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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출발 법회

새출발법회 3주차 ㅡ 자살하지 않기 & 다섯 가지 융성과 상실

0 1,399 2017.08.02 21:30

[동영상] ☞ https://youtu.be/RqCWPfIMFa4

 

쉽지만 어긋남이 없는 공부를 위해 해피법당이 개설하는 새출발법회 세 번째 시간입니다.

 

기억하시나요? 지난 법회에서 이런 인사에 대해 말씀 나눴습니다.

 

「재가자의 집을 방문하는 비구는 재가자에 대해 마음이 걸리지 않고 붙들리지 않고 매이지 않는다. - ‘얻기를 원하는 자 얻을 것이며, 공덕을 원하는 자 공덕을 지을 것이다[ ‘labhantu lābhakāmā, puññakāmā karontu puññānī’ti]’라고. 스스로 얻는 것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듯이 남들이 얻는 것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이런 비구가 재가자의 집을 방문하기에 적합하다.」 <달과 같이 경(S16:3)>이었지요.

 

저도「얻기를 원하는 자 얻을 것이며, 공덕을 원하는 자 공덕을 지을 것이다」라고 인사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법우님들이 얻는 것을 마치 제가 얻은 것처럼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비구가 되겠다는 마음으로 법우님들과 만나는 것이지요.

 

법우님들께서도 만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얻기를 원하는 자 얻을 것이며, 공덕을 원하는 자 공덕을 지을 것이다」라는 마음을 가져 보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얻는 것을 법우님이 직접 얻은 것처럼 기뻐하고 즐거워해 보자고 했습니다. 이런 비구가 재가자의 집을 방문할 때 환영받는 것과 같이, 이런 법우님 또한 많은 사람들에게 환영 받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우리가 공감했던 것이지요.

 

정말, 법우님들의 지난 한 주는 어떠셨어요? 이런 공부를 실천하셨나요? 그랬더니 ‘야~ 정말 많은 사람들이 나를 환영하는구나!’라고 느껴지던가요? 느낌이 오려면 시간이 좀 더 필요할까요?

 

에구~ 안 해 보셨군요.

 

공부가 무엇이었나요? 배워 알고 아는 대로 실천하여 실현하는 것이었지요. 아무 가르침이나 배워 알고 실천해서 실현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부처님 가르침은 배워 알고 실천하면 실현되는 가르침이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그 가르침에 의지하여 삶을 향상하자고 하는 것이고요.

 

해 보셔요. 실제로 해보면 달라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해 보는 것! 즉 행위를 통해 내가 먼저 달라지고, 나를 대하는 다른 사람들이 조그씩 조금씩 달라지는 것을 알 수 있게 됩니다. 내 노력과 다른 조건들의 차이에 따라 시간은 조금 더 걸릴 수도 있고 덜 걸릴 수도 있지만 분명히 달라집니다. 그것이 부처님 가르침이 가지는 위력이거든요.

 

그런 행위를 시도해 보기로 하면서 오늘 공부로 들어가겠습니다.

 

세상을 보는 바른 눈 즉 바른 견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요, 저 세상은 있다, 화생하는 중생은 있다, 선악의 행위에는 과와 보가 따른다는 세 가지를 기본으로 하였습니다.

 

‘저 세상은 있다.’라는 사실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죽는다고 해서 우리의 삶이 완전히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지요. 몸이 죽어도 몸 따라 죽지 않는 마음이 새로운 몸과 만나 이어지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고, 윤회라고 말하는 것이지요.

 

몸 따라 죽지 못하는 마음의 이어지는 삶에서 사회 현상과 관련해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이 있는데, 자살의 문제입니다. 자살! 무엇인가요? 세상 살기가 하도 힘들어 차라리 죽느니만 못하다는 생각에 모든 것을 끝내고 정리하기 위해 죽는 것이잖아요. 한국사회가 급격한 산업화의 부작용이라고 할까요, 여러 가지 조건들에 의해 살기 어려운 사람들이 많아졌지요. 그러다보니 OECD 국가 가운데 자살 순위 1위라고도 하고, 2012년 기준 통계청 사망원인통계를 보면, 사망률 순위는 암-심장질환-뇌혈관질환에 이어 자살이 네 번째더라고요. 우리 사회에서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자살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통계입니다.

 

그런데 정말 죽으면 모든 것을 끝내고 정리할 수 있는 건가요?

