어려운 이야기인가요? 그래도 마음이야기의 근본이 되는 것으로 ‘마음은 무얼까? 나는 누굴까? 산다는 것은 무얼까?’의 세 단계 연결된 질문에 이어 행복한 삶의 실현이라는 하나의 가치를 제시해 보았습니다. 음악 듣고 다시 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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