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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단계로 이루어진 행복의 공식 - [보시(布施)-지계(持戒)-수행(修行)]

0 706 2017.09.05 22:55

4년 전에 쓴 글입니다. 조금은 어눌한 대로 보아 주시기 바랍니다.

 

세 단계로 이루어진 행복의 공식 - [보시(布施)-지계(持戒)-수행(修行)]

 

 

우리 카페에서 [좋은 표현 한 가지]란 글을 보았는데, 정말 좋은 표현을 찾게 되었습니다.

 

「언제나 '자신 안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놓치지 않음'에 집중하셔야 할 것입니다. 내 안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이 나도 모르게 행위로 연결되어 버리면 삶이 나의 뜻과는 다르게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결과는 괴로움인 것이고요.」

 

며칠 전 어떤 법회에서 법우님 한 분이 진시황제의 불로초거나 혹은 도교에서 말하는 불로장생법과 같은 것이 불교에는 없느냐고 질문하셔서, 제가 이런 답변을 드렸습니다. 십이연기(十二緣起)의 열 번째인 '존재[유(有) - bhava]'를 응용하여 드린 답변입니다.

 

인간의 행위를 하면 인간 세상을 만들어 인간으로 삽니다. 짐승의 행위를 하면 짐승 세상을 만들어 짐승으로 삽니다. 하늘 사람의 행위를 하면 하늘 세상을 만들어 하늘 사람으로 살아갑니다. [지옥까지는 차마라도 예를 들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의 몸으로 존재하지만 행위에 따라 인간으로도, 짐승으로도, 하늘 사람으로도 살아갑니다. 그러다 죽으면, 몸 따라 죽지 못하는 연기(緣起)하는 마음은 행위 한 대로 새로운 몸과 만나 인간으로도 태어나고, 짐승으로도 태어나고, 하늘 사람으로도 태어납니다.

 

그러면 행위에는 어떤 기준이 있어서 인간으로도, 짐승으로도, 하늘 사람으로도 살게 하고 또 태어나게 합니까?

 

첫 번째 기준은 오계(五戒)입니다. 오계를 지키는 행위만 하여도, 인간의 행위로 인간의 세상을 만들어 인간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다 죽으면 다시 인간으로 태어나게 됩니다. 오계도 지키지 않는 행위로는 인간의 세상조차 만들지 못하고 인간만도 못한 삶을 살다가, 죽으면 인간보다 열악한 존재로 태어나게 됩니다.

 

두 번째 기준은 보시(布施)입니다. 오계를 지키는 가운데 남을 위해 베풀면 하늘 사람의 행위로 하늘 세상을 만들어 하늘 사람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다 죽으면 하늘 세상에 태어나게 됩니다. 

 

[170905 보완] 첫 번째와 두 번째 기준은 보시와 지계입니다. 두 가지를 어떤 강도로 실천하는지에 따라 인간이거나 하늘 사람의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다 죽으면 다시 살아서의 실천에 대응하여 인간이거나 하늘에 태어나게 됩니다.

 

그런데 하늘 세상은 크게 세 단계로 나뉩니다. 마음이 ①몸으로 감각되는 물질 세상을 즐기려는 욕망[kāma]에 묶여 살아가는 욕계(慾界) 하늘과, ②kāma에서는 벗어났지만 물질[몸]에 대해서는 묶여 있는 색계(色界) 하늘, 그리고 ③물질[몸]에 대한 속박에서도 벗어나고 오직 자기존재마음['나의 자아'라는 생각]에만 묶여 있는 무색계(無色界) 하늘입니다. 

 

이 가운데 오계와 보시의 행위는 욕계에 속한 여섯 하늘[사왕천(四王天)-삼십삼천(三十三天)-야마천(耶摩天)-도솔천(兜率天)-화락천(化樂天)-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이 대상입니다. 이 여섯 하늘은 하늘 세상 가운데서는 비록 낮은 단계의 하늘이지만 인간이 느끼는 행복과는 비교할 수 없는 큰 행복으로 충만한 곳입니다. 이 세상 최고의 부자 또는 권력자라 해도 결코 따라갈 수 없는 행복한 세상입니다. 그러니 그대가 오계와 보시의 행위를 통해 욕계의 하늘 세상에 태어나게 된다면 참으로 복 받은 일이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시(施)-계(戒)-생천(生天)」이라 하여 하늘 세상에 태어나는 일을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세 번째 기준은 수행(修行)입니다. 수행은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데, ①사범주(四梵住) 또는 사무량심(四無量心)인 자비희사(慈悲喜捨)와 ②사념처(四念處)-사마타-위빳사나라는 일련의 체계를 가지는 수행입니다. 

