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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스님 이야기

자리매김 ㅡ 2. 자질과 품위

0 414 2018.12.30 19:43

2006.05.08. http://cafe.daum.net/happysanga/EizR/17

 

대학 다닐 때 한 여자친구가 물었다. 자질과 품위 중 어느 것이 중요하냐고. 참 못생겼다고 생각하면서도 격이 높다 싶은 여자친구였는데 어느날 내게 그런 질문을 했다. 생각할 것도 없이 자질이라고 대답했더니 그녀는 품위라고 했다.

 

사전적으로 어울리는 의미를 찾으면, 자질은 '타고난 성품이나 소질'이고 품위는 '사람이 갖추어야할 위엄이나 기품'이다. 나는 타고난게 없으면 가는 곳에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었는데 그녀는 '?'인지 답이 없었다.

 

갖추어야하는 것은 타고난 게 있으면 '마음먹기'로 갖출 수 있다고 생각했다.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라는 에디슨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그분은 자질의 부족을 노력으로 극복하신게 아닐까 했다.

 

'業力', '습관의 힘'에 대해 내가 좀 더 일찍 가슴으로 알았다면, 습관이란 것이 '갖추기 위한 마음먹기에 결정적 요인'이란 것을 정말이지 일찍 알았다면, 마치 퇴폐적 예술가거나 퇴폐적 소설가처럼 담배 한모금 술 한잔으로 소중한 가치를 삼지는 않았을거다. 머리로 헤아리기만 하는 곁다리 철학자 같은 일상으로 흐뭇해 하지는 않았을 거다. 준식이나 길모, 수영이처럼 내 곁에 있고 정말 사랑하는 친구들이 저들대로의 자리에 중후히 서 있는 모습을 좋아하면서도 씁쓰레하는 이 마음으로 있지는 않을텐데...

 

그녀를 만났다. 그 똑똑이는 여전하다. 아이가 고려대 법대에 입학했단다. 얘기 하면서 운다, 울어! 눈물이 뚝뚝. '정말 아프구나' 하니 '대한민국에 들어온 게 화날 정도'란다. 홍콩에서도 그랬고, 한국에서도 그랬단다. 그런 아이가 서울법대에 탈락했다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단다. 반수(대학 다니면서 다시 입시준비 하는 것, 절반의 재수) 안하려면 집나가라고 했단다.

 

그랬다. 그녀의 품위는 고대법대로도 닿지 않는 더 높은 곳에 자리매김 되어 있다. 내 아이는 고대 경영학과가 목표다. 지지리도 공부 안하는 내 아이는 그래도 제 학교에서는 일등이다. 주위에선 재효, 재효 하지만 녀석은 겨우 고대를 목표로 한다. 부족하고 잘못 살아온 애비가 아들의 품위를 낮추어 버린 것이다. 내가 아이에게 가장 미안한 점이 바로 이것이다. 눈물이 흐를 정도로 눈도 깜박이지 않고 수업에 임하던 아이다. 한번 듣기만 해도 공부 잘하는 아이가 우리 재효다. 근데, 못난 애비가 아이의 품위를 낮추어 버렸다. 고대에 자리매김하기에 내 아이는 너무 아깝다.

 

내 자질을 닮은 아이인 거로 안다. 근데, '습관의 힘'이 미래지향적으로 발휘되지 않는 것이 보인다. 제발, 애비처럼 나중에서야 자기의 자질이 습관의 힘에 밀려 제 품위에 자리매김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되지 않으면 좋겠다. 자질에 맞는 품위에 자리매김하기 위한 99%의 노력에 내 아이가 부족함이 없기를 정말 소망한다.

 

자질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 사람이 품위를 우선한 사람보다 성취의 정도가 낮았다면 이건 아마도 세상 이치에 어울리는 일인 것 같다. 부처님 당시 '바보스님 주리반특가의 깨달음'을 보아도 자질이 우선하지 않는다는 것이 옳다. 세상의 모든 존재는 다 평등하고 자유롭다. 자질의 차이라는 것도 가리워진 정도의 차이일 것이다. '모든 생명이 佛性이 있다' 한다. 불성이 가리워져 있는 정도를 불교에서는 根氣(근기)라고 하는 것 같다. 세상 말로는 아마도 資質(자질)일거다.

 

나의 미래를 부처에 놓고 사는 사람도 있다. 보살이기를 바라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인간이기거나 아니면 생각조차 없는 사람도 있다. 그 만큼의 노력이 그에게 있다. 높은 품에 위치하고픈 사람은 그 만큼 많은 노력을 하게될거다.

 

그녀는 품위를 우선했고, 나는 자질을 우선했다. 그녀는 거기에 자리매김하고자 했고, 나는 습관의 힘에 이끌려 갈팡질팡 살아왔다. 그녀는 아이가 고대법대간 것이 분해서 펑펑 눈물을 흘리는데 내 아이는 목표가 고대경영학과다.

 

내 아이가 혹이라도 이글을 보게 된다면, "아들아, 자질보다 앞선 것이 자리매김이란다. 너의 자리를 잡으렴. 그 자리에 가기 위해 애써야 한다. 자질은 거기 가는 수고를 조금 덜어줄 뿐이란다. 하지만 잊지 말아라. 네가 자질이 앞선다면, 똑같은 애씀으로 너의 자리가 커질 수 있단다. 너의 노력, 너의 수고만이 너를 만든단다. '타고남'은 노력이 전제될 때 의미를 갖는단다."

 

아들아! 네가 아직 어리다니 정말 다행이구나. 대학서열이 인생서열이 아닌 것 너도 알거다. 이제 젊어지겠지. 젊은이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단다. 부디 너의 자리매김이 정확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거기에 도착하기 위해, 아들아! 오늘의 즐거움은 내일 누리면 더 커진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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