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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業)과 업장소멸(業障消滅)

삶 = 행위[업(業)] ㅡ> 불교(佛敎)의 중심(中心) ㅡ 업(業)의 개념[Ⅰ]

0 898 2017.10.01 17:24

여기부터 '한편불교공부는 이렇게'까지의 문서들은 '개원 특강 교재(

http://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7_07&wr_id=26&page=2)에서 발췌하였습니다. 교재 제작 이후 향상된 해석은 추후 보완하겠습니다.

 

= 행위[()]

 

불교(佛敎) - 한 마디로 말하면 무엇입니까?

 

불교를 한 마디로 말하면 무엇일까요? 마음의 종교라고도, 바름의 종교라고도, 깨달음의 종교라고도, 행복의 종교라고도 말합니다. 모두 맞는 말씀입니다. 거기에 더하여 저는 다른 한 가지로 불교를 대표하려 합니다.

 

불교는 행위입니다. 행위의 뿌리에 마음[()]이 있고, 행위의 기준이 바름[()]입니다. 행위의 지향점이 깨달음[()]이며, 행위의 결과가 행복[()]입니다.

 

부처님은 행위의 측면에서 가르침을 설합니다. 행복한 결과를 만드는 행위에 대하여 설하고, 흔들리지 않는 진정한 행복은 어디에 있는지 설합니다. 행복에 도움 되는 행위의 기준을 설하고, 행위의 출발선에서 내 마음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설합니다.

 

행위 즉 업()[kamma]은 주관(主觀)이 있습니다. 몸과 말과 mano[()]입니다. 그래서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이라고 합니다. 몸과 말과 mano가 인식과정에서 감각된 대상을 객관(客觀)으로 하여 행위 하는 것입니다.

 

행위는 객관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객관의 상태에 변화를 초래하는데, 그 변화는 다른 존재들에게 도움이 되기도 하고 해침이 되기도 합니다.

 

또한, 행위는 주관에게도 영향을 미칩니다. 객관의 반작용에 의한 측면에서의 영향과, 주관의 내면에 생겨나는 변화의 측면에서의 영향입니다. 이때 주관의 내면에 생겨나는 변화는 마음의 성장[()의 머묾과 쌓임]과 내적 경향의 형성[()의 잠재]이라는 두 가지 방향으로 생겨납니다.

 

한편, 이런 영향은 새로운 오취온[자기존재]의 형성을 의미하는데, 오취온고(五取蘊苦)에 기반하여 고()와 락()의 결과[()-phala]를 만듭니다. 그리고 삶의 과정에 수반되는 다른 조건들과 어울려 현실적 느낌의 경험으로 만나집니다[()-vipāka]. 업인과보(業因果報) 또는 업인과보삼세윤회(業因果報三世輪廻)라는 말로써 표현하는 현상입니다. 즉 행위를 원인으로 고락(苦樂)의 결과가 생겨나고 거기에 이어지는 현실적 느낌을 경험하는 것이 삶입니다. [삶의 전개원리]

 

그런데 행위는 신구의(身口意)의 행위 주관에 의한 독립적인 것입니까, 아니면 신구의 이면에 원인[()]-조건[()]이 있습니까?

 

원인-조건 없이 신구의로 행위 할 뿐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무인무연(無因無緣)]. 또는 있기는 있는데 신의 뜻이 그것이라는 주장[존우론(尊祐論)]도 있고, 전생의 업이 그것이라는 주장[숙명론(宿命論)]도 있습니다.

 

부처님은 이 세 가지에 대해 나의 길 아님즉 바깥 길을 선언합니다[삼종외도(三種外道)]. 그러니 무인무연(無因無緣)이어서 생각-사유를 중심으로 몸과 함께 살다가 죽으면 끝이라는 견해는 부처님의 길이 아닙니다. 신의 뜻이나 전생의 업에 의한 수동적 삶이라는 견해도 부처님의 길이 아닙니다.

 

그러면 부처님의 길은 무엇입니까?

 

부처님은 신구의(身口意)의 행위 주관 이면에 원인되는 것을 제시하는데, citta[()]입니다. citta가 원인이 되어 몸과 말과 mano로 행위 하는 것입니다. 또한, citta가 원인이 되어 몸과 말과 mano로 행위 하면 고락(苦樂)의 과()와 보()가 생겨나고 경험되는 것이 삶의 전개 원리인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한 가지 의문이 있습니다. citta를 원인으로 하는 몸과 말과 mano의 행위가 고락(苦樂)의 과()와 보()를 초래한다는 것이 부처님에 의해 제시된 보편적 사실이라면, 동일한 행위에 따르는 과()와 보()가 어떻게 다를 수 있습니까? 동일한 행위에 의해 왜 누구는 괴로움을 겪어야하고 누구는 행복을 누려야하는 것입니까?

 

부처님은 citta[()]의 상태로써 답합니다. citta를 오염하는 오염원이 있어서, 오염된 citta를 원인으로 하는 몸과 말과 mano의 오염된 행위는 괴로움을 초래하고, 오염에서 벗어난 청정한 citta를 원인으로 하는 청정한 행위는 행복을 초래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염원으로 탐()[lobha 또는 rāga]-()[dosa]-()[moha]를 제시합니다.

 

결국 탐진치에 오염된 citta를 원인으로 몸과 말과 mano로 오염된 행위를 하면 괴로움을 초래하고, 탐진치에서 벗어난 청정한 citta를 원인으로 몸과 말과 mano로 청정한 행위를 하면 행복을 초래한다는 것이 부처님이 알려주는 삶의 전개 원리인 것입니다.

 

탐진치에 조건 지어진 citta를 원인으로 몸과 말과 mano로 행위 하여 고락의 과와 보를 초래하는 이것이 업()의 개념이고, 이것이 불교를 한 마디로 설명하는 행위이어서 불교의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불교의 중심 - 업의 개념1.png

 

이제 불교는 두 개의 영역으로 구분됩니다. 


1. 행위의 주관인 몸과 말과 mano를 잘 제어하여 행복을 생겨나게 하는 공부와


2. 원인-조건인 citta[심(心)]와 탐진치(貪嗔癡)를 구명(究明)하고 제어하여 몸과 말과 mano의 행위가 행복을 생겨나게 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공부


입니다. 


이때, 공부 1.는 바른 삼매를 위한 첫 번째 필수품인 업(業)의 제어를 의미하고, 공부 2.는 두 번째 필수품인 삼매의 성취 이후를 의미한다고 보아도 좋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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