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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행(行)의 이해 ㅡ 하나의 체계를 구성하는 세 가지 행(行)

1 1,142 2017.10.13 13:01

[참고] 행(行)의 이해 ㅡ 하나의 체계를 구성하는 세 가지 행(行)


불교교리에는 행(行)[saṅkhāra]이 세 군데에 나타납니다. 십이연기(十二緣起)의 행(行)과 오온(五蘊)의 행(行) 그리고 삼법인(三法印)의 행(行)입니다. 그런데 이 세 가지는 각각 다른 의미를 가지지만 업(業) 즉 행위를 매개로 연결되어 하나의 체계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삶은 행위입니다. 신(身)과 구(口)와 의(意)에 의한 세 가지 행위 즉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이 삶의 현장인 것입니다. 그런데 신구의(身口意)로 업(業) 즉 행위를 하려면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신(身)과 구(口)와 의(意)입니다. 그리고 이들 또한 무아(無我)인 것이니 어떤 방법에 의해서 생겨나야 합니다. 생겨난 신(身)과 구(口)와 의(意)가 있을 때 신(身)과 구(口)와 의(意)가 주체가 되어 업(業) 즉 행위를 하는 것입니다. → bhūmijasuttaṃ (SN 12.25)[부미자 경] & cetanāsuttaṃ (AN 4.171)[의도 경] 참조.


그런데 행(行)[saṅkhāra]의 원래 의미는 형성 작용입니다. 무언가 결과를 만드는 작용이라는 의미입니다. 이 측면에서 세 가지 행(行)은 설명되어야 합니다.


신(身)과 구(口)와 의(意)를 중심에 둔 삶에서 우선 필요한 것은 신(身)과 구(口)와 의(意)를 만드는 일입니다. 십이연기(十二緣起)의 행(行)은 여기에 답을 주는데, 신행(身行)과 구행(口行)과 심행(心行)입니다.


이 육체가 몸인지 아니면 단순한 고깃덩어리인지를 구별해주는 것은 호흡 즉 들숨-날숨입니다. 숨 쉬고 있으면 내 몸이고 숨 쉬고 있지 않으면 시체라고 불리는 고깃덩어리가 됩니다. 그래서 몸을 만드는 작용 즉 신행(身行)은 들숨-날숨입니다. 


십이연기(十二緣起)의 행(行)은 신행(身行)[들숨-날숨]과 구행(口行)[위딱까-위짜라]와 심행(心行)[상(想)-수(受)]로 정의되는데, 신행(身行)에 대한 이런 이해에 의하면, 십이연기의 행은 신(身)과 구(口)와 심(心)을 만드는 작용입니다.


그래서 구(口)는 위딱까-위짜라를 조건으로 생겨나고, 심(心)은 상(想)-수(受)를 조건으로 생겨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생겨난 심(心)이 삶의 과정을 진행하여 신(身)과 만나면 의(意)가 됩니다. 즉 의(意)가 생겨나는 과정도 이렇게 설명되는 것입니다. 물론 이 행(行)은 무명(無明)을 조건으로 하는 행(行)입니다. 번뇌의 영향을 받는 유위(有爲)적인 삶 즉 중생의 영역에서 적용되는 신(身)과 구(口)와 심(心)의 형성 작용입니다.


십이연기(十二緣起)의 행(行)에 의해 신(身)과 구(口)와 심(心)[→의(意)]가 생겨나면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 즉 신(身)과 구(口)와 의(意)로 행위 합니다. 그런데 번뇌의 영향을 받는 유위(有爲)적인 신(身)과 구(口)와 의(意)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이 행위 역시 유위(有爲)적 행위이고, 그 때문에 식(識)의 머묾과 상(想)의 잠재라는 과(果)를 초래합니다. 


• 머문 식(識)은 존재[유(有)-bhava]에 더해져 존재의 상태를 바꾸고, 잠재한 상(想)은 상온(想薀)에 더해져 2차 인식에 간섭하는 경향을 바꿉니다.


