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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業)과 업장소멸(業障消滅)

Ⅱ. 십업(十業)의 의미 부여

0 717 2017.10.01 17:45

. 십업(十業)의 의미 부여

 

<괴로움을 초래함 경(A10:187)[dukkhudrayasuttaṃ]>은 십악업(十惡業)을 괴로움을 초래하는 법[dukkhudrayo dhamma]이라고 하고, 십선업(十善業)을 행복을 초래하는 법[sukhudrayo dhamma]이라고 합니다. 십악업과 십선업이 각각 고()와 락()을 초래하는 특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A10:188)[vipākasuttaṃ]>은 십악업을 보()가 괴로움인 법[dukkhavipāko dhamma]이고, 십선업을 보()가 행복인 법[sukhavipāko dhamma]이라고 합니다.

 

십악업은 괴로움을 결과로 가져오는데, 조건들의 결합에 의해서 괴로움의 크기는 바꾸어 겪을 수 있지만 행복으로 그 성질을 바꿀 수는 없다는 의미입니다. 마찬가지로 십선업은 행복을 결과로 가져오는데, 조건들의 결합에 의해서 그 크기는 바꾸어 누릴 수 있지만 괴로움으로 그 성질을 바꿀 수는 없다는 의미입니다.

 

결국 십업은 옳고 그름의 판단 기준을 제시합니다. 어떠한 경우에든 십악업은 불만족[()]으로 연결되는 옳지 않은 행위이고, 십선업은 만족[()]으로 연결되는 옳은 행위입니다. 옳음은 만족[()=고멸(苦滅)]이고 그름은 불만족[()]이어서, ()에 대한 자각 위에서 고멸(苦滅)의 실현으로 나아가는 불교의 두 명제에 대한 실천적 답을 주는 것입니다. 즉 십선업 만으로 살아가는 삶이 고멸(苦滅)이 실현된 아라한의 삶인 것입니다.

 

또한, 십악업을 자기가 짓고, 남에게 시키고, 남의 행위에 동의하면, 또는 칭송하기까지 하면 마치 누가 그를 데려가서 놓는 것처럼 지옥에 떨어진다고 합니다. 역으로 십선업을 자기가 짓고, 남에게 시키고, 남의 행위에 동의하면, 또는 칭송하기까지 하면 마치 누가 그를 데려가서 놓는 것처럼 천상에 태어난다고 합니다. <생명을 죽임 경(A3:153) & 지옥과 천상 경4(A10:213)>

 

특히, <지옥과 천상 경4(A10:213)>은 십업에 관한 가장 포괄적 설명을 담고 있는데, 자기가 짓고, 남에게 시키고, 남의 행위에 동의하고, 칭송하는 네 가지 경우로 나타납니다. []자기 스스로도 생명을 해치고, 남에게도 생명을 해치도록 교사하고, 생명을 해치는 것에 동의하고, 생명을 해치는 것을 칭송한다.

 

한편, <전륜성왕 사자후 경(D26)>은 십악업과 십선업의 발생 과정을 설명합니다.

 

징벌과 무력을 쓰지 않고 법으로써 승리하여 통치하는 이상적 통치자인 전륜성왕의 통치에서 세속적인 왕의 통치로 전환되면서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도둑질이라는 것'이 가장 먼저 생겨난 후 도둑질에 대한 대응으로부터 '생명을 죽이는 것'이 크게 퍼지고, 이어서 거짓말 고자질(중상모략) 삿된 음행 욕설과 쓸데없는 말 간탐과 진에[abhijjhābyāpādā] 삿된 견해[micchādiṭṭhi] 세 가지 법[비법(非法)을 좋아함, 불평등을 당연시함, 삿된 법] 또 다른 법[어머니를 공경하지 않고, 아버지를 공경하지 않고, 사문을 공경하지 않고, 바라문을 공경하지 않고, 집에서 연장자를 공경하지 않는 것]이 크게 퍼지게 됩니다.

 

십악업에 의한 인간 사회의 파멸은 후에 우리는 해로운 법들을 수지했기 때문에 이러한 엄청난 일가친척의 손실을 입었다. 그러니 이제 참으로 우리는 유익함을 행해야 한다.’는 자각을 통해 극복되는데, 살생을 금하는 것으로 시작하지만, 그 효과에 대한 자각은 나머지 아홉 가지 선한 업을 동시에 지키려 하게 하여 오직 두 단계 만에 십선업을 지키는 사회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이 경에 의하면, 십악업은 왕의 통치 즉 정치의 문제로 인해 생겨나고 사회의 파멸을 초래하지만, 십선업은 사회 구성원들의 자각에 의해 생겨나 사회를 번영케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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