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깨달음의 목적[세계 & 여래 출현의 이유(生-老-死)](깨달음 법회 170907)
[동영상] https://youtu.be/J5jR4bK4ZBs
1. 수미산에 대한 질문에 답하면서 불교의 세계관은 지구거나 태양계 같은 물리적 세상의 설명이 아니라 상(想)의 참여에 의한 삶의 질의 측면에서 설명된다는 점을 말하였습니다. 이때, 욕계(慾界)-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의 삼계(三界)는 소유의 삶[욕계(慾界)]와 존재의 삶[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로 구분되고, 불교는 존재의 삶에 내재한 문제의 해소를 통한 해탈된 삶을 제시한다는 점을 설명하였습니다.
• 수미산의 용례 ㅡ
1) 수미산 경(S56:49)[paṭhamasinerupabbatarājasuttaṃ (SN 56.49)]
☞ http://cafe.naver.com/happybupdang/5167
2)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 http://cafe.naver.com/happybupdang/898
2. 여래 출현의 이유
첫 번째 주제 ‘누구의 깨달음인가?’에 이어지는 깨달음의 두 번째 주제는 ‘무엇을 위한 깨달음인가?’입니다. 어떤 목적을 위해 부처님의 깨달음이 필요했는지의 문제인데, 여래가 출현해야 하는 이유라고 하겠습니다.
tayodhammasuttaṃ (AN 10.76)[세 가지 법 경]은 생(生)-노(老)-사(死)의 세 가지 법이 여래 출현의 이유라고 알려줍니다. 다른 존재들과의 관계 가운데 전개되는 존재로서의 삶에 수반되는 모든 문제들은 다른 스승들의 가르침에 의해서도 해소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존재 자체에 내재한 현상인 생(生)-노(老)-사(死)의 문제만큼은 완전한 깨달음에 의한 부처님의 가르침 아니고는 해결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다른 스승들의 가르침과 부처님의 가르침은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존재에 대한 해석의 문제입니다. 다른 스승들은 존재를 있는 그대로 보아내지 못해서 존재로서의 삶의 문제에는 답을 주지만 존재 자체를 설명하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존재에 대해 이런저런 것이라고 참됨[sat-atman-아(我)]를 설정하고, 설정된 존재의 삶에 대해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존재에 내재한 생(生)-노(老)-사(死)의 문제에 대해서는 적절히 답할 수 없습니다.
• 스승들의 가르침을 실천하여 나와 너가 함께하는 삶에서는 아무런 문제없이 살아가게 되었다고 해도 나도 모르게 나는 늙고 병들고 죽어갑니다. 이 문제는 어떻게 대처하고 어떻게 해결해야 합니까?
그러나 부처님은 깨달음에 따르는 완전한 지혜로써 존재를 있는 그대로 보았습니다. 보았기 때문에 어떤 설정도 없이 존재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설명하는데, 유(有-bhava)[식(識)과 명색(名色)]이고, 오취온(五取蘊)이고, 유신(有身)입니다. 아무런 설정 없이 행해지는 그 설명에 의하면, 존재는 참된 것이 아니라 불완전한 조건들에 의해 생겨나는 것입니다. 불완전한 조건들에 의해 생겨났기 때문에 삶의 과정에서 불만족을 겪어야하는 것이 현실의 문제입니다. 이렇게 불완전한 조건들에 의해 존재가 생겨나고 생겨난 존재가 생(生)-노(老)-사(死)-수비고우뇌(愁悲苦憂惱) 등 일체의 괴로움 덩어리[고온(苦蘊)]을 겪으며 살아가고 있다고 설명하는 교리가 십이연기(十二緣起)입니다.
※ 불완전한 조건들이라는 것은 번뇌와 무명(無明)을 뿌리에 둔 조건들이라는 의미입니다. 서로 조건 되는 것인 번뇌와 무명 위에서 탐진치(貪嗔癡)와 함께하는 삶 즉 유위(有爲)의 삶에서 작용하는 조건들입니다.
이렇게 삶은 삶의 주체인 존재 즉 유(有-bhava)[식(識)과 명색(名色)]에 대한 바른 이해 위에서 대처해야 합니다. 그럴 때 존재에 수반되는 모든 불만족이 해소될 수 있습니다. 경은 존재 즉 유(有-bhava)[식(識)과 명색(名色)]에 대한 바른 이해 위에서의 대처방법을 팔정도(八正道)라고 하고, 실제로 불만족을 해소해 가는 과정 즉 팔정도(八正道)의 실천을 중도(中道)라고 합니다.
• 「무엇을 위한 깨달음인가?」의 질문은 이런 답을 가집니다. ㅡ 「오취온(五取蘊)의 모면을 위한 깨달음! → 다시 존재가 되지 않음 → 생(生)-노(老)-사(死) 없음 → 윤회(輪迴)에서 벗어남」
• ‘무엇을 위한 깨달음인가?’의 질문은 「탐진치(貪嗔癡)를 부숨으로써 생(生)-노(老)-사(死)의 문제에서 벗어나기 위한 깨달음」이라는 확장된 답을 갖게 됩니다.
교재를 답글에 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