 

법우님, 자살하는 사람의 경우에 죽자는 결정은 누가 하나요? 몸이 ‘에잇, 죽자!’라고 결정해서 스스로 죽나요? 아니면 결정은 마음이 하고 몸은 그저 마음의 결정에 따라 죽어야 하나요? 마음이 결정해 죽는다면, 죽을 때 몸만 죽나요, 아니면 마음도 함께 죽나요? 그렇지요. 결정은 마음이 해서 죽는데, 정작 죽는 건 몸 뿐이고 마음은 죽지 못합니다. 죽은 순간 이미 새로운 몸과 만나 새로운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견해의 문제입니다. 부처님이 알려주시는 바른 견해를 모르다보니 살다가 힘들면 죽음으로 끝내려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죽자는 결정은 마음이 하지만 정작 마음은 죽지 못하고 몸만 죽이고 맙니다. 이때, 죽자고 결정하는 것도 행위이고, 몸을 죽이는 것도 행위입니다. 몸을 죽인 마음은 이 행위에 의해 영향 받습니다. 힘들면 죽어버리는 결정에 익숙해지는 것입니다. 아주 죽지 못하고 새로운 몸과 만나 또다시 살아가야 하는 이 마음이 살다가 힘들면 죽어버리는 일에 습관지어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겠어요? 세세생생 태어날 때마다 힘들면 죽어버리는 것, 자살을 반복하는 삶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태어날 때마다 자살해야 할 만큼 힘들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살은 바보짓입니다. 절대로 자살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지금 몸에서 생긴 일은 지금 몸으로 겪어내고, 지금 몸으로 이겨내어야 합니다. 마음에게 아무리 힘들어도 극복하고야 마는 습관을 들여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세세생생 건강하게 살아가는 '나'를 만드는 길인 것입니다. ‘저 세상은 있다.’라고 부처님이 알려주는 바른 견해를 우리가 배워 안다면 자살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해서는 안되는 최악의 선택이라고 분명히 해야 한비다.

 

조건들에 의해 형성되고 조건들에 의해 변해가는 마음을 알고 보는 가르침은 불교 밖에 없습니다. 자살이 바보짓이라는 이유를 밝혀줄 수 있는 종교 역시 불교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 사회의 안녕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하는 일 중에 중요한 한 가지는 자살하지 않도록, 삶을 바르게 알고 바르게 보도록 도와주는 일입니다.

 

해피법당이 운영하는 해피캠페인의 다섯 번째가 「자살하지 않기」인데, 이런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자, 다시 세상을 보는 바른 눈 즉 바른 견해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 오겠습니다. 저 세상은 있다, 화생하는 중생은 있다, 선악의 행위에는 과와 보가 따른다는 세 가지 기본적인 견해입니다.

 

저 세상은 있고, 화생하는 중생이 있다는 두 가지가 전생-금생-내생의 삼세에 걸쳐 지옥-축생-아귀-인간-하늘의 다섯 세상을 윤회한다는 설명이고, 다섯 세상 가운데 어디에 태어날 것인지를 결정하는 동력이 행위 즉 업이라는 것이 선악의 행위에는 과와 보가 따른다는 세 번째 바른 견해입니다. 우리가 불교신자인 이유가 괴로움에서 벗어나 행복하기 위함이기 때문에 선악의 행위에는 과와 보가 따른다는 세 번째 바른 견해가 공부의 중심이 된다고 하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선악(善惡)의 행위에 따르는 과(果)와 보(報)는 있다.’라는 견해는 불교의 중심이 되는 주제입니다. 새출발법회가 공부할 모든 내용이 이 안에 있다고 해야 할 것인데, 다음 주부터 차근차근 짚어가도록 하고, 오늘은 견해와 관련한 경전 하나를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견해가 우리 삶에서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지 알려주는 경전입니다.

 

[디가니까야(D33) 합송경 - 다섯 가지로 구성된 법들] 중에서. ⇔ <구족함 경(A5:130)>과 같은 경전임.

 

● 다섯 가지 상실(vyasana) ㅡ 관계의 상실, 재물의 상실, 건강의 상실, 계의 상실, 견해의 상실

 

도반들이여, 중생들은 관계의 상실을 원인으로 하거나 재물의 상실을 원인으로 하거나 건강의 상실을 원인으로 하여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처참한 곳, 불행한 곳, 파멸처, 지옥에 떨어지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중생들은 계의 상실을 원인으로 하거나 견해의 상실을 원인으로 하여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처참한 곳, 불행한 곳, 파멸처, 지옥에 떨어집니다.

 

● 다섯 가지 융성(sampadā) ㅡ 관계의 융성, 재물의 융성, 건강의 융성, 계의 융성, 견해의 융성

 

도반들이여, 중생들은 관계의 융성을 원인으로 하거나 재물의 융성을 원인으로 하거나 건강의 융성을 원인으로 하여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선처(善處)], 천상세계에 태어나지는 않습니다. 도반들이여, 그러나 중생들은 계의 융성을 원인으로 하거나 견해의 융성을 원인으로 하여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좋은 곳, 천상세계에 태어납니다.

 

[주목할 점]

 

Ⅰ]삶의 조건으로 다섯 가지를 제시하였는데, 그 중 세 가지 - 관계[인적 관계], 재물[돈], 건강 - 는 금생에 영향을 미치는 조건들이고, 두 가지 - 계, 견해 - 는 다음 생까지 영향을 미치는 조건들이라는 점.

 

Ⅱ]견해는 계행에 영향을 미치고, 견해와 계의 상실과 융성 여부는 관계, 재물, 건강의 상실과 융성으로 드러나게 된다는 점. 즉, 견해가 바르고 계행을 실천하면 관계와 재물과 건강은 자연히 따라오게 된다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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