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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출발 법회

저 세상이 실제로 있기 때문에...

0 1,143 2017.11.09 09:53

[ … ] 들으셨습니다. 토요일 밤, 편안함과 함께하는 부산불교방송 주말특집 해피스님의 마음이야기 함께하고 계십니다.


자, 여러분!


부처님의 선언에 의하면 저 세상은 있습니다. 죽는다고 아주 죽는 게 아닙니다. 삶의 과정에서 매 순간 달라지며 생겨나는 이 마음이 새로운 몸과 함께 새로운 삶을 이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살아서도 행복하고 죽어서는 더 좋은 삶의 이어짐 즉 하늘에 태어나게 하는 것이 지금 내가 잘 사는 방법입니다.


그런데 어떠세요? 법우님은 이런 결론에 동의하나요? 믿을 수 있느냐고요? 맞아요. 이런 동의가 쉬운 일은 아닐 겁니다. 부처님 가르침이 그렇다 하니 믿어야 할 거 같기는 한데, 정말 그런 것일까? 쉬 동의가 되지 않는 거지요. 확실하게 동의할 수 있는 강력함이 있다면 더 좋을 텐데 말입니다.


그래서 이 질문에 대한 감동적인 동의과정을 담고 있는 경전을 소개해 드립니다. 부처님과 재가제자인 시하 장군의 대화가 기록된 <시하 경>입니다. 


보시의 결실을 질문하는 시하 장군에게 부처님은 보시를 행하는 보시의 주인을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마음에 들어 하는 것, 선하고 참된 사람들이 그를 가까이 하는 것, 그에게 좋은 명성이 따르는 것, 어떠한 모임에 가더라도 담대하고 기죽지 않고 다가가는 것의 네 가지 지금여기서 스스로 보아 알 수 있는 보시의 결실에 이어,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善處]에 태어난다는 내생의 보시의 결실을 설합니다.


시하 장군과 부처님의 대화는 이렇게 이어집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신 지금여기서 스스로 보아 알 수 있는 네 가지 보시의 결실에 대해서는 단지 세존에 대한 믿음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저 자신도 또한 이 네 가지를 알고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보시를 행하는 보시의 주인인 저를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마음에 들어 합니다. 세존이시여, 보시를 행하는 보시의 주인인 저를 선하고 참된 사람들이 가까이합니다. 세존이시여, 보시를 행하는 보시의 주인인 제겐 좋은 명성이 따릅니다. 세존이시여, 보시를 행하는 보시의 주인인 저는 끄샤뜨리야의 회중이나 바라문의 회중이나 장자의 회중이나 사문의 회중이나 그 어떠한 회중에 다가가더라도 담대하고 기죽지 않고 다가갑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신 지금여기서 스스로 보아 알 수 있는 네 가지 보시의 결실에 대해서는 단지 세존에 대한 믿음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저 자신도 또한 이 네 가지를 알고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나 세존께서 '시하여, 보시를 행하는 보시의 주인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善處]에 태어난다.'라고 말씀하신 것에 대해서는 제가 알지 못합니다. 이 점에 대해서 저는 세존에 대한 믿음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러하다, 시하여. 참으로 그러하다, 시하여. 시하여, 보시를 행하는 보시의 주인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善處]에 태어난다."


시하 장군은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보아 알 수 있는 영역의 가르침에 대해서는 가르침을 실천하는 삶의 과정에서 확인되기 때문에 올바른 가르침이라고 공감하는 것이고, 스스로 보아 알지 못하는 심오한 영역의 문제에 대해서는 부처님에 대한 믿음으로 받아들여 삶의 기준으로 삼는다는 것입니다. 


주목해야 합니다! 심오한 영역의 문제는 어차피 내가 직접 보아 확인하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누구에게 의지해서 그 문제의 답을 구해야 합니까? 불교신자인 시하 장군은 망설임 없이 부처님에게 의지해서 답을 구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불교신자라면, 스스로 알지 못하는 심오한 영역에 속하는 이야기, 종교의 영역에서 답을 찾아야 하는 이야기, 오직 부처님께서 높은 지혜로써 확인해 선언하는 이야기는 부처님에 대한 공감-동의-신뢰에 의해서 받아들이고 삶의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 것입니다. 불교신자에게는 이것이 정답입니다! 이것 외에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종교의 영역에서 답을 구해야 하는 문제에 대해 부처님 아닌 다른 방법에 의지한다면, 그 방법을 설한 스승의 신자인 것이지 불교신자라고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부처님과 시하 장군 간의 이 대화는 심오한 영역에 속하는 이야기는 스승이고 교주인 부처님에 의지해서 가르쳐주신 그대로에 공감하고 동의하고 신뢰하여 삶의 기준으로 삼는 사람이 불교신자라는 것을 극명하게 드러내 주는 일화인 것이지요.


