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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출발 법회

새출발법회 7주차 ㅡ 내편 만들기[사무량심-사섭법]

0 1,496 2017.08.06 19:57

[동영상] ☞ https://youtu.be/IlT_RPXypfY

 

쉽지만 어긋남이 없는 공부를 위해 해피법당이 개설하는 새출발법회 일곱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내 편 만들기’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법우님은 어떠셔요. 주변에 법우님 편이 좀 많이 있으셔요? 법우님 편이 좀 많아서 살아가는 동안에 여러 가지로 법우님을 편들어 준다면 참 좋겠지요? 부처님 가르침을 배워서 알고 실천하면 세상에 법우님 편이 많아질까요? 

 

업에 대한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난주에는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을 십업(十業)으로 확장하여 괴로움을 결과 맺는 것으로의 십악업(十惡業)과 행복을 결과 맺는 것으로의 십선업(十善業)을 알아보았는데, 시간 관계상 십선업에 속하는 의업에 대한 설명을 이번 주로 미루었습니다. 

 

불탐(不貪)-부진(不嗔)-정견(正見)입니다. 그런데 사실 불탐과 부진은 좀 포괄적인 의미를 가집니다. 의미상으로는 간탐하지 않음, 진에 않음이라고 해야 옳습니다. 남의 것에 대해 내 것이면 좋겠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고, 분노하거나 폭력적 의도를 일으키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때, 불살생(不殺生) 즉 해치지 않음의 보다 적극적 의미를 ‘거들어 살리는 것’으로, 불투도(不偸盜) 즉 주지 않는 것을 가지지 않음의 적극적 의미는 ‘내 것을 꺼내어 베푸는 것’ 등으로 이해하였듯이 불탐과 부진에 대해서도 적극적 의미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불탐(不貪) 즉 간탐하지 않음은 남의 것에 대해 내 것이면 좋겠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인데 적극적인 의미로는 보시(布施)입니다. 내 것까지 꺼내어 필요한 존재들에게 베푸는 행위를 통해 간탐을 제어하고, 간탐 때문에 생기는 불만족의 문제를 해소하게 되는 것입니다. 

 

부진(不嗔) 즉 진에 않음은 진에(瞋恚)와 마찬 가지로 두 가지측면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분노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 것과 폭력의 의도를 발휘하지 않는 것인데, 적극적인 의미로는 자비(慈悲)입니다. 

 

자(慈)는 다른 생명들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분노하는 마음을 제어하고 분노하지 않는 마음을 일으켜 분노 때문에 생기는 불만족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자(慈) 즉 자애(慈愛)로운 마음을 북돋워야 하는 것입니다. 

 

비(悲)는 다른 생명들의 아픔이 줄어들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폭력의 의도를 제어하고 폭력적이지 않은 의도를 일으켜 폭력 때문에 생기는 불만족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비(悲) 즉 연민-동정-측은의 마음을 북돋워야 하는 것입니다. 

 

불교를 대표하는 것 두 가지를 말할 때 보통 지혜와 자비를 말하는데, 그 중의 자비(慈悲)가 이 자리에서 출현하는 것입니다. 다른 생명들이 행복하고 아픔을 겪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인 것입니다. 지혜가 내적으로 세상을 보는 시각을 바르게 하는 ‘나’를 중심으로 하는 것이라면 자비는 이렇게 외적으로 다른 생명의 행복을 뒷받침하는 ‘관계’를 중심으로 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불교는 ‘나의 성숙’과 ‘관계의 성숙’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삶의 향상을 이끄는 가르침이라고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자비(慈悲)도 조건으로 하는 것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이 다른 생명을 위해 자비심(慈悲心)을 일으킨다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다른 생명이 행복해지고 아픔이 해소된다면 자기 배가 아플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비심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다른 생명의 행복을 함께 기뻐할 수 있는 마음이 받쳐주어야 합니다. 다른 누군가가 행복해지고, 다른 누군가의 아픔이 줄어들 때 내가 함께 기쁠 수 있어야 자비심을 일으켜 다른 누군가를 행복하게 하고, 아픔을 덜어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함께 기뻐하는 마음을 희(喜)라고 합니다. 

 

또한, 함께 기뻐하기 위해서도 받쳐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내 마음이 작은 것에 휘둘려 이리저리 흔들리지 않아야 하나의 분명한 가치를 가지고 남의 행복을 함께 기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마음을 평정심이라고 하는데, 흔들리지 않는 마음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런 평정을 사(捨)라고 합니다. 

