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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해[불완전한 존재 & 누적된 삶과 지금 삶](깨달음 법회 171221)

0 633 2017.12.22 10:43

삶의 이해[불완전한 존재 & 누적된 삶과 지금 삶](깨달음 법회 171221)

[동영상] https://youtu.be/d-NniAS21Bo

 

깨달음의 산물(産物)로서의 열반을 이해하는 수업입니다. 무상(無常)의 게송에서 말하는 일어나고 사라지는 성질의 가라앉음(vūpasama)으로 설명되는 열반의 이해를 위해서는 우선 일어나고 사라지는 성질을 가진 것으로의 행() 또는 그에 따른 불완전한 존재 상태인 를 알아야 합니다.

 

중생(衆生)는 불완전한 존재인데, 오취온(五取蘊) 또는 유신(有身)이라고 정의됩니다. ()의 성질을 극복하고 생겨나는 열반(涅槃)까지도 포함하는 무아(無我)의 원리에 의하면, 존재하는 모든 것은 생겨나는 것입니다. 조건들의 결합에 의한 결과물로 생겨나는 것입니다[연기(緣起)-무상(無常)(*)]. 그래서 존재하는 것들의 상태는 생겨나는 과정의 상태에 의해 결정됩니다.

 

(*) 물론 열반(涅槃)은 무상(無常)의 가라앉음을 조건으로 생겨나는 즉 무상(無常)을 극복한 상태입니다.

 

중생 즉 오취온-유신은 번뇌의 영향을 받는 상태입니다. 탐진치(貪嗔癡)와 함께함이고, 유위(有爲)이며, 참된 것이라는 나에 대한 거짓 설정이 함께한 삶입니다. 이런 삶은 결과를 만들고[()의 잠재 ()의 머묾], 만들어진 결과는 누적(累積)되어 나의 상태를 바꿉니다. 그리고 이렇게 삶의 과정 과정을 누적하며 변화하는 내가 지금을 삽니다.

 

이렇게 삶은 과거 삶의 누적인 누적된 삶과 그 누적된 것으로의 나에 의한 지금의 삶이 있습니다. 그래서 과거를 누적한 것으로의 내가 지금을 살고, 지금 삶의 결과를 다시 누적하여 나를 바꾸는 것이 중생으로의 삶의 과정인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삶은 인식과 행위로 구성됩니다. 그리고 이 두 가지는 매개에 의해 연결됩니다. 이때, 행위를 인식으로 연결하는 매개는 찬다(chanda)입니다. 한 순간 이전의 행위 상태를 싣고 현재의 인식으로 연결하는 것입니다[삶의 연속성 부여].

 

인식도 행위로 연결됩니다. 그런데 이때의 매개는 다릅니다. 하나의 법()을 매개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일련의 과정을 포함하는 내적 공간을 매개로 연결됩니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 인식은 가공됩니다. 인식은 가공되어 행위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이런 내적 공간은 딱까(takka)입니다. 그리고 번뇌의 영향 위에서 진행되는 이 가공과정에 의해 갈애[()-taṇhā]가 생기는데, 자기화[māna]되는 것입니다. 무아(無我)인 나를 아()라고, 참된 것이라고 거짓 설정토록 가공되어 거짓의 상태로 행위를 주관하는 것입니다.

 

이런 방법의 불완전한 가공과정을 조건으로 나는 불완전한 존재로 생겨나는 것인데, ()[bhava]입니다.

 

수업에서는 불완전한 존재에 수반되는 현상으로의 윤회를 설명하였습니다. 그리고 불완전한 가공과정의 문제를 해소하여 존재의 불완전 상태가 제거되면 윤회는 수반되지 않는다는 것도 설명하였습니다. 이 설명의 과정에서 생명과 식()과 체열의 관계를 말하였는데 http://cafe.naver.com/happybupdang/8728[서로 조건 됨을 설하는 경우]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ㅡ 「[사리뿟따] “도반이여, 이러한 다섯 가지 감각기능, 즉 안근(眼根)-이근(耳根)-비근(鼻根)-설근(舌根)-신근(身根)이 있습니다. 벗이여, 이러한 다섯 가지 감각기능은 생명력을 조건으로 존재합니다[imāni kho, āvuso, pañcindriyāni āyuṃ paṭicca tiṭṭhantī].”

[꼿티따] “도반이여, 이러한 생명력은 무엇을 조건으로 존재합니까?”

[사리뿟따] “도반이여, 이러한 생명력은 체열을 조건으로 존재합니다.”

[꼿티따] “도반이여, 이러한 체열은 무엇을 조건으로 존재합니까?”

[사리뿟따] “도반이여, 이러한 체열은 생명력을 조건으로 존재합니다.”

 

[꼿티따] “도반이여, 어떠한 것들이 이 몸을 떠나면, 여기 이 몸이 무정한 통나무처럼 버려지고, 던져져 누워있게 되는 것입니까?”

[사리뿟따] “도반이여, 세 가지 즉, 생명력과 체열과 식()이 이 몸을 떠나면, 여기 이 몸은 무정한 통나무처럼 버려지고, 던져져 누워있게 됩니다.[“yadā kho, āvuso, imaṃ kāyaṃ tayo dhammā jahanti āyu usmā ca viññāṇaṃ; athāyaṃ kāyo ujjhito avakkhitto seti, yathā kaṭṭhaṃ acetanan”ti.]”<교리문답의 큰 경(M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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