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taṇhākkhayo virāgo nirodho nibbānaṃ」의 용례에 의하면 열반의 설명은 행(行)의 그침[saṅkhārasamatha]을 포함하여 좀 더 확장됩니다.
; 이것은 고요하고 이것은 수승하다 즉 모든 행(行)들의 그침이고, 모든 재생을 초래하는 붙잡음을 놓음이고, 갈애의 부숨이고, 이탐(離貪)이고, 소멸(消滅)이고, 열반(涅槃)이다.」
모든 행(行)들의 그침과 모든 움켜쥠을 놓음으로 확장되어 정의되는 열반은 고요하고 수승하다는 설명입니다. 여기서 행(行)의 그침[saṅkhārasamatha]의 의미는 이해되어야 합니다.
행(行)의 그침[saṅkhārasamatha]은 심(心)의 가라앉음[cetaso vūpasama]과 들뜸[uddhacca]이라는 두 가지 개념을 중심으로 설명되는데, ①무상(無常)의 게송과 ②오장(五章)과 칠각지(七覺支)의 자량(資糧)[āhara]의 측면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① 무상(無常)의 게송
“aniccā vata saṅkhārā, uppādavayadhammino.
uppajjitvā nirujjhanti, tesaṃ vūpasamo sukho”ti.
참으로 행(行)들은 무상(無常)하다. 일어나고 사라지는 성질을 가졌다.
그들은 일어남을 조건으로 소멸한다. 그들의 가라앉음이 락(樂)이다.
제행무상(諸行無常) 시생멸법(是生滅法)
생멸멸이(生滅滅已) 적멸위락(寂滅爲樂)
• mahāparinibbānasuttaṃ, parinibbutakathā (DN 16.37)
• mahāsudassanasuttaṃ, brahmalokūpagamaṃ (DN 17.15)
• nandanasuttaṃ (SN 1.11) → [aniccā sabbasaṅkhārā]
• parinibbānasuttaṃ (SN 6.15)
• anuruddhasuttaṃ (SN 9.6) → [aniccā sabbasaṅkhārā]
• vepullapabbatasuttaṃ (SN 15.20)
② 오장(五章)과 칠각지(七覺支)의 자량(資糧) ㅡ āhārasuttaṃ(SN 46.51)[자량 경]
비구들이여, 어떤 것이 일어나지 않은 들뜸-후회를 일어나게 하고, 일어난 들뜸-후회를 더욱 늘어나게 하고 가득하게 하는 자량인가? 비구들이여, 심(心)의 가라앉지 않음이 있다. 거기에 비여리작의(非如理作意)를 많이 행하면, 이것이 일어나지 않은 들뜸-후회를 일어나게 하고, 일어난 들뜸-후회를 더욱 늘어나게 하고 가득하게 하는 자량이다.
비구들이여, 어떤 것이 일어나지 않은 들뜸-후회를 일어나게 하고, 일어난 들뜸-후회를 더욱 늘어나게 하고 가득하게 하는 자량 아님인가? 비구들이여, 심(心)의 가라앉음이 있다. 거기에 여리작의(如理作意)를 많이 행하면, 이것이 일어나지 않은 들뜸-후회를 일어나게 하고, 일어난 들뜸-후회를 더욱 늘어나게 하고 가득하게 하는 자량 아님이다.
비구들이여, 어떤 것이 일어나지 않은 정각지(定覺支)를 일어나게 하고, 일어난 정각지(定覺支)를 닦아서 완성하게 하는 자량인가? 비구들이여, 사마타의 상(相)과 부동(不動)의 상(相)이 있다. 거기에 여리작의(如理作意)를 많이 행하면, 이것이 일어나지 않은 정각지(定覺支)를 일어나게 하고, 일어난 정각지(定覺支)를 닦아서 완성하게 하는 자량이다.
비구들이여, 어떤 것이 일어나지 않은 정각지(定覺支)를 일어나게 하고, 일어난 정각지(定覺支)를 닦아서 완성하게 하는 자량 아님인가? 비구들이여, 사마타의 상(相)과 부동(不動)의 상(相)이 있다. 거기에 비여리작의(非如理作意)를 많이 행하면, 이것이 일어나지 않은 정각지(定覺支)를 일어나게 하고, 일어난 정각지(定覺支)를 닦아서 완성하게 하는 자량 아님이다.