 

이렇게 설명되는 네 가지 즉 자비희사(慈悲喜捨)를 사무량심(四無量心) 또는 사범주(四梵住)라고 합니다. 흔들리지 않는 마음 위에서 함께 기뻐함을 갖추어 다른 생명들이 행복하기를 바라고 다른 생명들의 아픔이 줄어들기를 바라는 마음을 한량없이 하라는 의미[사무량심(四無量心)]이고, 이런 마음을 잘 유지하라는 의미[사범주(四梵住)]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간 공부해서 아는 거지만, 마음은 직접 전달되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자비희사를 한량없이 하고 거기에 머물자는 것은 마음의 이야기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달리 말하면, 내 마음의 이야기이지 남들에게 이 마음이 직접 전달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비희사 사무량심 또는 사범주는 단지 자기 자신의 마음을 수양하는 용도만을 가지는 것인가요? 물론, 그렇지는 않습니다. 마음을 이렇게 채우고 이렇게 유지하라는 것은 마음의 행위에 따르는 몸과 말의 행위에 의해 이런 마음이 남들에게 전달된다는 것을 포함하는데, 보시(布施)-애어(愛語)-이행(利行)-동사(同事)의 사섭법(四攝法)입니다. 

 

보시(布施)는 베푸는 것입니다. 의업 중 간탐에 대응하는 것인데, 재시(財施)-법시(法施)-무외시(無畏施)의 세 가지가 있습니다. 애어(愛語)는 구업에 대응하는 것인데, 사랑스럽고 이익 되게 말하는 것입니다. 이행(利行)은 신업(身業)에 대응하는 것인데, 상대방에게 이로움을 주는 행위입니다. 동사(同事)는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 모두를 아우르는 일상의 생활에 대응하는 것인데, 어떤 상황에서 힘을 합치고 함께 하는 것입니다. 

 

경전은 자비희사 사무량심 또는 사범주를 이렇게 사섭법과 짝을 이루어 설명합니다. 마음을 사무량심으로 가득가득 채워 넘치게 하면, 몸과 말의 행위는 사섭법으로 드러나 상대방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게 되는 것입니다. 

 

이럴 때 나와 함께 하는 남들은 자연스럽게 내 편이 됩니다. 이러저러하게 옳지 않은 방법으로 내 편을 만드는 것과는 전혀 다른, 부작용이라고는 전혀 없는 진정한 의미의 내 편을 만드는 방법입니다. 

 

<힘 경(A9:5)[balasuttaṃ]>은 지혜, 정진, 비난받을 일이 없음, 섭수라는 네 가지 힘을 말하는데, 그 중 섭수의 힘으로 사섭법을 제시합니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섭수의 힘인가? 비구들이여, 네 가지 섭수하는 행위[四攝事](cattārimāni saṅgahavatthūni)가 있나니, 보시, 사랑스런 말[愛語], 이로운 행위[利行], 함께 함[同事]이다. 비구들이여, 

 

1) 보시 가운데 으뜸은 법보시[dhammadāna]이다. 

 

2) 사랑스런 말 가운데 으뜸은 듣고자 하고 귀를 기울이는 자에게 거듭거듭 법을 설하는 것이다. 

 

3) 이로운 행위 가운데 으뜸은 

 

① 믿음이 없는 자에게 믿음을 가지도록 격려하고, 믿음에 머물게 하고, 확고하게 굳히도록 하며,

② 계행이 나쁜 자에게 계를 지키도록 격려하고, 계에 머물게 하고, 확고하게 굳히도록 하며,

③ 인색한 자에게 베풂을 구족하도록 격려하고, 베풂에 머물게 하고, 확고하게 굳히도록 하며,

④ 지혜가 없는 자에게 지혜를 구족하도록 격려하고, 지혜에 머물게 하고, 확고하게 굳히도록 하는 것이다. 

 

4) 함께 함 가운데 으뜸은 예류자는 예류자와 함께하고 일래자는 일래자와 함께하고 불환자는 불환자와 함께하고 아라한은 아라한과 함께함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섭수의 힘이라 한다.」 

 

라고 합니다. 주목해야 하는 가르침입니다. 특히, 동사(同事) 가운데 으뜸을 설하는 내용은 더욱 주목해야 하는데, <숫타니파타 코뿔소의 외뿔의 경>이 설하는 가르침,

    

「만일 그대가 어질고 단호한 동반자, 성숙한 벗을 얻는다면, 어떠한 난관들도 극복하리니, 기쁘게 sati[념(念)]를 갖추어 그와 함께 가라.

만일 그대가 어질고 단호한 동반자, 성숙한 벗을 얻지 못한다면, 왕이 정복한 나라를 버리듯, 코뿔소의 외뿔처럼 혼자서 가라. 

우리는 참으로 친구를 얻은 행복을 기린다. 훌륭하거나 비슷한 친구를 사귀되, 이런 벗을 만나지 못하면 허물없음을 즐기며, 코뿔소의 외뿔처럼 혼자서 가라.」 

 

을 떠올리게 해 줍니다. 단지 교제를 위하여, 교제 자체를 목적으로 ‘어질고 단호한 동반자, 성숙한 벗’ 아닌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다고 알려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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