이렇게 번뇌의 영향을 받는 유위(有爲)적인 신구의(身口意)의 행위는 오온(五蘊)의 행(行)입니다. 그래서 오온(五蘊)의 행(行)은 ‘saṅkhatamabhisaṅkharontīti saṅkhārā’ 즉 ‘유위(有爲)에서 형성 작용을 한다고 해서 행(行)‘이라고 정의됩니다.


한편, 존재하는 것들 즉 법(法)은 행(行)과 열반(涅槃)으로 구성됩니다. 행(行)은 무상(無常)-고(苦)-무아(無我)의 특성을 가지고, 법(法)은 무상(無常)의 가라앉음에 의해 락(樂)이고 무아(無我)입니다.


십이연기(十二緣起)의 행(行)을 거쳐 오온(五蘊)의 행(行)으로 연결되는 삶은 번뇌의 영향을 받는 상태입니다. 즉 무명(無明)을 조건으로 하는 중생의 영역에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은 무상(無常)한 것들에 대해 무상(無常)하다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상(常)한 것이라는 경향을 가지는 전도(轉倒)된 삶입니다. 그래서 존재하는 것들에 대해 불만족[고(苦)]를 수반합니다. 사실[무상(無常)-고(苦)-무아(無我)]에 괴리된 삶의 결과로 고(苦)를 만드는 것입니다. 이렇게 번뇌의 영향을 받는 유위(有爲)적 삶의 영역에서 만나지고 그럼으로써 고(苦)를 수반하는 모든 존재를 행(行)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번뇌의 영향에서 벗어난 무위(無爲)적 삶 즉 무명(無明)이 버려지고 명(明)이 생겨난 해탈된 삶은 사실[무상(無常)-고(苦)-무아(無我)]에 부합한 삶이어서 불만족[고(苦)]를 수반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번뇌의 영향을 받지 않는 무위(無爲)적 삶의 영역에서 만나지고 그럼으로써 고(苦)를 수반하지 않는 존재를 열반(涅槃)이라고 합니다.


이런 이해 위에서 존재는 이렇게 정의됩니다. ㅡ 「존재하는 모든 것들[법(法)]은 무아(無我) 즉 생겨나는 것이다. 그 중 번뇌의 영향을 받는 유위(有爲)적 삶의 영역에 속하는 것인 행(行)은 무상(無常)과 고(苦)의 특성을 가진다. 그러나 번뇌의 영향에서 벗어난 무위(無爲)적 삶의 영역에 속하는 것인 열반(涅槃)은 무상(無常)을 가라앉힘에 의한 고멸(苦滅) 즉 락(樂)의 특성을 가진다. 그래서 행(行)은 무상(無常)-고(苦)-무아(無我)이고 열반(涅槃)은 (무상(無常)의 가라앉음-)락(樂)-무아(無我)의 특성을 가진다.」


존재에 대한 이런 이해는 「sabbe saṅkhārā aniccā, sabbe saṅkhārā dukkhā, sabbe dhammā anattā[제행무상(諸行無常)ㅡ제행개고(諸行皆苦)ㅡ제법무아(諸法無我)」로 정리되는데, 삼법인(三法印)입니다.


 

이때, 행(行)은 십이연기(十二緣起)의 행(行)에 이은 오온(五蘊)의 행(行)의 결과로 고(苦)를 만드는 존재상황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세 가지 행은 각각 다른 의미를 가지지만 업(業) 즉 행위를 매개로 연결되어 하나의 체계를 구성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세 가지 행의 연결된 의미.png

 

세 가지 행의 연결된 의미2.png

 

Comments

대원행 2023.02.14 23:15
http://www.nikaya.kr/bbs/board.php?bo_table=happy06_02&wr_id=42 참조 (부산불교의사회 - 마음[심-의-식의 이해 ― 동질성 위의 차별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