①과 ②는 vūpasama를 매개로 연결됩니다. 존재 일반에게서는 무상(無常) 즉 일어나고 사라지는 성질이 있어서 일어남을 조건으로 소멸하는 것인 행(行)들의 가라앉음이 락(樂) 즉 열반(涅槃)인데, 존재[유(有)-bhava]에게서는 심(心)의 가라앉지 않음을 조건으로 들뜸이 있고 심(心)의 가라앉음을 조건으로 들뜸이 없다는 것입니다. 행(行)의 특성을 배제하고 열반으로 이끄는 것이 가라앉음[vūpasama]인데 이것이 존재[유(有)-bhava]의 삶에서는 들뜸의 배제를 위한 방법으로 적용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들뜸 경(A6:116)[Uddhaccasutta]은 들뜸을 배제하기 위해서는 사마타를 닦아야 한다[uddhaccassa pahānāya samatho bhāvetabbo]고 하여 사마타가 바로 심(心)의 가라앉힘을 목적으로 하는 수행이라고 알려줍니다.
이런 이해 위에서 위의 그림을 보면 사마타는 사념처에 의한 염오(厭惡)의 유지를 위한 이탐(離貪)의 과정입니다. 사마타에 의해 심(心)을 가라앉힌다는 것은 염오(厭惡) 즉 즐기지 않고 환영하지 않고 묶여 있지 않음으로써 nandi를 소멸하여 갈애를 부수는 과정의 유지를 말하는 것인데, 이것이 들뜸의 배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들뜸은 ‘즐기고 환영하고 묶여 있음에 의해 nandi를 생기게 하여 갈애를 형성하는 과정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마타는 무엇입니까? 사마타는 위빳사나와 함께 알려지는 것인데, 명(明)과 연결됨 경(A2:3:10)[Vijjābhāgiya-sutta]에 의하면, 사마타를 닦으면 심(心)이 개발되고 탐(貪)이 버려져[이탐(離貪)] 심해탈(心解脫)하고, 위빳사나를 닦으면 혜(慧)가 개발되고 무명(無明)이 버려져[소멸(消滅)] 혜해탈(慧解脫)합니다.
그런데 이 과정 즉 들뜸은, 위의 그림에서 보듯이, 심(心)의 행위 과정입니다. 이에 비해 심(心)의 가라앉음[cetaso vūpasama]은 심(心)의 형성 과정[심행(心行)]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심(心)의 행위 과정의 문제를 염오(厭惡)하여 완전히 제어-단속하였다면 그 유지를 위해서는 심(心)의 형성 과정의 문제를 해소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그 방법으로 사마타와 위빳사나가 함께 제시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열반을 정의하는 확장된 개념인 sabbasaṅkhārasamatho는 사마타-위빳사나에 의해 심(心)의 형성과정의 문제[무명(無明)과 탐(貪)]를 해소하여 사념처에 의한 들뜸의 제어를 흔들림 없이 유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 부동(不動)의 심해탈(心解脫)
이렇게 해서 생겨나는 것이 바로 열반입니다. 심(心)의 형성과정의 모든 문제가 해소되어 더는 불완전한 존재가 되어 수반되는 불만족에 떨어지지 않게 된 완성의 경지입니다. 무상(無常)한 행(行)을 가라앉혀서 행(行)의 특성에서 벗어난 것으로의 열반이 생겨난 것인데, 이에 따라 존재하는 것은 행(行)과 열반을 더한 법(法)이 됩니다. 그리고 이런 내용을 담아 삼법인(三法印)으로 깨달음은 선언됩니다.
‘sabbe saṅkhārā aniccā’ ‘sabbe saṅkhārā dukkhā’ ‘sabbe dhammā anattā’
제행무상(諸行無常)-제행개고(諸行皆苦)-제법무아(諸法無我)
이렇게 해서 깨달음은 열반을 만듭니다. 그러므로 깨달음의 산물(産物)이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열반이 바로 그것이라고 답하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