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불교입문 > 불교입문 > 2.행위Ⅰ

불교입문

[Ⅴ] 깨달음

0 751 2018.05.30 13:44

[Ⅴ] 깨달음

    ; 근본경전연구회 홈페이지 nikaya.kr 의 [교리공부 → 깨달음]을 참고하십시오.


가. 누구의 깨달음인가?


1. 개척된 깨달음 ㅡ 여래(如來)의 깨달음


우리는 모두 불교신자(佛敎信者)입니다. 부처님 또는 부처님이 깨달아 설하신 가르침을 믿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깨달음의 기준은 누구입니까? 누구의 깨달음을 믿는 것입니까?


종교(宗敎)는 교주(敎主) 즉 스승이 선언하는 삶[나와 세상]의 해석에 대한 공감-동의-신뢰를 기반으로 그를 뒤따라 삶을 향상하고자 하는 집단입니다. 이때, 삶[나와 세상]의 해석에 대한 스승의 선언을 깨달음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교신자는 불교(佛敎)의 교주(敎主)이자 스승인 부처님의 선언 즉 부처님에 의해 개척된 깨달음을 믿는 자인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부처님의 깨달음입니까?


(SN 48.9)는 이렇게 말합니다.


비구들이여, 다섯 가지 기능이 있다. 무엇이 다섯인가? 믿음의 기능, 정진의 기능, 사띠의 기능, 삼매의 기능, 지혜의 기능이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믿음의 기능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믿음이 있다. ㅡ ‘이렇게 그분 세존께서는 아라한(阿羅漢), 정등각(正等覺), 명행족(明行足), 선서(善逝), 세간해(世間解), 무상조어장부(無上調御丈夫), 천인사(天人師), 불(佛), 세존(世尊)이시다.’라고 여래(如來)의 깨달음을 믿는다. ㅡ 비구들이여, 이것이 믿음의 기능이라고 불린다.


다섯 가지 기능[오근(五根)]은 마음을 도와 삶을 향상으로 이끄는 기능입니다. 믿음의 기능도 마음을 도와 삶을 향상으로 이끄는 기능입니다. 이런 이해에 의하면, 어떤 믿음이 삶을 향상으로 이끄는 지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이렇게 믿음의 기능을 정의합니다. ㅡ 「여래(如來)의 깨달음에 대한 믿음이 삶을 향상으로 이끈다!」


그렇습니다. 불교신자에게 삶을 향상으로 이끄는 믿음은 바로 부처님 즉 여래(如來)의 깨달음에 대한 믿음입니다. 여래(如來)는 완전한 깨달음을 선언한 분이고, 완전한 깨달음에 의해 설해진 가르침은 완전한 가르침이라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 위에서 배워 알고 실천하면 가르침이 가지는 위력에 의해 여래(如來)께서 제시하는 그런 삶이 나에게서 실현된다는 믿음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에 근거한 실천은 그렇게 실현을 이끕니다.


그런데 이 정의에 의하면, 우리가 보통 부처님이라고 부르는 포괄적 의미의 부처님은 여래(如來)이고, 여래(如來)의 깨달음을 단면적 특성의 구족으로 정의하는데 아라한(阿羅漢)-정등각(正等覺)-명행족(明行足)-선서(善逝)-세간해(世間解)-무상조어장부(無上調御丈夫)-천인사(天人師)-불(佛)-세존(世尊)의 아홉 가지 덕성(德性)[여래구덕(如來九德)](31쪽 삼귀의(三歸依) 참조)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첨부] 「그래서 여래라 한다.」 참조


누구의 깨달음입니까? 그렇습니다. 여래의 깨달음입니다. 아홉 가지 덕성(德性)으로 구성된 여래의 깨달음이 바로 부처에 의해서 개척된, ‘부처를 만드는 깨달음’인 것입니다. 그리고 아홉 가지 덕성에 의하면, 여래는 「①번뇌를 떠난 자이고 완전한 깨달음을 이룬 자이고 밝음과 실천을 갖춘 자이어서, ②앞서 가 닿은 진리의 자리를 드러내 보여줌으로써 길을 제시하였고, ③그럼으로써 세상일을 잘 알고 모두를 잘 이끌어 천상과 인간의 스승이라고 찬탄 받는 자, ④그가 곧 깨달은 자[불(佛)-부처]이고 존귀한 존재[세존(世尊)]」입니다. 