 

사무량심을 닦고 실천하는 것은 범천(梵天)의 세상 즉 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 하늘의 삶입니다. 범천(梵天)이라는 하늘 사람의 행위로 범천의 세상을 만들어 범천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다 죽으면 범천의 세상에 태어나게 됩니다. 범천의 세상은 욕계 세상의 행복과는 전혀 성질을 달리하는 행복한 세상입니다. ‘훨씬 훌륭하고 탁월한 다른 행복’이라고 경전은 말하는데, 크기의 대소(大小)로 구분할 수 있는 행복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사념처-사마타-위빳사나를 닦고 실천하는 것은 윤회하는 중생의 삶을 벗어나 해탈로 이끄는 삶입니다. 경전에 의하면, 「열반으로 직접 안내하는 가르침[수행법]」입니다. 

 

행위의 원인인 마음[citta-심(心)]이 오염원 즉 탐진치(貪嗔癡)에 물들면 오염된 행위를 하게 됩니다. 물론 오계와 보시를 통해 행위를 제어하고 욕계의 하늘 세상에 태어날 수 있습니다. 또한, 사무량심으로 행위를 제어하고 범천의 세상에 태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행위의 제어를 전제하면서 오염원을 직접 제어하면 행위의 제어보다 훨씬 강력한 효과를 거두게 되는데, 해탈-열반을 실현하는 것입니다. 바로 사념처-사마타-위빳사나의 위력입니다. 

 

이때 사념처(四念處) 수행은 행위의 제어를 위한 기능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오계-보시-사무량심으로 행위를 제어하기 위해서는 sati[념(念)]에 의한 알아차림이 선행(先行)해야 하는데, 사념처가 바로 sati를 힘 있게 하여 그 역할을 가능하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이글의 시작에서 찾아낸 「언제나 '자신 안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놓치지 않음'에 집중하셔야 할 것입니다. 내 안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이 나도 모르게 행위로 연결되어 버리면 삶이 나의 뜻과는 다르게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결과는 괴로움인 것이고요.」라는 말씀이 바로 이런 ‘sati하는 삶’의 중요성을 말해준다고 할 것입니다.

 

내 안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이 행위로 연결되는 과정을 놓치지 않으면 삶이 나의 뜻대로 진행됩니다. 물론, 이런 수행은 불교의 정체성이 되는 무상(無常)-고(苦)-무아(無我)에 대한 믿음을 근거로 하기 때문에, '삶이 나의 뜻대로 진행된다.'는 것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바로 수행자의 삶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세 가지 공덕행(功德行)이 있다고 하는데, 보시(布施)와 지계(持戒)와 수행(修行)입니다. 이 세 가지 행위들을 통해 삶이 향상되기 때문에, 또한, 괴로움은 줄어들고 행복은 늘어나는 과(果)와 보(報)를 가져오기 때문에 공덕[복(福)]이 되는 행위인 것입니다.

 

여기까지 말하고서 그 법우님께 결론지어 드렸습니다. 지금의 몸으로 살아가는 금생(今生)뿐만 아니라 세세생생, 아라한 되어 윤회에서 벗어날 때까지, 불로장생(不老長生)하듯이 행복해지는 불교적 방법이 바로 이것입니다. 세 단계로 이루어진 행복의 공식인 것입니다. 이 행복의 공식으로 삶의 문제를 풀어내면 됩니다. 그렇게만 하면, 그대의 삶이 영원토록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법우님들 모두 이 행복의 공식으로 해피[解彼 &happy]하시기 바랍니다!

 

※ 이 글을 주제로 담마스쿨 2학기 3주차 수업에서 설법하였습니다.

     ☞ http://cafe.naver.com/happybupdang/7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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