이렇게 시하 장군의 일화가 알려져도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불교신자이면서도 이 문제에 아직 동의하지 못할 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이제 더 확고하게 저 세상이 있다고 알려주는데, <확실한 가르침 경(M60)>입니다.


"저 세상이 실제로 있기 때문에 '저 세상은 없다.'라는 견해를 가지면, 그는 그릇된 견해를 가진 것이다. 저 세상이 실제로 있기 때문에 '저 세상은 없다.'라고 사유하면, 그는 그릇된 사유를 하는 것이다. 저 세상이 실제로 있기 때문에 '저 세상은 없다.'라고 말하면, 그는 그릇된 말을 하는 것이다. 저 세상이 실제로 있기 때문에 '저 세상은 없다.'라고 하면 그는 저 세상을 아는 아라한들에게 대항하는 것이다. 저 세상이 실제로 있기 때문에 '저 세상은 없다.'라고 다른 사람에게 알린다면 그는 그에게 정법이 아닌 것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면서 자신을 칭찬하고 다른 사람을 비방한다. 이처럼 그가 이전에 행한 좋은 행실은 제거되고 나쁜 행실이 자리 잡게 된다. 이러한 그릇된 견해와 그릇된 사유와 그릇된 말과 성자들에 대한 대항과 정법이 아닌 것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함과 자신을 칭찬하고 다른 사람을 비방하는 이런 여러 가지 나쁘고 해로운 법들이 그릇된 견해를 조건으로 생겨난다." 


"저 세상이 실제로 있기 때문에 '저 세상은 있다.'라는 견해를 가지면, 그는 바른 견해를 가진 것이다. 저 세상이 실제로 있기 때문에 '저 세상은 있다.'라고 사유하면, 그는 바른 사유를 하는 것이다. 저 세상이 실제로 있기 때문에 '저 세상은 있다.'라고 말을 하면, 그는 바른 말을 하는 것이다. 저 세상이 실제로 있기 때문에 '저 세상은 있다.'라고 하면 그는 저 세상을 바르게 아는 아라한들에게 대항하는 것이 아니다. 저 세상이 실제로 있기 때문에 '저 세상은 있다.'라고 다른 사람들에게 알린다면 그는 그에게 정법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면서 자신을 칭찬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비방하지 않는다. 이처럼 그가 이전에 행한 나쁜 행실은 제거되고 좋은 행실이 자리 잡게 된다. 이러한 바른 견해와 바른 사유와 바른 말과 성자들에게 대항하지 않음과 정법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함과 자신을 칭찬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비방하지 않는 이런 여러 가지 유익한 법들이 바른 견해를 조건으로 생겨난다." 


어떠세요, 법우님? 확실한 가르침 위에서 다시 한 번 질문 드립니다. 법우님은 이런 결론에 동의하나요? 믿을 수 있느냐고요? 


동의하신다면 참으로 다행입니다. 이제는 잘 사는 일의 실천에 매진하면 됩니다. 그러면 살아서도 행복하고 죽어서는 더 좋은 삶이 이어지는 향상하는 삶이 법우님에게서 실현될 것입니다.


만약 동의하지 않으신다면, 서둘러 공부하셔야 합니다. 심오한 영역, 종교적 해석이 필요한 영역, 부처님의 깨달음과 선언이 필요한 영역에 속하는 문제에 대해 공부하지 않아서 알지 못하고, 부처님 가르침과 다른 시각을 가지게 된다면, 참으로 살아서도 행복하고 죽어서는 더 좋은 삶을 이어지게 하는 올바른 방법으로 삶을 향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공부해야 합니다, 법우님. 배워서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불교신자가 실천에 앞서서 반드시 갖춰야 하는 조건입니다.


한편, <확실한 가르침 경>은 ‘저 세상은 있다’는 것은 바른 견해 즉 정견(正見)이라고 하고, ‘저 세상은 없다.’는 것은 그릇된 견해 즉 사견(邪見)이라고 합니다. 저 세상에 대한 시각을 견해라고 말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삶의 과정의 여러 단계가 이 견해를 조건으로 생겨난다고 합니다. 저 세상의 유무에 대한 시각 즉 윤회하는지에 대한 관점을 견해라고 하고, 이 견해가 삶에서 생겨나는 다양한 이야기의 조건이라는 것입니다.


부산불교방송 주말특집 해피스님의 마음이야기 세 번째 시간의 주제인 윤회는 이렇게 견해로 연결되어 삶의 조건이 됩니다. 이어지는 견해에 대한 이야기, 음악 듣고 계속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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