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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스님 이야기

불교는 원시(原始)를 지향하지 않습니다 & 불교와 엔트로피(근본경전연구회 해피법당 190320)

0 547 2019.03.21 10:59

불교는 원시(原始)를 지향하지 않습니다 & 불교와 엔트로피(근본경전연구회 해피법당 190320)

[동영상] https://youtu.be/a6UNSmZGKno

 

경전 즉 가르침과 다르게 형성된 한국불교의 왜곡 사안들에 대한 지적의 일환입니다. 윤회(輪廻)의 주제에서 단견(斷見)과 상견(常見) 모두를 극복하는 연기(緣起)된 식()의 윤회[삶을 누적하며 변화하는 식()에 의한 윤회(http://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3_07&wr_id=25&page=3참조)]불교신자의 삶의 모범은 무소유(無所有)가 아니라 두 눈 가진 사람이 되는 것(http://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2_02&wr_id=12참조)이라는 두 가지에 이어 이번 수업에서는 자연(自然)과 과학문명이라는 개념에 대한 불교의 시각을 살펴보았습니다.

 

이때, 과학문명에 대한 불교적 시각은 중요합니다. 몸과 마음으로 이루어진 나에게서 몸으로의 삶의 행복[무병장수(無病長壽)와 편리 등]은 자연의 극복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보아야 하고, 과학문명은 이런 자연의 극복 과정에 관계하는 조건들의 총합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불교는 오히려 과학문명의 이기가 우리 삶에 폭력이나 파괴 등의 다양한 부작용을 만들지 않아야 하는 필요성 위에서 삶[마음+]의 제어를 위한 방법으로 작용할 때 그 존재의미를 분명히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불교가 자연(自然)에 치우쳐 과학문명을 터부시 한다면 불교는 오래지 않아 인류문명에서 사라져 버리고 말 것입니다(*).

 

(*) 이것이 오늘 수업을 하게 된 동기입니다. ㅡ 「만약, 불교가 과학문명의 이기에 대한 동참을 거부할 것을 요구한다면 더 이상 불교는 유지되지 못할 것입니다. 과학문명의 이기를 나도 너도 그리고 우리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방향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길을 안내하기 때문에 불교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이고, 많은 석학들에 의해 인류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는 유일한 종교라고 칭송되는 것입니다. 이 점 잊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이런 의미를 분명히 하기 위해 무위(無爲)에 대한 두 가지 시각을 살펴보았는데, 하나는 자연(自然)에 대한 인간의 역할의 배제를 지시하는 노자(老子)의 무위(無爲)이고, 다른 하나는 탐진치(貪瞋痴) 없음으로의 참여를 지시하는 불교(佛敎)의 무위(無爲)입니다. 이 두 가지의 차이를 빠알리 원전이 가지는 의미[asaṅkhata]를 중심으로 설명하였습니다. 한편, 강과 관련하여 자연 그대로의 접근보다는 자연을 잘 관리해야 하는 필요성[치수(治水)]가 언급된 경전을 소개하였는데, (AN 5.51-덮개 경)(http://sutta.kr/bbs/board.php?bo_table=nikaya09_01_06&wr_id=2)입니다.

 

또한, 엔트로피(entropy 무질서도)의 개념을 불교에 적용하여 설명하였습니다. 질서로부터 무질서로 흐르는 자연스러움[질서 (자연스러움)무질서]의 반대 방향으로 팔정도(八正道)의 실천에 의해 무질서를 질서로 되돌리는 부자연(不自然)[무질서 (팔정도)질서]입니다. ()를 만드는 십악업(十惡業)과 그 뿌리인 탐()-()-() 그리고 고멸(苦滅) 즉 행복을 만드는 십선업(十善業)과 그 뿌리인 무탐(無貪)-무진(無嗔)-무치(無癡)의 엄격한 분리라는 기준 위에서 십악업(十惡業)을 짓지 않고 십선업(十善業)을 행하여 행복을 만드는 것으로의 질서가 불교입니다. 이런 질서를 만들고, 유지하기 위한 팔정도(八正道)의 포기를 통해 무질서로 흐르는 자연스러움[엔트로피 증가]를 불교는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이 중심이 되는 세상에 대해서도 언급하였습니다. 내가 세상을 만나는 것으로의 삶의 이야기는 당연히 나의 연장선상에서 인간 중심의 세상을 살게 합니다. ‘오직 인간뿐!’이라는 저급한 신념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다양한 생물종들과 더불어 만드는 행복의 중심역할자가 될 것인지의 측면에서 이해할 문제이지 인간중심 자체를 부정해야 하는 문제는 아니라는 접근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ㅡ 「불교(佛敎)는 원시(原始)를 지향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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