그런데 이런 이해는 여래를 번뇌를 떠난 자 즉 아라한이라고 압축할 수 있게 합니다. 번뇌를 떠난 것이 완전한 깨달음이고, 밝음과 실천의 갖춤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래 즉 깨달은 자의 상대 개념은 번뇌[루(漏)-āsava]입니다. (MN 9)는 십이연기(十二緣起)의 첫 지분인 무명(無明)과 이 번뇌를 서로 조건 되는 것이라고 설명하는데, 무명(無明)과 번뇌의 서로 조건 됨에 대한 이해는 삶의 이해를 위한 근본이 됩니다.


• 번뇌의 정의 ㅡ 「①오염원이고, ②다시 존재로 이끌고, ③두렵고, ④괴로운 보(報)를 가져오고, ⑤미래의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을 초래하는 것」  (MN 36)


악기웻사나여, 누구든지 오염원이고 다시 존재로 이끌고 두렵고 괴로운 보(報)를 가져오고 미래의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을 초래하는 번뇌들을 버리지 못한 자, 그를 나는 미혹한 사람이라고 부른다. 악기웻사나여, 번뇌를 버리지 못한 자가 미혹한 사람이다.

 

악기웻사나여, 누구든지 오염원이고 다시 존재로 이끌고 두렵고 괴로운 보(報)를 가져오고 미래의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을 초래하는 번뇌들을 버린 자, 그를 나는 미혹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부른다. 악기웻사나여, 번뇌를 버린 자가 미혹하지 않은 사람이다.


2. 재현(再現)되는 깨달음 ㅡ 제자들의 깨달음


견해 상윳따(S24)를 구성하는 32개의 경 등 많은 경들에서 비구들은 어떤 주제에 대한 부처님의 질문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대덕이시여, 참으로 법들은 세존을 뿌리로 하고, 세존을 도관(導管)으로 하고, 세존을 의지합니다. 대덕이시여, 이 말씀의 의미를 세존께서 분명히 밝혀주시면 참으로 감사하겠습니다. 비구들은 세존에게서 듣고서 받아들일 것입니다.”


비구들에게 의미를 가지는 법들은 오직 부처님에게서 생겨났고, 부처님이 이끄는 길 안에 있고 부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오직 부처님께서 분명하게 설명해 주시는 대로 배우고 배운 그대로 받아들여 삶의 기준으로 삼는다는 설명입니다. 특히, 세존을 도관(導管)으로 한다는 말은 수도관 안을 흐르는 물처럼 부처님 가르침 안에서 흘러야 하고 중간에 틈을 만들어 밖으로 새나가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를 알려준다고 하겠습니다.


부처님 가르침은 깨달음의 가르침입니다. 부처님에 의해 처음 생겨난[개척된] 그 깨달음에 닿기 위해서는 부처님께서 설명하신 그대로를 수도관으로 삼아 그 안에서 벗어나지 않고 흘러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제자들도 가르침을 수도관 삼아 깨달음에 닿는 것입니다. 심지어 웃띠야 경(A10:95)은 여래는 얼마의 제자들이 깨달음을 성취하는 지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하나의 길에 들어서서 그 길을 잘 걸어가는 자만이 깨달음을 성취한다고 알려줍니다. 열반으로 흐르는 도관에 들어와 열심히 흐르면 저절로 열반으로 이끌리지만 다른 도관으로 들어가면 열반으로 이끌리지 못한다는 것을 말해주는데, ‘세존을 도관(導管)으로 함’의 의미를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와 같이 여래는 세상 사람들이 모두 열반으로 인도되거나, 반 혹은 삼분의 일이 그렇게 되는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나 여래는 ‘세상으로부터 열반으로 인도되었고 인도되고 인도될 자들은 모두, 지혜를 무력하게 만드는 마음의 오염원인 다섯 가지 장애[오개(五蓋)-오장(五障)]를 버리고, 사념처(四念處)에 잘 확립된 마음으로, 칠각지(七覺支)를 있는 그대로 닦은 뒤에 비로소 세상으로부터 열반으로 인도되었고 인도되고 인도될 것이다.’라고 압니다. 


그래서 (SN 22.58)은 세존-아라한-정등각은 생기지 않은 도(道)를 생기게 한 자이고, 일어나지 않은 도(道)를 일으킨 자이고, 선언되지 않은 도(道)를 선언한 자이고, 도(道)를 아는 자이고, 도(道)에 능숙한 자이고, 도(道)에 정통한 자인데 반해 지금의 제자들은 도(道)를 따라 머물고 나중에 구족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제자들의 깨달음 - 도관.png


이렇게 오직 여래의 깨달음에 의해 생겨난 도관(導管)으로 이끌려 들어갈 때에만 깨달음은 제자들에게서 재현되는 것입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